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방 3 돌맹이 국>
안나: 만남이 많은 5월이예요, 평화방송 사랑이 있는 세상, 많은 만남들 속에 과연 어떤 만남들을 지니고 계신가요?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내가 잊고 지냈던 참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또 그들의 있음만으로 감사함을 드러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들이지요. 오늘도 이런 만남의 축복을 전해주시러 오셨네요. 망미성당, 조영만 신부님 나오셨어요. 신부님 안녕하세요?
조신부: 안녕하십니까? 망미성당에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입니다. 계절의 여왕, 그리고 성모님의 달, 가정과 가족의 달, 화창한 계절만큼이나 그 의미도 풍성한 오월의 첫 번째 주간에 인사드립니다. 어휴... 5월은 시작하면서도부터 왠지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 같아요...
안나: 왜요? 신부님?
조신부: 오월의 달력을 넘기게 되면 그런 것 같아요... 아... 일 많타...
안나: 아니, 사랑만을 전하셔야 하는 신부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요...
조신부: 신앙심 부족입니다. 늘 2%부족한 신앙심 때문에 이렇게 사는 일을 피곤하게 만든다니까요... 죄송합니다. 오월은 원래 일들이 많은 달이기도 하지만, 올 오월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다음 주일이 주님 승천 대축일, 그다음이 교회의 생일이라하지요, 성령강림 대축일, 그리고 그 다음 주가 삼위일체 대축일, 제일 마지막 주일은 올 한 해 성체성사의 해라 해서 우리 신앙의 정수이자 본질인 성체성사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신앙적인 초점인 성체와 성혈 대축일...
안나: 와... 정말로 대축일들의 풀 셋트인 오월이네요.
조신부: 그래서 제가 와... 일 많타... 했던게지요. 물론 이런 신앙적인 일정을 두고 단지 일 많타 하는 저도 사제로서 문제이지만, 이런 한 주간 한 주간의 축일과 그 의미를 제대로 또 살아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의 다짐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안나: 날씨 좋고 하늘 맑아 휴일이면 나들이를 나가실 분들이 많으신 계절인데, 우리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아시지요? 주일의 의미... 주님의 날... 어디에 계시든 주님과 함께 하는 날 되셔야 하는거...
조신부: 이제, 공지사항은 안나 자매님이 하셔야겠어요... 어찌 이렇게 어여쁘게도 말씀하시는지... 그래요. 단지 그분이 계시기에 또 이 오월을 살아간답니다. 세상적인 의미만 가득채운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다르지요. 하느님이라는 의미를 채우려 사는 일이 바로 우리 신앙이요, 우리 목숨이지요. 잊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기도 한 줄이라도 아끼지 않는 것, 그런 오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나: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일이야말로 정말 이 오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조신부: 그럼요... 저희 성당에 요즘 어르신들의 초상이 참 많답니다. 저희 성당에는 조그만 영안실이 있는데요, 본당에 상이 나면, 상이 난 구역의 신자분들께서 영안실의 주방일을 돌아가며 맡아주세요.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말로는 형제 자매 어쩌구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숟가락 하나라도 더 얹어 주는 일이 진짜 형제요 자매 아니겠습니까? 그냥 기도..하겠습니다...하고 그걸로 때우지 아니하시고, 직접 앞치마 두르시고 문상객들을 맞아주신답니다. 그러면 안믿는 신자들도 놀래요...
안나: 왜요?
조신부: 이렇게 파출부를 많이 쓰냐고? 아닌데... 모두 믿기에, 형제자매이기에 솔선수범 나서는 일인데, 세상 사람들 눈에는 대단히 특별한 것으로 보이나봐요. 그래서 유족 중에 안 믿으시는 분들은 우리 신자분들께서 당신 일 다 접어놓으시고 상갓집 뒤치다꺼리 해주시는 모습 보며 감동을 받는답니다. 신앙생활 한다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정나누며 사는지 몰랐다고, 나도 천주교 신자 되겠노라고... 그리 변화되는 모습들 보며, 저도 참 많이 배웁니다.
안나: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나누고 베푸는 그 힘...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힘 아닐까... 하는데, 오늘은 이렇게 나누고 베푸는 삶의 이야기를 우리 동화 이야기로 풀어보면 어떨까요? 신부님?
조신부: 뭐 적당한 것이 있으려나... 궁리하는데, 이 방송을 들으시는 저희 본당의 자매님 한 분이 신부님 동화이야기...하시는데, 도움 되시라고, 수영구 시립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잔뜩 빌려다 주셨어요.
안나: 동화책을요?
조신부: 예... 감사할 따름이지요. 망미성당, 조영심 베로니까 자매님이 빌려다 주신 동화책에서 한 번 꾸며보았습니다. 듣고 계신가요? 돌맹이 국...이라는 동화 속으로 한 번 빠져보시지요.
안나: 사랑이 있는 세상, 월요일, 나레이션 드라마, 동화 이야기, 오늘 제목은, 돌맹이 국입니다.
