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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왈덴스인들의 선교와 전도
1). 왈덴스인들의 성경 번역
왈덴스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목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중요한 과목으로 배웠다. 당시에는 성경의 사본이 매우 귀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가운데 있는 귀중한 말씀들을 외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을 반복하여 암송하였는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대부분의 사도들의 편지서들과 함께 암기하였다.
왈덴스인들은 또 성경을 복사하고 번역하여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전부를 베끼고, 어떤 이들은 그 일부분을 뽑아낸 것에 성경 해석자의 간단한 설명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베꼈다.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절 두절, 또 한장 두장 성경을 베끼어 나아갔다. 이런 피나는 수고와 방법으로 성경의 귀중한 번역사업은 진행되었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진리는 순금과 같이 빛났다. 그리하여 성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하나님의 책에 쓰여진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빛은 비춰졌다.
왈덴스인들은 유럽의 여러 백성들 중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벌써 자국어로 필사(筆寫)한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욱 증오와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성경의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던 왈덴스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교황권의 타락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사단은 오류와 이단과 미신의 쓰레기 아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버리기 위하여 교황권의 사제와 주교들을 통해 역사하였지만, 그러나 암흑 시대의 전기간을 통하여 성경은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전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인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유년 시대에나 청년 시대에나 장년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교과서로 삼으시려고 계획하셨고, 그 계획은 어두운 종교 암흑시대 동안 이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인 왈덴스인들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2). 왈덴스인들의 정신과 선교 교육
왈덴스인들의 어떤 청년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알프스에 비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기에 더욱 유리한 지역인 프랑스나 이태리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청년들은 유혹을 받고, 부도덕한 일을 목격하는 속에서, 위험성이 많은 이단설과 기만적인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교활한 사제들과 대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받은 그들의 교육으로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넉넉히 이길 만한 품성을 가지게 된 이 청년들은 자신들이 파견된 곳에서 공부를 하며 진리를 조용히 전파하였다.
그들은 어느 학교로 가든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그들은 크고 헐렁헐렁한 의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가장 귀중한 보물인 성경 사본(聖經寫本)을 옷 속에 감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여 필기한 성경 사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주의하면서,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다. 왈덴스인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이런 목적을 위하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왈덴스인 청년들이 비밀리에 전도하는 일로 인해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참된 신앙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생겨나 성경의 믿음의 원칙이 온 학교에 보급되는 일도 있었다. 교황권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를 해도 그들이 규정하는 소위 부패케 하는 이단의 근원 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왈덴스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암흑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엄숙한 책임을 자신들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로마 천주교회가 사람들에게 메워 준 무거운 멍에를 끊어 버리고자 힘썼다.
왈덴스 목사들은 누구나 다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성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전도자의 경험을 쌓아야 하였다. 이런 경험과 봉사는 무엇보다도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였고, 핍박과 시련을 겪고 있던 그 시대에 목사의 사역을 지망하는 사람에게 그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성직에 나아간 청년들은 앞날의 세속적 이익과 번영을 바라지 않고 고생과 위험의 생활을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운명까지도 각오하고 사역을 하였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 때처럼 두 사람씩 파견되었다.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고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교훈해 줄 책임을 진 동반자의 지도에 복종하였다. 그 동역자들은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도하고 협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서로 신앙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사명의 목적이 남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 사업이 망쳐질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숨겼다. 모든 목사들은 제각기 일종의 기술이나 직업을 가지고 표면적으로는 어떤 세상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비밀리에 전도 사업을 계속하였다. 흔히 그들은 장사꾼이나 행상인의 직업을 택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에 먼 곳에 있는 시장에 가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비단과 보석과 그 밖의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선교사로서 가면 추방당할 곳이라도 행상인으로 갔으므로 환영을 받았다.
그 들의 마음은 황금이나 보석보다도 더 귀한 보배를 전하기 위해 필요되는 지혜를 얻으려고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드렸다. 그들은 공들여 베낀 성경의 전부 혹은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를 얻을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그것을 끄집어 내어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어 하는 흥미가 일깨워졌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의 사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귀중한 성경의 어떤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었다.
4). 왈덴스인들의 선교과 당시의 상황
왈덴스 선교사들의 활동은 초기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산기슭에 있는 평원과 골짜기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넘어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성경의 진리의 귀중한 씨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순교자들의 피가 진리를 증거하였다. 그 은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단과 거짓이 난무하는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도 사람들의 가정과 심령 속으로 영접되고 전해졌다.
