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王妃
1.태조- 3처 8남 5녀
신의왕후(神懿王后)~正妃韓氏(1337~1391)- 이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
본관 안변(安邊). 성 한(韓).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경(卿)의 딸. 정종(定宗) ·태종(太宗) ·방우(芳雨) ·방의(芳毅) ·방간(芳幹) ·방연(芳衍)의 6남과 경신(慶愼) ·경선(慶善)의 두 공주를 낳았다. 태조 즉위 후 절비(節妃)의 시호와 1408년(태종 8) 승인순성(承仁順聖)의 휘호가 추상(追上)되었다. 능은 풍덕(豊德)의 제릉(齊陵)이다.
신덕왕후(神德王后)~繼妃강씨(?~1398.8.13)-버들잎의 주인공,방번,방석.
성 강(
康). 본관 곡산(
谷山). 황해도 곡산부 상산부원군(
象山府院君) 강윤성(
康允成)의 딸이다.
태조가 즉위하자 현비(
顯妃)에 책봉되어 이성계와의 사이에 방번(
芳蕃)·방석(
芳碩)의 두 왕자와
경순공주(
慶順公主)를 낳았다.
1392년 현비로 책봉되었으며, 1398년 8월 13일 판내시부사 이득분(
李得芬)의 집에서 승하하였다.
1669년(
현종 10)에 순원현경(
順元顯敬)의 휘호(
徽號)를 추상(
追上)받았다. 능은
정릉(
貞陵)에 있다.
후궁 무명씨( )-의령옹주(서장녀).
후궁 성빈원씨( )-원주 원씨인 성비,
정경궁주() ~후궁 유씨( )-
화의옹주(和義翁主)~金씨(칠점선)-숙신옹주(서차녀),
2.정종-8처15남 8녀
정안왕후(定安王后 )~金氏(1355~1412)- (無子息)
본관 경주. 성 김(金). 천서(天瑞)의 딸. 1398년(
태조 7) 영안군(永安君)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비가 된 뒤 덕빈(德嬪)에 책봉되었다가 정종이 즉위하자 덕비(德妃)로 진봉되었다.
1400년(정종 2) 정종이 세제(世弟) 방원(芳遠)에게 양위하자 순덕왕태비(順德王太妃)의 존호를 받았다.
소생은 없으며, 1681년(
숙종 7) 온명장의(溫明莊懿)의 존호가 추상되었다. 능은 풍덕(豊德:개성 개풍군)의 후릉(厚陵)이다.
성빈 ~지씨()- 2男
숙의 ~지씨()- 3男1女- 함양옹주(서장녀),
숙의 ~기씨()- 4男1女 -숙신옹주(2녀),상원옹주(5녀)
숙의 ~문씨()- 1男
숙의 ~윤씨()- 4男1女-인천옹주(7녀),
숙의 ~이씨()- 1男
가의궁주 ~유씨
시비 기매 ~
불 명 ~ 5女- 덕천옹주(3녀),고성옹주(4녀),전산옹주(6녀),함안옹주(8녀),
3.태종- 12처 12남 7녀
正妃원경왕후(元敬王后) ~ 여흥 閔씨(1365~1420)-민제(閔霽)의딸-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정순공주,경정공주,경안공주, 정선공주
본관 여흥(
驪興). 성 민(
閔). 여흥부원군(
府院君) 제(
霽)의 딸. 1392년(태조 1) 정녕옹주(
靖寧翁主)에 책봉되었다.
1400년(정종 2) 2월 세자의 정빈(貞嬪), 11월 왕비가 되어 정비(靜妃)에 진봉되었다.
양녕(讓寧)·효령(孝寧)·충녕(忠寧: 世宗)·성녕(誠寧)의 4대군과 정순(貞順) 등 4공주를 낳았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이 컸다.
뒤에 친정 남동생인 무질(無疾)·무구(無咎) 형제가 사사(賜死)되는 등의 불행을 겪었다. 능은 헌릉(獻陵)이다.
효빈~김씨-원경왕후 민씨의 몸종 출신- 경녕군
숙의~최씨- 희령군
고(최)씨- 후령군
신빈~신씨()- 함녕군,온녕군,근녕군,정신옹주,정선옹주,숙정옹주,숙녕옹주,숙경옹주, 숙근옹주
선빈~안씨- 익녕군
의빈~권씨- 정혜옹주
소빈~노씨- ? - 소손옹주
안씨- 혜령군, 소숙옹주,경신옹주
김씨- 숙안옹주
덕숙옹주~이씨- 숙순옹주
4.세종- 6처18男 4女
소헌왕후(昭憲王后)~沈氏-청송人 온(溫)의 딸- 문종, 세조(수양대군),안평대군,임영대군,광평대군,금성대군,평원대군,영응대군,정소공주,정의공주
본관 청송(靑松).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1408년(태종 8)에 가례를 올리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1417년에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해졌으며, 경빈(敬嬪)에 진봉(進封)되었다가 공비(恭妃)로 개봉되었고 1432년(세종 14)에 왕비로 승봉(陞封)되었다.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한때 왕후의 지위가 위태로웠으나 비(妃)로서의 내조의 공이 컸으므로 무사하였다.
