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45/200426]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어제 밤새 사랑방에서 요란스럽게 놀던 서울친구들과 순천친구가 오전 10시 마지막으로 떠났다. 이틀밤을 잔 아내는 오전 7시 반 떠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그제 내려와 이틀 내내 집안 대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빨래와 반찬 수발에 무척 힘들었으리라. 홀로 남은 나, 어쩐지 마음이 쓸쓸하다. 아니, 외롭기까지 하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벌써 그들이 그립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참말로 요란했다. 마당에 차린 식탁에는 인근에 사는 친구가 산닭 두 마리 백숙과 찹쌀죽 그리고 갓 담근 김치를 가지고 나타나, 기다리던 서울친구들의 박수와 환영을 받았다. 오랜만에 당직이 아니라는 남원병원의 원장은 산수유술인 ‘황진이’ 10병을, 멀리 광양에서 산부인과병원을 운영하는 오랜 친구는 코냑과 중국 운남성에서 직접 사온 보이차 그리고 이사장으로 있는 동부지역사회연구소(약칭 동사연) 30주년 특집도서를 선사했다. 친구들 모임엔 아무리 바빠도(모내기 준비) 빠질 수 없다는 신념의 우직한 상남자는 이백막걸리 5병을 들고 왔다. 임실의 ‘산림왕’(전국나무협회 회장)은 수백 한 통을 들고 여유있게 나타나 특유의 ‘입담’을 새벽 1시 반, 헤어질 때까지 쏟아부어, 일동을 즐겁게 했다. 특히, 금융인 출신인 그가 최근 당한 보이스피싱사건의 전말은 ‘생활의 팁’으론 최고였다.
남양주 별내에서 유유자적하는 자유인 친구는 그의 특기인 ‘닭발요리’를 해갖고 달려온 길이다. 매콤한 숯불 직화닭발구이, 늘 콜라겐의 정수를 맛보여 주는 우리의 쉐프이다. 다리가 2개뿐인 닭, 이 많은 닭발뭉치를 어디에서 샀을까? 주식회사 하림에서 다리가 4개인 닭을 연구개발중이라고 한다. 나로선 그저 시종일관 좋아 싱글벙글만 하면 된다. 대체 이게 말년에 무슨 복이란 말인가? 이들은 또 이렇게 모였다. 그저 한 달이 멀다 않고 전국 곳곳에서 번개팅이다. 대부도의 ‘2020 안녕제’를 올린지 딱 1주일만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어찌 사랑하는 남녀연인에게만 어울리는 말일까?
나는 청결과 수납의 여왕인 아내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좀 덜 까칠하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남편 친구들의 ‘시중’을 기꺼이 들며 가끔 맞짱구까지 쳐주는 아내가 예쁘기만 하다. 해가 길어져 천만다행, 미친 봄바람도 제법 멈춰줄 줄 안다. 7시가 넘어 어둑해져서야 사랑방에 든다. 지금부터는 ‘돈 놓고 돈 먹기’시간이다. 이른바 화투짝 두 장 죄기, ‘섯다’판이다. 포커 페이스라는 말을 아시리라. ‘삼팔 광땅’을 잡고도 시치미를 떼는 선수, 판은 갈수록 커져간다. 배짱으로 밀어부친 친구는 ‘다섯 끗’으로도 ‘건식’을 한다. 그 와중에 오링한 친구 하나둘이 판을 떠나, 알코올 부족이라며 술을 홀짝거린다. 오늘 이런 모임에 처음으로 동참한 순천의 ‘시골쥐’는 금세 ‘서울쥐’ 친구들에 동화되어 즐거워한다. 호스트인 나의 ‘퍼포먼스’에 속으로 무척 고마웠으리라.
아침 6시, 친구들의 속풀이를 위하여 새우탕을 끓였다. 배추실가리에 된장과 액젓을 조금 풀어 간을 맞추고, 잡아 말린 민물새우를 푸짐하게 투하한다. 개운하고 시원한 새우의 오묘한 맛은 ‘풍미’라고 해야 할 듯. 고향생활 채 1년도 안되는데, 이 요리를 배운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새우만 있으면 친구들이 언제나 찾아와도 아무 걱정이 없다. 게다가 살짝 데친 엄나무순과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기분은 또 얼마나 삼삼한가? ‘찢어질 때’ 새우 1봉지씩도 챙겨준다.
아침식사 후 ‘고사리 꺾기’ 체험 학습을 했다. 뒷산 저수지에 놓은 새우잡이 삼각망을 들어올려 “일급수 저수지에서 새우를 이렇게 잡는 거야” 보여주며 ‘있는폼 없는폼’을 잡았다. 고사리바탕(밭)으로 안내해 한번 꺾어보라고 하는데, 거의 ‘눈뜬 장님’ 수준.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던가. 알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그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줘 박수를 받았다. 바로 옆에, 여기저기 고사리가 솟아있는데, 도무지 찾지를 못한다. 나를 마치 ‘고사리 꺾기’ 달인쯤으로 보는 눈치이지만, 내 자연인친구에 비하면 ‘족탈불급’인 것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거늘. 흐흐.
한 친구는 미국 유학중인 두 딸이 코로나사태로 급거 귀국한 상태인지라, 나에게 체험학습을 시켜달라고 한다. 오케이. 1주일 보내면 더 좋지만, 안되면 사나흘이라도 걔들이 찾아오게 해봐라. 이게 바로 ‘산교육’ 아니겠냐? 그런데, 형수가 허락을 할까? 그것이 문제일 듯. 정말 내 늦둥이 딸처럼 ‘자연’과 ‘기초 한자’를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틀 동안 아내는 ‘죽어라도’ 일만 하고 갔다. 미안하고 고맙우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전 10시반, 판교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다. 옆에 있으면 약도 챙겨주고 파스도 붙여주련만, 많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빨래는 이렇게 하라, 벼갯잇은 망에 넣어 빨아라. 소고기는 냉동실에 넣어라. 낙스로 화장실 청소 좀 해라, 이 화상아…. 잔소리가 지나쳐도 하나도 싫지 않다. 옆에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떨어진, 비정상적 생활을 해야 할까?
이렇게 즐거운 ‘추억의 탑’에 돌 하나를 더 얹으며 이틀이 지나고, 홀로 남았으니, 이제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외로운 일요일이다. 마음을 다스려 정리정돈을 하고, 책을 읽자. 또 금세 재밌고 즐거운 일이 생기겠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