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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성운]
1869년 여름, 당시 가난한 젊은이 모네는 센 강의 ‘라 그르누예르’에서 그림을 그리다 너무 배고파서 파리에 있는 친구 르누아르를 불렀다. 르누아르는 친구를 위해 부리나케 기차를 타고 바게트 빵, 치즈, 음료수를 들고 왔다.
허기를 모면한 모네는 힘찬 붓 터치로 연둣빛 수목과 행락객, 배를 그렸고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물의 일렁임’을 표현했다. ‘라 그르누예르’ 근처에 살았던 여류 화가 베르트 모리조도 후에 여기서 그림을 그렸는데 “모든 것이 흔들리고 비치는 물은 마치 지옥처럼 출렁거렸다.”고 회고했다.
이 그림은 사람들과 배가 수시로 이동하는 현장에서 순식간에 그린 현장감이 살아 있다. 그의 순간적 양상 표현은 같은 장소에서 그린 르누아르의 그림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라 그르누예르’는 배는 근경, 작은 다리, 유람선, 행락객, 수영하는 사람은 중경, 강변의 수목은 원경으로 나누어 시원한 공간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그림은 한 번 그리다 말고 다시 돌려 덧칠해 그린 흔적이 있다. 그만큼 고민하였고 순간 포착이 난해했다는 방증이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의 깊은 모습을 성찰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대부분 궁핍했던 당시 인상파 풍경 화가들은 외부의 햇빛, 파리 떼, 비바람, 식물의 가시, 추위 등과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라 그르누예르’는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으로 당시의 유원지이다. 이곳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로 25분 정도의 거리이다. 부지발과 크로와시 중간에 있는 긴 섬이다. 당시 파리의 귀족들이 소풍을 즐긴 이곳은 지금 유원지가 아닌 골프장과 산책로로 변해 있다. 당시 ‘카망베르 치즈’라고 불리던 인공으로 만든 둥근 섬은 아직도 있으나 육지에 연결되어 있다. 그 옆 골프장 안쪽으로 이 그림판이 세워져 있다.
필자는 이 그림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이 된다. 왜냐하면 프랑스 체류 시 주요 산책 코스로 자전거와 도보로 여러 번 가 보았기 때문이다. 이 부근은 자연 경치가 수려해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등의 그림판이 즐비하다. 모네는 필자가 자주 이용했던 기차의 종착역인 ‘생라자르 역’과 노르망디의 ‘코끼리 바위’, 지베르니의 ‘수련’ 등 주옥같은 작품을 평생 구도자처럼 많이 그렸다.
필자는 그곳 대부분에 가서 그의 예술 열정을 상상하며 공유하여 보았다. 그리고 마르모탕 박물관에서 그 유명한 ‘인상, 일출’을 보게 되면서 왜 그가 아내가 숨지는 순간까지도 실내의 빛과 색의 변화에 천착했는지 머리가 숙여지는 느낌을 가졌다. 나는 실제 그의 그림 앞에서 엄청난 감동으로 눈물을 훔치는 감상자를 목격하기도 하였다. 눈이 멀어지면서까지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모네는 전쟁에서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오랑주리 미술관의 대작 ‘수련’ 연작으로 아직까지도 우리를 힐링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