왈덴스인들은 성경에서 과거의 사건뿐만 아니라 장래에 있을 사건과 미래의 시험과 영광을 나타내주는 기록들을 발견하였고, 또한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멀지않았다고 믿었다. 그들이 기도와 눈물로 성경을 연구할 때, 그들은 그 귀중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책임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이 거룩한 말씀 속에 분명히 나타난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빛이 그들의 이해력에 비추어져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때 그들은 그 빛을 로마교황권의 오류의 암흑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비추어 주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교황과 신부들의 가르침과 지도 아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육체를 고통스럽게하는 고행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들의 죄 많은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자신들을 보고, 구원받기 위하여 심신(心身)을 괴롭게 하였지만 마음의 평안은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교황권의 교리에 얽매이게 되어 무수한 사람들이 친구와 친척들을 버리고 수도원에서 생애를 보내었다. 자주 반복되는 금식, 잔혹한 태장, 밤중의 기도, 쓸쓸하고 차갑고 습기찬 돌 위에 몸을 굽힌 채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먼 길의 순례 여행, 굴욕적인 고행, 무서운 고통을 통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양심의 평안을 얻으려고 헛되이 노력하였다. 그들은 죄의식으로 압박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으로 번뇌하고 고민하였으며 마침내 기력이 쇠잔하기까지 되었으나 한 줄기의 빛이나 희망조차 없이 무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왈덴스인들은 이처럼 진리를 모른 채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는 평안의 기쁨을 알려 주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자 갈망하였다. 그들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과를 속할 수 있다고 하는 교리가 거짓에 기초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이 들은 교황과 신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성, 심지어 그리스도의 품성까 가혹하고 음울하고 가까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류에게 신부나 성자들의 중보가 필요하리 만큼 동정심이 전혀 없으신 분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들, 이 진리를 아는 왈덴스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자비의 팔을 펴시고 죄와 근심과 염려의 짐을 가지고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시는 사랑과 동정이 많으신 구주를 소개하고자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사단이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없도록 쌓아놓은 장애물을 제거하여 버림으로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왈덴스 선교사들은 열심으로 뜻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복음의 귀중한 진리를 밝히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성 있게 손으로 베낀 성경을 내어 놓았다. 하나님을 마치 보복만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고, 엄격한 심판을 기다리면서 죄짐에 눌려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 어린 눈으로, 때로는 무릎을 꿇고, 그들은 죄짐에 눌린 사람들에게 죄인의 유일한 소망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을 읽어 주었다. 이리하여 진리의 빛은 암흑에 쌓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어두운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치료하는 광선을 가진 의의 태양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되었다.
때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해서 읽어 주었는데,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올바르게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반복해서 읽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다시 읽어주기를 간청한 성경 구절들은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라는 말씀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 15)고 한 부분들이었다. 이렇게 왈덴스 선교사를 만난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게 되고, 이 영원한 성경의 진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6). 전도를 받은 사람들의 기쁨
왈덴스 선교사들의 전도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교황권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죄인을 위하여 사람이나 천사의 중보가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참 빛이 그들의 마음에 비취게 되자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리스도는 나의 제사장이시요, 그분의 피는 나의 제물이요, 그분의 제단은 나의 참회실이다! 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맡기고 믿음이 없은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구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는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구주의 사랑의 보증은 이와 같이 가련하고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심령들이 예전에 미처 깨달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것이었다. 이제 그 성서의 복음이 그들에게 그처럼 큰 안도감을 가져다 주고, 넘쳐 흐르는 밝은 빛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마치 천국으로 옮겨진 듯이 생각되었다. 그들은 이제 인간 대신에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었고 믿음과 신뢰로 구주의 손을 붙잡았으며, 그들의 발은 만세 반석 위에 서 있었다.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구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옥이나 화형주도 달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왈덴스 선교사들에 의해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어떤 때에는 오직 한 사람에게, 또 어떤 때에는 빛과 진리를 사모하는 적은 무리에게 읽혀졌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 성경을 읽어 주었다. 듣는 사람들은 너무나 감탄하고 놀랐기 때문에 구원의 기별을 깨달을 때까지 그 자비의 선교사들이 성경을 낭독하는 일을 중단하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나의 예물을 받아 주실까?, 과연 내게 대하여 미소를 지으실까?, 그분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까? 하는 말들을 하였다. 그러면 그 대답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는 말씀을 읽어 주었다.
그들은 믿음의 손으로 약속을 붙잡고, 기쁨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었다. 이제는 먼 길의 순례가 쓸데 없다! 이 이상 더 거룩한 성전을 찾아서 고통스러운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죄 많고 불결한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겠다! 그분께서는 통회하는 사람의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실 것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아아! 그분께서는 나의 죄, 나의 죄까지도 사하여 주신다.
성경의 진리를 전해들은 사람들의 마음은 거룩한 기쁨의 물결이 가득 찼다. 사람들은 찬미와 감사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으며,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들은 진리와 생명의 길 되신 예수님을 찾은 새로운 체험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증거하고,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후에 진리의 전달자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 그의 성실성과 그의 열성과 깊은 인상을 남겨 주는 호감은 자주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 너무나 경탄하게 되고 다음에는 기쁨으로 감격하여져서 압도당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가자고 강권하게 되면, 왈덴스인 선교사들은 또 다른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천사가 아니었던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에 그 전도자들은 한 번 보이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로 갔거나, 어떤 미지의 감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거나, 자기가 진리를 증거한 그 곳에서 이미 죽임을 당한 신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놓고 간 하나님의 말씀은 멸절될 수 없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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