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334호 권한을 받으면 책임도 따른다 (고전4:1~5)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선(先) 순종, 후(後) 축복을 말씀하신 하나님, 영혼이 잘 되고 나야 범사에 잘 되고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은 선(先) 의무, 후(後) 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충성(忠誠)’이란, 최선을 다해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군인들이 경계할 때 ‘충성’이라고 외치지요? 무슨 뜻입니까?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입니다. 그럼요, 국민도 4대 의무를 다할 때 마땅한 권리가 생기는 겁니다.
탈세나 하고, 군대 안 가려고 별짓 다하는 자들은 권리 대신 징계가 따를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의무를 다한 자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고 하십니다. 의무를 하면, ‘그리하면’ 권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의무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권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은혜거든요.
여러분은 목사로서, 전도사로서, 장로로서, 권사, 집사로서, 조장, 구역장으로서, 교사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까? 혹 직분이 완장인 양 행세나 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교회는 어깨 씨름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자주 말하는데, 그거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압니까? 목사라고, 전도사라고, 장로라고 어깨에 힘주면서 일도 안 하는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이 꼭 행세를 하거든요.
목사나 전도사는 양 떼를 살피고 영적으로 살찌도록 먹이는 것이 의무입니다. 그런데 양 떼가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삽니다. 양들이 피죽도 못 먹어 뼈만 남은 줄도 모르고 자기 배만 살찌우고 있습니다. 조장, 구역장이 구역예배도 안 드리고 구역원의 형편을 살피지도 않습니다. 장로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이나 하고 본이 안 됩니다. 그거 하나님이 안 보실까요?
저도 다 보고, 다 듣는데요? 그거 다 주님이 적어놓으셨다가 그날 “목사로 뭐했냐?”, “장로로 뭐했냐?” 하실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주인이 회계(會計)하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16장에도 분명히 청지기를 불러 주인이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16:2)고 했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셈하시고, 열 달란트 가진 자처럼 의무를 다한 자는 칭찬하시고, 한 달란트 가진 자처럼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하실 겁니다.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4:17)고 한 것처럼, 저도 엄히 말합니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하나님이 주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남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신경 쓰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인정하면 일하고, 몰라주면 안하는 자는 의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묵묵히 양 떼를 지킨 것처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왕으로 추대하지 않습니까?
둘째,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일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하신 것이고, 자신이 당할 일은 차치하고 요한의 장래가 궁금했던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 의무는 자기 기분 따라 하는 게 아닙니다. 의무는 기분이 좋으면 하고, 안 좋으면 팽개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기분 나쁘다고, 달이 기분 안 좋다고 안 비치면 어찌 됩니까? 큰일 납니다. 어떤 지휘자가 기분이 안 좋다고 지휘봉을 반으로 꺾어 버리고 나갔답니다. 그 사람, 허리가 꺾여 누웠고요, 교회 재정을 보던 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버렸는데, 그 사람,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었답니다. 기분이 안 좋고, 마음에 안 드는 날도 있겠지요. 그러나 시곗바늘처럼 꾸준히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겁니다.
넷째, 의무를 잘하려면 몰두해야 합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9:33). 찬송을 맡게 된 레위족장들이 찬송을 잘하기 위해 골방에서 그 일에 골몰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국무총리 대신이란 직위에 오른 후에 폼만 잡았던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찌 잘할까 골몰했기에 애굽을 초강국, 부국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단이 ‘어찌하면 부흥할까? 세계를 어찌 교구화 하나?’ 늘 연구하고, 그 일에 몰두했기에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다섯째, 사도 바울처럼 의무가 ‘사명’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했습니다. 그럼요, 우리 모두는 사명자입니다. 사명에 부도내면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주신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체포의 순간에도 도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영보다 많은 천사를 부리실 권세가 있으셨으나(마26:53~54), 피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 앞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빌2:9~10).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요, 교회의 지체입니다. 몸의 한 지체가 제 기능을 못해도 앓아 눕고, 수술해야 합니다. 우리가 제 임무를 못하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 막힙니다. 화장실만 못가도, 발에 티눈만 박혀도 몸 전체가 난리가 나듯, 아주 작은 일, 작은 의무라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교회가, 하나님의 일에 차질이 생깁니다. 물론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일을 계속하시지만, 이왕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일을 맡겨주셨으니 우리가 잘 감당하고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곧 권리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일을 주신 것은 충성을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충성함으로 상을 주시기 위함이니까요(고전4:5).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고 한 사도 바울, ‘다 이루었다’ 하신 우리 주님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합니까? 의무를 다한 자의 당당함 아닙니까? 저도 이 세상을 마치는 날, 당당하게 주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입니다(눅22:30).
여러분,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골자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처음 직분을 맡았을 때의 마음 그대로 쭉 가는 겁니다. 처음 열심 그대로 쭉 가는 겁니다. 그러면 족히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그날에는 예수님이 사시는 천국에 이를 뿐 아니라 상과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모 말 잘 듣고, 잘 섬기면 요즘은 상속이 아니라 증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잘 해내면 하나님이 어여삐 여기사 그날의 축복은 당연하고, 살아있는 이 땅에서도 증여해주셔서 잘 살게 하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직분을 주신 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한 직분을 주셨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고, 그런 자는 아담처럼, 사울처럼 버림을 받고 말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 의무를 다하지 않는 농부들처럼 징계하고,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마21:41), 즉 의무를 다할 만한 자에게 넘기실 것입니다.
진정한 권리는 나에게 주신 임무, 사명을 완수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의무를 잘해서 그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의무를 다한 후에 권리를 주장하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부탁한 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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