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의 몰도바도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친서방 성향의 야권 후보 마이야 산두(48) 전 총리가 친러 성향의 이고리 도돈(45) 대통령에 대승을 거뒀다.
산두 전총리는 "몰도바를 EU와의 통합으로 이끌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당선되면 우선 EU의 재정 지원을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했다.
마이야 산두, 몰도바 대선 결선투표서 승리/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몰도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대선 2차 결선 투표 개표 결과, 산두 전총리가 57.7%의 지지를 얻어 42.2% 득표에 그친 도돈 대통령은 15% 포인트 이상의 큰 표차로 승리했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52.7%로 파악됐다.
여성으로선 첫 대통령(임기 4년)에 당선된 산두 전총리는 취임 후 도돈 대통령의 지지 정당인 '사회주의자당'이 장악한 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원집정부제'로 운영되는 몰도바의 권력 구조상, 산두 당선인이 의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공약 실행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4년전 대선 패배를 설욕한 그녀는 그러나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선거 과정에서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와 심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지지자들에게 축하를 바든 산두 후보/인스타그램 캡처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몰도바는 우크라이나와 EU회원국인 루마니아 사이에 끼어 있는 소국이다. 인구 350만명. 의회를 장악한 총리가 내정을 책임지고 대통령은 외교권과 군통수권을 행사하는 '이원집정부제' 권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친서방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이 선거때마다 치열하게 다투면서 정국 불안의 요인이 돼왔다.
몰도바 대학에서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산두 전총리는 2010년 미 하버드대학의 '케네디 스쿨'을 졸업한 뒤 2010~2012년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 본부에서 집행이사 고문으로 일했다. 귀국한 뒤 경제부 관료를 거쳐 교육부 장관(2012~2015년)을 역임했으며 2019년 도돈 대통령 아래서 총리를 맡아 약 4개월 동안 연정을 이끌기도 했다.
산두 당선인의 선거운동/인스타그램 캡처
그녀의 정치 경력은 2015년 친유럽 성향의 정치단체 '산두와 함께 발걸음을'을 창설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행동과 연대당'을 창당한 뒤 2016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도돈 대통령과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4% 포인트 차(52% 대 48%)로 패한 바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산두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내 양국 협력 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고 크렘린이 전했다. 몰도바는 석유 가스 등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산두 당선인의 친서방 노선 공약도 현실적 경제이익 앞에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푸틴 대통령도 이점을 노리고 일찌감치 산두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