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제석과 사슴동산
김제석(유지태 扮)은 살아 있는 미륵으로 추앙받는다.티베트 밀교의 고승이자 예언가인 네충텐파, 각종 신흥 종교를 연구했던 전문가인 총무원장(일명 문어 스님)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사천왕들이 어렸을 때 소년원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일본의 밀교 신자들과 일본 순사들 틈에서 엎드려 있던 김제석의 옛 사진에서 변함 없는 외모를 가진 것으로 짐작하건대, 김제석은 인간을 초월한 미륵에 가까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점인 2014년 기준으로 김제석은 30대 후반 ~ 40대 초반의 장년 정도로 보이니, 김제석이 깨달음을 얻어 불사의 몸을 얻은 때는 그가 탄생한 1899년으로부터 40년 가량 지난 일제 강점기가 끝날 즈음의 시기였을 것이다. 총무원장의 말에 따르면, 미륵이 된 김제석은 세상에 이로운 일을 많이 했다. 종교적인 영역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독립군 지원, 유출된 문화재 회수 등, 현실 세계의 실질적인 문제들에 까지 선한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각종 정치적인 문제로 김제석의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해방 이후의 몇 정권들이 근면 성실을 최대 미덕으로 강조하는 기독교적 교리를 통해 전 국민을 통합하고, 빠르게 국가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채택했기 때문이 아닌가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그 세를 늘린 시기가 바로 해방 이후의 몇몇 정권의 집권기와 일치한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당연히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 불교 지도자 김제석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래서 김제석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종교적 지위를 내려놓고, 사회 환원 활동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런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에도 집착과 욕망을 가지지 않으며 살아 있는 미륵으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만 헌신한다.
그러던 와중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1985년, 김제석을 오랫동안 흠모했던 티베트 밀교의 대승인 네충텐파(다나카 민 扮)가 한국에 방문하여 김제석을 만난다. 예언가이기도 했던 대승 네충텐파는 김제석에게 자신이 본 미래를 예언해준다. 바로 "당신이 태어난지 100년이 된 시점에, 당신을 죽일 존재가 당신의 고향에서 태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이다.
불교 경전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깨달음의 단계에 대해서 나오는데, 부처의 지위는 불퇴전(不退轉)이라고 한다. 즉,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 상태이며,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면 퇴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제석은 범인을 초월한 깨달음을 얻어 늙지 않는 기적을 보여줬으나, 예언을 듣고 번뇌에 빠졌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타락한다.
석가모니가 마지막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욕망의 마신인 마왕파순(魔王波旬)이 나타나서 석가모니를 시험하며 성불을 방해하는데, 티베트 고승의 예언이 김제석에게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범인을 초월한 깨달음을 얻어 불사의 몸이 되고 미륵으로 추앙받았으나, 결국 완전한 깨달음의 고비인 마지막 시험을 넘기지 못하고 타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조는 박웅재 목사가 극중에서 언급한, 동방박사(네충텐파)가 예수('그것')의 탄생을 예언하자 헤롯왕(김제석)이 자신의 병사(사천왕)들을 시켜 베들레헴(영월)에 있는 2살 이하의 사내아이(99년생 여자아이)를 전부 죽이라고 지시한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태백의 사슴동산에서 입수한 지국천왕(지승현 扮)의 경전을 해석하는 데 집중하던 박 목사는, 경전에 뱀을 죽여야 한다는 구절이 반복해서 나오니 해안 스님(진선규 扮)에게 뱀은 결국 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물어보는데, 해안 스님은 '불교에는 악이 없다. 다만 집착과 욕망으로 인한 번뇌만 있을 뿐이다'라고 답한다.
이 말은 곧, 불교적 세계관에서 집착과 욕망으로 인한 번뇌(= 일반적인 의미의 악)를 가진 존재는 절대로 성불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미 깨달음을 얻어 불사의 존재가 된 김제석 같은 존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우주의 이치이다.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불교의 연기설이 언급되는데, '짐승으로 태어난 자라도 부처의 행위를 하면 부처가 될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은 자일지라도 짐승의 행위를 하면, 본인 내면에 있는 부처의 모습을 잃게 된다'라는 말처럼 불교에는 고정된 선악이 없고, 삼라만상이 홀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이다.