문종·세조 등 8남 2녀의 소생이 있었다.
1452년(문종 2)에 휘호 선인제성(宣仁齊聖)이 추상(追上)되었고, 능은 영릉(英陵: 驪州)이다.
영빈~강씨- 화의군
혜빈~양씨-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신빈~김씨- 계양군,의창군,밀성군, 익현군,영해군,담양군
상침~송씨- 정현옹주
숙원~이씨- 정안옹주
5.문종- 3처 1男 2女
현덕왕후(顯德王后)~ 權氏(1418~1441)-安東人 전(專)의 딸- 단종(노산군)
단종의 母,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의 딸. 1431년(세종 13) 세자궁에 궁녀로 들어가 승휘(承徽)에 봉해지고, 이어 양원(良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437년 순빈봉씨(純嬪奉氏)가 폐위된 뒤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가례(嘉禮)를 행하지 못한 채 4년 만에 죽자 현덕(顯德)이란 시호가 내렸다.
문종이 즉위한 뒤 왕후에 추봉되고, 1454년 휘호가 인효순혜(仁孝順惠)라 추상(追上)되었다.
능은 양주(楊州)의 현릉(顯陵)이며, 처음 능은 안산(安山)의 소릉(昭陵)이다.
귀인 홍씨 ~
사칙 양씨~
6.단종-1처 無子
정순왕후(王后)~송씨-(無子息)
송수현의 딸,
7.세조- 2처4남 1녀
정희왕후(王后)~윤씨(1418-1483)- 덕종(의경세자),예종(해양대군),의숙 공주,
판중추부사 윤번의 딸로 본관은 파평이다.
그녀는 계유정난 당시 정보 누설로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할만큼 결단력이 강한 여장부였다. 예종이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 하였으며, 예종이 1년 2개월 만에 죽자 요절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 을산 군을(성종) 그 날로 즉위시켜 섭정을 하기도 했다.
예종이 죽었을 때 그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는 왕위를 넘겨주지 않았으며, 의경세자의 큰아들인 월산대군이 있었으나, 둘째인 자을산군이 당시 최고 권력자인 한명회의 장인 인지라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결탁하여 결국 둘째인 자을산군에게 왕위를 넘겼다.
근빈 박씨()- 덕원군, 창원군
8.예종- 2처 2남1녀
장순왕후(章順王后)~한씨(韓氏 1445~1461)-한명회의딸 - 인성대군
본관 청주(淸州). 성 한(韓). 명회(明澮)의 딸. 1460년(세조 6)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었으나,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은 뒤 요절하였다. 1472년(성종 3) 왕후로 추존되었다. 능은 파주(坡州)의 공릉(恭陵)이다.
예종비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 ? ∼1498)- 제안대군,현숙공주
본관은 청주(淸州). 청주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병사하자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 즉위 후 왕비에 책봉되었다.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여 1471년(성종 2) 인혜대비(仁惠大妃),
1497년(연산군 3) 명의대비(明懿大妃)에 책봉되었다. 능은 창릉(昌陵).
9.성종- 12처16男 12女
공혜왕후(王后)~한씨(1456~1474)-한명회의딸--(無子息)
한명회의 둘째 딸이다.
1467년 12세의나이로 한살 어린 자산군과 가례를 올렸으며
자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1474년 19세의 나이로 소생없이 죽자 공혜왕후에 추증되었다.
繼妃정현왕후(王后)~윤씨 (1462-1530)- 중종(진성대군),신숙공주,
성종의 세 번째 부인이며 중종의 친모,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가 폐출되자 이듬해 왕비에 책봉 되었다.
1497년 자순대비에 봉해졌으며,1530년 68세를 일기로 죽었다.
능호는 선릉으로 성종과 함께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에 있다.
廢妃 제헌왕후(王后)- 윤씨( ? -1482년) - 성종의아내/연산군의 生母,- 연산군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
)의딸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면서 숙의에 봉해졌고 성종의 총애를 받다 가 1474년 공혜왕후 한씨가 죽자 왕비로 책봉 되었다. 왕비로 책봉되던 해에 세자 융을 낳았는데, 투기가 심해 성종을 난처하게 하는 일이 잦았다. 1477년 극약인 비상을 숨겨 두었다가 이 일이 발탁되어 왕과 왕 주위의 후궁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빈으로 강등될 뻔했으나, 성종의 선처로 무마되었던 적이 있었다. 1479년에는 왕이 규방출입이 잦고 자신을 멀리한다 하여 왕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내게 된다. 이일로 성종과 모후인 인수대비의 격분을 유발하여 폐비가 되고 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근신하며 지냈다.
