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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016, 12, 11
고전4 : 14-21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누가 너희를 구별하였기에 너희는 나를 판단하느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하면서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 이유로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책망할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하는 뜻입니다.
나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분이라서 나는 그분의 말을 내 마음에 놀라움으로 가슴 아프게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거룩한 사도라 할지라도 그래도 육신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사도는 고린도후서 10장에서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그는 이런 말을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거룩함에 이른 사도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수 믿고 이런 거룩함에 이른 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은 이러한 거룩한 사도를 헤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던 같습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너희가 복음을 받고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한 자가 되었고 이미 왕이 된 것처럼 교회에서 군림하느냐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었고, 강한 자요 존귀한 자가 된 것처럼 사는 구나 그러나 사도인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약하고 이 시각까지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는 비천한 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 했습니다.
사도인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너희는 지혜롭고 이미 존귀한 자들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신분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실제 존귀한 자로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순종하여 사는 고난의 삶입니다.
14절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는 것이라.”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너희로 겸손한 삶을 살라고 권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여러 서신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담대하게 그들의 잘 못을 지적하고 꾸짖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사도가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도 회개하고 돌이키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로부터 마음을 찢는 심한 책망을 듣고 회개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심한 책망을 듣는다 할지라도 주 안에서 듣는 책망은 그리스도는 나의 주라 회개하면서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은 원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를 망신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 죄와 허물을 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할지라도 그를 원망하지 않고 겸손하게 수용하면서 자기 죄를 깊이 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회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모든 거짓된 허식을 벗고.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그렇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는 나는 너희를 그리스도 안에서 낳은 아비라 하면서 너희 아비와 선생을 구별하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 일만 스승이 있으되 너희를 낳은 아비는 나 하나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도가 이 말을 하는 배경은 초대교회시절에는 많은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있어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마다 돌아다니며
사도를 음해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가르치고자 하는 선생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람, 그만이 참된 영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계속해서 자기가 낳은 자녀들에게 대해서 긍휼과 사랑으로 돌보며 염려하며 기도하며 자녀들로 하여금 주의 영과 생명을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녀들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아버지 된 자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선생 된 자들은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자들이요, 보상을 바라는 자들이었습니다.
영적인 아비가 되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얼마나 깊이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며, 어떤 확신을 얻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이 생명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인지 그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주를 아는 사람들이요, 주와 교통하며 교제하는 사람들이요, 생명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만이 생명을 얻게 하는 영적인 아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주 안에서 아버지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디에든지 생명을 얻게 하는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목회의 특징은 성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심혈을 기울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이런 영적인 아비가 되는 이들은 지극히 희소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많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것, 아니면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이나, 또는 누군가에게 듣고 은혜 받은 것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많이 있습니다.
선생 되고자 하는 자들은 생명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더욱이 성령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 바울이 세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선생 노릇을 한 이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거짓 선생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이들 선생들과 너희를 복음 안에서 낳은 아비 된 나를 구별하라고 했습니다.
16-17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가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 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도 나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되라 하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낳았지만, 너희는 과연 나를 본 받고 따를만한 사람인지 의심하는 것 같구나.
나에 대해서 증언할 자 나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이요 신실한 주의 종인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에게서 들어라.
그는 나의 모든 사정을 알고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어떻게 행한 모든 것을 너희에게 증언할 것이다.
너희는 디모데를 통해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가 있었기에 세계 여러 도시에 많은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그 교회들을 탄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8-20절에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 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요 몇 년 안에 생겼던 우리나라의 큰 교회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잠시 예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에 조그만 틈만 보이면 무례한 자들이 오만을 부리며 나타나는 예가 허다합니다.
무례하고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자들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공공연하게 대적하고 일어나고 작은 문제를 크게 부풀려 만들고 없는 것을 다만 그들의 추축으로 사실인 것처럼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주의 종들을 대적하여 일어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선동하는 말을 듣고 쉽게 그의 말을 믿고 분을 내며 함께 주의 종을 대적하는 자들로 변합니다.
교회들은 이런 일로 심각한 위기를 맞습니다.
물론 목사가 명백하게 죄를 짓고 잘 못하여 쫓겨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교회 목사가 무슨 죄를 지었다하고 소문이 난 그 죄들 중에 열에 아홉은 거짓이거나, 터무니없이 부풀린 이야기입니다.
어느 큰 교회 목사가 어떤 중대한 죄를 지었다고 소문이 나면 나도 관심을 가지고 목사가 정말 그럴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교계 신문을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됩니다.
근래에 일어났던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경우가 그러하고, 강남의 사랑의 교회의 오정훈 목사님의 경우가 그러하고, 분당교회 이 종천 목사님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교회를 대적하여 일어난 파렴치한 자들의 거짓들이었습니다.
분당교회 이 종천 목사님 같은 경우에는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의 말만 듣고 장로들이 목사가 강단에 서는 것조차 못하게 하여 일 년 가까이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을 음해하는 말이 모두 거짓임이 밝혀진 다음에야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자기를 불신임한 것을 보게 된 목사님의 마음은 얼마나 상하고 아팠겠습니까?
그의 마음을 깨진 거울과 같아서 교인들의 얼굴이 둘로 보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밝혀진 다음에는 교회가 큰 해를 입고 불신으로 나뉜 다음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교회에 해를 입히려고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닙니다.
성령을 알지 못하고 주의 뜻을 헤아릴 줄 모르는 교인들은 언제나 사단의 종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리라 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하나 같이 말을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힘은 말을 적절하게 그리고 아주 매력적으로 구사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교만을 부리는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령의 증거들이 있는지 혹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 자들인지 그것을 알아보겠다는 말입니다.
사도는 그들의 말의 유창함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도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이 성령께 겸손하게 순종하는 종으로 그 열매가 있는 자들인지 그것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겸손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교회에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세상의 상식이 들어와서 세상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된 믿음의 사람이라면 주의 말씀에 자아를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을 여러분도 아시죠?
여러분의 육신을 죽이는 큰일이 일어날지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마귀는 언제든지 여러분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그의 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허락 없이는 장래의 어떤 계획이나 개인적인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에서만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시간 앞의 일도 보장이 없는 인생인데 10년 후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4장 15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습관이 되어야 하고 주의 말씀에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크게 바뀐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21절에 사도 바울은 매우 담대하게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했습니다.
사도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 주님을 대신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명백히 잘 못한 것을 알면서도 사도의 말에 반발을 하고 일어서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주 믿음을 갖지 못할 자요, 사단의 종으로 변화 될 가망은 전혀 없는 자입니다.
그들은 이미 배부로고 풍성한 자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운 자요, 강하고 존귀한 자가 된 것처럼 행하며 시기와 분쟁을 일삼고 사도를 멸시하는 교만한 그들은 사도의 편지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도는 매를 들고 그들을 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매를 들고 가든지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너희에게 가든지 그것은 너희들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매”라는 말은 아주 엄격하게 대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대조적인 태도는 사랑과 온유함입니다.
아비들은 아들의 죄를 발견하면 처음에는 사랑과 온유함으로 가르치고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아주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목회자들이 징계의 매를 들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 된 사단의 종이 들어와서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이들을 강경하게 응징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도를 사랑과 온유함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도들입니다.
나는 오히려 여러분의 좋은 목사가 되기에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두 함께 2017년에도 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좋은 교회로 이루어 가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