또한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라는 구절처럼, 이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이런 순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욕망해서는 안되고 흘러가는 대로 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연기설은 총 12개의 항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영화에서 12개의 손가락이 부처가 됐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이 연기설 12항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면 그게 곧 12개의 손가락으로 나타난다는 뜻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만약 김제석이 1999년에 태어나는 존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해도, 불교의 연기설에 따르면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에 김제석은 예언 역시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언을 듣는 순간 김제석의 눈빛이 흔들렸다는 티베트 고승의 말처럼, 그는 예언을 듣는 순간 시험에 들고 생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생겨 깨달음의 길에서 이탈하게 된다.
불교에는 악이 없으니 그를 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인해 마음 속에 번뇌를 가졌기 때문에 더 이상 부처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제석이 예언을 듣고 생긴 번뇌를 통한 시험을 이겨 내고 살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진짜 미륵이 됐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손으로 져버렸기 때문에 짐승이 되어 타락하게 됐다.
김제석은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슴동산'이라는 조직을 만드는데, 녹야원(鹿野園)이라 불리는 이 사슴동산은 원래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고행을 함께 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최초로 설법한 불교의 성지이다. 김제석은 자신도 앞으로 살아 있는 부처가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을 모시는 종교의 이름을 사슴동산이라 지었던 것이다. 또한 사슴은, 우리의 토속신앙에서 십장생 중 하나로 꼽힌다.
사슴은 영원한 삶을 사는 10가지의 영물들 중 하나이다. 김제석이 사슴을 직접 키우는 '녹야원', 자신을 섬기는 '사슴동산', 사슴동산의 법당 벽화의 사슴 등, 이토록 사슴에 집착하는 김제석의 모습을 보면 영생과 부처에 대한 이중적인 욕망을 잘 드러내주는 동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금화의 집에 있는 창고에서 '그것'을 처음 목격한 광목 정나한이 김제석의 녹야원으로 처음 찾아갔을 때, 눈 밭에 한 마리의 사슴이 죽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 김제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김제석이 그렇게 집착하고 본인의 상징물로 내세웠던 영생의 동물 사슴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앞으로 김제석 역시도 영생에 실패할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제석은 자신의 고향인 영월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태백, 정선, 제천, 단양에 자신을 보필할 네 아들인 사천지왕을 위한 네 개의 법당을 만든다. 사천지왕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포섭하기 위해 서는 그들에게 거대한 종교적 구원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원래는 악귀였다가 불법에 귀의해 제석천을 모시게 된 사천왕을 모티브로 삼아, '네가 비록 네 손으로 부모를 죽인 짐승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이라도 하늘의 뜻을 대신한다면 너 역시도 부처가 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설파한다.
결국 사슴동산은 사천지왕을 위해 만든 네 개의 법당은 81마리의 뱀을 모두 제거한 사천지왕이 열반하여 부처가 됐을 때, 신도들이 앞으로도 네 개의 법당에서 사천지왕을 계속 섬겨줄 것이라는 명분을 사천왕에게 제시하여 반인륜적인 소년범으로서 한낱 짐승에 불과했던 그들에게 위대한 부처로 성불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장치였던 것이다.
2. '그것'
'그것'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부분이라 두 가지 관점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2.1. '그것'은 짐승으로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얻어 미륵이 되었다.
이금화(이재인 扮)의 쌍둥이 언니인 '그것(이재인[2] 扮)' 역시도 짐승으로 태어났다. 이미 뱃속에서부터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는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악의 기운을 주변에 물들여서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까지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천지왕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 부모님을 모두 죽인, 짐승이었다.
그런데 가짜 김제석(정동환 扮)은 '짐승 역시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천지왕과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태어난 쌍둥이 언니인 '그것' 역시도, 앞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역설적인 단서가 된다. '그것'은 새로 이사 온 시골 마을에서도 주변의 소들을 모두 죽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16년 동안 끊임 없이 악의 기운을 퍼뜨려 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악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지국 김지철의 범죄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 지국이 자살을 하게 되고, 지국의 전업(금화를 죽이는 일)을 광목이 이어받게 된다.
