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 경기도 과천 관악산 문원계곡(文原溪谷) 산행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 있으니 과천 관악산 문원계곡이다. 관악산은 서울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 안양에 걸쳐 있는 산으로 숲이 울창하고 접근성이 좋아 북한산, 청계산과 더불어 수도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관악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의 정상인 연주대를 향한다. 그래서 연주대 오르는 등산로는 늘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거린다. 그런데 관악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한적한 산길이 있으니 바로 과천 문원계곡이다. 그런데 문원계곡으로 가는 들머리가 교통이 불편한 탓에 찾는 사람들이 별반 없다. 문원계곡은 관악산 연봉 가운데 가장 험한 육봉(六峰) 아래 있으며,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은 양지천에 합류한다.
관악산은 본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그리고 문원계곡은 오래전 채석장이 있던 곳으로 계곡 전체가 거대한 암반 사이에 놓여 있다. 그런데 산 중턱에 있는 문원폭포에서 계곡이 끝나는 세심교까지 골짜기 바닥에 굵은 모래가 깔려있어 비가 내리면 여섯 개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호쾌하게 달리지만 사나흘 뒤에는 언제 그랬나 싶게 물이 말라버린다. 따라서 큰비가 내린 뒤 문원계곡을 찾아야 비로소 울창한 숲과 폭포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오르며 ‘숨은그림찾기’처럼 숲에 가린 유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서울에 며칠 거푸 장맛비가 내린 이틀 뒤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과천 문원계곡을 찾았다.
문원계곡은 과천에서 정부청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국군지휘통신사령부로 가는 큰길을 따라가다 보면 국사편찬위원회와 화학융합시험연구원이 차례로 나온다. 그리고 화학융합시험연구원 담장 끝에 관악산 문원계곡으로 가는 좁은 샛길이 나타난다. 샛길을 벗어나면 바로 왼쪽으로 백운사로 가는 안내 팻말이, 정면에는 ‘용운암 마애승용군’으로 오르는 안내 팻말이 붙어 있다. 백운사(白雲寺)는 용운암이 있던 자리에 근자에 지은 작은 사찰로 등산로에서 백여 걸음 떨어져 있고, 용운암 마애승용군은 등산로에서 불과 30여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비록 하찮은 유적이지만 마애승용군을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야말로 작은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셈이 된다.
‘용운암 마애승용군(磨崖僧容群)’ 안내 팻말이 있는 산기슭에는 불그죽죽한 빛깔의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다. 그리고 그 너럭바위를 한달음에 뛰어오르면 어른 키 높이의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 가운데 왼쪽에 있는 높이 1.8m, 폭 2m의 바위 북동쪽 면에 스님 다섯 사람의 활짝 웃는 얼굴이 조그맣게 조각되어 있다. 스님들의 얼굴은 앞면과 옆면으로 구분되는데 모두 가느다란 눈, 오뚝한 코, 반쯤 벌려 웃고 있는 입과 두툼한 귀가 투박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마애상(바위에 새긴 상)은 대부분 부처나 보살을 새긴 데 비해 문원계곡 바위에 새긴 마애상은 스님들의 얼굴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남다르다 할 수 있다.
승용군이 새겨진 바위 뒷면에는 한글로 ‘비구니 석보안 범성 행자선영 신영균 박영순’이라는 글씨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비구니인 석보안과 범성, 그리고 행자인 신영균과 박영순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석보안과 범성이라는 이름에서 석(釋)과 범(梵)은 부처 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을 뜻하는 불교 음차어로 법명임이 분명하고 신영균과 박영순은 행자의 이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자에 모음인 아래아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 글씨는 조선 말기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바위에는 한글로 ‘금강문’과 ‘소림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소림굴은 ‘굴’자의 ‘ㄱ’을 ‘ㄷ’자 비슷하게 쓴 것으로 볼 때 한글을 겨우 깨우친 사람이 별도로 새긴 것으로 짐작된다.
바라볼수록 저절로 흐뭇해지는 스님들의 얼굴은 도대체 누가 조각했을까? 투박한 새김질로 보건대 결코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다. 빼어난 작품이 아닌데다 기록 또한 없으니 언제 누가 새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게다가 지금의 백암사 자리에 있었다는 용운암 역시 언제 있었는지 정확한 조성 시기조차 알 수 없다. 어쩌면 문원계곡 인근 사찰이나 암자에서 수행하던 행자가 모시고 있던 스님들의 얼굴을 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승용군이 새겨진 바위 위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일명사지(逸名寺址)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연화대석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마애승용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새긴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따름이다.
