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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강
●儻有諍者어든 兩說을 和合이라.
만일 다투는 자가 있거든, 말로 다투는 자다 이 말이지. 諍자는 말씀 言변에 다툴 爭자했으니까
▮말로 다투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兩說을 和合하라는 말은 두 사람이 싸우니까 두 사람의 말을 다 화합시켜 가지고 儻: if
●但以慈心으로 相向이라 서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향하게 하라. 그랬거든. 그 전에 그런 얘기가 있지? 누군가도 그런 얘기를 했어. 상좌 둘이 싸우거든. 둘이 싸우다가 스님한데 와서 하소연을 해. “스님 제가 이만저만 했는데, 쟈가 저를 어쨌습니다” “그래? 네 말은 다 옳구만은...” 또 저 사람이 와서 “뭣이 어쩌고, 어쩌고, 어쩌고 했는데 쟈가 이랬습니다”
“음, 네 말도 옳구만은...” 이러니까 제 3자가 있다가“스님 그럼 누가 옳다는 말입니까? 이놈도 옳다 저놈도 옳다 하면 누가 옳다는 말입니까?” “그래 네 말도 옳다” 다 옳다는 겁니다. 스님한테 일러서 재보려 하다가 김이 다 빠져가지고, 허허 웃고 치워버렸답니다.
▮兩舌 화합하고 지지고 할 것이 뭐 있습니까?
▮離四句絶百非라. 4구가 떠나고 100가지 그른 것이 다 떠났다. 시시비비가 다 떠나서
▮是是非非를 都莫關하니 시시비비를, 옳다니 그르다니 다 관계할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山山水水任自閑이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다 내 뜻에 맡겨가지고 마음이 한가로웠을 때,
▮莫問西天安養路하라. 서천에 安養의 길이, 편안하고 좋은 길이 어디냐? 극락 가는 길이 어디냐? 물을 필요가 뭐 있느냐?
▮白雲斷處에 有靑山이라. 백운이 끊어진 곳에 바로 청산이 나타나더라 이 말. 그러니까 마음하나가 시비심이 끊어지지 않으면, 시비는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고, 그 시비라는 것이 바로 중생심이다 이 말. 우리 도 닦는 사람은 모든 이해를 떠났기 때문에, 명리와 이해를 떠났기 때문에 애당초 “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합장하고 “성불 하십시오” 하면 시비가 있을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또 시시비비 꺼리가 있다하더라도 한 생각 참고 기다리노라면, 다 거기에 편안한 경계가 돌아온다! 이겁니다. 여기에 화합의 법문이라는 것이 있어. 부처님께서 고삼리라고 하는 나라에 계셨는데, 그 고삼리 비구들이 서로 시비가 생겼어. 어떤 비구가 자기는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여러 사람들은 “너는 계를 범했으니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참회를 하라!” 이러거든. 그러니까 “나는 참회 못 하겠다. 그것이 무슨 법을 어긴 것인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어허 잘못 했다면 잘못한 줄 알지 네가 뭘 그리 빡빡 우기는가?”그래가지고는 여러 대중한테 쫓겨났거든. 시비를 당해가지고 쫓겨났어. 쫓겨났는데 이비구가 부아가 나가지고 살 수가 있나? 자기 친구들, 자기 패거리들한테 가가지고 자기 억울한 것을 하소연을 했거든. “내가 이만저만 했는데, 그 사람들이 완력으로 나를 쫓아냈다” 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고, 가보자고 패거리를 지어서 가가지고 패싸움이 되었어. 내가 옳네, 네가 글네. 내가 옳네, 네가 글네. 막 손가락질을 하고 싸움이 났어.