교육청 공무원이자 지국을 섬기는 법당의 연화보살(오윤홍 扮)을 통해서 금화의 주소를 알아내어, 금화를 죽이기 위해 방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은 광목이 방문한 의도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광목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금화를 지키기 위해 새떼를 집안으로 불러들여서 광목을 저지한다.
이 장면은 아주 불길하고 음산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인 악으로 보였을 때에는 '그것'이 악한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알게 되고 다시 본다면, 쌍둥이 언니인 '그것'은 뱃속에서 동생의 다리를 갉아먹은 이후에는 결코 동생에게 해코지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분명 악이 깃든 채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광목에게서 동생을 지켜줬던 것처럼, 그리고 김제석에게 속아서 악행을 저지르며 괴로워했던 광목을 매일 밤 자장가로 위로해줬던 것처럼, '그것'은 16년 동안 계속해서 자신에게 깃든 악과 끊임 없이 싸워왔을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악하게 태어났는가. 무엇이 이리도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그리고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것은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수행자들이 수행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아주 흡사하다.
'그것'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내내 '그것'이 내지르는 괴성과 울부짖음은 우리에게 악마의 비명으로만 들린다. 하지만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그것' 역시도 악이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매일 밤 내질렀던 괴성은 '그것'이 16년 동안 계속해서 이어왔던 고통스러운 수행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을 다시 방문한 티벳 밀교의 대승인 네충텐파는 법단에 앉아서 이렇게 말한다. “그 수행중에 얻은 경험으로, 나는 고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아주 중요한 대사라고 강조라도 하듯, 굳이 자막으로 번역되었던 이 대사를 해안 스님의 동시 통역을 통해 곧바로 반복해서 들려준다.
불교에서 수행은 고통의 과정이다. 육체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모든 욕망과 집착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깨달음에만 정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수행의 고통은, '그것'에게도 존재한다. '그것'은 짐승으로 태어나, 자신의 본성이 주변에 끊임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목도해오며 고통 속에서 16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1999년으로부터 16년이 지난 해의 성탄절에 '그것'을 농약으로 독살하고 집을 떠나려고 했던 동생 금화가 마음을 바꾸며 돌아와, 농약이 섞인 밥그릇을 차버린 뒤에 추위를 막아줄 스웨터를 벗어준다.
'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메타포인데, 가짜 김제석이 네 아들들에게 자신의 흰 도포를 벗어주는 것, 최후에 박 목사가 죽은 광목에게 자신의 코트를 벗어주는 등, 종교적인 맥락의 메시지(= 사랑, 구원)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쌍둥이 언니인 '그것'은 16년간의 모든 고행을 끝내고, 드디어 욕망과 집착으로 인한 번뇌를 모두 내려놓게 된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 '그것'이 땅을 파내서 발견한 것이 빛을 만드는 라이터였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여래의 빛을 얻은 부처가 되었다는 암시하는 장치일 것이다.
스스로 살아 있는 등불을 자처했던 김제석이, '그것'이 발견한 깨달음의 빛인 라이터에 의해 말 그대로 불타는 등불이 되며 최후를 맞이하는 엔딩에서 결국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살아 있는 미륵은 이제 김제석이 아닌 '그것'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광목이 김제석의 목을 조르며 차가 전복될 때, '그것'이 김제석의 예언서의 내용을 직접 읊는데,
'그것'의 마지막 말씀은 자신의 유일한 제자인 광목의 손으로 이뤄진다.
2.2. '그것'은 처음부터 미륵이었다.
처음에 쌍둥이인 '그것'과 금화가 태어날 때, '그것'이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고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의사는 '그것'이 태어나자 신문지에 싸서 방치했다. 신문지에 덮여 엎드려 있던 '그것'이 자신의 손을 신문지 안으로 숨기듯이 넣는데, 이때 '그것'의 손가락은 6개이다.
