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네스트
호텔 바로 위에 있는 이글 네스트(Eagle Nest)는 독수리 둥지라는 뜻이며, 근자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뒤덮은 뒷산으로 독수리둥지를 찾아 올라가 바위덩어리를 살폈으나 이상하게 내 눈에는 독수리들이 나들이를 갔는지, 독수리모양의 바위도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인터넷에 나온 근사한 독수리모양의 근사한 사진을 찾아 올린다.
울타르 피크와 레이디 핑크를 병풍으로 독수리 둥지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이글네스트호텔은 일망무제의 전망을 자랑하는 깔끔한 현대식호텔이다. 훈자에 이런 호텔이, 그것도 9000피트 높이에 사방으로 70000미터 급 만년설 산들에 포위되어 있어 나그네는 이곳에 평생을 연금당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 같다. 호텔음식도 맛있고 종업원의 친절함은 기본이며, 방값은 약 칠만 원에서 십만 원이며 한 끼 괜찮은 식사는 만이천원 정도다.
그러나 술꾼들(이 말에 뜨끔할 친구가 있을 것이다)은 맥주 한잔도 기대하지 못한다. 이곳은 무슬림 지역이니까. 찾아보면 훈자워터라는 술이 있기는 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지전으로 이 멀쩡한 호텔에 손님이 나 혼자라 식당을 독차지하고, 홀로 온 한국 노친을 궁금해 하는 직원들과 우리나라 역사를 들려주면서 썰렁했을 아침을 심심하지 않게 먹었다. 아침 후 커피를 대접하는 지배인과 현재의 인도와의 관계에 대한 의견과 양 국민 간에 깊게 패인 반감에 대해 한담을 나누었는데 이들은 나에게도 자기들 편을 들라한다.
발아래로는 미루나무 숲에서 집들이 띄엄띄엄 숨어있고,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훈자 강의 흙탕물은 마을을 감싸고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앞쪽으로는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7,7878m의 라카푸시와 1968년 오스트리아인이 처음 올랐다는 7,266m의 디란 피크 (흰 봉우리 산이라는 뜻의 '미나핀 피크'로도 불림)의 설봉들이 독수리 둥지를 비추면서 ‘머리가 만년설로 덥힌 우리가 바로 흰머리 독수리가 아니냐?’ 한다. 뒤를 올려다보니 울타르피크와 레이디핑거가 병풍처럼 마을의 등을 받치고 있다. 시야에 잡히는 것 모두가 작품이며, 그것도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의 솜씨다.
새끼손가락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 레이디 핑크 바위는 아무리 양보해도 닮지 않은 것 같지만, 울트라피크와 부부처럼 서로 등을 의지하고 있어 훈자를 찾는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6000m급인 이 바위에 1991년 일본의 하세가와 호시노가 울트라피크에 오르다가 저승으로 갔다. 소식을 들은 부인은 단숨에 달려와 장례를 치른 후, 이곳으로 와 하세가와 중학교를 세웠고, 남편이 사망한 10월이면 부인과 임ㄹ본인들이 이곳에 모여 추모제를 연다하며, 이런 연유인지 훈자에 묵은 호텔에는 중년의 일본여인이 혼자 바로 앞 코티지에 한 달 채 머물고 있어 수인사는 나누었다.
이글네스트에서 카리마바드로 가는 택시를 불러 달랬더니, 카리마바드로 가는 버스가 있는 발티트까지 그간 친근해진 직원이 오토바이로 태워준다며 과잉친절을 베풀었다. 오토바이뒷자리에 앉은 나는 내리막길을 안전하게 천천히 운전해준 양반에게 팁을 넉넉히 주었다. 우리나라 옛 삼륜차 크기의 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니 수줍게 받는다. 학교 가는 어린 학생듵이 넥타이를 메고 등교를 한다. 영국의 지배를 200여년 받아 필요 없는 전통까지 이어받은 모양이다.
