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에 올라가 내려다본 생쟁피드포르 마을, 순례의 길 출발점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출발점인 생쟁피드포르 마을의 모습
생쟁피드포르역, 850km 순례가 시작됐다.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 출발한 초고속철도 TGV는 바욘(Bayonne)역에 섰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생쟁피드포르(St. Jean-Pied-De-Port)역에서 순례는 시작된다. 한 달간 순례할 길의 이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 국경 근처까지 이어지는 850km의 길이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산티아고협회를 찾아가 증서를 받는 일이다. 서류를 접수하고, 첫 도장을 받고,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로 이동했다. 알베르게(Alberge)는 증서를 가진 순례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로 방과 부엌, 샤워시설을 갖춘 저렴한 숙소이다. 숙소에서 증명서에 도장 받고 출발한다.
론세발레스 수도원과 마을 전경. 맨 왼쪽 건물이 순례자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알베르게
순례자들이 빨아 널은 빨래가 햇살과 바람에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다
순례길은 전신주 혹은 아스팔트 바닥에 흰색과 빨강색으로 그려진 표지를 따라간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의 곳곳에는 이렇게 순례자들을 위한 수도가 있다.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는 이 길의 가장 높은 지점인 ‘콜 데 레포델(Col de Lepoeder 1410m)’에 도착. 여기서 다음 목적지인 론세발레스까지는 3.6킬로미터가 남았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4시에 문을 연다. 이곳의 침대 수는 자그마치 105개. 마치 군대 막사 같다. 배정받은 침대에 짐 풀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성당으로 갔다. 이곳 성당에서는 매일 저녁 8시면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 미사를 거행한다.
페르돈 고개 정상에 서면 순례자들의 행렬을 형상화한 조각과 만난다
오바노스,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행진하는 사이 마을 관청에서는 아이들에게 모자와 사탕등을 던져준다
푼레 타 레이나의 다리. 11세기에 지어진 다리가 아직도 튼튼하게 서 있다
시라쿠이 마을로 들어서는 순례자
에스테야, 순례자들이 다리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라체, 순례자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라체 수도원의 수도꼭지. 왼쪽은 와인, 오른쪽은 물이 나온다(왼쪽). 붉은 와인이 줄줄 흐르는 수도꼭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순례자
이라체(Irache) 수도원의 전설적인 수도꼭지가 나온다. 왼쪽을 틀면 붉은 와인이 나오고, 오른쪽을 틀면 물이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순례자들이 다들 신기해하며 왼쪽 꼭지에 입을 댄다. 이 길에는 걷는 사람뿐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해 순례를 하는 사람도 많다
순례자들의 길 이정표가 되는 조개껍질 문양
순례 길 거리 곳곳에는 산티아고 길을 알리는 노란 조개껍질 문양만 가득하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는 작은 식당 하나, 슈퍼 하나 정도가 겨우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정도도 없는 마을이 수두룩한데 그런 마을에는 '보부상 트럭' 기사가 주문을 받아 빵과 생필품을 배달해준다. 2시를 넘긴 오후의 해는 살인적인 열기를 내뿜고 있다. 왜 이 시간에 가게와 식당들이 문을 닫고 '시에스타(낮잠)'를 잔다. 팜플로냐에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카페 이루나가 있다. 배낭 무게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는 이 길에서는 택시 회사들이 배낭을 옆 마을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마을들은 낮에는 죽은 듯 잠들었다가 저녁 8시가 넘어야 깨어난다. 건물의 모든 창문들은 덧문까지 꼭 닫혀 있다. 빛이 들어오는 걸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다. 낮 동안 그렇게 침묵 속에 닫혀 있던 마을이 밤이 올 무렵 깨어나 순식간에 활기를 되찾는다. 스페인의 마을이 잠에서 깨어날 무렵 순례자들은 잠자리에 들고-보통 9시면 다들 잠자리에 든다-, 스페인의 마을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새벽 5시에 순례자들은 깨어 다시 길을 나선다.
알베르게에서 파는 티셔츠에 쓰인 그림. “고통 없이 영광 없다.”
중세 시대에 건설된 로그로뇨의 다리 사이로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로그로뇨의 어여쁜 성당 이글레시아 산 바르톨로메의 입구 천장 장식
로그로뇨는 처음 만나는 큰 도시이다. 아름다운 교회가 많이 남은 역사 깊은 곳이다. 이글레시아 산 바르톨로메(Iglesia San Bartolome)성당은 독특한 입구와 단순하면서 기품 있는 실내 장식, 적당한 규모의 어여쁜 교회이다. 이 교회들의 많은 부분이(특히 15세기 이후의 교회들) 남아메리카에서 약탈해온 금과 은에 기댄 바가 컸다고한다. 라우렐 골목(Calle Laurel)은 북부 스페인 지방의 대표적인 간식거리라고 할 수 있는 타파(tapas)를 파는 작은 바로 유명한 골목이다
나헤라의 알베르게 벽에 그려진 순례자 그림
나헤라 마을의 중심부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정유회사 쉘이 후원한다. 따라서 작은 마을마다 코카콜라 자판기가 있다
살아있는 닭 두 마리를 보관하는 것으로 유명한 산토 도밍고 델 라 칼자다의 성당
산토 도밍고 성당의 유명한 닭 두 마리를 보러 간다. 암탉과 수탉을 보러 수많은 순례자들이 성당에 온다. 성당의 동쪽 벽에는 고딕 양식의 닭장이 있고, 그 안에 하얀 닭 두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다. 이 닭에는 멋진 전설이 전해져온다. 때는 14세기. 한 독일인 청년이 부모 및 하녀와 함께 산티아고로 성지순례를 가는 길이었다. 젊고 잘 생긴 청년에게 마음을 빼앗긴 하녀가 열렬하게 고백을 하며 유혹을 해왔지만, 우리의 청년, 냉담하게 모욕을 주며 응하지 않았단다. 분노와 모욕으로 제 정신을 잃은 하녀는 그의 가방에 금술잔을 넣었고 청년은 절도죄로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한다. 절망하고 좌절한 청년의 부모는 그러나, 신앙심 깊은 이들이라 그런 불행한 사고 중에도 순례를 계속 이어간다.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 그들의 아들이 교수대에 달린 모습 그대로 살아 있는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부모는 마을의 읍장에게 달려가 기적을 이야기하고, 아들을 교수대에서 내려줄 것을 요청한다. 읍장의 반응 경멸적인 말투로 "만약 당신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 식탁의 구운 닭 두 마리도 살아있겠구려." 그가 구운 닭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는 바로 그 순간, 이 닭 두 마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식탁에서 뛰어내리며 요란하게 울어댄다. 결국 청년은 석방되어 부모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 신을 섬기며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 이 마을의 성당은 매달 닭 두 마리를 새로운 닭으로 교체하며 성당 안에 감금하는 의식을 대대로 몇 백 년 동안 이어왔다. 이 닭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례자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내내 행운이 함께 한다기에 아무리 귀를 기울이며 기다려도 닭들은 울지 않는다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 내부의 조각
스페인의 모든 마을마다 교회의 위치는 중심에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성당을 들어가는 데 3유로의 입장료를 내야하는데(순례자들은 1유로) 주일은 무료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아름다웠다. 뜨겁던 햇살이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이 되니 거리에 시장이 서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광장에서 악단이 쿠바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스페인 사람들은 자연스레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