이 영화에서 6개의 손가락은 미륵을 상징하므로, 태어날 때부터 미륵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쌍둥이 동생의 다리를 갉아 먹었고,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났고 그 때문에 부모가 죽었지만, 사실 자기 욕심과 번민에 의해 악한 의도로 남을 해친 악인(김제석, 사천왕)은 아니었다.
쌍둥이 동생인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은 일을 제외하면, 어머니는 제대로 된 의료 기관이 아니라 집에서 쌍둥이를 낳았다가 산고로 1주일만에 죽은 것이고, 아버지는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고 키울 자신이 없어 자살한 것이다. 마을의 소가 몰살 당한 사건도 지금도 기승을 부리는 구제역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몰지각한 종교주의자의 프레임으로 인해 소의 집단폐사는 부정한 일로 여겨진다.
이들은 굿판을 벌이면서 엄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이런 주변의 멸시와 두려움을 사며 편견이 씌워졌지만, '그것'은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지언정 타인에 의해 어두운 곳에 갇혀서 고통받기만 한다. 이는 '그것'의 주변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해서 번민하는 것 뿐이지, 동생의 다리를 갉아먹은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그것'이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일은 없다.
'그것'은 오로지 김제석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쌍둥이'로 태어나기로 한다. 금화의 다리를 물어서 쌍둥이가 사회에 노출 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금화가 낯선 남자와 채팅을 하는 내용에서 본인이 병신임을 언급하거나 여러 장면에서 쩔뚝거리며 걷는 것을 보여주며, 친구는 사귀었냐는 할아버지의 말에서 느껴지듯이 활발한 사회 활동이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동생을 쉽사리 드러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연막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경찰서 게시판에 수없이 붙어 있는 99년생의 여아들의 실종 전단지를 보며 넋이 나간 황 반장(정진영 扮)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아마 금화의 다리가 멀쩡하고 계속 이사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김제석에게 쉽게 노출되어 '그것'이 미륵으로 성불하기 전에 위기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 왜 이제 온 것이냐, 아이야. 너무 오래 걸렸구나.
나한: 누구야, 너!
그것: 나는 울고 있는 자니라. 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라. 너무 많은 피를 흘리었다.
이 대화처럼 광목 정나한이 미륵이 된 '그것'을 마주했을 때,
"왜 이제 온 것이냐, 아이야. 너무 오래 걸렸구나."라고 말한다.
이 둘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지만 '그것'은 광목을 계속 기다렸던 것처럼 말한다.
또한, 초반에 무당이 창고에 접근했을 때에는 미륵의 수호자인 뱀이 제지했지만 광목이 '그것'에게 다가갔을 때에 뱀은 광목을 제지하지 않는다. 광목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처가 된 악신의 이야기처럼 미륵의 뜻을 이룰 사천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목을 악몽에서 지켜주던 자장가를 부름으로써광목을 악몽에서 지켜줬던 것도 '그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광목이 금화를 죽이러 처음 찾아갔을 때에는 서로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돌아가라고 새떼로 위협해서 광목을 쫓아보냈지만, 금화가 성인이 되었다는 징표인 초경을 하게 됐을 때, '그것'은 미륵이 되고 광목은 진정한 미륵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것'이 16년 동안 울부짖었던 것은 죽어가는 소녀들 때문이다. 김제석은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고 사천왕에게 영월에서 태어난 99년생 여자아이들을 몰살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그것'은 억울하게 죽어가는 소녀들, 혹은 해탈하지 못한 존재를 위해서 번뇌하며 울었던 것이지만, 영화 후반까지 '그것'은 음산하고 불길한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에 관객은 이런 울부짖음을 괴물이 내지르는 괴성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광목이 미륵이 된 '그것'을 마주했을 때, "나는 너희들이 피 흘릴 때 같이 울고 있는 자다" 라는 말로 확인할 수 있는데, '너희들이 피 흘릴 때'라는 구절은 사천왕이 99년생 여자아이를 죽여왔던 사실을 의미하고, '같이 울고 있는 자다'라는 구절은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그것'의 모습을 말한다.
