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제제기: 당송시대에 배불론이 유발된 데는 불교 내부에서의 문제 즉, 너무 고원한 철학-공, 불성, 무위,격외를 천착하다가 초월, 은둔, 청담, 修辭문학적으로 떨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인의 윤리과 인격수양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당송시대 교양을 갖춘 스님들은 거개가 화엄, 법화, 천태, 선종에는 달통했으나 아함을 비롯한 초기불전 공부를 가볍게 보고 소홀히 하였다. 아함에는 재가자에게 가르친 윤리와 덕목이 분명히 있어, 가정과 직장에서 맡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설법한 부처님 친설이 많은데 이를 소홀하게 여기고 학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함에서 부처님은 재자가의 윤리와 출가자의 윤리를 구분하여 가르쳤으며, 재가자의 사회적 역할 및 왕도정치, 공화정을 권장했던 가르침이 있는데도 이를 학습하거나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오류였다. 그럼으로써 儒家나 위정자에게 선종은 세상 밖에서 공과 무위에 노니는 淸談적 道家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지금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는 게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청대 말기 불교지식인들은 선종을 극복하기 위해 유식을 공부한다든지 대승기신론을 다시 주목한다든지, 아니면 티베트 불교를 배운다든지, 혹은 서양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불교를 해석하고 교육하려 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흐름이 일어나지 않았다. 구한말이나 개화기 때 불교개혁을 논한 만해와 용성스님이 있었지만 교단정화와 교육체계는 정립하지 못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런 점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에세이를 써본다.
배불론은 왜 생겼는가 ― 불교의 초월성과 사회윤리 사이에서
불교가 중국에서 천 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불교는 중국의 지배적 사상인 유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출가·수행·해탈의 길을 제시하면서도, 마침내 중국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교는 끊임없이 하나의 질문에 직면해야 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깨달음은 이 세상을 어떻게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당송시대 배불론과 이후 성리학의 불교비판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 가운데 하나였다.
불교는 고통의 원인을 욕망과 무명에서 찾았고, 해탈을 생사윤회의 초월에서 찾았다. 반면 유교는 인간이 부모의 자식이고, 자식의 부모이며, 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따라서 유교에게 인간의 완성은 관계 속에서 덕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불교에게 인간의 궁극적 완성은 관계와 욕망을 조건짓는 무명 자체를 끊어 해탈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두 방향의 차이가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의 긴장을 낳았다.
1. 문제는 ‘공’이 아니라 공이 사회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데 있었다
불교의 공(空), 무아(無我), 무위(無爲), 불성(佛性), 열반(涅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를 다루는 매우 높은 수준의 철학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공을 깨달은 사람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부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직장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정치가는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부자는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공동체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흥미롭게도 초기불교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상당히 많다.
예컨대 『디가 니까야』의 「싱갈라에게 주는 가르침」은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부부, 친구, 고용주와 노동자의 상호 책임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자비’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윤리(role ethics)에 가깝다.
또한 초기불교는 재가자와 출가자의 삶을 동일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출가자에게는 계율과 수행, 해탈이 중심이 되고,
재가자에게는 보시·지계·효·부부간의 책임·친구와의 신의·노동과 재산의 올바른 관리 등이 강조된다.
즉 붓다는 처음부터 “출가자의 윤리”와 “재가자의 윤리”를 구별하였다.
이 점은 중국불교가 반드시 새롭게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 아니다.
이미 초기불교의 자원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국불교가 아함경을 주목하지 않고 건너뛰면서 공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2. 중국불교의 역설 ― 거대한 철학과 빈약한 ‘시민윤리’
중국불교는 놀라운 철학적 발전을 이루었다.
반야와 중관, 유식, 여래장, 천태, 화엄, 법화, 선종이 서로 결합하면서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는 상당히 다른 거대한 철학체계를 만들어냈다.
특히 당대에는 화엄의 법계연기, 천태의 일심삼관, 선종의 불립문자, 돈오, 무념, 견성, 평상심, 무위등이 발전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생겼다.
