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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교회(행 2:42-47)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전하였던 복음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전하였던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외친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3대 사역을 말씀하는 (마 4:23)을 보시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막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은 하나님나라에 집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열 두 제자와 함께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표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원래 에덴동산이 하나님 나라의 원형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하나님안에 거하게 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나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나라, 하나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됨을 이루는 나라. 그 나라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가 그렇게 사모하는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 너희안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그안에 왕이신 하나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졌음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거룩한 의, 평강,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안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믿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분의 통치를 받고 사느냐 그렇치 못하느냐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저들에게 성령이 강림하기 전에 다가온 십자가는 절망이었습니다. 실패요, 낙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시자 저들은 달라졌습니다. 저들의 주권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자기 자신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안에 임하신 하나님이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핍박하고 순교하는 데도 담대하게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 하루에 3천명이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며 나의 통치자임을 믿었습니다. 죽음 넘어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그렇게 믿고 따른 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경험하며 증거하였습니다.
초대교회가 모이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흩어지면 나아가서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백성됨을 증거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루었던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우연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니까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성령님이 교회에 강림하신 이후에 일어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교회가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현장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바로 초대교회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바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새롭게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42절에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묘사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4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바로 이 표현 속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네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도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신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거듭나니까 가장 먼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이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물거품과 같습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열매없는 무성한 나무와 같습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일종의 허수아비와 같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 엄청난 환란과 핍박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말씀중심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면서 성령의 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무장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영적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또한 삶 자체를 온전케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말씀위에 서있을 때 영적 분별력이 생기고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서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시험과 유혹이 와도 말씀의 검이 예리하게 무장되어 있으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영적승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묵상입니다. 생명의 샘가를 날마다 묵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경공부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다면 날마다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깊이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숙한 성도일수록 말씀묵상은 절대적입니다. 이것은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수과목입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온전한 예배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예배시간마다 말씀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여러분이 관심을 갖고 예배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큐티와 함께 올바른 영적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저는 감히 자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문교회 성도라면 반드시 생명의 샘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문교회는 영적인 밥상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 교인이 하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2023년도에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생활을 바르게 하여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로 교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말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통로라면 교제는 나와 너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통로입니다. 초대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속에서 교제는 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43-45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여기서 교제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데 이 말의 뜻은 서로 사귄다는 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 나눈다는 뜻이 있습니다. 단순히 친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또 서로의 필요를 나누는 진정한 하나됨의 필수요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제의 첫번째 요소가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며 살다가 함께 만나면 그 묵상한 말씀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 교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가에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아직도 만나서 세상적인 이야기와 자기 주장이 이야기의 주제에 머물러 있다면 아직은 그 모임이 성숙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성숙될 수 있도록 나보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제는 영적인 나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알고 필요를 채워주는 교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그렇게 강조했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소는 사랑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헬라어의 아가페입니다. 자기 사랑, 감정적인 사랑을 뛰어넘어서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필요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존경하고 섬김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유일한 새계명은 요13:34말씀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신 유일한 계명입니다.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지난 3년동안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는 교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교제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으면 하나님 나라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모인다 할지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이고 거기 진정한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면 그것이 바로 신앙의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몇 명이 모였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함께 영적인 교제를 통해 사랑을 나누면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연령차이, 직업차이, 지식차이, 빈부격차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서로 격려해주고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해서 배려하는 사랑이 이루어질 때 주님께서 그들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과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운데 진정한 교제를 이루려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상대방 자리에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언더스텐드하면 교제가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이해가 되고 교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다음으로는 성도간에 교제가 온전히 이루어 나가야 영적으로 주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상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배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혼자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있어도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관계를 회복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는 말씀에 있는 것처럼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이웃을 그 사랑으로 사랑하면 회복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불신의 벽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니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보세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고집하고 자기를 내려놓치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나라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교회안에 있는 모든 직분은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 속에 진정한 화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교제가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 주고 함께 기도해주고 믿음을 세워 주는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사랑함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양문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서로 떡을 떼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서로 떡을 떼었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밥상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 말하면 한 식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입니다. 또 하나는 집에서 음식을 가지고 와서 음식을 먹으며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사랑의 애찬식입니다.
그러므로 떡을 뗀다는 것은 단순하게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는 성찬식을 통해 살과 피를 찢기시고 흘리셔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것을 확인하며 한 몸을 이루었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3년동안 코로나로 인해 성찬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해야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친히 세우신 성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되고 성령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됨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예식입니다. 또 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천국잔치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애찬은 사랑의 식사라는 의미입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월달부터 다시 점심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식사할 때 몇 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식사당번을 맡은 목원들의 수고와 섬김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느 목장은 일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힘들어 하시는 목장을 봅니다, 그래서 어느 분이 저에게 사람을 사서 일당을 주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섬김을 실천할 만한 일이 많치 않습니다. 주님을 대접하는 심정으로 식사를 준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섬김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섬김의 공동체라고 말하면서 이런 섬김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섬김을 할수 있겠습니까? 사회 곳곳에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런 단체에 가서 감동을 받습니다. 신앙도 없는데 저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 저는 그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당신들은 교회밖의 교회라고 정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보니까 장로님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섬기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함께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식탁에서의 교제입니다. 잠시 잠깐이지만 서로 얼굴을 보면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앞에 옆에 있는 교우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할 말을 가지고 오세요. 준비할 말을 나눌 수 있도록 가지고 오십시오. 그러면 교제가 풍부해질 것입니다. 친한 사람과 만나서 먹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처음 보고 교제를 나누지 못한 다른 성도와도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통성명을 하고 관심을 갖고 교제를 나누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주일식탁교제는 참으로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식탁교제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뿐 만 아니라 섬김의 공동체로 온전히 세워지는 양문교회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기도에 전혀 힘쓰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우리가 영적이라고 말할 때 그 가운데는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없이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기도가 먼저였습니다.
교회에서만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직장에서 또는 감옥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기도할 때 용기가 생기고 기도할 때 확신이 오고 기도할 때 영이 살아났습니다. 기도할 때 질병이 떠났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기도하지만 문제가 없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다가올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내 힘을 의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첫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얻은 말씀과 능력과 힘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면 기쁨과 감격속에서 하루를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사실 기도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압니다. 특별히 초대교회는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성령충만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전도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떠한 환란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담대하게 확신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전도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1)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2)서로 교제하고 3)떡을 떼며 4)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초대교회는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4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날마다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원형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 이것은 교회의 본질적 목표입니다.
2023년도에 우리 교회의 표어는 오직 성령충만으로 회복되는 교회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천목표는 1)예배회복 2)기도회복 3)교제를 회복 4)사명을 회복
다시말하면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23년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꿈을 갖고 나 자신, 우리 가정속에, 내가 일하는 현장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