산기슭에 있는 용운암 마애승용군을 둘러본 뒤 다시 안내초소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몇 걸음 걷지 않아 문원계곡을 건너질러 놓여 있는 세심교(洗心橋)라는 다리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건널 때 다리 이름 그대로 마음을 깨끗이 닦으라는 뜻이겠다. 이 다리를 건너면 문원폭포까지 1.4km에 이르는 깊은 골짜기가 시작된다. 세심교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일제강점기에 각세도(覺世道)라는 신흥종교를 창시한 이선평의 묘소가 나타난다. 묘소에는 봉분 앞에 묘비가 있으며, 문인석이 한 쌍, 망주석 한 쌍, 그리고 돌거북 하나와 공덕비가 있다. 각세도는 광복 이후 한때 신도 수가 10만 명이 넘었으나 교주인 이선평이 죽은 뒤 교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선평 묘소를 지나 계곡 옆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골짜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교적 완만한 비탈의 숲길을 걷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산길 옆에 ‘관악산 회양목 자생지’라 쓴 안내 팻말이 보인다. 그런데 안내 팻말 뒤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유적이 있으니 바로 농짝 크기의 바위에 새긴 ‘밀양박씨 미륵보살상’이다. 이 마애보살상 왼쪽에는 한글로 ‘미륵보살’이라 새긴 글씨가, 오른쪽에는 ‘밀양박씨고업’이라 새긴 글씨가 있으니 즉 밀양 박씨(朴氏)에 고업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새겼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해학적으로 생긴 마애보살상의 조각 솜씨도 그렇거니와 글씨도 괴발개발 새겨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밀양박씨 미륵보살상’을 지나면서부터 바위가 많고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골짜기에 물 흐르는 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걸어 오르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리고 참나무 숲길을 걸어 계곡 끝에 다다르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스레 들리며 낙폭이 15m에 이르는 하문원폭포에 다다르게 된다. 하문원폭포 아래에는 떨어진 물이 고여 있는 담(潭)이 있어 사람들은 하문원폭포를 문원폭포로 잘못 알고 이곳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하문원폭포 위에는 30여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마당바위’라 불리는 널찍한 너럭바위가 있으며, 마당바위 뒤편 계곡을 서른 걸음 정도 올라가면 계곡 뒤 숲속에 문원폭포가 다소곳이 숨어 있다.
마당바위 위쪽에는 집채 크기의 바위가 가파른 비탈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런데 그 바위에는 볼품없는 큰 글씨로‘鄭景伯(정경백)’이라 새기고, 그 옆에 자그마한 글씨로 ‘一九三七年 甲年紀念(1937년 갑년기념)’과 ‘韓大鎔 謹書(한대용 근서)’라 새겼으니 곧 ‘1937년 정경백의 회갑을 기념해 한대용이 삼가 글씨를 씀’이라는 뜻이겠다. 사람들은 멀리서도 이름 석 자가 보이는 이 바위를 가리켜 ‘장경백바위’라 부른다. 그런데 한대용은 1930년대 과천의 대단한 재력가였으며 과천면의원을 역임했던 사람으로 장인의 회갑을 기념해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 년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을 모두 기억하지 않으니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문원폭포는 숲에 가려 있어 자칫 잘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문원폭포는 여느 폭포와는 달리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탁자처럼 널찍한 바위 턱 5m 아래로 뚝 떨어져 다시 15m의 가파른 바위 비탈을 흘러내리는 2단 구조로 돼 있다. 평소 폭포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조금씩 흘러내리던 물길이 그나마 며칠 전 내린 장맛비로 인해 소리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문원폭포에서 다시 마당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정경백바위 뒤쪽으로 산길을 70여m를 걸어 올라가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 즉 일명사지(逸名寺址)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문원계곡을 찾은 사람들은 일명사지까지 둘러보고 하산한다. 하지만 우리 동문 일행은 아쉽게도 문원폭포에서 발길을 돌렸다.
한편 과천시 문원동(文原洞)이라는 동명은 마을에 문묘(文廟)인 향교가 있어 붙은 이름이고, ‘문원계곡’은 그냥 계곡이 위치한 마을 이름을 가져다 쓴 것이다. 문원계곡은 비록 왕복 3km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국사편찬위원회 건물 마당에 있는 고인돌을 비롯해 백운사, 용운암 마애승용군, 이선평 묘소, 밀양박씨 미륵보살상, 하문원폭포, 문원폭포, 정경백바위, 그리고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일명사터, 폭포위 폐사지, 보광사까지 볼거리가 참으로 많은 곳이다. 그리고 산길이 부드러워 여럿이서 담소를 나누며 걸을 수 있어 좋다. 다만 큰비가 내린 뒤 계곡에 물이 콸콸 흐를 때 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나이 때문일까? 고향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 언제 어딜 가든 마냥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