1482년 조정에서는 세자의 친모인 그녀의 거취문제가 세로운 정치 현안으로 떠오르자 폐비를 옹호하는 자들은 조정에서 따로 거쳐할 곳을 마련하여 주고 생활비 일체를 관부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를 반대하는 측의 태도도 완강했다. 하지만 성종은 세자가 성장함에 따라 이미 폐비 윤씨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성종은 내시와 궁녀들을 시켜 그녀의 동정을 살펴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인들과 내시들은 인수대비의 명에 따라 왕에게 폐비 윤씨가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고 허위 보고를 하였다. 성종은 이 말을 듣고 대신들에게 윤씨에 대한 문제를 의논하게 하여 사약을 내리기로 결정하고 그녀를 賜死하였다. 사사한 이후 묘비도 세우지 않다가 성종은 세자의 앞날을 고려해 '윤씨지묘'라는 묘비명을 내렸다. 성종은 자신이 죽은 뒤 100년 까지는 폐비문제에 관해 논하지 말라는 유명을 남겼다. 연산군은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임사홍의 고자질로 이일을 알게 되었다.
임사홍은 자신의 두 아들이 부마였으나, 사림들의 상소로 두 번이나 유배를 갔다 왔다. 사림파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위해 유자광과 상의 하여 성종의 유명을 어기고 연산군에게 고자질했다. 이 폐비 사건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이어져 급기야 조선 조정에 엄청난 살생극을 일으킨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명빈 김씨 - 무산군
귀인 정씨 - 안양군, 봉안군,정혜옹주
귀인 권씨 - 전성군
귀인 엄씨- 공신 옹주
숙의 하씨- 계성군
숙의 홍씨- 완원군, 회산군,와성군,익양군,경명군,운천군,양원군, 혜숙옹 주,정순옹주,정숙옹주
숙의 김씨- 휘숙옹중,경숙옹주,휘정옹주
숙용 심씨- 이성군,영산군,경순옹주,숙혜옹주
숙용 권씨- 경휘옹주
10.연산군- 2처 4남 2녀
폐비~愼(신)씨-신수근의동생- 폐세장,창녕대군, ?공주
~()씨- 양평군,돈수,?옹주,
11.중종- 10처 9남 11녀
正妃 단경왕후(王后)~愼氏(1487 -1557년)-愼수근의딸-(無子息)
중종의첫번째아내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이다. 진성대군이 왕으로 추대되자 왕비
에 올랐으나 고모가 연산군의 비이고 아버지가 연산군의 매부라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신씨의 폐위와 관련 해서는 치마바위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식은 無 71세 일기.
繼妃장경왕후(王后)~尹氏(1491-1515년)-小윤집안- 인종,호혜공주,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515년 세자「인종」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6일만에 25세를 일기로 경복궁 별전에서 죽었다..
문정왕후(王后)~尹氏(1501-1565년)-大윤집안- 명종(경원대군),의혜공주,효순공주,경현공주,인순공주
중종의세번째아내 /명종의 생모
1517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며,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 에 오르자, 8년 동안 수렴청정 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불교의 부흥을 꾀하기도 했는데,폐지되었던 승과, 도첩제 등을 다시 실시했고, 승려 보우를 총애하여 병조 판서직에 제수하는 바람에 대신 들의 불만을사기도 했다.
명종은 그녀의 지나친 정권 욕에 불만을 품고, 신진사림 세력들을 등용시켜 외 척 세력을 견제하려 했으나, 번번히 그녀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듯 조선조정을 패권다툼의 장 으로 몰아갔던 그녀는 희대의 악후였다.
그녀는 1남4녀 를 낳았으며 35세에 명종을 낳았다.
경빈 박씨 ~ 복성군,혜순옹주,혜정옹주
희빈 홍씨 ~ 금원군, 봉성군
창빈 안씨~ 영양군,덕흥대원군,정신옹주
귀인 한씨 ~
숙의 홍씨~ 해안군
숙의 이씨~ 덕양군
숙의 나씨 ~
숙원 이씨 ~ 정순옹주,효정옹주
숙원 김씨~ 숙정옹주
12.인종- 2처 無子
인성왕후(仁聖王后)~박씨(朴氏 1514∼1577 1514∼1577 )- (無子息)
본관은 반남(潘南).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의 딸이다.
