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산(女鷄山 312m)은 고려청자 박물관 뒷산으로서 암탉의 형상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탉이라면 대전의 도덕산 빈계산(牝鷄山)이 얼른 떠오른다.
빈계산처럼 암컷 빈(牝)자(字)를 써야 맞을 것 같은데, 사람에게 쓰는 여(女)자(字)를 쓰니 ‘달구세끼’가 출세를 한 셈이다.
여계산은 가우도 트래킹의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땜빵 산행으로 치부를 하지만 여계산의 숨은 속살은 이 사실을 한사코 거부한다.
가우도(駕牛島)는 강진만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서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머리에 해당된다하여 "가우도"라 부르게 되었다.
가우(駕牛)란 소의 머리에 멍에를 얹었으니 가마나 상여 등의 수레를 끄는 소를 말한다. * 가(駕 멍에)
가우도는 강진군 대구면을 잊는 다리(438m)와 도암면을 잊는 다리(716m)에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2.5Km)은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걷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강진군에서는 이 다리를 출렁다리로 명명하였지만 실제로 출렁거리지는 않는다.
이 산자락에는 고려청자박물관과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당전마을 앞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5호)와 남쪽으로 7km지점에
마량 까막섬 상록숲(천연기념물 제 172호) 등이 있어 역사 탐방을 겸하면 안성맞춤이다.
강진만은 강처럼 좁고 깊숙한 수로의 형태로 보인다.
만 입구에 가로놓인 고금도와 완도가 방파제 구실을 하여, 해상교통의 요지로 발전하고 있다.
강진만 너머론 주작산 덕룡산이 지척이고, 멀리 두륜산과 다산초당의 만덕산이 다가선다.
해질 무렵의 강진만 석양은 강진 절경의 하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필자는 여계산에서 서쪽 고바우상록공원으로 하산하지 않고 강진만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북릉을 타고가다 가우도 입구인 저두리(상저)로 내려섰다.
이 길은 찾는이가 많지 않아 날머리에서 상당히 헷갈리지만 크게 위험한 곳은 없으며, 곳곳에 도드라진 전망대가 있어 가우도 조망은 물론 강진만너머 내로라하는
남도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강진군에 감히 바람이 있다면 이 등산로를 가우도 출렁다리 입구로 안내하는 최소한의 정비와 이정표를 세워 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여계산 북릉과 가우도 트레킹을 연계해야만 완벽한 당일 산행코스가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궤적
5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3시간 쯤 걸렸다.
고도표.
버스는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앞에서 멈춘다. 산길 입구는 하얀색 건물(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좌측 포장길로 열려있다.
좌측 고려청자박물관 입구에 물레질을 하는 형상의 조각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여계산정을 바라보며 도열한 깃대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다.
이 흰색 건물은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으로 '고려청자박물관' 입장료 2,000원을 내면 무료란다.
나즈막한 여계산을 올려다보며...
이정표가 가리키는 좁은 포장임도를 갈아타며...
(이정표)
포장임도는 좌로 90도 꺾으며 휘돌아...
육각정자 좌측으로 본격 산오름길을 안내한다.
훼손된 '창원 황씨'묘를 지나고...
<비석>
바람이 꽉 막힌 산길을 치고 오르자니 300m대의 낮은 산이라고 깔보았던 우리들의 심사가 뒤틀린다. 바다에서 오르니 그것이 곧 해발인 줄 알아야제?
능선에 올라서서...
이정표를 살피니, 우리들의 계획은 정상을 밟은 후 다시 이 지점으로 내려와 달마선원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능선길은 유순한 편.
다시 이정표를 만나는 지점 옆 뽈떼기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이정표에 당전마을과 계치마을 그리고 상저마을 5.0km가 새겨져 있다.
왜 정상석을 여기에 설치했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
정상석이 있는 지점에서 좀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오르면 좌측으로 강진만 조망이 열리고 갑갑하던 산길에 숨통이 트인다.
바다로 향하는 능선길은 오늘 한마음산악회의 날머리인 고바우상록공원과 우측 골짜기로 달마선원 임도가 숨어있다.
필자는 우연히 영표 씨와 의기투합해 여계산 북릉을 통해서 저두리 가우도 출렁다리입구로 가기로 하였다.
여계산 실제 정상을 내려서서 우측 정면으로 예사롭지 않은 바위봉우리가 보여 필자는 저곳이 만경대인가 하였지만 턱도 없는 소리였고...
345.2봉이였다. 345.2m 봉우리는 오늘 이 여계산 북릉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지만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곳.
그야말로 때묻지 않은 청정산길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
345.2봉이 다가오면서 암릉이 펼쳐지고 곳곳에 바위전망대가 필자를 돌려 세운다.
개금아제는 옆뽈떼기에 붙은 여계산 정상석을 발견하지 못하고 정상을 지나왔다가 우리를 만나 함께 걸음을 맞추기로 했으니 일행이 3명으로 불었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해달리기에 바빠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필자는 모델이 필요한데...
