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빛살
이종열
지평선 위로 햇빛가루가 노랗게 부서져 내렸다. 사바나의 태양은 모든 것을 졸게 하는가. 하늘에 걸린 조개구름도, 덤불에 앉은 새도, 황토로 쌓인 흰개미집도 졸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게 아무 관심도 없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Serengeti) 대초원에 서 있었다. 세렝게티는 스와힐리어로 끝없는 초원이란 말이다.
가지가 긴 종려나무와 웃자란 소나무는 호흡을 아껴가며 열대의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잎이 조그만 나무들은 초록색 대신에 회색이나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메마른 대지에도 생명의 힘은 살아있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벌판엔 넝쿨나무, 떨기나무들이 뒤엉켜 너울거렸고, 그 기다란 나무에 달라붙어 몸을 꼬며 하늘로 오르는 넝쿨에서 그들의 강한 힘을 볼 수 있었다.
우산처럼 하늘로 자란 아카시아가 우뚝했다. 무채색으로 곱슬곱슬한 나뭇가지에서 흑인 여인의 난마 같은 머리카락을 보았다. 아카시아는 초원의 그리움을 몸으로 드러내는 사바나의 나무였다. 투박한 껍질과 거친 가시로 자신을 지켜보지만, 초식동물은 그냥두지 않는다.
아카시아 잎을 먹는데도 치수가 있다. 기린은 높은데 달린 잎만 따먹는다. 낮은 자를 대하는 것을 보면 신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초원의 신사는 낮은데 달린 잎을 치수가 낮은 짐승이 먹도록 남겨둔다. 나무 자신은 가운데 안전지대에 달린 잎으로 생명을 보존한다. 내가 먹지 않아도 남을 못 먹게 해야 이기는 우리네 경쟁 사회와는 다르다.
귀하게 만난 늪에는 우아한 황새가 물에 비친 제 그림자에 정신이 홀렸고, 마른 고목 꼭대기엔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먼 데를 응시하고 있었다. 물가에선 악어가 실눈으로 졸고 있고, 한 마리 표범은 소시지 나무(Dry-tree) 두 번째 가지에 배를 깔고 낮잠에 빠졌다. 그들에게는 따로 집이 필요 없다. 그들의 영원한 집은 초원일 따름이다. 초원의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맹수가 사냥을 하면 내장을 먼저 꺼내먹는 것도 물기를 섭취하고자 함이다.
풀밭엔 사자가족들이 쉬고 있었다. 어미가 일여덟 마리 새끼를 이끌고 수놈은 할 일없이 주위를 맴돈다. 이런 늠름한 무리를 두고 ‘Pride’라고 한다던가. 아카시아 그늘엔 수사자가 드러누웠다. 사자는 막강 권위의 상징인 갈기를 드러내고 게으름을 즐기고 있었다. 뒤에는 먹다 남은 얼룩말 반 마리를 감춰두었다. 적어도 지금은 가젤(Gazelle)을 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밤이 되면 사냥을 개시할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 무한경쟁이라지만 맹수는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사자는 사냥한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나면 남겨두고 일어선다. 그러면 ‘초원의 청소부’ 하이에나와 새들이 배를 불린다. 초식동물은 나름대로 빠른 발이나 예민한 오감으로 자신을 지켜낸다. 이들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 더 이상 선택이 없다.
아른거리는 신기루 너머로 지평선 난간을 맞잡은 점(點)이 있었다. 시력의 소실점에서 나타난 그 점은 점점 형체를 띄었고, 형체는 움직였고, 종내 초원 가득 파노라마를 펼치는 얼룩말떼로 다가왔다. 그 점은 임팔라(Impala)가 되고, 코끼리도 되었다. 그 점은 얼룩말의 친구 검은꼬리누(wildebeest), 곡예사 개코원숭이, 음지로만 도는 하이에나도 되었다. 그들은 오늘도 지축을 흔를며 초원에 보얀 먼지를 일으켰다. 나도 초원에 뿌려진 하나의 점이었다.
아프리카는 내가 상상했던 바와 별로 다른 게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모든 것이 상상했던 것과 달리 다가왔다. 태양은 빛 싸라기를 아낌없이 퍼붓고 있었다. 그 빛살은 생명의 근원이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들풀에서, 거기에 핀 작은 꽃에서 생명의 빛살을 본다. 숱한 야생들이 내일을 걱정 않고 사는 동물의 왕국도 그 빛에서 나왔다. 여기서는 누구도 과욕을 부릴 수가 없다. 오직 순명(順命)이 있을 뿐이다.
세렝게티의 빛은 내가 선 공간을 삼켜버렸다. 이 황량하고 압도적인 공간에서 나는 사파리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나그네일 따름이다. 광대한 공간은 나를 넘어서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내가 차지한 작은 공간에서 나는 보다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도록 깨우침을 받는다. ‘사파리(safari)’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뜻이다. 나는 작아진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이 세렝게티에 왔는가 보다.
─『시에』 2011년 가을호
이종열
경북 청도 출생. 2006년 『에세이플러스』로 등단. 수필집 『주황색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