1524년(중종 19)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544년 왕비가 되었다.
1547년(명종 2) 존호를 공의(恭懿)라 하였고, 휘호는 효순(孝順), 전호(殿號)는 효모(孝慕)이다. 능은 효릉(孝陵).
숙빈 윤씨 ~
귀인 정씨 ~ 정철의 큰누이,
13.명종- 1처 1남
인순왕후(王后)~심씨(1532∼1575)- 순회세자
본관은 청송(靑松). 영의정 연원(連源)의 손녀,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딸이다.
1545년(인종 1)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51년(명종 6)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낳았으나 14세로 죽었다.
선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다가 1568년(선조 1) 정사를 왕에게 돌렸다.
이듬해 존호 의성(懿聖)을 받았다. 능은 강릉(康陵).
선조의첫번째아내
본관은 반남(潘南).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 딸이다.
1569년(선조 2) 왕비에 책봉되었고, 1590년 장성왕후(章聖王后)의 존호를 받았다. 죽은 뒤 1604년 휘열(徽烈), 1610년(광해군 2) 정헌(貞憲)의 존호가 가상(加上)되었다. 소생은 없고, 능호는 목릉(穆陵).
繼妃인목왕후(王后)~~김씨(1584~1632)인목대비-김제남의딸- 영창대군,정명공주,
선조의 둘째부인
본관은 연안(延安).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제남(悌男)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왕비에 책봉, 1606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창대군을 추대하려던 유영경(柳永慶) 일파가 몰락하고 정인홍(鄭仁弘) 등이 득세하게 됨에 따라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은 강화(江華)에 유폐되었다가 살해되고, 이어 인목왕후는 폐위되고 서궁에 유폐되었다.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복호(復號)되고 대왕대비가 되었다. 존호는 소성정의명렬(昭聖貞懿明烈), 휘호는 광숙장정(光淑莊定). 능은 양주(楊州)에 있는 목릉(穆陵)이다.
공빈 김씨~ 임해군,광해군
인빈 김씨~ 의안군,신성군,원종(정원군,인조父),의창군,정신옹주,정혜옹주,정숙옹주,정안옹주,정휘옹주
순빈 김씨~ 순화군
정빈 민씨 ~ 인성군,인흥군,정인옹주,정선옹주,정군옹주
정빈 홍씨~ 경창군,정정옹주
온빈 한씨~ 흥안군,경평군,영성군,정화옹주,
15.광해군- 2처 1남1녀
폐비~문성군부인 유씨(柳氏 1576~1623)- 자결,- 질(폐세자)
문화 유씨 자신
(柳自新)의 딸이고, 어머니는 동래 정씨 유길의 딸이다.
1587년 광해군과 가례를 올려 군부인에 있다가 1592년 광해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608년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폐비 유씨는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 정책을 쓰자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면서 대명사대 정책을 쓸 덕을 주청하기도 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군으로 강등되자 문성군부인으로 강등되었고, 강화도에 유배되어 1623년 10월에 사망했다. 묘는 양주군 적석동에 있다가 광해군이 죽은 뒤에 광해군 묘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장되었다. 소생으로는 아들 3명이 있는데 폐세자 질을 제외한 두 아들은 일찍 사망했다.
숙의 윤씨~ 1녀
숙의 허씨~
숙의 홍씨~
숙의 권씨~
숙의 원씨~
소용 임씨~
소용 정씨~
숙원 심씨~
조氏~
16.인조- 3처 6남 1녀
인열왕후(王后)~한씨(1594∼1635)- 소현세자,효종(봉림대군),인평대군,용성대군
소현세자와 효종의 어머니로 44세에 졸함,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의 딸. 본관은 청주(淸州).
1610년(광해군 2) 능양군(綾陽君)과 결혼하여 청성현부인(淸城縣夫人)에 봉해지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효종·소현세자·인평대군·용성대군을 낳았다.
1651년(효종 2) 휘호를 명덕정순(明德貞順)으로 추상하고 시책문(諡冊文)을 재간하고 신주(神主)를 개제(改題)하였다.
繼妃장렬왕후(王后)~조대비(1624∼1688)-
인조의둘째부인 42세 졸 (소생없음)
본관은 양주(楊州). 1638년(인조 16)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다.
1649년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자 대비가 되었으며 1651년(효종 2) 자의(慈懿)의 존호를 받았다.
1661년(현종 2) 공신(恭愼), 1676년(숙종 2) 휘헌(徽獻), 1686년 강인(康仁)의 존호가 더하여졌다. 능은 휘릉(徽陵).
