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9차. 12,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이야기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이야기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선생을
김영삼 정부에서는 북으로 보내느냐
논쟁이 있던 시기였다,
이인모 선생은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 세계 인권단체에서 보내는 편지로
한국에 비전향 장기수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이인모 선생이다,
이인모 선생은 조선인민군 기자 신분으로
남한의 감옥에 34년간 살았던 종군기자였다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함으로 구속했으니
전 세계 언론계에서도 부당하다고 했던
위대한 종군 가자 인물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석방하자
북인 고향으로 가려는 운동을 시작했다.
특별히 경남에 사는 김상훈이라는 선생 댁에서
옥중에서부터 후원하였던 인물이다.
특별히 국가보안법으로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김상원 선생의 후원 역할이 또한 중요했다.
김상원 선생은 이인모 선생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면서 고양인 북으로 보내는 운동
그러한 운동을 하였던 김상원 선생이다
그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인모 선생도
세상에 그의 존재를 알릴 수 없었다
이인모 비전향 장기수 기자는 1989년 월간 말지에
북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한다는 수기
내 청춘 통일에 묻어 연재하면서
1991년에 북에 있는 노동신문에
평양에서는 이인모 선생을 북송하라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일 때마다
이인모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을 요구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북송에 대한 기대
김상원 선생은 더욱더 열성적으로 북송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불교인권위원회에서는 김영삼정부에서 기독교 인권위에 전달
북송 운동을 조정해 달라고 했다는 전달
그 소식을 접하고 불교인권위원회에서는
백용성 스님이 창건했던 대각사에서
이인모 선생에 대한 북송 기자회견을
참으로 많은 기자가 취재하러 왔다
대각사는 그야말로 백용성 스님이 주도하듯
대각사는 마치 독립운동에 주인 김구 선생이
방문했던 시기를 연상하는 기자회견
국가안전 기회부에 연행되었을 시기에 들은 소식
불교인권위원회 소속 승려들을 감시하라는 헬리콥터가
휴전선에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말
대각사는 백용성 스님의 정신을 실행해야 한다.
대각사는 민족운동의 총본산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이인모 선생에 대하여
나는 판문점에서 돌아와 부산대 병원으로 갔다.
부산대 병원에는 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재야인사로서는 문익환 목사도 함께 있었다
나는 당시 이인모 선생에게 학 그림 두 점을
선물로 바치었더니 참으로 좋아했다
학 수천 년 그림 ‘
백두산 천지
그림을 바치니
참으로 좋아했다
나는 귀에 대고 말했다.
어쩌면 김영삼 대통령이
북으로 보낸 것 같다고 말하니
지금 보내준다면 기어서라도
갈 것이요,
그리고 우리 일행은 서울로 왔는데
그날 아침에 이인모 선생을 북으로 보낸다고
1993년 3월 19일 당시 한완상 총리가 발표했다.
아 모두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기적이다 물론 불교인권위원회의 역할도 있었다.
대각사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이 특효였다고
그렇게 말하는 민주인사들도 있었다.
만일에 기독교, 천주교가 먼저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면
불교계에서는 무엇을 했느냐고 말하겠지만
불교인권위위원회 창립 이후에 최고의 성과
이렇게 기쁨이란 당해보지 않는 이들은 모른다.
참 부처님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하다니
부처님도 빙그레 미소지를 한 것이라고
아 나는 나가 아니라 부처님 여래사도
여래라는 의미를 누가 알겠나
2023년 1월 14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