그렇게 싸운다는 소리를 듣고 부처님이 ‘이 어리석은 자들이 교단의 평화를 마침내 깨트리는 구나’ 걱정을 하시고 먼저, 쫓아낸 대중들한테 가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른 비구의 허물을 대하여 가까운 것만을 보고, 미운 생각을 거기다 부과시켜가지고 우선, 밉다. 아주 괘씸하다. 잘못한 그것만가지고 말하지 않고, 밉다는 생각까지 거기다 부과시켜가지고 경솔하게 그 비구를 쫓아내는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실상 이 비구는 오랫동안 중노릇을 한 이로써 교리에 밝고, 계율에도 자세하며, 도 닦을 마음이 견고한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우리의 할 일이라 하여 어떤 경우에서나 비구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쫓아낸 비구들한테 훈계를 하고, 그 다음에 쫓겨난 비구한테 가서 하시는 말씀이, “비구들이여, 너희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스스로가 반성하지 못하고, 나는 죄가 없다. 개과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어떤 비구가 죄를 범했다고 하자. 그 비구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비구들은 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경우에, 만일 그 비구가 상대편 비구들을 볼 적에 이 스님은 실상 오랫동안 중노릇을 한 이들이라 교리에 밝고 계율에도 자세하고, 도 닦을 마음이 견고한 이들로서 자기 하나의 일로 욕심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이나 겁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만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저 비구들은 나를 쫓아내는 처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때문에 교단에 불화가 일어나고 싸움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하고 대중의 화합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른 이들이 부처님 법에 대한 신앙을 위해서라도 그 죄를 인정하여 대중의 羯磨에 순종하여야한다”
그러니까 사정 봐서 인정해 주라 이겁니다. 내가 조금 잘못 한 그것 고집 세우지 말고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면 끝나는 것인데, 뭘 그것을 기어이 고집을 세우느냐? 이겁니다.
양쪽에 가서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니 뭐 당최 그것이 끝이 안 납니다. “부처님은 법왕이시니까 가만히 계시이소. 싸움은 우리끼리 할 모양이니까, 부처님하고 싸우자는 것은 아니니까 가만히 계시이소”하고 막 싸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해볼 재주가 없거든요. 아니다. 그런 소리를 하지마라. 싸워서는 안 된다.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물과 젖이 합하는 듯이, 물과 젖은 합해지잖아. 물과 기름은 안 합해지지만, 물과 젖이 합하는 듯이 불법에 이익을 더하여 안락하게 지내야한다.
이렇게 아무리 타일러도 놈들은 끝내 싸움을 그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에이 이 천하 고약한 놈들, 이 미련한 놈들. 어리석은 놈들. 이유야 어쨌든 相見에 딱~ 曲直되어 있기 때문에, 상에 곡직되어 있는 중생들은 어떻게 해 볼 재주가 없구나.
부처님이 아무 말도 아니하고, 시비 하지 말아라 하라 더 해봐야 소용도 없으니까요. 그만 자기가 떴어... 신도들한테도 말도 아니하고 슬~ 떠나버렸어요. 기원정사를 거쳐서 아뇩달지를 거쳐서 떡~~ 마갈타 국에 가서 계셨다는 말도 있어.
시식문에 볼 것 같으면 摩竭掩關之時節(마갈엄관지시절). 그런 것이 있잖아. 마갈타 국에서 문을 막고 계시던 시절 하는데... 석 달 동안 문을 탁 닫고 사람을 안 만났어. 아 이러니까 신도들이 와 보니까 부처님이 안 계시거든. “아 부처님이 어디 가셨노?”“비구들이 시비를 하니까 떠났답니다”그러니까 “에~ 이, 이놈의 비구들이 공부는 아니 하고 먹고서는 시비나 하고 자꾸 싸우기나 하니까,
부처님이 우리에게 말도 아니하고 떠났다고, 내일 부터는 저 비구들하고 우리가 말도 하지 말고, 비구들 법문 듣지도 말고, 비구들한테 밥도 주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자”고... 신도들이 결의를 해버렸어.
