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레오폴트 2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부인 요제프 2세로부터 정치 교육을 받았다.
1792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계승해 프랑스 대혁명의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반프랑스 정책을 펼쳐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지원했으나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롬바르디아와 라인 강 왼쪽 땅을 상실했고
1799년~1801년에 걸쳐서 프랑스에게 크게 패배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도 이에 대항해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높이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만들어 다시 대항했다.
그러나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해체되었고
1806년에는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포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
오스트리아의 1807년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맞서 싸우지만 역시 패배했고
1809년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역시
아스펜-에슬링 전투와 바그람 전투에서 크게 패해 해체되었다.
1810년에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즈를
나폴레옹과 결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크게 패해 쇠퇴하자
1813년 다시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해
1814년 프랑스 제국을 붕괴시키고
1815년 빈 회의 이후 재상 메테르니히 총리를 지지했다.
보수주의적 정치 체계를 펼쳤고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약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키우는 데 힘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과학을 후원했다.
신기술도 적극 도입해
도나우 강에 증기선을 띄우고 철도를 건설하고 했다.
이후 그의 일생과 업적을 담은
V. 비볼의 <프란츠 황제>가 1938년에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