불교가 인간 존재의 궁극적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는 점점 정교해졌지만, 평범한 인간의 사회적 삶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체계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물론 불교에는 계율도 있었고 보살계도 있었으며 효와 자비의 가르침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유교의 『논어』·『맹자』·『대학』처럼 사대부와 관료가 일생 동안 반복해서 학습하는 사회윤리의 정전(canon)으로 기능하지는 못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유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관계를 바르게 하라.
불교는 궁극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관계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연기하며 공하다. 그러므로 집착에서 벗어나라.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제도를 만드는 정치철학의 언어에서는 전자가 훨씬 직접적이었다.
3. 한유가 본 불교 ― “이 세상에서 누가 일을 할 것인가?”
한유(韓愈)의 배불론은 단순한 철학적 불교비판이 아니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불교가 중국의 사회·경제·정치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실제적 위치였다.
당대 사찰은 거대한 토지와 노동력을 보유했고, 승려는 조세와 부역체계 밖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유에게 불교는 단순히 ‘틀린 철학’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흡수하는 제도였다. 최근 연구 역시 한유의 배불론이 정치·경제·사회·문화·윤리·역사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한유의 더 깊은 문제의식은 이것이었다.
누가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낳고, 농사를 짓고, 세금을 내고, 국가를 유지할 것인가?
유교적 관점에서 출가자는 사회의 정상적인 역할관계에서 빠져나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불교의 출가는 곧 불효라는 공격을 받았다.
실제로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충돌한 초기부터 가장 강력한 공격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효였다. 중국불교는 이에 대응하여 효를 강조하는 경전과 논리를 발전시켰고,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는 경전과 우란분 신앙 등도 발전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유교는 효를 사회질서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불교는 효를 궁극적인 자비와 공덕의 일부로 재해석했다. 이 차이가 컸다.
4. 당송 배불론의 핵심 ― “청담”과 “현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청담”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중요하다.
위진남북조 이래 중국 지식인 사회에는 현학·청담의 전통이 있었고, 도가와 불교의 언어가 결합했다.
“무”, “자연”, “무위”, “현묘”, “공”과 같은 언어는 현실 정치와 일상적 도덕의 문제를 초월하는 언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유교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와 도교는 세상을 고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다 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물론 실제 선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송대 선종은 오히려 사회질서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었으며, 선승 계숭(契嵩) 같은 인물은 유교와 선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논했다. 계숭의 『보교편(輔教編)』은 불교와 유교의 친연성과 차이를 논하면서 선종을 유교적 사회질서와 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므로 “선종은 본래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다”는 명제는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보다 정확한 명제는 이것이다.
선종 내부에는 사회윤리와 유교적 질서를 포섭하려는 강한 흐름이 있었지만, 선종의 대중적 표상과 수행언어에서는 돈오·무위·불립문자·격외의 초월성이 훨씬 강하게 부각되었다.
이것이 유교의 눈에는 위험하게 보였다.
5. 성리학은 불교의 철학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대안적 수행론’을 만들었다
송대에 등장한 성리학은 단순히 “불교는 나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빼앗아 갔다.
불교가 마음을 닦아라. 라고 하면,
성리학도 마음을 닦아라. 라고 했다.
불교가 욕망을 제거하라. 라고 하면,
성리학도 사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라. 고 했다.
불교가 본성을 밝히라. 고 하면,
성리학도 본성을 궁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리학의 공부는 가정·학교·관료사회·국가·정치로 연결되었다.
즉, 修身 → 齊家 → 治國 → 平天下 라는 구조를 가졌다.
반면 선종의 깨달음은 자칫 見性 → 解脫 → 無事에서 멈출 위험이 있었다.
물론 이것 역시 선종에 대한 편견이다. 그러나 선종이 스스로 그 오해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6. 그래서 주희의 비판은 단순한 ‘불교철학 비판’이 아니었다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한 핵심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있었다.
첫째, 불교는 인륜을 끊는다.
출가하여 부모와 가족을 떠난다.
둘째, 불교는 사회적 역할을 거부한다.
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라는 관계를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위험이 있다.
셋째, 불교는 현실의 세계를 허망하게 본다.
그러므로 현실의 역사와 정치, 경제,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이 약해진다.
