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방편품 제 2」를 풀어본다(13)
2-31.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이르셨습니다.
"모든 부처는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가르침을 펼치고 있습니다.
부처가 자나 깨나 행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오로지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가르쳐
깨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리불이여,
여래는 오직 이 한 가지 가르침을 펼치고자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르침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두 가지나 세 가지 가르침이겠습니까.
사리불이여,
시방(十方)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가 또한 이러합니다.
佛告舍利弗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舍利弗 如來 但以一佛乘故 爲衆生說法 無有餘乘 若二若三
舍利弗 一切十方諸佛法 亦如是
【풀 이】
●一佛乘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 또한 일체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오로지 보살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이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즉 一佛乘이다.
●但敎化菩薩
<오로지(但) 가르쳐서(敎) 보살이 되게 한다(化菩薩)>
다시 말해, 가르침을 펼쳐 성문이나 연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불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명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但敎化菩薩>, 다섯 글자다.
법화경 전체를 통해 <一佛乘>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바로 이 다섯 글자, <但敎化菩薩>와 동의어라는 점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필자가 서품, 「1-6」에서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의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공을 들인 까닭도 바로 이 다섯 글자, <但敎化菩薩>의 의미와
직결된다는 점 또한 상기하시기 바란다.
*<諸佛如來 但敎化菩薩>를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 Buddhas teach sattvas only to transform them
into bodhisattvas.>정도가 될 것이다.
●敎化587 (불교)진리를 가르쳐 善으로 인도하다.
이 단어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동사)~을 가르친다, ~을 교화한다.
②(명사)교화
③~을 가르쳐서(敎) ~로 만든다(化).
*대단한 착각
이 단어, <敎化>는 법화경 전편을 통해 두루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의미
또한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법화경 한글판과 일본영문판 모두 ①이나 ②의 의미로만
번역하고 있다. 대단한 착각이다.
필자가 본 바로는 ①이나 ②의 의미보다 오히려 ③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앞으로 공부해 가면서 그때마다 설명을 붙이겠지만, 이러한
착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혼란 또한 대단하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불자들은
<敎化>라는 단어가 등장할 적마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우리말 법화경은 아래와 같이
<但敎化菩薩>을 <오로지 보살만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는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착각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불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계신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라 생각한다.
또 이러한 번역이 착각임은 이어지는 경문을 봐도 금방 드러난다.
한글번역판은 일본의 착각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쓰는데 전념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착각인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이렇게 보는 근거는 이 글의 뒷부분, 「21-5」에서 밝힌다.)
(구經)모든 부처님께서는 다만 보살을 교화하시느니라.
(무비)모든 여래는 다만 보살들만을 교화하시기 때문에
(일본)The buddha-tathagatas teach only bodhisattvas.
●若二若三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若1047 및 약(그 밖에 또)
●諸有所作 常爲一事
<(부처님들께서) 하고 계신 모든 작업은 항상 한 가지 일, 즉 한 가지 佛事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다.>
여기서 <一事>는 <但敎化菩薩>이고 <一佛乘>이다.
●但以一佛乘故
<오로지 한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 때문에>
여기서 <但以一佛乘故>를 <但以敎化菩薩故>로 바꿔 표기해도 뜻은 변함없다.
*乘42 탈 승(승차, 승마), 태울 승(타게 하다), 오를 승(상승), 곱할 승(곱하다),
탈 것 승(타는 물건), 법 승, (불교)중생을 싣고 生死의 苦海를 지나
涅槃의 彼岸에 이르게 하는 敎法.
(계 속)
첫댓글 _()()()_
수긍이 갑니다.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지 왜 보살만을 가르친다???...
얼핏 생각하면 문제가 있는 것 같으나...
阿修羅 居士님은 지금 법화경의 핵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법화경은 부처님께서 (세속적으로 말해)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일체중생들에게 남겨놓은 유언이나 다름 없는 가르침입니다.
<중생들이여, 반드시 보살이 되라, 성문이나 벽지불을 최종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성문이나 벽지불은 보살로 가는 길목이요, 방편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남기신 유언의 핵심입니다.
@나성거사 그런데 법화경 경지에서는 청중대중을 전부 우선 보살로 취급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틀린 것이 아닌데??? 아함경 등 수준을 이수한 것으로 보니... 적어도 법화경 강의를 듣는다하면 대학원생(보살)이니...