'그것'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김제석의 타락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김제석이 예언을 듣고 순리를 따랐다면 '그것'이 태어나지 않았겠지만 김제석이 살아있는 미륵이자 등불이 되려 하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게 될 '그것'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연기설에서 나오듯이, 땅에서 지렁이가 태어나면 가장 높은 곳에서 지렁이를 잡아 먹을 매가 태어난다고 하는 것처럼 김제석은 열반에 올랐으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타락하여 짐승이 됐으니 그를 멸하기 위해 미륵이 된 '그것'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김제석이 죽음과 동시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그것' 역시 같이 운명을 같이 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석가탄신일에 태어나고 결국 성탄절에 미륵으로 다시 태어난 뒤 원하는 바를 이루고 죽는다.
다만 미륵의 운명을 띄고 태어났다고 해도 미륵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미륵이 되어 임무를 완수하고 죽는 것으로 계획되었다고 보는 시각과, 미륵이 될 운명을 띄고 태어났으나 미륵이 되는 과정은 계획되지 않고 '그것'의 해탈을 통해 미륵이 되었다는 시각이다.
후자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것'은 16년의 삶동안 번뇌하고 괴로워하다 처음으로 동생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되면서 해탈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스웨터를 받은 직후 온 몸의 짐승을 상징하는 털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땅을 파서 라이터를 찾기 시작한다. 즉, 신은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내려보내어 인간을 시험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끔찍한 '그것'이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세상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끝까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그저 추악한 괴물인 채로 김제석에게 죽었을 것이다.
2.3. '그것'과 김제석의 비교
'그것' | 김제석 |
가족에게도 저주받음 | 만인의 존경을 받음 |
털로 뒤덮인 추한 몰골 | 늙지 않는 깔끔한 외모 |
어린 여성 | 늙은 남성 |
매번 도망가는 이사 | 각지 세력(움직이지 않는 본원) |
이름조차 없음 | 대단한 저명인사 |
어둡고 새카만 곳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알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살아감 | 눈으로 덮인 새하얀 사슴동산에서 자유롭게 운신하며 편안히 지냄 |
죽음의 위기에 직접 노출됨 | 대역을 세워서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시킴. |
쌍둥이 자매의 모티브는 성경의 '에서와 야곱 이야기'이다. 창세기 25장 중,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에서가 장남이고 야곱이 차남인데, 야곱이 나올 때는 형인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발꿈치(עקב, akév)를 잡았다'라는 뜻이다. 작중에서 '그것'은 정나한에게 김제석의 발을 잡으라 명령한다. 에서는 '그것'처럼 몸에 털이 많고 염소와 비슷해 야곱이 염소의 털가죽을 이용해 에서로 변장하기도 한다.쌍둥이 자매는 석가탄신일인 1999년 5월 22일에 태어났으며,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가 자매를 낳고 1주일만에 사망하는데,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도 석가모니를 낳고 1주일만에 사망한다. 이는 '그것'이 부처이자 김제석의 필적자임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여성이 초경을 하면 성인이 된 것으로 간주한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성인이 되면 출가하는데, 금화는 초경을 하자 화장을 하고 서울로 떠나려고 집에 있는 돈을 털어 가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죽이려고 농약을 섞은 밥을 놓고 집을 떠났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와서 밥그릇을 차버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스웨터를 놓고 다시 떠난다. 성인이 된다는 의미를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으로 본다면 집을 떠나자마자 광목에게 납치를 당한다. 이는 보호에서 벗어나 처음 겪는 책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기에 불교에서는 그런 특성으로 인해 연꽃을 부처와 동일시한다. 사슴동산 법당에서 연꽃의 의미에 대해 설파하는 장면에서 나온 연꽃은 화려한 색의 연꽃이 아니라 기이할 정도로 창백하고 순백의 꽃잎을 가졌는데, 이는 털 하나 없이 말끔하고 심지어 혈관이 비칠 정도로 희고 순결한 미륵이 된 '그것'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머리카락과 털은 번뇌를 상징하는데, 스님들이 출가할 때 삭발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김제석은 영화 내내 흰 옷을 입고 있다가 광목에게 '그것'의 존재를 듣고 직접 죽이러 갈 때는 검은 옷, 심지어 그 위에 어두운 색의 털옷을 입고 간다. 이는 부처였던 김제석이 타락하여 짐승이 됐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그것'은 온몸에 검은 털이 뒤덮여 있는 짐승같은 외모였으나, 때가 되어 깨달음을 얻자 뱀이 허물을 벗듯이 모든 머리카락과 눈썹은 물론 모든 털이 빠지고 창백한 모습의 부처가 된다. '그것'은 허물을 벗고 각성했지만, 김제석은 허물을 뒤집어 쓰고 결국엔 그 털에 불이 붙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광목을 만났을 때 미륵이 된 '그것'은 가부좌를 틀고 대화를 나누며 총 세 번의 수인을 맺는다.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중 하품상생인(下品上生印]),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함께 하는 통인(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하품상생인은 여러가지 악한 짓을 하고 뉘우치지 않은 사람이라도 선업에 따라 극락세계에 날 수 있다는 구제의 의미이고, 통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달래고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의미, 항마촉지인은 모든 마를 굴복시킨 부처를 의미한다.