그러니 밥을 먹어야 싸우지 걸식을 못하니까 싸울 수가 있나요? 비구들이, “배고파서 안 되겠다. 부처님한테 가자. 거기 가가지고 좀 얻어먹고 부처님 앞에 가서 시비를 결정을 짓자” 하고 부처님한테 찾아 왔어. 그 때에 목련ㆍ사리불ㆍ가섭존자ㆍ부루나존자. 10대 제자. 아주 큰 대 장로 비구니들이 쭉~ 하니 와서 비구들이 전부 다 사제들이고 조카들이고 그렇거든. “이 놈의 손들, 너희가 공부는 아니 하고 자꾸 시비를 해가지고 부처님이 피난 오시지 아니했나? 고얀 놈들” 그래가지고 큰비구들이 부처님 앞에 청해서 “어쨌든지 간에 용서하시고 부처님 나오십시오”그래 부처님이 나오셔서 시시비비, 시비를 하는 것은 18가지 법을 제자리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18가지라고 하는 것은
법인 것ㆍ법 아닌 것. 계율인 것ㆍ계율 아닌 것. 범한 것ㆍ범하지 아니한 것.
경한 것ㆍ중한 것. 여지가 있는 것ㆍ여지가 없는 것. 추악한 것ㆍ깨끗한 것.
행할 것ㆍ행하지 아니할 것. 제어 할 것ㆍ제어 하지 아니할 것.
말할 것ㆍ말하지 아니할 것. 이것이 18가지 법입니다. 이런 것을 제자리에 두지 아니했기 때문에 시비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구들은 각 성 받이가 각처에서 모였다 이겁니다. 각 성 받이가 각 곳에서 다 모였다 이겁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8도가 각각 개성이 조금 다르잖아.
▮경상도는 石田耕牛라. 돌밭 가는 소라는 말입니다. 어쨌든지 시끄럽거든. 돌밭 가는 소니까 왈그락 찌그락 싸울 적에 보면 한 놈 죽이는 것 같거든. 그렇게 싸워도 다 싸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고요. ▮전라도는 春風細柳라. ▮황해도는 泥田鬪狗라. 진흙 밭에 싸우는 개라는 말입니다. 진흙 밭에서 뒹굴면서 싸우는 개라는 말입니다. ▮충청도는 空山明月이고. ▮강원도는 巖下老佛)이고. ▮경기도는 鏡中美人이고. 각각 있거든. ▮평안도는 猛虎出林)이고요. 맹호가 숲 속에서 “왁~” 하고 나오는 것 같다 이 말입니다. ▮함경도 사람은 싸우려고 하면 한 3년 싸운다고 하대요. “밥 먹고 싸움세” 하고 들어가 가지고 밥 먹고 한 숨 자고, “밥 먹었는가? 또 해보세.” 또 싸우고,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또 싸움세” 하고 내일 또 싸우고, 며칠 씩 싸운다고 합니다. 성질이 그렇게 각각 다른 것이 산세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각 성 받이가 각 처소에서 왔는데 똑 같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소견이 다 같을 수가 없다 이겁니다. 이러니까
▮不可長見하고 不可斷見하라. 길게 보지 말고 짧게 보지 말어라.
▮怨無大小이 不得可報니라. 원수는 큰 거나 적은 거나 말 할 수 없이 갚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어라. 앙갚음 하려는 생각 하지 말어라.
▮以怨報怨은 從不可得이니, 원수는 원수로서 갚는 것은 마침내 가히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니, 원수가 갚아 지는 것이 아니니,
▮以無怨이라야 乃爲解決이니라. 원수가 없음으로써 해결을 보게 되는 것이니라.
오래도 보지 말라 얼른도 보지 말라. 원수는 크고 적고 앙갚음 하지 말라. 원한은 증오로서 가셔지지 않나니, 오직 갚음 없음으로 원한은 사라진다. 이렇게 번역되어지는거라
‘오래도 보지 말라’는 말은 누구나 원한을 오래 계속시키지 말라는 말이요, ‘얼른도 보지 말라’는 말은 친구들의 우정을 성급하게 깨뜨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원수는 앙갚음을 하면 더욱 커지고 상속되어, 그칠 새가 없는 것이니, 오직 잘 참고 쉬고 착한 사랑에 의해서만 풀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말씀들은 참 좋은 말씀이지.