넷째, 불교의 마음공부는 지나치게 내면적이다.
마음의 깨달음을 강조하면서 현실적 덕행의 구체적인 규범을 약화시킨다.
이 비판은 오늘날의 불교학적 관점에서는 상당 부분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적 사회철학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공격이었다.
7. 고려 말 조선의 정몽주·정도전에게 이 문제는 더욱 현실적이었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훨씬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히 “공은 틀렸다”는 철학적 논쟁이 아니었다.
그는 불교의 사상뿐 아니라 불교교단의 토지·재산·노동력·국가재정·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문제 삼았다.
『불씨잡변』의 논리는 결국 국가를 유지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어떤 사상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조선의 성리학은 여기에 매우 명료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수신하고, 제가하고, 치국하고, 평천하라.
불교의 수행론이 이와 같은 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번역되지 못한다면, 불교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마음을 해탈시키는 종교”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불교가 가족과 사회적 의무에서 사람을 이탈시키며, 현실적 인간관계의 윤리를 약화시킨다고 공격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 역시 철학과 실천 양쪽을 공격했다.
8. 그런데 역설적으로 불교의 초기경전에는 ‘사회적 붓다’가 있었다
여기에서 질문자께서 제기하신 문제가 가장 날카로워진다.
우리가 아함을 다시 읽으면 다른 붓다가 나타난다.
그 붓다는 단지 “모든 것은 공하다.” 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어떻게 재산을 사용할 것인가?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부모와 자식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가?
고용주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왕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대반열반경』의 리차비족에 관한 이야기는 공동체의 회의와 합의,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정치적 질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공화정”이라는 현대적 정치학 용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적어도 고대 인도에서 왕권만이 유일한 정치형태가 아니었으며, 붓다가 공화적 성격을 가진 가나-상가(gana-saṅgha)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불교는 본래 정치와 사회를 외면한 종교가 아니었다.
오히려 초기불교에는 사회윤리와 정치윤리의 원형이 상당히 풍부했다.
그런데 중국불교의 고등교육에서는 이 자원이 충분히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
9. 이것이 ‘선종 중심 불교’의 구조적 문제다
이 지점에서 현대 한국불교까지 연결된다.
한국불교에서 불교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참선, 화두, 견성, 돈오, 무념, 본래면목, 마음이 곧 부처, 평상심, 방하착이다.
그런데 다음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부모와 자식의 윤리, 부부윤리,직업윤리,경제윤리,노동윤리,정치윤리,시민윤리,교육윤리,생태윤리, 공공성
민주주의, 사회적 책임
물론 현대 불교계에도 이런 연구와 운동이 존재한다.
그러나 교단 전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심축은 여전히 선 수행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불교는 마음공부”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마음공부를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질문에 불교가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만 대답하면 충분하지 않다.
현대인은 다시 묻는다.
그래서 부모에게 어떻게 합니까?
돈을 어떻게 씁니까?
직장에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권력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불교는 다시 현대판 淸談(구름잡은 이야기)이 된다.
10. 중국의 근대불교는 이 문제를 상당히 일찍 자각했다
여기에서 청말·민국기의 중국불교가 중요한 사례가 된다.
19세기 말 중국 지식인들은 서구 과학·철학·사회사상과 접촉하면서 불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양문회(楊文會)를 비롯한 불교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특히 유식학과 불교교학의 재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청말의 새로운 지식인들과 불교학자 사이에서 유식학이 부흥한 것은 서양과의 접촉과 근대 지식체계의 형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왜 유식이 중요했을까?
유식은 불교를 단순한 신비적 체험이나 초월적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욕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자아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번뇌는 어떤 구조를 갖는가?
수행은 의식을 어떻게 변형하는가?
라는 인간학·심리학·인식론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것은 근대적 불교를 만드는 데 매우 유리했다.
11. 태허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 “인생불교”
태허(太虛)는 이 문제를 더욱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
그가 제시한 유명한 방향이 바로 인생불교(人生佛教)였다.
