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매니아들은 종종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는 행위에 대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잘 만들어진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오감(五感)에 어필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고객에게 최상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기호 식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상찬(賞讚)의 말들은 이처럼 고객들의 꾸준한 믿음을 충족시켜 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에스프레소의 품질을 평가할 때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단편적 지식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왜냐하면 에스프레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활용해야 비로소 그 진미(眞味)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호 식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급 에스프레소의 조건은 우선 35cc 이하의 적당한 양과 헤이즐넛 색깔의 크레마를 들 수 있다. 검은 고동색의 줄무늬가 형성된 크레마는 2∼4mm 정도로,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형성돼야 하는데 적어도 약 2분 동안은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자면 에스프레소는 원두의 혼합, 분쇄과정부터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며 이밖에도 좋은 기계와 일급 바리스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흔히 ‘에스프레소의 4대 법칙’이라고 하는 다음의 조건들은 어쩌면 한 잔의 커피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 The Blend (혼합)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Arabica)와 로부스타(Robusta)의 2개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종들은 재배 환경이나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갖게 된다.
에스프레소가 갖춰야 될 조건으로 꼽히는 ‘맛의 균형’은 결국 이 두 종의 커피를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맛의 균형을 ‘신맛과 쓴맛의 조화’라고 정의했을 때, 풍부한 향기와 높은 밀도를 얻기 위해서는 두 종의 특징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특별한 혼합 기술이 필요하다.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 한 가지 종의 커피만 이용하는 것보다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고, 이 둘을 혼합하는 경우에도 커피원두 각각의 맛과, 향기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혼합(blend)이란 가장 소극적 의미의 ‘맛의 창조’라 할 수 있으며 이 방법에는 아라비카종 또는 로부스타종만 단독으로 혼합을 하거나,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종을 같이 섞는 방법이 있다.
에스프레소의 품질을 결정하는 두 번째 요소는 볶는 과정과 냉각 과정이다. 볶는 과정은 커피생두가 커피원두로 바뀌어지는 변환 과정의 하나로, 이 과정에서 커피원두만이 가지는 감각적인 특성과 물리적인 변화가 이뤄진다. 볶는 과정이 끝나면 냉각과정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 냉각과정에는 수냉식(水冷式)과 공냉식(空冷式)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포장방식 역시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혼합 과정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포장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커피원두에 가장 해로운 성분인 산소와 수분을 얼마만큼 차단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산소는 커피원두를 산화시키는 원인이 되며 이 산화 과정에서 커피원두의 향이 분해되고 결국은 악취를 발생시키게 된다.
수분, 즉 습기가 차단되지 않으면 커피가 금방 굳어버리고, 정량임에도 불구하고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원인이 된다. 포장 역시 커피의 산화와 습기를 방지하고 커피원두의 특성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작업이다.
■ The Grinder (분쇄)
원두 형태로 판매되는 커피의 경우, 분쇄된 커피보다 더 많은 향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에스프레소가 즉석에서 준비되는 커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바로 직전에 분쇄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향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커피원두를 분쇄하는데 사용하는 기계를 ‘그라인더(Grinder)’라 부른다.
그라인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라인더의 디스크(날)이며 2개의 디스크가 회전운동을 통해 원두를 분쇄해주고, 장착된 링너트는 원두입자의 크기를 조절해준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그라인더 디스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주로 원뿔형 디스크가 선호된다. 여기에도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평면형 디스크는 원두 400kg을 분쇄하면 날이 무뎌져 다시 교체해야 하지만, 원뿔형은 약 1톤까지 분쇄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있고 커피 원두의 과열을 방지하는데도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원뿔형 디스크의 회전 속도는 350∼400rpm으로 1,400∼1,800rpm에 달하는 평면형 디스크보다 훨씬 느린 편이라, 분쇄 작업시 커피원두가 열을 받아 향이 공중 분해되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원뿔형 디스크 역시 위에 언급된 작업용량을 초과했을 때는 가급적 빨리 디스크를 교체해 주어야 한다.
분쇄시의 입자 크기는 에스프레소의 추출시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절한 분쇄입자를 사용했을 경우 에스프레소 한 잔을 추출하는데는 약 25초가 소요되는데, 추출시간이 이 보다 짧으면 입자가 거친 것이고 25초 이상이면 분쇄입자가 너무 가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라인더의 투입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라인더는 보통 작업중인 커피의 종류에 따라 정확한 양을 투입하도록 세팅돼 있지만, 커피 한 잔을 추출하기 위해 필요한 양은 원두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공냉식으로 건조하거나 수분 함량이 낮은 커피는 그렇지 않은 원두에 비해 추출량이 적은 편인데 이처럼 커피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그라인더의 투입량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 The Espresso Machine (기계)
에스프레소 머신은 최고의 품질을 가진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핵심적이고 필요한 조건이다.
정밀하게 작동되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필요한 커피 성분을 손쉽게 추출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최상의 에스프레소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그 특이한 추출 방법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는 물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높은 압력을 분쇄된 커피 사이로 통과시켜 커피 엑기스를 추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때 열과 압력은 커피 내부에 포함돼 있는 용해 가능한 물질, 즉 당분과 단백질 등을 용해시키며 동시에 유상화되는 지방과 콜로이드, 그리고 커피의 향과 당밀성의 성분 등을 추출하게 된다. 즉 우리가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이 모든 용해 성분의 총합이며 각 성분들의 유기적인 결합이 에스프레소의 품질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스프레소 머신은 반드시 물의 온도가 섭씨 88℃ ∼92℃(화씨 190℉~197℉)가 돼야 하며 추출 압력도 8∼10atm(8∼10기압)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 The Barista (바리스타)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좋은 원두와 시설도 필수적이지만 무엇보다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당사자, 즉 바리스타 개인의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바리스타의 역할은 먼저 어떤 커피원두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어떤 기계를 사용할 것인지, 어떻게 기계의 성능을 유지시킬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무척 광범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방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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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 Coff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