폐귀인 조씨~ 숭선군,악선군,효명옹주
귀인 장씨~
숙의 나씨~
~구씨- 無子
17.효종- 2처1男 7女
인선왕후(王后)~장씨(張氏 1618~1674)- 현종,숙신공주,숙안공주,숙명공주,숙휘공주,숙정공주,숙경공주
효종의 첫째부인 현종의 생모 57세 졸
본관 덕수(
德水). 성 장씨(
張氏). 휘호 경렬명헌(
敬烈明獻). 유(
維)의 딸이다. 1631년(인조 9) 봉림대군(
鳳林大君)과 가례를 올려 풍안부부인(豐
安府夫人)에 초봉(
初封)되고,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과 함께 선양[
瀋陽]에서 8년간의 볼모생활을 하고 돌아와 세자빈이 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진봉(
進封)되었다. 1659년 효종이 죽고 아들 현종이 즉위하자
왕대비로서 효숙(
孝肅)의 존호를 받았다. 소생으로는 현종과 6명의 공주를 두었다. 능은 여주(
驪州)의 영릉(
寧陵)이다.
안빈 이씨~ 숙녕옹주
숙의 김씨~
숙원 정씨~
18.현종- 1처 1남3녀
명성왕후(王后)~김씨(1642~1683)- 숙종,명선공주,명혜공주,명안공주
숙종의 어머니/ 한 겨울에 숙종을 구하려 무당의 말을 듣고 물벼락을 맞은 후 얼마 후 42세 졸
본관 청풍(淸風). 성 김씨(金氏). 돈령부영사 우명(佑明)의 딸, 숙종의 어머니. 1651년(효종 2) 세자빈(世子嬪)에 책봉되고, 1659년(현종 즉위) 왕비에 진봉(進封)되었다. 지능이 비상하고 성격이 과격하였다. 숙종 즉위 초에는 조정의 정무에까지 관여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숙종과 명선(明善)·명혜(明惠)·명안(明安)의 3공주를 낳았다. 능은 양주의 숭릉(崇陵)이다.
19.숙종- 6처 6남3녀
인경왕후(王后)~김씨(1661∼1680)- 3녀 일찍죽음
본관은 광주(光州).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이듬해 왕세자빈으로 책봉, 가례를 행하였으며, 1674년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에 진봉되었다. 1676년 정식으로 왕비의 책명(冊命)을 받았으나 1680년 천연두로 죽었다.
위폐는 경덕궁(慶德宮) 영소전(永昭殿)에 모셔졌으며, 소생으로는 명선(明善)·명혜(明惠)·명안(明安) 공주가 있었다.
1713년 존호 광렬(光烈), 1722년(경종 2) 휘호 효장명현(孝莊明顯), 1753년(영조 29) 존호 선목(宣穆), 1776년 존호 혜성(惠聖)이 각각 추상(追上)되었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高陽市)에 있는 익릉(翼陵)이다.
繼妃인현왕후(王后)~민씨(1667∼1701 )- (無子息)
숙종의 둘째부인 당쟁의 희생양/ 노론과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의 도움으로 복위/ 복위 7년 후 35세 졸
본관은 여흥(驪興).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유중(維重)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번째 비가 되었다. 인품과 덕성이 높아 국모로서 추앙받았으나, 왕자를 낳지 못하여 소의(昭儀) 장씨(張氏)가 왕자 균(景宗)을 낳자 숙종의 총애를 잃었다. 1689년 균의 세자책봉 문제로 송시열(宋時烈) 등 노론파가 소를 올리고 반대하자 숙종이 이들을 면직,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는 기사환국이 일어났으며, 희빈(禧嬪)으로 지위가 오른 소의 장씨의 간계로 폐위되었다. 1694년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복위를 꾀하고 남인들이 이를 저지하려다 유배 또는 사사당하는 갑술옥사가 일어나 복위되었다. 소생 없이 병으로 요절하였다. 궁녀가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썼다는 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 전한다. 존호는 효경숙성장순(孝敬淑聖莊純), 휘호는 의열정목(懿烈貞穆)이다. 능은 고양(高陽)에 있는 명릉(明陵)이다.
繼妃인원왕후(王后)~김씨(1687∼1757 )- (無子息)
숙종의 세째부인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인 김주신(金柱臣)의 딸. 본관은 경주(慶州).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가 죽자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가 1702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713년 혜순(惠順)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숙종이 죽은 뒤 왕대비로서 자경(慈敬)·헌열(獻烈)·광선현익(光宣顯翼)·강성(康聖)·정덕(貞德)·수창(壽昌)·영복(永福)·융화(隆化) 등의 존호가 올려졌다. 소생은 없고, 능은 명릉(明陵). 휘호는 정의장목(定懿章穆).
희빈 장씨(禧嬪張氏 ?∼1701)~ 경종의 생모,-경종,성수(여)
朝선 숙종의 빈. 본관은 인동(仁同). 역관 장현(張炫)의 종질녀.