불교는 죽은 뒤 극락이나 다음 생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바로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허에게 유식학은 단순한 고전 철학이 아니었다. 그는 유식을 과학·심리학·생물학·사회진화론·서양철학 등과 연결하여 불교를 현대 지식체계 안에서 재해석하려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승가의 제도와 교육을 개혁하고, 전문적인 승려교육을 만들며, 불교와 사회를 연결하려 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승가제도 개혁 + 현대교육 + 사회참여 + 서양사상과의 대화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평가한다.
즉 중국의 근대불교는 선종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선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12. 한국에는 왜 이런 전환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에도 개혁자는 있었다. 대표적으로 만해 한용운과 용성 진종이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는 승려교육, 참선, 포교, 의식, 승려의 권익 등 불교 전반의 개혁을 요구했다. 특히 현대적 교육과 일반 지식의 확대를 요구했고, 새로운 교육방법과 교육자를 양성하는 문제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만해에게 불교는 단순히 산중에서 수행하는 종교가 아니었다.
그는 불교를 평등, 자유, 구세, 사회진화, 민족, 세계주의등의 근대적 개념과 연결했다. 연구자들은 만해가 절대와 현실의 긴장을 통해 불교의 구세를 사회적 차원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만해는 단순한 ‘불교개혁론자’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근대적 공공성(publicity)을 구축하려 했던 인물로 볼 수 있다.
13.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국의 ‘교학적 재건’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중국과 한국의 차이가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유식, 기신론, 화엄, 천태, 계율, 아함, 티베트불교, 서양철학, 과학등을 서로 연결하면서 불교 전체를 다시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했다.
태허의 경우에는 이것이 현대적 불교학·교육·사회개혁과 결합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움직임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교단 개혁으로 정착하지 못했다.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이 결정적이었다.
근대 한국불교는 일본불교와 식민통치라는 이중의 압력 속에서 근대화를 경험했고, 불교개혁 역시 일본불교의 세속화와 식민권력의 통제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정화운동이었다.
14. 정화운동은 ‘교육개혁’보다 ‘승려의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정화운동은 한국불교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중심 의제는 독신승, 대처승, 사찰의 소유권, 교단의 주도권, 전통적 승가의 회복등이었다.
이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였지만,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문제와는 달랐다.
현대 한국불교의 조계종이 정화운동을 통해 선불교 중심의 독신 승단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현대 한국불교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 결과 한국불교는 “청정한 수행승단”이라는 정체성을 상당히 강하게 확보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현대사회의 인간을 교육하는 불교” 라는 정체성은 충분히 확립하지 못했다.
15. 이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가장 깊은 구조적 문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벌어지는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선불교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수행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이 불교에 묻는 질문은 꼭 화두가 아니다.
아이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부부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돈과 욕망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직장에서 경쟁하면서 어떻게 인간성을 잃지 않을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민주사회에서 불교인은 어떤 시민이어야 하는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과학과 AI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적 욕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마음을 보십시오.”
“본래 부처입니다.”
“분별하지 마십시오.”
“놓아버리십시오.” 라고 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궁극론이지 생활윤리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16. 따라서 불교는 다시 ‘두 개의 불교’를 통합해야 한다
여기에서 스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오늘날 불교에 필요한 것은 선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종을 초기불교의 인간학·윤리학·사회철학과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즉, 第一層 ― 아함·니까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계, 십선, 보시, 부모, 부부, 자녀, 친구, 노동, 경제, 정치, 사회적 책임
第二層 ― 대승불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공, 연기, 자비, 보살행, 불성, 중생과 부처의 관계
第三層 ― 선종
그 모든 삶의 근저에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무념, 무주, 돈오, 견성, 평상심, 본래면목
이 세 층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함은 윤리학이 되고,
대승은 사회철학이 되며,
선은 존재론적·실존적 수행론이 된다.
이것이 오히려 불교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회복하는 길이다.
17. ‘불생’과 ‘생생’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 점은 스님께서 최근 계속 탐구해오신 不生과 生生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不生만 강조하면, 본래 생겨난 것이 없다. 본래 공하다. 분별할 것이 없다.가 된다.
여기에서 잘못하면 삶의 구체성이 증발한다.