줄곧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며, 가우도와 강진만 너머의 남도의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우도 너머론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
진행방향 암릉을 지나 좌측으로 휘어도는 지점의 볼록한 봉우리는 301.8m봉으로 가우도 출렁다리 입구로 내려서는 길을 잘 선택하여야만 한다.
곳곳에서 만나는 전망바위는 남도의 산들이 그러하듯 암릉으로 이어지는 주위 산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벼가 익어가는 들녘 끝엔 계치마을, 그리고 마주보이는 봉우리가 만경대(391.2m), 그 뒤로 부용산과 사자지맥인 듯...
만경대 좌측 뒤로 사자지맥과 천태산(545m)인 듯...
북릉길 내내 강진만이 굽어 보이고, 가우도는 내내 산위에서 내려다보니 말 그대로 평면도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따로 가우도 트레킹이 무슨 큰 의미 있으랴.
전망바위 지천에서 자라는 부처손.
가우도 건너 우측 으로 능선 끝자락이 내려와 강지만에 목을 드리운 산이 정약용의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
가우도 출렁다리 건너 망호 월곳지 뒤로 솟아있는 산은 덕룡산(432.8m).
3명이 산길을 같이 오르지만 두 명은 벌써 저만치 345.2봉을 향해 가고 있다.
뭐가 그리 급해 이 천혜의 산길을 무개념(?)으로 땅만보고 달아나 버리는지...
좌측 산자락으로 뻗어내리는 301.8봉.
다시 가우도를 내려다 보니 건너 땅끝기맥의 주작과 덕룡산이 톱니바퀴 진을 치고 섰고, 우측 끝자락으론 만덕산이 또한 암릉을 이루며 강진만에 닿아있다.
아래 마을은 저두리(猪頭里) 하저(下猪)마을. * 저(猪)는 멧돼지를 말한다.
주작산 좌측 뒤 땅끝기맥은 땅끝으로 향하며 멀리 두륜산을 밪어 놓았다.
강진만 깊숙히 바다가 끝나면서 탐진강이 강진만의 물길을 이어주고 있을 것. 강진만 너머에 예의 그 만덕산 자락을...
살짝 당겨 보았다.
강진만 아래 두륜산도...
당겨 보았다.
그리고 가우도와 강진만의 푸른 물결.
앞서간 사람들을 좇을 새는 없지만...
기막힌 전망대에 올라 혼자 느끼는 뜨거운 환희를 주체할 수가 없다.
만경대 뒤로 펼쳐지는 사자지맥.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이 따라 잡혔다. 장소는 345.2봉 바로 아래 숲그늘. 냉막걸리로 벌컥벌컥 목부터 축였다.
그리곤 345.2봉을 직등으로 타고 오른다.(우회길 있음)
345.2봉에서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360도 조망.
가우도는 물론이고...
나아갈 오늘의 최고봉인 369봉, 그리고 좌측으로 휘어돌아 뽕긋 솟은 301.8봉.
가우도와 주작 덕룡.
강진만 입구의 수문장 완도와 고금도가 멀리 보인다.
두륜산과 주작 덕룡.
이제 스스로 모델이 되어...
유유자적하며...
전망 봉우리를 내려서니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연이은 바위 전망대를 타고 넘으며...
이제사 3명이 보조를 맞추며 걷는다.
여계산 북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은 가우도 트레킹과 세트로 묶어져야 할 길.
300m대의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환희.
하저마을과 가우도, 뒤로 주작산과 덕룡산.
다시 바위전망대에 섰다.
이곳은 사방이 트인 곳.
도드라진 암봉과 가을하늘, 그리고 떠도는 구름 한 점.
전망바위에서 이정표에 등장하며 달아나는 천태산(545m)을 돌려 세운다.
진행할 방향으로 암릉이 이어지며...
가슴에 품고 내려갈 암봉을 올라...
사방 조망을 살핀다.
이 여계산 북릉 코스는 최근에 다녀온 최고의 코스다.
좌측으로 뽕긋 솟은 301.8봉.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눈부셔~
좌측으로 타고 내리는 능선 끄트머리에 301.8봉이 뽕긋.
암반에 덕지덕지 붙은 부처손.
좌측 301.8봉에 내내 눈이 가는 이유는 저 봉우리에 하산길이 있기 때문.
다시 암봉 전망대에서...
지나온 능선길을 돌아본다.
오랫만에 만나는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는 천태봉과 용문마을저수지, 그리고 계치마을은 우리와는 상관없다.
오늘의 최고봉인 369m봉 바위에다 매직으로 조그마하게 표식을 남겼다.
다시 가우도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
능선을 이어가다...
도드라진 암봉에 다시 올라선다.
그리고 닿은 301.8봉은 아무런 특색이 없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301.8봉 정상에 '부산한마음산악회' 시그널을 걸어 뒷면에 302m라고 적어 두었다.
이 지점이 길찾기에 아주 중요하다.
