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 작가의 별세 소식을 가져와봤습니다. 제주도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작가라고 합니다. 제주 4.3 이야기를 주로 쓰고 '화산도'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김석범소설가는 익숙한데 이 분은 이 뉴스로 처음 접했네요..
*표현체크
まみれた : (땀, 피, 먼지 등이 묻어서) 더러워지다. ~투성이가 되다.
jlpt n2~ n3 문법에서 접하게 되는 표현인데요,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지만 '~투성이'라는 명사로 잘 쓰이는 표현입니다.
예) 血まみれ(피투성이)、埃まみれ (먼지투성이) 、汗まみれ (땀투성이)
戦後 : せんご、전쟁후, 2차대전후
일본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戦後(せんご)、戦前(せんぜん) 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여기서 전쟁이란 2차대전을 말하는 겁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戦後의 시작으로 보고 그 전은 戦前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在日韓国・朝鮮人 : ざいにちかんこく・ちょうせんじん, 재일 한국인과 북한인
'재일동포'라는 표현을 쓰면 재일한국인만 떠올리기가 쉽지만 거기에는 일본에 사는 북한 사람들, 즉 '재일북한인'도 있습니다. 평범한 일본인처럼 보이는데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作家 ヤン・ソギルさん死去 87歳 小説「血と骨」など
2024年6月29日 19時29分
ヤン・ソギルさんは大阪市で生まれ、高校を卒業したあと会社の経営に失敗して、タクシー運転手として働き、1981年にその経験を書いた「狂躁曲」を発表して本格的に作家としての活動を始めました。
また、1998年に発表した「血と骨」は、韓国 チェジュ(済州)島出身の父親をモデルに、暴力と欲望にまみれた男の一生を描いた作品で、山本周五郎賞を受賞したほか、2004年に崔洋一監督によってビートたけしさんの主演で映画化され、日本アカデミー賞最優秀監督賞を受賞しました。
その後も、大阪の軍需工場跡を舞台に戦後の在日韓国・朝鮮人社会を描いた「夜を賭けて」などの作品を発表しました。
「世界の矛盾、一番吹きだまりみたいな、そういう所での一番弱い存在を描く必要があるんじゃないか、作家にはそういう責任の一端があるんじゃないかと思って書いているわけ」
関係者によりますと、ヤンさんはことし1月、誤えん性肺炎のため都内の病院に入院し、療養していましたが、29日朝、老衰のため亡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87歳でした。
양석일씨는 오사카시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 경영에 실패하고 택시운전사로 일했고 1981년에 그 경험을 쓴 ‘광주곡’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 발표한 ‘피와 뼈’는 한국 제주도 출신인 아버지를 모델로 삼아, 폭력과 욕망으로 더러워진 남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 최양일감독에 의해 피토타케시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에도 오사카 군수공장터를 무대로 2차대전 후의 재일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을 그린 ‘밤을 걸고’ 등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세상의 모순, 가장 더러운 그런 곳에 있는 가장 약한 존재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작가에게는 일말의 그런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양씨는 올해 1월 오연성패렴으로 인해 도쿄도내의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29일 아침 노쇄로 사망했다고 전해졌습니다. 87세였습니다.
ヤン・ソギルさんは大阪市(おおさかし)で生(う)まれ、高校(こうこう)を卒業(そつぎょう)した後(あと)会社(かいしゃ)の経営(けいえい)に失敗(しっぱい)して、タクシー運転手(うんてんしゅ)として働(はたら)き、1981年(ねん)その経験(けいけん)を書(か)いた「狂躁曲(きょうそうきょく)」を発表(はっぴょう)して本格的(ほんかくてき)に作家(さっか)として活動(かつどう)を始(はじ)めました。
1998年(ねん)に発表(はっぴょう)した「地(ち)と骨(ほね)」は、韓国(かんこく)チェジュ(済州)島(とう)出身(しゅっしん)の父親(ちちおや)をモデルに、暴力(ぼうりょく)と欲望(よくぼう)にまみれた男(おとこ)の一生(いっしょう)を描(えが)いた作品(さくひん)で、山本周五郎(やまもとしゅうごろう)賞(しょう)を受賞(じゅしょう)したほか、2004年(ねん)に崔洋一(さいよういち)監督(かんとく)によってピートたけしさんの主演(しゅえん)で映画化(えいがか)され、日本(にほん)アカデミー賞(しょう)最優秀賞(さいゆうしゅうしょう)を受賞(じゅしょう)しました。
その後(ご)も、大阪(おおさか)の軍需(ぐんじゅ)工場(こうじょう)跡(あと)を舞台(ぶたい)に戦後(せんご)の在日(ざいにち)韓国(かんこく)・朝鮮人(ちょうせんじん)社会(しゃかい)を描(えが)いた「夜(よる)を賭(か)けて」などの作品(さくひん)を発表(はっぴょう)しました。
「世界(せかい)の矛盾(むじゅん)、一番(いちばん)吹(ふ)きだまりみたいな、そういう所(ところ)での一番(いちばん)弱(よわ)い存在(そんざい)を描(えが)く必要(ひつよう)があるんじゃないか、作家(さっか)にはそういう責任(せきにん)の一端(いったん)があるんじゃないかと思(おも)って書(か)いているわけ」
関係者(かんけいしゃ)によりますと、ヤンさんはことし一月(いちがつ)、誤(ご)えん性(せい)肺炎(はいえん)のため都内(とない)の病院(びょういん)に入院(にゅういん)し、療養(りょうよう)していましたが、29日(にち)朝(あさ)、老衰(ろうすい)のため亡(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87歳(さい)で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