반대로 生生만 강조하면, 관계, 역사, 사회, 정치, 윤리, 실천의 세계가 된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不生이므로 生生이다.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생겨난다.
공하기 때문에 관계가 가능하고,
무아이기 때문에 타자를 돌볼 수 있으며,
고정된 자아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을 사회윤리로 번역하는 일이다.
18. 결국 배불론은 불교에 던진 하나의 ‘거울’이었다
한유, 주희,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불교의 진리를 판정하는 최종심판은 아니다.
그들의 비판에는 불교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한유의 불교 이해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으며, 당대의 사회문제를 불교 탓으로 지나치게 환원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질문 가운데에는 불교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질문이 있었다.
깨달은 인간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비로운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탈한 사람은 정치와 경제와 교육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는가?
불교는 개인의 마음을 구원하는 데서 끝나는가, 아니면 사회의 인간관계도 변화시키는가?
이 질문에 불교가 답하지 못할 때, 불교는 다시 청담으로 돌아간다.
19.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에 던지는 과제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국불교 개혁은 단순히
“참선을 더 열심히 하자.”도 아니고,
“아함으로 돌아가자.”도 아니며,
“선종을 버리고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도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불교교육의 전면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① 초기불교 ― 인간과 사회
아함·니까야를 통해 인간관계와 사회윤리를 교육한다.
② 대승불교 ― 존재와 자비
중관·유식·화엄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철학적으로 이해한다.
③ 선불교 ― 수행과 실존
간화선·묵조선 등을 통해 실제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다.
④ 계율 ― 인격
수행자를 ‘깨달음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인격’으로 만든다.
⑤ 현대철학 ― 비판적 사유
칸트, 헤겔, 니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현상학, 정신분석학 등과 대화한다.
⑥ 현대사회 ― 공공성
경제·정치·민주주의·생태·과학·AI·교육·노동·죽음의 문제에 불교적 답변을 제시한다.
그러면 비로소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불교가 답할 수 있다.
맺음말 ― 불교는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당송의 배불론에서 정도전의 『불씨잡변』에 이르기까지 유교가 불교에 던진 가장 아픈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었다.
“당신의 깨달음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불교는 이에 대해 충분히 대답할 수 있었다.
아함과 니까야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돌보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친구에게 신의하며, 노동자를 정당하게 대하고, 재산을 바르게 사용하며, 통치자는 백성을 보호하고, 공동체는 서로 돌보라는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불교의 거대한 철학적 발전 속에서 이 초기의 생활불교·사회윤리적 불교는 점차 교단의 중심 교육과정에서 주변화되었고,
화엄·천태·선의 고원한 철학과 수행론이 불교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 결과 불교는 가장 심오한 존재론을 갖게 되었지만, 때때로 가장 평범한 질문에 대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청말 중국의 양문회·태허 등이 시도한 것은 바로 이 단절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었다. 유식과 교학을 복원하고, 서양 철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승가교육을 개혁하고, 불교를 ‘인생불교’로 재구성했다.
한국에서도 만해가 그 가능성을 보았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승려교육과 포교를 비롯한 교단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식민지와 해방 이후 정화운동이라는 격변 속에서 그 문제의식은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했다. 다만 근대불교교육 자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암 종헌과 같은 인물의 근대교육 활동이나 명진학교 등의 사례는 한국불교 안에도 교육개혁의 흐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불교가 다시 해야 할 일은 “선종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종을 아함의 인간학과 연결하고, 대승의 자비와 연결하고, 계율의 인격론과 연결하고, 현대철학과 연결하고, 민주사회와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空은 허무가 아니며,
無我는 무책임이 아니며,
無爲는 무행동이 아니며,
見性은 현실도피가 아니며,
涅槃은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다.
오히려
空이기 때문에 관계할 수 있고,
無我이기 때문에 타인을 돌볼 수 있으며,
無爲이기 때문에 욕망의 폭력 없이 행동할 수 있고,
見性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성을 넘어설 수 있으며,
涅槃하기 때문에 다시 중생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배불론 이후 불교가 다시 찾아야 할 길, 그리고 오늘 한국불교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교육개혁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