여기까진 능선을 따르면 길은 대체로 수월하였지만 여기(301.8m)부턴 길도 선명하지 않고 묵어 있어 선택이 중요하다 하겠다.
필자는 북쪽 능선을 선택하였는데, 그것은 지형도에 북쪽 능선 끝자락 좌측으로 임도가 나 있어서이다.
이게 필자의 큰 착각이었다.
그 임도는 오래된 묵은 밭이 있었던 곳으로 완전 잡목숲으로 뒤바뀌어 있었고, 코앞에 있었던 임도를 찾아 100여m 비스듬히 치고 내려간 것까지 포함하여
20여분을 긁히고 할키며 무작정 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북쪽능선으로 내려섰다면 곧장 능선(초록 투명선)을 따라야만 하는데, 이 길은 묵어 있어 길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301.8봉에서 서쪽 능선(파란색 투명선)을 따르는 게 어떨까?
그 길은 일행 두 사람이 내려가는 걸 불러 올린 길이다.
길이 어떻느냐고 물었더니 "그런대로 능선을 따라 길이 나있더라."는 말을 하였다.
서쪽 능선을 따르다 북쪽 가우도 출렁다리 방향 능선으로 길이 나있지 않을까?
또 여의치 못하다면 분홍 투명선을 따라 하저마을 방향으로는 어떨런지, 산행기를 쓰는 지금은 궁긍증이 더욱 증폭된다.
301.8봉 북쪽 능선은 처음부터 이제까지의 길과는 판이하게 달라 거칠다.
그런 산길에도 도드라진 조망바위가 있어...
가우도의 평면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살짝 당겨본 가우도와 주작산과 덕룡산.
능선 좌측 100여m 지점 계곡으로 임도가 표시되어 있어 그냥 사면을 치고 내려갔더니...
에고~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임도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오늘 나는 죽었땅.
계단형 오랜 묵밭이 나타났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하였고...
긁히고 할킨 후에야 감나무 밭으로 떨어져...
빨간 지붕이 있는 집 앞으로 내려섰다. 이 길은 애시당초 길이 아니므로 참고할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저쪽 능선(초록 투명선)으로 자꾸만 눈이 가고...
내려서다 다시 그 '301.8봉 북쪽 능선'(초록 투명선)에 시선을 준다.
좌측 임도로 치고 내려오지 않고, 능선으로 곧장 내려섰다면 저 능선으로 내려왔을 것인데 말이다.
오른쪽 '서쪽 능선'(파란 투명선)으로 다시 시선을 옮긴다.
'301.8봉 서쪽 능선' 끝자락은 우측 논배미에서 끝난다.
가우도를 향해...
저두교회를 우로 흘리며...
23번 도로를 건넌다.
자꾸만 눈길이 가는 좌측 '301.8봉 북쪽능선'과 우측으로 뻗어내리는 '301.8봉 서쪽능선'
서쪽 능선의 끝자락.
가우도 출렁다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고려청자 형상의 시설물은 짚트랙(zip track)을 타는 곳.
짚트랙은 양편의 지주대 사이로 와이어를 설치하고 탑승자와 연결된 트롤리를 와이어에 걸어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공중 레저 스포츠다.
금액은 25,000원이란다.
은빛 물결 출렁이는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미 일행들은 가우도 트레킹을 마치고 속속 귀환하고 있기 때문.
바다건너 다산초당의 만덕산을 바라본다. 최문희의 '정약용의 여인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왔지만 못내 꺼림직한 날머리는 두고두고 머리에 남아 있을 것. 주차장 우측 다리 밑에 오형님이 상의를 벗고 씻고 있어...
필자도 내려갔다. 남도 끝자락 바닷가에 이런 계곡수는 그저 늦여름 산행의 보너스임이 분명할 터.
아이스박스에 채워진 시원한 주음료는 산행을 마친 우리들의 즐거움.
오래된 필자의 컴퓨터가 고장이 나 거금을 들여 수리를 한 뒤 이제사 산행기를 올린다.
손님이 와 문을 두드리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우리 아들이었네
수염이 더부룩이 자랐는데
미목을 보니 그래도 알 만하였네
너를 그리워한 지 사오 년에
꿈에 보면 언제나 아름다웠네
장부가 갑자기 앞에서 절을 하니
어색하고 정도 가지 않아
안부 형편은 감히 묻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쓸었다네.
입은 옷이 황토 범벅인데
허리뼈라도 다치지는 않았는지
종을 불러 말 모양을 보았더니
새끼 당나귀에 갈기가 나 있었는데
내가 성내 꾸짖을까봐서
좋은 말이라 탈 만하다고 하네
말은 안해도 속이 얼마나 쓰리던지
너무 언짢고 맥이 확 풀렸다네
큰 아들 학연이 5년 만에 강진 유배지로 아버지를 찾아간 장면에서는 그저 울컥한다.
아버지가 유배된지 5년째인 1805년 겨울에 멀고 먼 강진을 찾아간 큰 아들 정학연, 아버지 다산은 44세, 아들 학연은 22세의 청년일 때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