어려서 나인(內人)으로 궁에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1686년(숙종 12) 숙원(淑媛)이 되었고,
1688년 소의(昭儀)가 되어 왕자 균(뒤의 경종)을 낳았다.
이듬해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남인의 지지를 얻어 균이 원자로 책봉됨에 따라 희빈으로 승격되었다.
그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였고, 뒤이어 인현왕후(仁顯王后;閔妃)가 폐위되고
1690년에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자 인현왕후의 뒤를 이어 왕비에 책립되었다.
그러나 1694년 김춘택(金春澤) 등 서인의 인현왕후 복위운동으로 갑술옥사가 일어나 남인이 제거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다시 희빈으로 격하되었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자 인현왕후를 무고(巫蠱)하고 복위를 꾀한 일로 사사(賜死)되었다.
숙빈 최씨~ 영조의 생모,영수(여),영조(연잉군),여?
명빈 박씨~ 연령군
영빈 김씨~
귀인 김씨~
소의 유씨~
20.경종- 2처 無子
단의 왕후(王后)~심씨(1686~1718)- (無子息)
본관 청송(
靑松). 성 심씨(
沈氏). 시호 단의(
端懿). 청은부원군(
靑恩府院君) 심호(
沈浩)의 딸.
1696년(숙종 22) 세자빈(世子嬪)에 책봉(冊封)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소생없이 죽었다.
1720년(경종 1)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봉되었으며 1726년(영조 2) 공효정목(恭孝定穆)이라는 휘호가 추상(追上)되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楊州)의 혜릉(惠陵)이다.
선의 왕후(王后)~어씨(1705-1730)- (無子息)
조선 경종의 계비(繼妃). 본관은 함종(咸從).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14세에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어 가례(嘉禮)를 올렸고,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722년(경종 2) 왕비책봉에 백관의 축하를 받았으며, 1726년(영조 2) 경순왕대비(敬純王大妃)라는 존호를 받았다.
1730년 죽자 시호를 선의(宣懿)라 하고 휘호(徽號)를 효인혜목(孝仁惠穆)이라 하였다.
매사에 익숙하였고 온유하였으며 소생은 없다.
지문(誌文)은 판부사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능은 의릉(懿陵:楊州)이다.
21.영조- 6처 2남7녀
정성왕후(王后)~서씨(1692∼1757)- (無子息)
영조의 원비(元妃). 달성서씨(達城徐氏).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종제(宗悌)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숙종의 제4왕자인 연잉군(延#잉03君)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지고, 1721년(경종 1) 경종이 몸이 약하고 후사가 없어, 연잉군이 세제(世弟)로 책봉되자 동시에 세제빈에 봉해졌으며, 1724년 영조의 즉위에 따라 왕비에 진봉되었다.
1740년(영조 16) 혜경(惠敬)이라는 존호가 올려진 뒤 생전에 장신(莊愼)·강선(康宣) 등이 덧붙여졌고, 죽은 뒤 1772년 공익(恭翼)이 추존되고, 인휘(仁徽)·소헌(昭獻)이 추상되어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이라는 존호를 가지게 되었으며, 1778년(정조 2) 휘호로 단목장화(端穆章和)가 올려졌다.
소생은 없으며 능은 고양에 있는 홍릉(弘陵)이다.
繼妃정순왕후(貞純王后)~김씨(1745~1805)- (無子息)
본관 경주(慶州). 성 김(金).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한구(漢耉)의 딸. 정식 칭호는 예순성철장희혜휘익렬명선수경광헌융인소숙정헌정순왕후김씨(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光獻隆仁昭肅靖憲貞純王后金氏)이며, 정순이 시호이다. 영조비 정성왕후(貞盛王后)가 죽자 1759년(영조 35) 15세로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되었다. 친정이 노론의 중심가문이었음에 비해 사도세자는 소론에 기울어져 노론에게 비판적이었고, 그 내외가 어머니뻘인 자기보다 10세나 연상인 데서 빚어지는 갈등 때문에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동생 김구주(金龜柱)가 이끄는 세력이 영조 말년에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洪鳳漢) 중심세력과 맞서고, 친정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벽파(僻派)가 정조대에 시파(時派)와 대립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정빈 이씨~ 진종(효장세자),화순옹주
영빈 이씨- 장조(사도세자),화평옹주,화협옹주,화완옹주,
귀인 조씨~ 화유옹주
(폐) 숙의 문씨~ 화령옹주,화길옹주
22.정조- 3처 2남1녀
효의왕후(孝懿王后) ~ 김씨(1753~1821)- (無子息)
본관 청풍(淸風).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1762년(영조 38) 10세 때 세손빈(世孫嬪)에 책봉되고, 장조(莊祖)의 비(妃) 혜빈(惠嬪) 홍씨를 잘 섬겨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고, 슬하에 소생이 없어 1790년(정조 14) 수빈(綏嬪) 박씨가 아들을 낳자 왕세자로 삼았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후하여 60세가 넘어서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와 혜빈홍씨를 공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의빈 성씨~ 문효세자(일찍죽음)
수빈 朴씨- 순조,숙선옹주,
숙빈 임씨~
경빈 朴씨~
23.순조- 1처 1남5녀
순원왕후(純元王后)~김씨(1789~1857)- 익종(효명세자),? (단명),명온공주,복옥공주,덕온공주
안동 김씨(安東金氏) 집안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로 태어난[정조 13년] 순원왕후는 왕비로 책봉[순조 2년]되고 난 후 철종(哲宗) 대까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면서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정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립니다.