작중에서 '그것'은 뱀의 보호를 받는다. 뱀은 징그럽거나 불길하고 추악하다 여겨져 일반적으로 꺼려지는 짐승이지만, 지역이나 신화에 따라서는 진리를 수호하거나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승되기도 한다(하단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문단 참조). 추악한 모습을 하여 사람들에게 배척받았으나 실제로는 선한 존재인 '그것'을 수호했던 것이 이 짐승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정나한이 다시 태어난 '그것'을 만나러 가기 직전 박 목사가 암송하는 구절은 시편 27장 9절이다.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시고. 주는 우리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그 직후 정나한은 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가 다시 태어난 '그것'을 만난다. 덧붙여 이 27장 9절 다음, 27장 10절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이다.
영화는 성탄절에 일어난 이 모든 기적들을 박웅재 목사(이정재 扮)의 시점으로 관찰한다.박 목사는 왜 그렇게 뜬금없이, '진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됐던 것일까? 자신의 조수인 전도사 고요셉(이다윗 扮)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대화를 하다가, 요셉이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느냐'는 말을 하자 박 목사는 냉소적으로 웃는다. 그리고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라고 운을 떼며, 박 목사의 신실한 친구가 남아공에 선교를 하러 갔다가 이슬람 광신도들에게 아내와 두 살 된 아들, 갓 태어난 딸을 잃었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러나 사실은 박 목사 자신의 이야기였다. 이 부분은 박 목사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는 사바하 프리퀄 웹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 목사의 가족을 살해한 12살 소년 이슬람 광신도는 '신의 뜻'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말을 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박 목사는 신의 뜻을 행하는 자신에게 이런 비극을 안겨주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종교적 회의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어떤 종교 문제든 철저히 자신의 돈벌이에만 활용하는 세속적인 캐릭터가 형성된 것이다.
조사차 찾아간 문어 스님에게서 '김제석은 진짜 미륵이다'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두 눈으로 진짜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후반부에 박 목사가 목격한 시점의 김제석은 불사의 몸을 가지긴 했으나 이미 미륵에서는 내려온 상태였고, 살아 있는 미륵이 된 '그것'을 실제로 목격하진 못했다. 즉, 신이 한 순간 현세에 존재하긴 했으나, 박웅재 목사는 신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하지는 못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건, 바로 여기서 영화의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스스로 모태신앙 기독교 신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장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과연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을까'라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반에 박 목사가 얘기하는 선교사의 이야기는 감독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NGO에서 일할 때 만났던 선교사에게 들은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듣고 신에 대한 원망과 부조리를 느끼고 자신의 영화 속 페르소나인 박웅재 목사를 통해 '당신은 도대체 어디 있나이까'라고 씁쓸하게 읊조린다.
