# 내가 經驗한 것은~
나의 머릿속에서만 存在할 뿐~
-이글은
인문학(서양철학과 동양철학) 149번에서
이어지는 글이랍니다.-
- 이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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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형학의 한마디~>
-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運命을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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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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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자~
‘모두가 나의 머릿속에 있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곧 내가 경험한 일은
오직 나의 머릿속에서만 存在할 뿐~
실제 外部세계에서 일어난 ‘事實’에
반드시 附合하는 것이 아니라는것
이지요.
* 사실상
나의 批判者가 사건에 대해서 경험한 것은
내가 經驗한 것과는~
달랐다고 結論지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 말은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 觀察者 로서의 우리 自身에 대한 것~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것이~
더욱 重要함을 보여 준답니다.
어떤 면에서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認識하는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서와
우리가 관계하는 內的 정보처리 과정에서~
발생하지요.
기원후 1세기의 사람인 Epictetus의 다음과 같은
警句는(警-경계할 경, 타이르다)
세월을 두고 우리에게 傳해지고 있는데요.~
# 즉, 그것은
外部사건이나 상황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認識과 생각으로~
自己를 괴롭힌다는 것이지요.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다음과 같이 보다 간결하게 말했어요.
#‘어떤 것이든~
좋은 것도 없으며, 나쁜 것도 없다.
*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자~
이러한 선언을 口頭 로고로
삼으면 어떨까요.
(口頭 로고:
일반적으로 logo는
조직이나 단체, 회사를 상징하는
視覺的인 그림이나 디자인과 같은 것이지만,
여기서는 말(言),
즉 口頭로 표현되는 말 자체가~
로고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口頭 로고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말의 最終的인 의미는
‘自己 최면적인 命題 또는 標語’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뇌 회로 내에서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요.
그파노라마는
內面의 연극, 대화, 즐거움, 황홀, 고통과 같은~
感情이 끓어오르는 곳이기도 하지요.
* 시간과 實際는
끝없는 變移 속에서 구성되고 확장되는데요.
놀랍게도 그것이 바로
成熟(becoming)의 과정이 아닌가~.
* 이러한 어느 입장을 확고부동하게 견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요.
* 折衷的인 思想家가
점차로 주도권을 쥐는 것 같아요.
Maslow는
그의 특별한 책인 ‘인간성의 확장’에는
모순적인 체계로보이는 것이~
이처럼 合倂되고 統合되는 것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은 Maslow를
소위 人本主義 心理學으로 대표되는
‘제3세력’의 아버지로 부른답니다.
그는(自我實現하는 사람의 성격과 같은)
건강한 성격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어요.
하여간 그는 자신의 입장을
超프로이트학자(epi-Freudian)와 超행동주의자
(epi-behaviorist)로 설명하면서
-‘epi’는 영어에서 ‘~를 넘어서는 (beyond)’,
‘~ 위에 세워지는(building upon)’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
결국 이러한 그의 입장은
統合的인 의미를 띠는 듯하답니다.
즉, 이것은 분명히 모순되게 보이는 것을
더 큰 하나의 개념(人本主義 심리학)으로
統合하여 묶는 것을 말한답니다.
메슬로는 그렇게 하여
槪念化 한 자신의 人本主義 심리학은
行動主義와 프로이트主義라는 구성 조각을
사용하지 않고요.
만들어진 ‘카드 집(house of card)’과 같은 것
이라고 믿었지요.
이러한 입장은
절충적 차원에서 理解 될 수 있는 것 이기도
하지요.
# 당신과 나는
우리의 삶으로 연마되고 다듬어진~
렌즈를 착용하고 있답니다.
이 렌즈는
自身의 인생 경험, 특히 他人과의 經驗에
의하여~
휘거나 쪼개기도 하고 校訂되기도 하였지요.
* 나는 나의 안경을 통해서 당신을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의 모습이 아닌~
나의 가치,
즉 렌즈에 투영된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요.
나는
*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답니다.
나의 人生 안경을 통해~
만들어진 당신을 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당신은 나의 表象이 되고요.
당신의 모습은 또한
당신에 대한 나의 構成이 된답니다.
자~
이 時點에서 잠시 멈추고
여기서 말한 것의 含意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바래요.
당신은
내가 당신으로부터 채택하는 感覺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程度만큼만~
나를 위해서 存在한답니다.
우리가
外部 세계의 어떤 實在에 대해서~
그것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外部 세계의 어떤 對象에게로
우리 自身의 主觀的인 內面을 透寫하는~
수준이나 程度, 內容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러한 설명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혁명적인 이론과 같이
우리 앞에 제시된 것이 아니랍니다.~
매슬로는
앞선 두 전통, 즉 精神分析學과 行動主義의
위대한 理論家의 어깨 위에 서서~
(즉, 그들의 이론에 기반을 둔 상태에서)
새로운 人本主義 心理學이라는 학문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개념의 뿌리를
과거의 철학적 전통에서 찾아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랍니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스 파이힝거의 擬制 哲學이라는 책을
想起해 보도록 할까요.