(BG)
조신부: 전쟁이 끝나고 그 해 오월, 극심한 보릿고개마저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의 문을 닫고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 없었답니다.
안나: 어휴... 이 놈의 세상... 언제 허리 한 번 펴고 살 날이 올런고...
조신부: 하늘을 바라보던 늙은 노파는 마당에 주저 앉아 몇 되지도 않는 옥수수 알맹이를 골라내고 있었습니다.
조신부: 할머니, 할머니... 저 먹을 것 있으면 조금만 빌려주세요... 지금 우리 집 사람이... 아이 먹일 젖이 안나와요... 할머니...
안나: 와카는교... 일없소마... 우리 묵을 것도 없구만... 그래 없는 집 사람들이 와 또 아는 나가지고 그 고생을 하는교... 건너 하동댁으로나 한 번 가보소...
조신부: 넉넉한 것이라고는 오월의 햇살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지쳐있었고 모두가 가난했으며 또 저마다의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지키느라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한 목숨 연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던 그 해...
햇살은 비치었지만 그 동네의 골목길에 지난 겨울의 한적함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답니다. 그 때였습니다. 꽤제제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그 동네
한 가운데에 서서 굳게 닫힌 대문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그 남자도 적잖이 몇 일은 굶은 모양이었으나 누구하나
그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철모르던 금순이만이 그 수도자에게 말을 걸어왔지요.
안나: 아저씨... 아저씨는 무엇하는 사람이예요?
조신부: 나는 그냥 세상 여기 저기를 여행하는 사람이란다... 왜 내 모습이 신기하니?
안나: 예... 그게 뭐예요...?
조신부: 금순이는 꽤제제한 수도승의 작은 배낭을 가리켰습니다.
조신부: 어허... 이거... 이 속에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 들어있지... 세상 모든 사람을 베부르게 먹일 수 있을만큼의 양식이 들어있단다...
안나: 정말요? 아저씨... 그러면 그걸 나랑 나눠 먹지 않을래요? 실은 우리 엄마도 어제부터 쌀이 떨어졌다고 지금 집에서 울고 있어요...
조신부: 그래? 음...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음식을 만들어볼까? 얘야... 너... 이름은 뭐니?
안나: 금순이요. 김금순.
조신부: 금순이... 그래 금순아. 우선 음식을 만들려면 큰 솥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한다...
안나: 솥은 우리 집에 있어요.
조신부: 그래? 그럼 잘 됐다. 넌 솥을 가져오너라. 아저씨는 나무를 주워올테니...
골목길 마을 회관 앞에서 남루한 모습의 아저씨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금순이 집에서 빌려온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나: 아저씨... 이제 물이 끓어요. 빨리 그 속에 있는 걸 넣으세요.
조신부: 으흠... 물이 다 끓었나? 어디 보자...
조신부: 아저씨가 꺼낸 것은 조그만 조약돌 세 개였어요...
안나: 아저씨, 이건 조약돌이잖아요...
조신부: 그래, 이건 조약돌이지만, 이 돌이 곧 정말 맛있는 국으로 변할꺼란다...
안나: 정말요?
조신부: 그렇다니까.. 우선 돌을 넣고... 잠깐... 간을 해야하는데... 어디 소금이 없을까?
안나: 소금요? 있어요...
조신부: 그렇게 남루한 아저씨와 금순이는 조약돌 세 개를 넣은 큰 솥에 열심히 불을 지피기 시작했어요. 음식을 익히면 마을 사람들이 찾아올까봐 불도 지피지 않던 그 동네에서 모처럼 나무타는 냄새가 은은히 퍼지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은 하나둘 창문을 열고 어느 집에서 나는 냄새인지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어요.
조신부: 어허... 소금만 넣었는데도 벌써 좋은 냄새가 나는 걸... 그런데... 국을 좀 시원하게 먹으려면 무우가 있으면 제격인데... 펄펄 끓는 솥을 바라보던 할머니 하나가 말했어요.
안나: 그거 다 끓이고 나면 나도 좀 주는교? 그럼 무우는 우리 집에서 가져다 주지...
조신부: 드리다마다요. 오실 때 무우하고 파도 좀 들고 오이소... 그럼 마 국이 더 시원해지겠습니다. 숭숭 썰어넣은 무우와 텃밭에서 남몰래 가꾸어온 대파가 큰 솥에서 끓기 시작했어요...
안나: 아저씨... 정말 냄새가 근사한데요...
조신부: 그렇구나... 그런데 아직 돌맹이가 익지 않았어... 더 맛있게 돌맹이 국을 먹으려면 당근이랑 부추도 있으면 참 좋겠다...
안나: 돌맹이 국... 세상에 그런 국도 있어? 보소보소. 우리 집에 당근도 쪼매 있고 하니까 기다리보소...
조신부: 마을 사람들은 모처럼 만에 하나둘 마을 회관 앞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난생처음 보는 돌맹이 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안나: 희안한 국일쎄... 보이소... 그거 맛이 어떤교? 내 여기 막 잡아온 쏘가리들이 있는데, 이걸 넣으면 더 안좋겠는교?