@阿修羅 居士 <법화경 경지에서는 청중대중을 전부 우선 보살로 취급한다는 말이 있다>
맞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첨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이런 말, 이런 썰 때문에 阿修羅 居士님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
마음의 혼란, <보살이 뭐길래>라는 마음의 갈등, 법화경에 대한 회의 등을
저는 바로 직시합니다. 阿修羅 居士님 정도의 불자가 <그것이 틀린 게 아닌데>
라고 생각할 정도이니, 법화경을 접해보지 않은 불자들은 어떻겠습니까? 또 법화경의 엉터리번역으로 공부한 불자들은 어떻겠습니까? 또 법화경엉터리 번역
을 바탕으로 설법하는 분은 어떻겠습니까? 또 그 설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불자는 어떻겠습니까?
@阿修羅 居士 阿修羅 居士님만 괜찮다고 하시면, 거사님이 인용하신 바로 그 말, 그 썰을 제목으로 하여 본문으로 저의 의견을 올리고 싶습니다. 이 난의 300 자로는 스페이스가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는 척 한다는 오해, 잘난 척 한다는 오해. 저는 오로지 법화경에서 보살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를 본글에 쓰고자 합니다.
@나성거사 여기 이점에서 저의 의혹을 완전히 풀 수 있도록... 겸하여 다른 중생들까지도... 그래서 300짜가 아니라 3,000자도 좋으니, 나성거사님의 세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법화경에서 전부 보살로 취급하여 "단지 보살만 가르칠 (교화할)뿐이다"가 왜 안 되는지???
@阿修羅 居士 법화경에서 <但敎化菩薩>이라는 문장을
A.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할 뿐이다>라고 번역해야 하는가, 아니면
B. <오로지 보살이 되도록 가르칠 뿐이다>라고 번역해야 하는가,
만약 법화경 대가나 전문가라는 사람이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첫째, 대승불교에서 菩薩이 어떤 존재인지, 聲聞이 어떤 존재인지,
緣覺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는
엉터리 대가나 전문가이고,
둘째, 법화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엉터리 대가나 전문가이고,
셋째, 법화경의 한문경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무지한 대가나 전문가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곧 저의 글이 올라갈 것입니다.
苦待합니다!!! 해해해!!!
00000000000000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_^
나성거사님이
지적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부처님은 보살만을 위한 분으로 착각 할뻔 했습니다.
위에 스크린 카피 한것에서 보더라도
앞에서는
"오직 보살만을 위해 교화 하시기 때문에"라 하고
밑에서 보살도를 말할때는
"모든 사람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말하느니"라고 풀이 했네요.
복사해 올리신 번역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한글판, 모든 일본판, 모든 영문판은
<諸佛如來 但敎化菩薩>를 그처럼 오역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문 법화경의 고전이라 일컫는 케른(H. Kern)의 번역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이름도 없는 일개 아마추어인 저가 4년 전에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
사면팔방에서 날아오는 돌맹이를 혼자 감당해야했지요.
대승불교에서 보살이라는 존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라 봅니다.
For Mahayanists, the goal is to become, like Buddha, a bodhisattva.
(대승불자의 최종 목표는 부처님처럼 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보살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 마디로 나타내는 말인데요, 폴 니터(Paul Knitter)라는 서양 불교학자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폴 니터는 <부처 없이 나는 크리스챤이 될 수 없었다(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라는
저서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분이지요.
번역의 주인은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 비구(比丘) 계환(戒環)
인것 같습니다.
법화경 해제에 올라와 있어요.
많이 헷갈리시지요? 그렇습니다. 엄청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 비구(比丘) 계환(戒環)>이라는 분은
국역장경에 해설자로 등장하는 두분 중의 한 분입니다. 송나라 사람이지요.
또 한분은 一如라는 분인데. 명나라 사람입니다.
<諸佛如來 但敎化菩薩>을 이 두분은 아래와 같이 한문으로 풀었습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一如 풀이
就昔方便謂敎化三乘 理實而言但化菩薩
如彼窮子自謂客作賤人 長者所觀實爲己子
卽是人一也
2) 戒環 풀이
諸佛爲一大事出現故 諸有所作常爲一事
以此而敎菩薩 以此而示衆生
以此而說諸法 曾無他道也
무주님이 복사한 한글풀이를 누가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또 그분이 왜 <戒環 풀이>만 인용했는지 저는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