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세계엔n 스크랩 지금 이 순간의 평화로움에 감사하며
권종상 추천 0 조회 92 09.06.23 15:17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ME 일로 오리건주에 다녀왔습니다. 가서 제 와인 선생님인 정상규 전 오리건주 회장님 댁에서 1박하고, 물론 와인도 많이 마셨습니다. 오는 길엔 우리 성당의 ME 동기 모임에 들러서 또 한잔 하고 왔습니다. 여독이 아직 채 풀리지가 않아-술독이 안 풀렸다는 이야기가 맞는 성 싶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다가는 다시 작은아들넘 옆으로 가서는 이녀석을 껴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다시 일어나선, 느지막하게 일어난 이의 여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아이들도 방학을 했고, 지금 여름 성경학교에 보내 놓았습니다. 오후에 이녀석들을 픽업해야 하고, 오늘 오후엔 ME 일로 해서 성당 선배들과 회합을 갖기로 해 놓은 터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를 재정립해서 세상을 바꾸어 놓겠다는 ME 의 취지가 좋아서, 이 활동에 뛰어든 것도 사실은 제 개인 시간을 참 많이 빼앗기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작은 힘들이 결국 우리들의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이 활동엔 제 힘도 조금 보태볼 생각입니다.

 

제 휴가에다가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집에서 아빠는 아이들 음식을 만들어 줄 시간이 많습니다. 며칠 전엔 배고픈 아이들에게 새우 크림 링귀니를 해 주었습니다. 새우를 잘 씻어 놓고, 냄비에 올리브 기름과 다진 마늘 두 큰술을 잘 볶다가 베이즐, 파슬리 등을 넣고 새우와 갈아놓은 파마잔 치즈와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넣고 새우 색이 빨개질 때까지만 볶습니다. 여기에 우유를 넣고 끓기 시작하면 알프레도 소스 두 병을 넣습니다. 버터를 쓰면 맛이 좋지만, 그래도 버터까지 넣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알프레도 소스의 크리미함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점심 만든 걸 핑계삼아 아빠는 오랫만에 콜럼비아 밸리산의 샤도네 한 병을 뜯었습니다. 세이지랜드... 여기서 나온 멀로 역시 콜럼비아 밸리산의 좋은 점들을 다 보여주는 와인입니다. 샤도네 역시 지나치지 않은 오크와 산도의 밸런스가 맞아 줍니다. 아마 이 가격($8)에 이만한 품위를 보여주는 샤도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샤토 생 미셸 급에 필적하는 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빠가 만들어준 크림 파스타에 열광합니다. 두 녀석 다 세 그릇씩을 비웠습니다.(대단한 넘들...) 파스타 1파운드 삶았는데, 이게 거의 바닥을 비워서 국수를 새로 삶아야 했습니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내도 연신 맛있다며 잘 먹어줍니다. 아빠가 만들어준 음식을 좋아하며 먹어주는 아이들, 그리고 아내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가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중 하나라 할 것입니다.

 

저는 샤도네 병과 잔을 들고 뒷마당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포도는 무성해져 있습니다. 지난 겨울, 생명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었던 포도나무엔 활기와 풍성함이 가득 배여 있습니다. 무성한 잎사귀들을 보면서, 가지치기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렇게 해 주면 올해는 좀 씨알 굵은 포도를 얻을 수 있겠지요. 모르고 지나친 사이에, 앞뒷마당에 심어둔 딸기들도 조금씩 그 틀이 잡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사과는 꽃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잎사귀들에 힘이 없어져 조금 안타깝습니다. 요즘은 뒷마당에서 밤새 떠들며 놀아대는 아기 너구리들이 조금 신경쓰입니다. 옆집에서 고양이밥이며 이런저런 먹이를 대 주는 바람에, 거의 옆집 루디 아저씨네 애완동물처럼 되어버린 녀석들입니다. 하지만, 이 녀석들 덕분에 집 근처에선 쥐를 한 마리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우연히 이 아기 너구리들의 엄마가 쥐를 잡는 걸 목격했는데, 뒤뚱뛰뚱 다니던 것 같은 녀석이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쥐를 채고선 옆집 뒷마당 구석에서 맛있게(으윽...) 즐기더군요.

 

문득,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며, 또 세상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살 수 있는가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비록 현실은 저에게 '앙가주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며,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인터넷을 통한 현실참여를 통해 내가 떠나온 사회와 연대하려 하고 있고, 또 미국 사회에서도 제 나름대로 가능한 한의 사회현실 참여를 통해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려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뒷마당에 자라고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를 쳐 주며, 아이들이 먹은 뒷정리를 하며,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있고만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리고 여기서 다시 채운 따뜻한 힘으로, 저는 제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하하. 와인 사진을 찍다보니 포도나무가 와인잔에 담겼네요. 예쁩니다.

 

 

 

시애틀에서...

 

 

 

 

 

 

 

 

 
다음검색
댓글
  • 09.06.23 18:27

    첫댓글 맛나겠다...전에 대사관 친구가 크림새우파스타를 해먹자 해서 시장을 다 뒤집고 다닌 후 ...맛은 좋았는데..파슬리가루와 체다 치즈가루 담당이라서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답니다..레시피도 다 까먹었고 ..입맛도 없는데 한 번 해볼까 말까 합니다..잘 될려나 ....휘핑크림,파스타면과 체다가룬있는데...새우나 조개는 사면되고..

  • 09.06.23 19:23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며 삶을 즐기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부인과 아이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셔야 합니다. ^.^

  • 09.06.23 20:33

    입을 그릇에 대고 먹는 건 좀 그러니까, 왼 손에 스푼을 들고 오른 손에 포크로 빠스타를 떠서 스푼 안에서 포크를 돌리면 면 발이 돌돌 말립니다. 그렇게 먹도록 가르켜 주세요...

  • 09.06.23 22:45

    역시 큰 마음으로 예리하십니다... 꾸벅~~~

  • 09.06.23 22:31

    깔보나라 스파게티인줄 알았어요...무지 좋아하는데...ㅎ....새우와 훈제 돼지고기의 차이만 있는듯요??

  • 09.06.24 08:52

    새우크림 링귀니~ 이름도 한참 외워야 해요 전 ㅋㅋ 그런데 종상님의 이런 글이 오늘 참 좋네요 삶의 여유..그건 마음이겠지요. 여유롭자면 한없이 여유롭고 그렇지 않다면 한없이 어두운 현실들 이지만 잠시 이런 마음으로 돌아 오신것 정말 좋습니다. 유리 그라스에 비친 녹색의 향기...음~~행복합니다._()_

  • 09.06.24 08:59

    전 그라스에 담긴 건 다 좋아... ㅋㅋㅋ

  • 09.06.24 11:33

    엣시유~! 요강이 꽉차서 할수없이 그라스에...ㅋㅋㅋ

  • 09.06.24 14:44

    짱님의 활력의 쎈스는 언제나 촌철살인 악~ 지심행 꽃혀서 넘어 갈지도... 구급차 대기 시켜 주세용^^

  • 09.06.24 20:22

    형님은 아직도 요강에 담긴 것 드시우...??? 손 뗀 줄 알았는디... ㅋㅋㅋ

  • 09.06.24 14:37

    세 그릇씩이나?? 아이들이 가까운 시기에 종상님처럼 묵직해 지겠는데요??ㅋㅋ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