< Hans Vaihinger : 독일의
철학자로서
擬制철학,(擬-헤아릴 의)
The Philosophy of‘As if’ 또는 독일어로
’알스 오프의 철학‘으로 유명하지요.
알스 오프(as ob)란~
’마치 ~와 같은‘ ’~ 으로 간주하다.“ 을 의미하는
뜻으로,
영어에서의 ‘as if’를 뜻한답니다.
파이힝거에 따르면,
眞理라는 槪念도
인간의 生活 目的에 有用 하다는 理由로~
眞理라고 認定한 것에 不過하다고
할 수 있기에~
어떤 命題도 단언적으로 사용할 수 없지요.
그래서
‘마치 ~인 것처럼’ ‘마치~와 같은’
‘~으로 간주하는’ 과 같은 형태로 밖에는
表現할 수 없답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哲學은 알스 오프의 철학,
즉 擬制哲學이라고 불린답니다.>
자~
그의 假定은
우리는 ‘假想의 世界’에 살고 있는데
그 가상 세계로부터 眞理를
選擇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랍니다.
-例를 들어,
나는 마치 내가 選擇權을 갖고 있는 것처럼
산다.-
* 사실 어떠한 過去의 뿌리를 갖지 않는
전혀 혁명적으로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올포트의
‘성숙 과정에 있는 存在
(being in process of becoming)’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매슬로, 로저스, 에릭슨과 같은 사람들의
實現傾向性 또는 成長경향성과 같은
理論도
앞선 시대의 철학이나 理論이 없었다면~
存在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 아리스토텔레스는
‘엔텔레키’ 라는 개념을 통해
이와 유사한 이론을 제시하였는데요.
<entelechy: 아리스토텔레스의 用語인데요.
그는
‘모든 것에는 完全한 狀態가 있어서~
이것으로 向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完全이~
現實化되고, 實現된 행위, 完全 態,
現實 態 또는 實現 態를 엔텔레키라고 하였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實體는
일정한 可能態(可能性)를 지니고 있으며~
그 실체의 發展은
이 可能 態의 범위 안에서 이룩된다고
하였답니다.
즉 變化는
* 可能態에서 現實態로의 推移를 말하는 것이지요.
(推-옮길 추, 移-옮길 이)
# 現實 態란~
어떤 순간에 어떤 實體가 있는 상태를 말하며,
# 可能 態란~
그 實體가 될 수 있는 狀態를 말한답니다.
可能性의 目的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實現된 현실성,
즉 완전한 현실을
完全 態(엔델레키)라고 한답니다.
* 그래서 도토리로 例를 들면~
도토리는 可能 態가 되며,
完全 態는 참나무가 된다고
할 수 있답니다.>
# 그는
잠재성과 실현성의 개념을 論하였지요.~
전통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例로는
나중에
참나무로 現實化되고 實現될 수 있는 可能性을
가진~
도토리의 경우를 들 수 있답니다.
에릭 에릭슨과 같은 發達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것을 ‘後成說’이라고
<Epigenesis, epigenetic principle:
원래 생물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생물 個體의 조직, 기관 따위는
發生에 따라 變化하면서 形成된다는 學說이지요.
이 개념은
受精卵에서 발생에 의하여 成體가 생기는 경우에~
成體를 형성하고 있는 각 부분은
알 속에서
처음부터 그 장래가 決定되어 있다고 하는~
前成說에 대응하는 개념이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에릭 에릭슨의 後成說은
具體的으로 成長하는 모든 것은~
설계도와 같은 基礎 案을 가지고 있으며,
이 基礎 案으로 부터~
각 부분이 派生하고
각 부분에는 특별한 上昇 期가 있으며~
긍정적으로 통합된 全體로 기능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답니다.>
부르고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 어떤 成長하는 것이라도 設計圖가 있으며,
바로 이 설계도로부터~
部分이 발생하고요.
각 부분은 특히 급속히 成長하는 時期가 있어요.
그런데 엔델레키의 原理는
그리스어의 ‘telos’ 라는 말에서 나왔는데요.
그것은 종점, 목표점, 즉 도토리의 목표를
의미한답니다.~
그래서
成長하는 도토리의 목표는
결국 잘 자란 참나무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後成說은
유전적 구조,
즉 도토리나 人間 卵子에 있는 靑寫眞을
–그 속에는
성장과 발달의 최종적인 産物에 대한 設計圖가
內包되어 있지요.-
代辨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답니다.
-So Long-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