조신부: 좋다마다요. 그게 있으면 국물 맛이 끝내주지요... 어서 여기다 넣으세요. 아! 고춧가루... 고춧가루가 없네요.
안나: 그건, 우리 집에 있어요.
조신부: 심술궂기로 유명한 안성댁이 후다닥 자기 집에 가더니 고춧가루와 콩비지를 가져다 펄펄 끓는 큰 솥에다 넣고 휘휘 젖기 시작했어요.
조신부: 아이고... 동네분들이 모두 나오셨네요... 어떠십니까? 다들 출출하시지요? 오늘 마 이 돌맹이 국으로 동네 잔치 한 번 벌리시지요. 저기 저 감자 들고 오시는 할머이, 그거 할머니 식구들 드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안나: 내 묵어봐야 얼마나 묵겠다고 마 그 속에 넣으소 마...
누구는 나물을 가져왔고 또 누구는 강냉이를 꺼내왔고, 또 누구는 밀가루 반죽을 꺼내왔어요. 저마다 자기가 먹으려 꽁꽁 숨겨 놓았던 것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 겪어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야 했었는데, 사람들은 모처럼만에 발갓게 달아오른 큰 솥 주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안나: 그래요. 우리 내일부터라도 당장 함께 밭을 갈도록 합시다. 언제 이 나라가 우리 먹여줬는교? 각자 집에 있는 농기구부터서 먼저 챙기입시다. 그라고 내일 아침 일찍 우리 동네 제일 어르신 만돌이네 밭부터 갈아드립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조신부: 참으로 오래간만에 박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그리고 각박한 세상이 할퀴고간 뒷 언저리에서 그렇게 서로를 욕하고 싸우기만 했던 사람들이 돌맹이 세 개가 끓여대는 근사한 향기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안나: 아저씨... 이제 다 익어나봐요... 배고파요... 우리 먹어요.
조신부: 누구는 감자를 누구는 콩비지를 또 누구는 마늘과 파를... 국적도 없고 정체불명도 모르는 이 희안한 음식이 근사한 맛을 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커다란 국자로 한 그릇씩 퍼서 사람들 앞에 놓이기 시작했을 때... 그 국의 뜨거움 만큼이나 영문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사람들의 눈에서 주루룩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돌맹이 세 개로부터 시작된 돌맹이 국을 입에 넣는 순간,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이란 것, 행복하다는 건, 이렇게 단지 돌맹이 세 개로부터도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날 밤, 늦도록 그 마을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첫 번째로 돌맹이 세 개로 국을 끓이기 시작하던 그 사내가 어디로 갔는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사람들에게 뜨끈한 국물을 나누어주며 했던 마지막 말 만큼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행복해지는 건, 이 돌맹이 국을 끓이는 것 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지요..."
(BG)
안나: 사랑이 있는 세상, 돌맹이국 이야기... 오늘은 망미성당 조영심 베로니까 자매님이 보내주신 동화이야기로 꾸며보았습니다.
조신부: 마음이 닫히는 건, 실은 세상 때문에가 아닙니다. 실은 마음 때문입니다. 어짜피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곳 아닙니까? 내 뜻대로 안되는 그것을 두고 내 뜻으로 만들려니 사는 일이 괴로울 수 밖에요. 산다는 일은 이렇게 내 마음의 돌맹이 세 개를 펄펄 끓는 물 속에 넣는 일입니다. 내가 지키려 하는 그것, 내가 먹으려하는 그것, 내가 내 것이라고 꽁꽁 움켜놓은 그것을 끄집어내는 순간... 정말입니다. 행복이 옵니다. 행복은 지키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놓는데서 옵니다.
안나: 행복해지는 건, 이 돌맹이 국을 끓이는 것 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지요... 우리 사랑이 있는 세상이 행복해지는 것 또한 여러분들께서 남겨주시는 사연과 격려 그리고 참여가 더욱 이 사랑이 있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답니다. 많은 분들께서 방문해주시고 또 좋은 사연들로 많이 채워주세요.
조신부: 퀴즈 있습니다. 그렇게 돌맹이 세 개로 그 마을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여낸 그 사나이의 이름이 무엇인줄 아세요? 그 이름이 정확친 않지만, 분명히 우리가 믿는 예수라는 사나이도 그 이름을 닮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닫힌 마음들을 말끔히 걷어내 주신, 그런 이름... 이제는 제2의 제3의 돌맹이국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에서 다시금 펄펄 끓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어떠십니까? 여러분들께서도 돌맹이국물 맛에 한 번 빠져보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끓여내시는 그 국물맛이 참으로 하느님 맛 닮기를 희망합니다. 다음 주에 돌아오겠습니다. 나레이션 드라마 동화 이야기, 오늘은 돌맹이국, 저는 부산 망미성당 조영만 신부였습니다.
안나: 이야기 재료 보내주신 망미성당 조베로니까 자매님께도 감사드리구요, 오늘 신부님과의 맛난 요리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신부님 안녕히 가세요...
조신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