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평지마을 한가운데에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이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은 것이라고 전하나, 바깥사랑채는 건축양식으로 보아 192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안사랑채가 튼 ㅁ자형으로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으며, 안사랑채의 왼쪽 모서리에 ㄴ자형의 행랑채가 이어져 있다. 오른쪽 모서리에는 ㄴ자형의 바깥사랑채가 배치되었다.
안채는 부엌이 동쪽에 배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바깥사랑채는 높은 누마루집으로 다른 건물과 별도로 담을 돌리고 대문을 내었다. 중문간은 일반적으로 밖에는 대문을 달고 안마당쪽은 개방되어 있는데, 이 집은 양쪽에 모두 대문을 달고 밖으로 여닫게 되어 있어 특이하다. 행랑채는 안사랑채에 지붕을 아래로 한단 겹치면서 잇대어 짓고 앞쪽으로 솟을대문을 내었다.
행랑채의 서쪽에 있는 부속채는 우리나라 동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양통집으로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구조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후대에 부분적인 개조가 있었지만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구성을 한 상류주택이다.
윤보선 생가 사랑대청
윤보선 생가 사랑채 추녀
가장 오래된 집 ‘안국동 윤보선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안국동 주택 한옥 900여 채가 빼곡히 들어선 서울 종로구 ‘북촌(北村)’. 발길 닿는 곳곳에서
사적 민속자료 등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헌법재판소 맞은편에 위치한 ‘안국동 윤보선가’도 그중 하나다.
윤보선가는 1870년경 당대 세도가인 민씨 가문이 지은 뒤 여러 주인이 거쳐 갔다. 집을 지은 직후 고종이
이 집을 사들여 박영효에게 하사해 한때 머물렀고, 그 뒤 한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10년 고(故)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이 집을 산 뒤에는 4대째 윤씨 일가가 살고 있다.
현재는 윤 전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 씨 가족이 거주한다.
1920년경 주택개발 사업으로 지었거나 다른 지역 한옥의 원형을 보존해 이전해 온 북촌의 대부분 한옥과 달리
이 고택(古宅)은 14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 왔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양반 가옥이자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2002년 사적 제438호로 지정됐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는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생가 터가 지척에 있는 등, 예로부터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특히 조선 시대 맹사성 대감의 주택이 있어 예전에는
맹현골로 불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 주변에 구 경기고등학교(현재 정독도서관),
덕성여자중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창덕여자중고등학교 등이 즐비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교육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얼마 전까지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
김활란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박흥식 전 화신백화점 사장 등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던 곳이다. 현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 유가족들만 이곳에 살고 있다.
윤보선 전대통령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 7년(1870)에 건립되어 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친 치소(致昭)공이 1910년경 매입한 것이다. 윤보선 전대통령은 7∼8세경에 이곳에
살기 시작하였으며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서
집무를 하였다. 이 집은 1910년 이후에 박영효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서울의 상류민가로서 비교적 넓은 대지 안에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대문 및 행랑채, 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각 건물은 외형상으로는 한옥같이 보이나 세부적인 것은 중국 청나라 말기 수법을 보인다. 이는 윤보선 전대통령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중국에서 보고 느낀 중국적인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거주 당시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내장식 및 가구는 중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경험한 것을 기본으로 실생활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서양식 가구임에도
전통기법을 가미하여 새로운 의장으로 개선하였다. 바깥사랑채의 현판인 남청헌은 순조가 쓴 것으로 생각되며
김옥균이 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 등 각 건물에는 어필이나 유명인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 뒤뜰에는 연못이 있고 매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 조경은 아니지만 19세기 말
새롭게 조성된 근대조경의 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140여년 전의 양반가옥으로 목조 한와지붕은 전통 건축으로 하고 세부장식과 생활가구 등은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한 이 집은 구한말 세도가의 위용과 건축양식 및 주거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어
건축 문화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정치사적으로도 한국 최초의 민주정당의 산실
역할을 한 장소로서의 의의가 있다.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원광대학교 조용헌 교수)
한국에서 명문가는 전통고택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집을 명문가로 판단하여
역사성과 도덕성, 인물을 중심으로 15곳을 선정하여 쓴 책이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거창 강동마을의 동계(정온)고택,
안국동 8번지 윤보선 고택(한국인명사전에 50여명 등재),
남원 몽심재(죽산박씨 고택, 원불교 성직자 40여명 배출),
진도의 운림산방(소치 허련 이래 화가 30여명 배출),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한국에서 명실상부한 장원 강릉 선교장 등과 함께
경주 최 부잣집을 조선 선비정신(노블레스 오블리제, 특권층의 솔선수범)
표본으로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