비구들이여, 너희는 이 잘 말해진 여래의 계율 가운데서 머리를 깎고 출가한 사람들이 아닌가? 아무쪼록 잘 참고 견디며 또한 부드러운 사랑에 의하여 명랑하게 화합하여야 하느니라. 이렇게 부처님이 참 좋은 말씀을 항상 하시는데도, “마, 부처님은 가만히 계시이소마. 싸움은 우리끼리 할 모양이니까... 정말로 싸움하자는 것이 아니니까 가만히 계시이소”이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떠나신 겁니다. 이렇게 같지 아니 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화합을 해야 된다.
첫째는 身ㆍ口ㆍ意 몸과 말과 생각을 서로 화합시켜야 되는 것이 뭐냐?
身和同住하고, 몸이 화합해서 같이 한 곳에서 모여살고, 그러니까 떨어져서 살면 異心이 있을 수 있지만 같이 살면 또 괜찮고. 口和無諍이라. 입이 서로 화합해가지고 자비스러운 말을 慈心相向이거든요.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 상향하다보면, 서로 존경하고 존댓말을 쓰고 그러면 다툴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意和無異라. 뜻이 또 화합해가지고 서로 남의 뜻을 존중하면 어김이 없다 이 말입니다. 戒和同遵하고, 부처님의 계법을 서로 화합하게 해서 같이 준수하고, 見和同解하고, 소견을 똑 같이 맞추어 가지고, 같이 이해를 하고, 利和同均이라. 이익이 있으면 같이 화합해서 동등하게, 똑 같이 분배해서 똑 같이 나눠 먹으라! 이 말입니다.
이래서 이 6화합 법문을, 옛날에 중국에서 6국이 서로 싸울 때, 오나라 월나라가 싸웠잖아. 吳越의 同舟라고 전당 강변에서 싸우는데, 중국 항주에 가면 六和塔이라는 탑이 있어. 6층으로 된 좋은 탑이 있는데 그것이 6화합을 위해가지고, 오나라 월나라가 전쟁하지 말라고 스님들이 탑을 세웠거든. 6화 법문을 항상 했는데, 지금도 그 탑이 있어. 전당강 이라는 그 강가에 그 탑이 좋더구만. 그 강이 1500년인가 운하를 파서 만들어졌다고 그래. 그것도 불가사의에 든다고 중국 사람들은 그래. 그런데 지금 공산주의를 오래 해 놓으니까 6화가 뭔지를 몰라. 그래서 제가 안내자 보고 6화가 무엇인지 아느냐? 하니까 “알지요”뭐냐고 물으니까, “동방 서방 남방 북방 상방 하방” 이렇게 하더군.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身ㆍ口ㆍ意ㆍ戒ㆍ見ㆍ利... 몸으로 화합하고, 입으로 화합하고, 생각으로 화합하고. 부처님의 계법으로 화합하고 소견이 화합하고 이익이 서로 같이 고루 화합하는 이것이 6화합이라고, 그래서 육화탑 이라고 한다. 너는 많이 먹고 나는 적게 먹으니까, 네 먹는 것을 내가 뺏어 먹어야 되겠다고 싸우면 전쟁이 생기는 것이고, 소견이 각각 다르다 이 말입니다. 나는 긴 것을 좋아한다 하면 저 사람은 짧은 것을 좋아한다 하든가? 서로 소견이 다르니까 그래 가지고서는 싸우게 되는 것이지. 부처님 계법대로 시행을 하지 않으니까 싸우게 된다 이 말입니다. 기준이 없으니까. 6화합 얘기를 한참 설명해 줬더니 ‘좋다’ 하면서 헤이 참, 내가 오늘 안내해 주다가 좋은 것 배웠다면서... 그래서 제가 여기서 불교사전 한권 보내줬지. 공부 좀 해가면서 하라고...
