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848]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奉送家親入瀋之行
奉送家親入瀋之行(봉송가친입심지행)
삼가 심양으로 가시는 아버지를 전송하며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蒼茫邊日少光輝(창망변일소광휘)
關塞蕭條秋又歸(관새소조추우귀)
遙想吾親行役處(요상오친행역처)
北風吹雪滿征衣(북풍취설만정의)
아스라이 변방의 해가 지려는데
쓸쓸한 국경에는 가을이 또 돌아왔네
멀리 우리 부친 가시는 곳은
북풍에 날린 눈이 옷에 가득 쌓이겠지
요상(遙想)은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뜻이다.
요억(遙憶), 면상(緬想), 면억(緬憶)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원상(遠想)도 같은 의미인데, 시에서는 아주 드물게 쓰고,
편지 같은 산문에서 주로 사용한다. 요지(遙知), 요련(遙憐)도 같은 용법이다.
어쩌면 마지막 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슬픔과 가족애가
시어(詩語) 이면에 절절하게 배어 있어 울림을 더하고 있다.
글쓴이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원문=문곡집 제1권 文谷集 卷一 / 詩 【一百九十一首】
奉送家親入瀋之行
蒼茫邊日少光輝,關塞蕭條秋又歸。
遙想吾親行役處,北風吹雪滿征衣。
아버지께서 심양으로 가시는 행차를 삼가 전송하다
〔奉送家親入瀋之行〕
서글퍼라 변방의 해님 빛을 잃었고 / 蒼茫邊日少光輝
관새에 쓸쓸하게 가을 또 돌아왔네 / 關塞蕭條秋又歸
멀리 아버님 가실 곳 상상해 보면 / 遙想吾親行役處
북풍에 날리는 눈이 옷 가득 채우리라 / 北風吹雪滿征衣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김건우 (공역) | 2014
김수항金壽恒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 호는 문곡(文谷). 할아버지는 우의정 상헌(尙憲)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광찬(光燦)이다. 영의정 수흥(壽興)의 아우이다.
1651년(효종 8)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656년 문과 중시(重試)에 급제했다.
정언·교리 등을 거쳐 이조정랑·대사간에 오르고 1659년(현종 즉위) 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가 입을 상복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송시열과 함께 기년설(朞年說:1년)을 주장해 남인의 3년설을 누르고,
3년설을 주장한 윤선도(尹善道)를 탄핵하여 유배시켰다(제1차 예송).
그 뒤 이조참판 등을 거쳐 좌의정을 지냈다. 1674년 효종비가 죽은 뒤 일어난
제2차 예송 때는 대공설(大功說:9개월)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기년설이 채택되었다.
1675년(숙종 1) 남인인 윤휴(尹鑴)·허적(許積)·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기고 원주와 영암 등으로 쫓겨났다. 1680년 서인이 재집권하자
영의정이 되었고, 1681년 〈현종실록〉 편찬총재관을 지냈다.
서인이 남인에 대한 처벌문제로 노론과 소론(小論)으로 갈릴 때
노론의 영수로서 강력한 처벌을 주도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진도에 유배된 뒤 사약을 받았다.
저서로 〈문곡집〉과 〈송강행장 松江行狀〉이 있다.
현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영평 옥병서원(玉屛書院),
진도 봉암사(鳳巖祠), 영암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