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산정동에 위치한 산정동 성당은 광주 대교구가 되기전 까지는 주교좌 성당이기도 했다. 전라남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들은 1872년의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으로 새로운 순교자를 탄생시키면서도 꾸준히 복음 전파에 노력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로 인해 전라남도 지역의 교우촌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한국명 유달영) 신부에 의해 장성·순창·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1896년까지도 전라도 지역은 전주 본당, 되재[升峙] 본당, 수류 본당 등 북부 지역에만 본당 소재지가 있었으며, 남부 지역의 공소들은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한국명 민덕효) 주교가 전라도 지역을 순방하면서 나바위[羅岩] 본당과 목포 본당의 신설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1897년 5월 8일 데예(한국명 조유도) 신부가 목포 본당 초대 주임으로, 베르모렐(한국명 장약슬) 신부는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으로 각각 임명되었다. 데예 신부는 아천리 공소에 임시로 거처하다가 현재의 산정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여 1989년 7월 2일 목포로 거처를 옮겼으며, 1899년 초에 아담한 연와제 성당을 완공하였다. 3대 주임 샤르즈뵈프(한국명 송덕망) 신부는 1913년에 새 성당을 건립하였으며, 20대 주임 브라질 신부는 신축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1966년 5월 29일에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26대 주임 김성용(세례명 프란치스코) 신부는 1989년 11월 18일에 양로원을 개원하였다,
이번 김영식 (남부대학교 교수, 국제웃음요가연구소장) 웃음박사를 초청한 장만휘신부는 신자들의 즐거운 신앙생활을 위해 전반기에 이어 두 번째로 김교수를 초청하여 또 한 번의 웃음강연을 갖았다.
이날 김교수는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내용으로 강연을 하여 많은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