이런 6화합을 위해서는 서로 四攝法을 행하고,
四聖言을 행하고, 五不答을 시행해라. 이랬거든요. 사섭법을 행하라는 말은 보시하고 애어하고, 보시를 하고 사랑하는 말을 항상 쓰고, 이행. 남에게 이로운 행을 하며 무슨 일이든지 같이 거들어서 하라 이 말입니다. 布施攝ㆍ愛語攝ㆍ利行攝ㆍ同事攝... 일을 같이 하는 것, 그 사람 하는 일을 따라한다! 이 말이지. 이런 사섭법을 행하라. 愛語라고 하는 말 가운데 五德이 다 들어가잖아. 溫ㆍ良ㆍ恭ㆍ謙ㆍ讓 ... 따뜻한 말.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기로다” 안했나? 부드러운 말 한마디, 그것이 애어거든.
四聖言이라고 할 적에는 見ㆍ聞ㆍ覺ㆍ知에 보지 아니한 것은 못 봤다고 말하고, 듣지 못한 것은 듣지 못 봤다고 말하고, 깨닫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고, 알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것이 四聖言입니다. 아주 거룩한 말씀이다 이 말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지껄이는 통에 시시비비가 생기거든.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은 척하고 자기가 아는 척 하는 것. 듣지도 못한 것을 갖다가 들은 것 같이 지껄인다든가, 보지도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지껄인다든가, 여기에서 모두 가짜가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이 質直語요, 柔軟語라. 質直語라는 것은 그 바탕이 고르다 바르다 이 말입니다. 바른 말이라 이 말이지. 柔軟語. 부드럽고 부드러운 말. 이런 것을 항상 써 버릇 하도록 하라. 그래도 만일 외도나 미신자들. 믿지 않는 자들이 뭘 질문해 올 때, 까딱하면 그런 사람들하고 시시비비할 필요가 없거든... 질문해 올 때 五不答 법이 있다고 그랬어. 다섯 가지 대답하지 않는 법이 있다고 그랬어. 누가 뭐라고 묻는데도 말입니다.
▮試故問이라. 시험해 보려고 짐짓 묻는 것은 대답하지 말라.
▮無疑故問. 의심도 없으면서, 뭘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알면서도 의심도 없으면서 짐짓 묻는 것은 대답하지 말라고 그랬어.
▮不爲悔所犯故問. 뉘우치지 않기 위해서, 범한 바를 뉘우치지 않기 위해서 짐짓 묻는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하면 자기가 잘못해 놓고, 뻔히 잘못한줄 알면서도 “아이?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이렇게 묻거든. 그런 것은 대답도 하지 말어라 이 말입니다.
▮不受吾故問. 도무지 내 말을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없으면서 짐짓 묻는 것. 물으려면 무릎 꿇고서 모르는 것 물어서 자기가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있으면서 하면 좋은데, 남이 말할 적에는 그것 반대하려는 말만 생각하고 옳게 듣지도 아니 하면서 묻거든요. 그런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말고,
▮詰難故問. 남 애먹이기 위해서, 그야말로 힐난하기 위해서 비방하고 힐난하기 위해서 묻는 것. 이것도 대답하지 말고. 이렇게 五不答이라는 것이 있어.
그래서 대중 가운데서 시비가 있을 때는 일곱가지로서 그 시비를 해결 지으라고 부처님이 율장에 그랬거든. 제일 첫째는 어떤 시비가 있을 적에는
▮現前毘尼라는 것이 있어. 앞에 나타나라 이 말입니다. 본인 없는데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양쪽 사람을 다, 그러니까 한쪽 말만 듣고 송사하지 말고, 양쪽 얘기를 다 들어보고, 또 참고인들까지, 온 집안에 있는 사람까지 다 모아놓고, 그것이 우리 절 집안의 대중공사라는 것이 그 것입니다. 앞에 나타나게 해가지고, 안 보는데서 하지 말고 다 보는데서 떡~ 하니 現前시켜가지고 서로 얘기를 해보라 이 겁니다. 그 다음에
▮憶念毘尼. 그런 일이 있나 없나 잘 생각해 보라 이겁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서도 깜빡 잊어버리는 수도 있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제 생각이 살살 나네’ 이럴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憶念毘尼. 생각을 시켜가지고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잘못 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自言治毘尼 억지로 하지 말고, 지가 자백하도록 하라 이겁니다. 지금 형법 쪽에서도 꼭 본인이 인정 안 하면 안 되잖아. 본인이 꼭 인정을 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증거를 대가지고 “이런데도 네가 아니 했다고 할래?” 그러면 할 수없이 지가 자백하게 되거든.