즉, 장재현 감독은 극 중에서 박웅재 목사가 그러한 것처럼,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를 갈구하는 자신의 이중적인 내면을 영화에서 고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짜 김제석(박 목사는 진짜라고 믿었던)이 오물통을 차고 간신히 연명하는 모습을 보고 "신이라면서... 이러고 누워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라며 실망하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론은 무신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 내에서는 신의 강림이 두 번이나 이뤄졌는데도 박 목사가 적절한 때에 그들을 마주하지 못한 것처럼 신은 분명 존재하지만, 단지 우리가 그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계속 의심하고 신의 존재를 계속 갈구하는 것이라는 암시를 결말에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장재현 감독은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에 신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남겨 놓고 있다. 광목 정나한(박정민 扮)은 악인이다.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때려 죽인 패륜아이며, 소년원 출소 후에 김제석을 섬기면서 그의 명에 따라 99년생 여아들을 죽여왔다. 평생을 춥고 외롭게 살았던 자신을 양아들로 삼고 영혼까지 구원시켜주겠다는 김제석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는데, 포기하려 했던 다른 사천왕들과는 다르게 '그것'을 만나기 전까지 김제석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악인은 아닌 게, 밤마다 자신이 죽인 아이들이 나오는 악몽을 꾼다. 정나한이 악몽을 꿀 때마다 어떤 여인이 불러주는 자장가로 겨우 안식을 취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감독은 정나한과 사천왕을 헤롯왕 이야기에서 사내아이를 죽이는 군인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그것'을 죽이러 가는 김제석의 대화에서처럼 "군인에게 살생은 애국이다"라는 말처럼 목적을 위해서 살생이 정당화 되는 모순 속에서 번뇌하는 인물이다. .. 나한(羅漢)은 범어 아라한(阿羅漢, Arhat)의 줄임말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를 말한다. 나한은 악귀였다가 부처를 만나 불법에 귀의하고 부처의 적을 죽인다는 사천왕처럼 결국에는 번뇌를 끊고 '그것'의 뜻을 대신 이루고 성불한다. 나한이 죽으면서 성탄절 기념 폭죽이 터지는데 이를 성불한 나한의 후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정나한이 죽어갈 때 박 목사가 자신의 버버리 코트를 벗어서 덮어주는데, 이 영화에서 옷을 벗어주는 행위가 사랑과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봤을 때, 평생을 춥고 외롭게 살았던 정나한이 악신이지만 결국은 구원받은 사천왕처럼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박 목사는 자신의 세속성을 상징하는 버버리 코트를 벗어서 줌으로써 부와 욕심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5.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영화에 은유로 쓰이는 동물은 사슴, 염소, 뱀, 코끼리 등이 있다.
사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서술했으므로 나머지 동물들에 대해서 다루도록 한다.
내가 태어나는 날에도 염소들이 미친듯이 울어댔다.
그날 우리집에 나와 같이 귀신이 태어났다.
중세시대의 사탄은 염소머리를 가진 형상으로 그려진다. 기독교에서 염소는 악마, 음란, 죄악, 의심의 상징이다.하지만 불경 '마하카바타 자타카(Matakabhatta Jātaka)'에서 나오기를 부처는 염소와 동물을 희생시켜 제사를 지내는 행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제자들에게 윤회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제자들은 윤회의 두려움에 떨었고, 염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도 살생을 저지르지 않도록 했다. 영화의 맨 처음에 등장했을 때 염소들이 미친 듯이 울어대고 불길한 분위기로 묘사되는데, 이것을 단순하게 불경하게만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중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뱀의 눈은 아름다울 것이고, 뱀의 혀는 달콤할 것이다. - 김제석
제자여, 뱀의 발을 잡으라 - '그것'
기독교에서 뱀은 사탄의 다른 모습이자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속여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등장한다. 곧, 기독교에서는 사탄을 상징하기도 하고 교활, 유혹, 거짓말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띈다. 이는 한국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정작 그 기독교에서도 민수기의 전염병에 걸린 유대인들을 치료한 것은 모세의 놋쇠뱀 네후스탄이었으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수행할 때 12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 나쁜 것으로부터 석가모니를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불경 숫타니파타에서는 수행자가 고행을 통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뱀이 허물을 벗는 것에 비유한다.