길기트
카리마바드에서 길기트로 가는 미니버스는 정원이 18명인데 5명을 더 태우고서야 출발한다. 말하자면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차가 되어야 떠난다. 3명이 한 줄에 앉아야 하는데 4명이 끼어 앉아 서로 어께를 맞부딪치며 2시간 만에 길기트에 도착. 중앙에 잿빛의 물살이 세게 흐르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는 작지 않다. 정류장에 내려 공항으로 오니 2시간 연착이란다.
카라코람 산맥이 위치하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와 낭가파르바트, 가셔브룸 1봉, 브로드피크, 무즈타그 타월, 가셔브룸 2봉이 속해 있는 길기트 발티스탄의 주도인 길기트는 펀자브 및 카슈미르와 티베트를 잇는 요충지로 훈자에서 서남쪽으로 50km, 스카르두에서 서북쪽으로100km 거리의 협곡에 위치한 길기트 발티스탄의 주도로 도심인구는 약9천, 전체로는 약 8만명이다.
카슈미르서부에서 발원한 길기트 강과 카슈미르 북부에서 발원한 훈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도시가 길기트이며 면적은 72,971㎢며, 길기트란 도시명은 옆을 흐르는 길기트 강에서 따 왔으며 발티스탄은 발티인과 땅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접미사인 스탄을 합친 것으로 발티족의 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인도 불교가 이곳을 통해 투르키스탄 및 중국으로 퍼져나간 통로로, 혜초와 현장법사가 천축인 인도로 가면서 거쳤던 교통요지였던 이 일대에는 7세기에 불교국가였던 소발률(小勃律)국이 있었다하며, 7세기 중반 서돌궐 멸망 후에는 당나라에 복속하였고, 7세기후반에는 토번 제국에 복속하였다.
그러다가 747년 고선지의 서역원정을 통해 당나라 영향권에 속했고, 750년대 당의 서역지배가 와해되자 다시 토번에 복속하였다. 고선지 장군이 원정한 소발율국이 길기트로 추증되며, 지금은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기점 중 하나로 파키스탄의 군사기지로 주요 관광지이자 휴양지로도 유명세를 탄다.
이후 여러 부족들이 거주하던 이 지역은 힌두왕조에 정복되었다가 영국령 인도제국에 속했다. 이후 인도 분단 와중에 인도 측에서는 길기트 발티스탄 지역은 순순히 파키스탄에 내놓았지만 카슈미르의 경우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무슬림인구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귀속시켜, 오늘날 길기트 발티스탄 지역은 인도령 카슈미르와 접하는 상황이다.
길기트로 가는 미니버스에 젊은 여자둘이 타서 2시간 내내 조잘대느라 정신이 없다. 히잡을 하지 않아 궁금해 물어봤더니, 요즈음은 강요하지는 않는단다. 무엇하는지가 궁금했지만 이슬람국가에서 여성에게 주절주절 묻는 것이 실례될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는데 길기트에서 내리는 곳이 카라코람대학교 정문이라 대학생임을 알았다.
강 따라 형성된 도시가 제법 크다고 느낄 쯤에 다리건너의 종점이다. 택시로 공항으로 가니 산 아래 평지가 자그마한 길기트공항이다.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경찰이 2번이나 철저히 검색한다. 카운터로 가니, 영어가 서툰 카운터직원이 내 항공티켓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기다리란다. 무슨 이야기냐며 책임자에게 직접 물어보니 아침9시 출발인 첫 비행기가 연착되어 곧 출발할 예정인데 직원이 내가 첫 비행기로 가는 승객인 줄 착각했다 한다.
한참 기다리는데, 내가 예약한 비행기도 순연되어 3시간30분 뒤에 출발할 것이라며 곧 출발할 비행기에 타려면 약 이만 원을 부담해야 하지만. 책임자는 10여분 인도와 파키스탄의 입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 좋았다며 그냥 빨리 가는 티켓을 발행해주며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쌍발 플로펠라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