그 다음에는 좀 정신이상자가 있거든. 정신이상자는 지금도 기독교인들 가운데 법당에 불 지르는 놈들이 있거든. 불 지르는 놈을 잡았다! 이겁니다. 잡았는데 기독교인들이 막 돈을 쓰고 어쩌고 해가지고 “정신이상자다!” 정신이상자라고 해가지고 빼내버리고 말아버리는 그런 일이 지금도 숱해. 그런데 진짜 정신이상자에 있어서는 정신이상이 있을 때에 잘못된 것. 정신이상이 돌아 왔는데, 그 때 것을 가지고 자꾸 사람을 애먹이는 그런 짓은 하지 말어라. 그런 것도 있고. 또 아주 당최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고 해가지고 지가 어쨌다 안 잘못 했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증거를 딱 대가지고 꼼짝 못하게 콕 찍어서 “이래도 네가 아니냐?” 그러면 할 수 없거든.
▮죄초소비니라는 것이 증거 제시입니다.
▮多人語毘尼. 다수가결이지. 여러 사람의 말에 의지해서 결정짓는 법이 있고. 시시비비가 너무 오래 돼가지고 분별할 수가 없거든.
▮草覆地滅定毘尼. 풀로 땅을 확 덮어버리듯이 덮어가지고 다시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말자. 아이들이 송곳을 가지고 땅 찍어가지고 땅 뺏기 하거든. 네 것이다 내 것이다 시시비비하는데 나중에는 서로 엉켜서 네 땅인지 내 땅인지 모르겠거든. 풀로 덮어버리고 치워버리고 새로 하자. 草覆地滅定毘尼라. 풀로 땅을 덮듯이 해가지고 다툼을 없애라 이랬거든. 부처님도 이와 같이 7가지의 비법을... 이것이 현대의 6법 전서하고 비슷비슷한 겁니다. 율장에 이런 것이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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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가운데서 시비 없는 자. 원망 속에서도 원망이 없는 사람. 이것이 진짜 도 닦는 사람입니다.
부설거사 같은 이는 마지막 돌아가시면서 주장자를 짚고 하시는 말씀이,
▮目無所見하니 無分別이요. 눈으로 보되 보는 바가 따로 없다 이 말입니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오직 마음 한 생각 딱~ 화두를 챙기니까 분별할 것이 없고,
▮耳聽無聲하니 絶是非라. 귀로 듣되 듣는 바가 없으니 모든 시비가 다 끊어졌다.
▮分別是非를 都放下하고, 분별과 시비를 다 놔버리고,
▮但看心佛自歸依니라. 다만 마음부처를 봐서 스스로 떡~~ 귀의할 뿐이니라. 이랬거든. 이것이 진짜 도 닦는 사람의 자세더라! 이 말입니다.
但以慈心相向이언정, 자비심으로 향하게 할지언정 不得惡語로 傷人이어다.
慈悲心이라고 하면 뭐냐 할 것 같으면, 자와 비가 조금 차이가 있거든요.
▮慈라고 하는 것은, 慈는 汝樂이라.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慈입니다.
▮悲는 拔苦라. 남의 괴로움을 건져 주는 것이 悲입니다.
慈는 汝樂하고, 悲는 拔苦라. 자는 능히 락을 주고, 비는 능히 괴로움을 뽑아준다. 자비심으로서 서로 향하게 할지언정 不得惡語로 語傷人이어다. 악한 말로써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전에 제주도에 갔는데 보살들만 둘이 있는 절이었습니다.