특히 철종의 왕위 계승에 결정적인 역할과 철종의 왕비 간택(揀擇)에도 자신의 집안 사람{김문근의 딸 철인왕후(哲仁王后)}을 성사시킴으로 해서 그녀는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슬하(膝下)에 2남{효명세자[익종], 차남 요절} 3녀{명온, 복온, 덕온공주}를 두었고, 철종 8년에 승하합니다.
숙의 朴氏~ 영온옹주
24.헌종- 3처 1女
효현왕후(孝顯王后)~김씨(1828~1843)- (無子息)
성 김(金). 본관 안동(安東). 시호 효현. 부원군 조근(祖根)의 딸. 1837년(헌종 3) 왕비에 책봉되고, 1841년 가례(嘉禮)를 올려 왕후가 되었으나 2년 만에 16세로 죽었다. 1851년(철종 2) 경혜(敬惠)와 정순(靖順)의 휘호가 내리고, 후에 단성(端聖)과 수원(粹元)의 존호(尊號)가 더해졌다. 능은 경릉(景陵:楊州)이다.
繼妃효정왕후(孝定王后)~홍씨(1831~1903)- 1녀(일찍죽음)
판동녕부사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서 1844년 헌종 10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헌종과의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으나 일찍 죽었다.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대비가 되었으며, 1857년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죽자 왕대비가 되었다.
능호는 경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경빈 金氏~
궁인 金氏~
25.철종- 8처 1녀
철인왕후(哲仁王后)~김씨(1837~1878)-김문근의딸
본관 안동(安東). 성 김(金). 존호 명순휘성정원수령(明純徽聖正元粹寧).
휘호 경헌(敬獻), 전호(殿號)는 효휘(孝徽).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문근(汶根)의 딸.
1851년(철종 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소생이 없이 죽었다.
귀인 朴氏~
귀인 조氏~
숙의 방氏~
숙의 범氏~ 영혜옹주의母,
궁인 李氏~
궁인 金氏~
궁인 朴氏~
26.고종- 7처 6남1녀
명성황후(明成皇后)~민비(1851~1895)- 순종황제의母,
본관은 여흥(
驪興), 성은 민씨(
閔氏)로, 1851년(철종 2) 경기도 여주(
驪州)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의 부인 부대부인(
府大夫人)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에 간택·책봉되었다.
그러나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군(
完和君)이 태어나자 이를 기뻐하는 흥선대원군과 대립, 흥선대원군의 반대파를 규합하면서 민씨 척족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세력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
순헌귀빈엄씨(貴賓 嚴氏)~ 英親王(李垠)의 생모,
귀빈 장씨~ 의친왕(李강),의母,
귀빈 정씨~ (이우)의 母,
영보당귀인 李氏~ '완친왕(이선)'과 '(이육)의母,
귀인 양氏~ 덕혜옹주의 母,
소의 李氏~
27.순종- 2처 無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민씨(1872~1904)- (無子息)
순명효황후는 여흥(驪興) 민씨(閔氏)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의 딸로
1872년[고종 9년]에 태어나 11세 때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순종(純宗)이 즉위하기 전인 1904년[광무 8년]에 33세로 승하해 지금의 뚝섬 앞 용마산 기슭에 유릉(裕陵)으로 조성했다가 순종 승하 후에 지금의 위치로 천장(遷葬)해 합장(合葬)합니다.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윤씨(1894~1966)- (無子息)
1894년[고종 31년]에 해평 윤씨(海平尹氏)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의 딸로 태어난 순정효황후는 13세 때인 1906년에 황태자의 계비(繼妃)로 책봉되어 다음해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皇后)가 됩니다.
일설에 순정효황후는 이완용이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조인서에 옥새(玉璽)의 날인을 시도하자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버티다가 숙부이기도 했던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다고 일화가 전합니다.