'그것'은 아직 미륵이 되지 못한 수행자이기도 하므로 뱀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양쪽의 관점을 채용해 영화 내에서도 중의적인 의미로 쓰였다. 또한 김제석과 '그것'의 관계를 암시할 구절이 성경 창세기에 나온다. 창세기 3장 15절은 야훼가 하와를 타락시킨 뱀의 모습을 한 사탄에게 저주적인 예언을 한 구절인데, 그 관계를 서로 '머리를 상하게' 하고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관계라고 상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징 구도가 이 작품에서 적용된다. '그것'은 사명을 다 하자 머리를 떨구며 죽어 가고, 김제석은 '그것'의 지시를 통해 발꿈치를 잡혀서 죽게 된다
제석: 고대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왕에게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저 코끼리 눈을 한 번 봐봐요. 어떤가요?
제석: 코끼리 눈이 무섭게 느껴지면 마음이 악한 거라고 인도의 승려들이 매일 들여다보라고 왕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배송비까지 구천 만원 들었는데...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것이 석가모니의 태몽이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신성시하고 부처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김제석도 한 때는 미륵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올바른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악으로 변해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코끼리를 데려온다. 하지만 코끼리 앞에서 나눈 김제석과 정나한의 대화에서 둘 태도나 심정은 상반된다. 코끼리 사육장에 총 같은 무기를 여러자루 두고 있는 것과 정나한을 쏘고 나서 '너는 코끼리 눈이 왜 두렵지 않느냐'라고 묻는 것을 보면 이미 그가 코끼리의 눈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나한은 코끼리의 눈이 추워보인다고 하는데,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미륵을 만나 진실을 깨달은 정나한은 더 이상 악이 아니라 코끼리의 눈을 봐도 두렵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그대로 얘기한 것이다.
두 번째, 진짜 부처인 '그것'을 만났을 때 '그것'이 추운 겨울 어두운 헛간에 동생이 가져다준 스웨터만을 입고 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코끼리(부처)와 '그것'을 동일시 하여 추워 보인다고 한 것이다.
세 번째, 더운 지방에 사는 코끼리가 추운 강원도에 와 있는 것에 대한 연민 - 영생하여 큰 일을 하겠다는 욕심에 미친 김제석보다 눈앞의 존재의 고통에 연민을 느낄줄 아는 나한이 아직은 인간적이라는 것, 이것이 보다 부처에 가깝다는 반증이다.
네 번째, 태생부터 비천하고 평생 배척당하며 소외된 존재로 살아온 나한의 춥고 외로운 마음 그 자체를 나타낸 것이다.
자신처럼 코끼리의 눈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변절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정나한을 총으로 쏜다.
또한 부처를 상징하는 코끼리를 쏴 죽인 것은 김제석이 불법을 져버리고 완전한 악으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6. 트리비아
영화는 기독교와 불교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다. 그래서 어떤 종교적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상징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믿는대로 보는 사람들(무당, 사천왕, 금화의 할머니 등), '그것'에게 씌워진 선입견(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악의 상징인 흉측함, 뱀, 염소 등)을 벗겨놓고 보면 우리가, 종교가 갖는 선입견으로 인해 진리가 가려지는 것을 표현하는 연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첫댓글 얼마전에 사바하를 보았다. 무서울거 같아 걱정했으나 2번이나 보게 되는 영화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이것저것 대입해보다 검색해보니 이런 자세한? 해석이 나와있었다.. ㅎㅎ
다르게 해석이 가능할것도 같은데, 다음에 기회되면 해보자 ㅋ
미륵이 된 '그것'의 항마촉지인 수인법이 기억에 남는다..
저 쌍둥이들의 생일은 1999년 5월 22일.. 오늘은 2019년 5월 22일 이구나.ㅎ
왤케 반가운지요? 저는 사바하 세번 봤는데 불교적으로 해석 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 였어요. 잘 지내시죠?
오홍! 저도 한번 더 보고 3번 채울까 생각중입니다 ㅎㅎ 잘 지내셨는지요? 전 불교적인 내용을 접하면 광룡원에서 생각나는 몇몇분들이 계십니다 ㅋㅋ 다음에 기회되면 영화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