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79- 부산
12월27일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이기대 자연 도시자연공원으로 갔습니다. 이기대(二妓臺)는 장봉산 동쪽바닷가에 있는 암석대입니다.
이기대 이름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래영지"에 기록됐는데, 두 기생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임진왜란때 의로운 기생 두명이 자청해서 왜군잔치에 나가 술취한 왜군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떨어져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기대 산책 끝날무렵 바위위에 찍힌 공룡 발자국이 나타납니다. 6500만년전에 살았던 초식공룡 울트라사우루스의 발자국으로 추정됩니다.
이기대 숲속의 피톤치드가 나오는 산림입니다.
이기대주변 관광지
해파랑길, 남파랑길 안내도
해파랑길에서 바라본 정경
김문국이랑 임현재 PD
저멀리 부산시내가 보입니다.
부산 범어사로 왔습니다. 범어사(梵魚寺)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에 있는 사찰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입니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영남 3대 사찰로 불리고 있습니다. 범어사 3층 석탑
범어사 삼층석탑(梵魚寺三層石塔)보물,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습니다. 신라 말기의 화강석제 석탑으로, 높이는 4m입니다. 2중 기단(基壇) 면석(面石) 상하에 탱주를 대신하여 안상(眼象)을 새겨넣은 점이 특이합니다. 제1탑신은 특히 커서 2층 이상의 감축률이 눈에 뜁니다. 《범어사사적기(梵魚寺事蹟記)》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興德王)이 세웠다고 합니다.
범어사는 부산 금정산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입니다. 2012년 11월 사부대중의 수행정진과 화합을 바탕으로 지유대종사를 초대 방장으로 모시고 총림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 문무왕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습니다. 전국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판본 중 하나로 권 4의 5편에 들어 있는 '의상전교(義湘傳敎)'에는 의상대사가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해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 가운데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 있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금빛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고 그곳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여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입니다. 의상대사를 비롯해서 원효대사, 표훈대덕, 낭백선사, 명학스님과 경허선사, 용성선사, 성월선사, 만해한용운선사,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1950년대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총림지정 이후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고, 특히 2019년 범어사의 오랜 숙원사업인 선문화교육관과 2021년 전국사찰 최대 규모의 범어사 성보박물관의 대작불사를 완료하였습니다.
터키 관광갔을때 같이 간 부산사나이 랑 같이 범어사에 갔습니다.
팔정팔경은 어산노송(魚山老松, 절 입구 어산교 근처의 소나무 숲), 계명추월(鷄鳴秋月, 계명암의 가을 달밤), 청련야우(靑蓮夜雨, 청련암에 내리는 밤비), 내원모종(內院暮鐘, 내원암에서 듣는 범어사의 저녁 종소리), 대성은수(大聖隱水, 대성암의 계곡물소리), 금강만풍(金剛晩楓, 금강암의 늦가을 단풍), 의상망해(義湘望海, 의상봉에서 바라보는 바다), 고당귀운(姑堂歸雲, 정상인 고당봉을 돌아가는 구름)을 말합니다.
범어삼기든 금정팔경이든 내용을 살펴보면 금정산과 범어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처럼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1281년에 일연(一然)이 편찬한 역사서입니다. 범어사 소장본(국보)은 권4와 권5를 한 권으로 묶은 책입니다. 조선 초기 1394년 간행본으로 현존본 중 시기가 가장 이르며,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범어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동계(東溪)가 편찬, 간행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事蹟)』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으므로 대왕이 근심하고 있었는데, 문득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의상(義湘)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광안리는 애초부터 휴양지로 개발될 것을 목표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곳이 아닌 어촌에 해수욕장 기능 부가적으로 추가한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민락동에는 아직도 꽤 큰 수준에 어항(漁港)이 있고, 남천동에는 1990년대까지 해수욕장과 바로 붙어있는 쪽에 어선 선착장이 있었습니다. 현재 해운대에 있는 어항(漁港)인 미포항과 광안리의 민락포구와 비교하면 그 규모 차이가 엄청 나는데,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광안리와 해운대가 같이 어촌이었으나, 광안리가 어촌으로서 성격을 더 오래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민락포구에 어민들이 직접 좌판을 깔고, 그 날 잡아온 물고기를 팔기도 했습니다
광안리는 본래 해수욕장이 아닌, 멸치 등 고기잡이를 하던 어촌이었습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러 여름 방학이 될 무렵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심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휴양지로서 시작된 곳이 아니라 동네 앞바다를 수영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던 것에서 해수욕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후에 송도와 해운대에 몰리던 해수욕객들이 광안리에도 해수욕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점차 다른 지역에서도 피서객이 모여들자 195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정식 개장했습니다
이곳은 밤새 젊은이들이 다니며 즐깁니다.
멀리 주택가 배경이 보입니다.
옆에 도로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닙니다.
아쿠아 펠리스에서 사우나를 즐겼습니다.
부산사나이가 우리일행을 바닷장어(꼼장어) 맛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장모님 꼼장어집은 맛도 맛이지만 여주인의 말이 구수합니다.
이쪽은 다 꼼장어 거리입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부산 대표 재래시장 중 하나입니다.. 2006년 12월부턴 부전마켓타운으로도 불립니다. 시장 설명에 의하면 부산 최대 규모 종합 전통시장이라고 하는데, 이 규모는 부전시장 외 근처 다른 전통시장들까지 다 합친 것으로 보입니다. 부전마켓타운은 부전시장과 더불어 부전인삼시장, 부전인삼마켓, 부전상가, 부전농수산물새벽시장, 서면종합시장, 부전기장골목시장, 부전전자종합시장 등 8개의 시장으로 나눠져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