도견스님하고 하룻밤 묵었는데, 아침밥을 해놓고 보살들 둘이 싸움이 났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시비가 나 가지고, 밥 해놓고선 막 둘이 싸우고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객으로 가 가지고 밥만 얻어먹으면 떠날 판인데 둘이 싸우느라고 밥을 줘야지. 그냥 갈까 말까 하다가 에이 그래 안 되겠다 싶어서 살~ 가서 들어보니까 보살 하나는 억세게 생겼고, 하나는 조금 보드랍게 생겼어. 경우는 둘이 다 비슷비슷하고. 억센 보살은 제 말 안 들을 것 같고, 좀 보드라운 보살은 내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보살님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데 보살님은 잘 하는 것 같지만, 시시비비, 서로 시비 하는 그것은 다 잘못이요. 보살님은 마~~ 이보살님한테 내가 잘못 했소 하고 말 한 마디만 하시오.” 그러니까 “내사 잘못한 거 하나도 없지만 시님이 잘못했다 하라 하니까 할 수 없다 그럼, 내가 잘못했다 그만 두자 그마!” 그만 두자 하는데 별거 있나?
그래서 밥을 먹는데, 한참 밥 먹다가 억센 보살이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좀 너무 했거든. 나이도 한두 살 적어 보였어. “성님,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했소!” 둘이 화합시키고 밥 잘 얻어먹고 우리가 떠났거든...
한 마디, 내가 잘못했다! 하면 일 끝나는 건데 서로 고집을 세우고 아만을 내세우느라고 시시비비가 끝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뜻 아니게 악한 말도 하게 되고, 악한 말을 하게 되면 감정이 생기게 되고, 감정이 감정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는 자꾸 더 그만 사람 속을 상하게 된다 이 말이라.
옛날에 한 늙은 비구가 아라한과를 증득 했는데 늙으니까 이도 다 빠져서 웅얼웅얼 웅얼웅얼 경을 읽고 있었어. 젊은 비구가 있다가 “앗따, 노장 글 읽는 소리가 꼭 개 짖는 소리 같네” 이렇게 했어. 이러니까 늙은 비구가 “봐라, 네가 나를 개 짖는 소리 같다고 했지? 내가 아라한이다. 아라한을 비방한 죄가 작은 줄 아나? 참회해라” “아이쿠, 아라한이십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를 했어. 그 참회한 공으로 말미암아 지옥 갈 것은 면했다는 겁니다. 지옥 갈 것은 면했으나 아라한을 욕한 과보로 白狗가 됐대. 개가 됐대. 개가 턱 되어가지고 장사꾼들을 따라서 사막을 건너서 페르시아 쪽으로 실크로드로 장사꾼들을 따라서 가는데, 장사꾼들이 고기를 지져 먹고 내일 먹으려고 남겨 놨는데, 밤에 개가 그만 훔쳐 먹어 버렸어. 훔쳐 먹어 버리니까...
그~~ 개고기 먹는 사람은 우리 한국 사람밖에 없어. 그 쪽에도 개고기는 안 먹어. 인도ㆍ태국 그쪽에도 개고기는 안 먹어. 죽은 개는 갖다 묻든지 바다에다 던지든지 하지 개고기는 안 먹어. 개 잡아 먹는 것은 한국 사람뿐입니다. 보신탕집 하고...
훔쳐 먹어 버리니까 그 이튿 날 장사꾼들이 부아가 되게 나가지고, 굶게 되었으니까 어떻게요. 한국사람 같으면 개를 잡아먹을 것인데, 개 네 다리를 자르고 구렁창에다 던져 버렸어. 던져 버리고 가 버린 겁니다. 개가 네 다리가 잘라졌으니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굶어가지고 끙끙 아직 목숨은 끊어지지 않고. 그 때에 사리불 존자가 지나가다가 떡~ 하니 빈사상태의 그 개를 보고, 자기가 걸식해서 가던 밥을 먹이고 법문을 해줬어.
네가 惡言一句로, 악한 말 한 마디 해가지고 이와 같은 개 몸을 받았으니 내생에는 어쨌든지 柔軟語. 質直語. 質直語라는 것은 바르고 곧은 말이라 이 말입니다. 곧은 말만 하고, 부드럽고 화하고 착한 말만 하고..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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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