슬하에 후사 없이 창덕궁내 낙선재(樂善齋)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불교(佛敎)에 귀의하기도 했는데, 1966년에 72세로 승하해 조선의 마지막 황후로 운명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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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
왕비 |
본관성씨 |
부 |
자손 |
춘추 |
태조 |
신의 왕후
신덕 왕후 |
안변 한씨
곡산 강씨 |
한경
강윤성 |
6남 2녀
2남 1녀 |
55
41 |
정종 |
정안 왕후 |
경주 김씨 |
김천서 |
0 |
58 |
태종 |
원경 왕후 |
여흥 민씨 |
민제 |
4남 4녀 |
56 |
세종 |
소헌 왕후 |
청송 심씨 |
심온 |
8남 2녀 |
52 |
문종 |
현덕 왕후 |
안동 권씨 |
권부 |
1남 1녀 |
24 |
단종 |
정순 왕후 |
여산 송씨 |
송현수 |
0 |
82 |
세조 |
정희 왕후 |
파평 윤씨 |
윤번 |
2남 1녀 |
66 |
덕종 |
소혜 왕후 |
청주 한씨 |
한확 |
2남 1녀 |
68 |
예종 |
장순 왕후
안순 왕후 |
청주 한씨
청주 한씨 |
한명회
한백륜 |
1남
1남 1녀 |
17
? |
성종 |
공혜 왕후
정현 왕후 |
청주 한씨
파평 윤씨 |
한명회
윤호 |
0
1남 1녀 |
19
69 |
연산군 |
|
거창 신씨 |
신승선 |
2남 |
33(?) |
중종 |
단경 왕후
장경 왕후
문정 왕후 |
거창 신씨
파평 윤씨
파평 윤씨 |
신수근
윤여필
윤지임 |
0
1남 1녀
1남 4녀 |
71
25
65 |
인종 |
인성 왕후 |
반남 박씨 |
박용 |
0 |
64 |
명종 |
인순 왕후 |
청송 심씨 |
심강 |
1남 |
44 |
선조 |
의인 왕후
인목 왕후 |
반남 박씨
연안 김씨 |
박응순
김제남 |
0
1남녀 |
46
49 |
광해군 |
|
문화 유씨 |
유자신 |
3남 |
51 |
원종 |
인헌 왕후 |
능성 구씨 |
구사맹 |
3남 |
49 |
인조 |
인열 왕후
장열 왕후 |
청주 한씨
양주 조씨 |
한준겸
조창원 |
4남
0 |
42
65 |
효종 |
인선 왕후 |
덕수 장씨 |
장유 |
1남 6녀 |
57 |
현종 |
명성 왕후 |
청풍 김씨 |
김우명 |
1남 3녀 |
42 |
숙종 |
인경 왕후
인현 왕후
인원 왕후 |
광산 김씨
여흥 민씨
경주 김씨 |
김만기
민유중
김주신 |
2녀
0
0 |
20
35
71 |
경종 |
단의 왕후
선의 왕후 |
청송 심씨
함종 어씨 |
심호
어유구 |
0
0 |
33
26 |
영조 |
정성 왕후
정순 왕후 |
달성 서씨
경주 김씨 |
서종제
김한구 |
0
0 |
66
61 |
진종 |
효순 왕후 |
풍양 조씨 |
조문명 |
0 |
37 |
장조 |
경의 왕후 |
풍산 홍씨 |
홍봉한 |
2남 2녀 |
81 |
정조 |
효의 왕후 |
청풍 김씨 |
김시묵 |
0 |
69 |
순조 |
순원 왕후 |
안동 김씨 |
김조순 |
2남 3녀 |
68 |
문조 |
신정 왕후 |
풍양 조씨 |
조만영 |
1남 |
83 |
헌종 |
효현 왕후
효정 왕후 |
안동 김씨
남양 홍씨 |
김조근
홍재룡 |
0
1녀 |
16
73 |
철종 |
철인 왕후 |
안동 김씨 |
김문근 |
1남 |
42 |
고종 |
명성 황후 |
여흥 민씨 |
민치록 |
4남 1녀 |
45 |
순종 |
순명 왕후 |
여흥 민씨 |
민태호 |
0 |
33 |
왕 자녀수 130남 95녀 총225명
가장 많은 부인을 둔 왕 : 태종 12명, 성종 12명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왕 : 1.세종 18남 2.성종 16남
가장 많은 딸을 둔 왕 : 1.성종 12녀 2.중종 11녀, 선조 11녀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 : 1.성종 28명 2.선조 25명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왕비 :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 8남 2녀 10명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후궁 : 성종 후궁 숙의 홍씨 7남 3녀 1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