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차 文化踏査; 莉茉山-錦城堂-韓屋마을-津寬寺(3-3): 津寬寺
三角山 津寬寺
서울 恩平區 津寬洞 北漢山(三角山) 서쪽기슭에 있는 津寬寺는 神穴寺의 後身으로,
大韓佛敎曹溪宗 直轄敎區 本寺인 曹溪寺의 末寺로 高麗 第8代 顯宗이 津寬大師를 위하여
창건했으며, 朝鮮時代에는 佛巖寺, 三幕寺, 寶蓋山 深源寺와 함께 漢陽近郊의 四大寺刹 중
하나였다. (*穴: 구멍 혈)
津寬寺는 高麗 顯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津寬大師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제7대 穆宗이 아들이 없어 太祖의 아들 王郁의 直孫
大良院君을 世子로 책봉했는데 景宗(제5대)의 妃였던 王建의 孫女 千秋太后가 破戒僧
金致陽과의 私生兒를 옹립하기 위하여 大良院君을 살해하려고 하자 大良院君은 津寬大師의
도움으로 神穴寺에 避身하였다. 당시 神穴寺는 津寬이 혼자 修道하던 곳으로 本尊佛을 안치한
須彌壇 밑에 지하굴을 파서 12세의 大良院君을 숨겨 太后가 보낸 刺客의 禍를 피하여 목숨을
건졌으며, 大良院君은 穆宗에 이어 顯宗으로 등극하여 1011년에 津寬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穆: 화목할 목 *須: 모름지기 수)
朝鮮時代에는 國家와 王室의 안녕을 祈願하는 水陸齋가 열리는 根本道場으로 春秋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世祖 9년(1463) 화재로 燒失된 것을 成宗 1년(1470) 碧雲이 중건했으며,
哲宗 5년(1854)과 哲宗 9년(1858)에 重修하고, 1908년 松庵이 五層石塔을 건립했다.
6·25전쟁으로 羅漢殿 등 3棟만 남기고 燒失되어 1964년 이후 復元되었다. 진관사 法殿으로는
大雄殿, 冥府殿, 弘濟樓, 動靜閣, 羅漢殿, 獨聖殿, 七星閣, 那迦院, 客室 등의 건물이 있다.
(68) 津寬寺 所藏 太極旗 및 獨立新聞類 -등록문화재 제458호
2009년 5월 津寬寺 七星閣을 解體·補修할 때 佛壇과 벽체 사이에 있던 太極旗와
獨立新聞 類 등 6종 21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신문류의 발행일자가 1919년 6월~12월
사이인 것으로 보아 이 자료는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津寬寺에서 활동하던 스님이
독립운동에 가담하며 확보한 자료로 추정된다. 태극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이며,
바탕은 綿織物이다. 2010년 2월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등록되었다.
(69) 津寬寺 進入路. 北漢山 津寬寺溪谷
북한산 香爐峯과 碑峯 사이의 碑峯稜線에서 津寬寺 방면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계곡을
따라 傾斜가 급한 岩盤이 발달해 있고 작은 瀑布들이 이어진다. 진관사를 거쳐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비봉능선과 만나는데, 오른쪽 방향은 碑峯~紗帽바위로, 왼쪽은 香爐峯으로 이어진다.
(70) 1968년 [1·21事態] 武裝共匪 浸透路
(71) 津寬寺 입구
三角山 奉恩寺는 大韓佛敎 一鵬禪敎宗 寺刹이다.
(72) 津寬寺 配置圖
(73) 三角山 津寬寺 一柱門
(74) 慧月堂大禪師 僧塔
慧月堂大禪師 僧塔이 一柱門 옆에 아무 표지판도 없이 외롭게 서 있다.
(75) 極樂橋
(76) 解脫門
(77) 三角山 津寬寺 功績碑 – 三角山 津寬寺 寺跡碑
(78) 津寬寺 磨崖阿彌陀佛
(79) 輔門院, 大韓佛敎曹溪宗 津寬寺 宗務所
(80) 含月堂 입구 洗心橋
(81) 含月堂. 佛子들이 템플스테이 하는 곳.
(82) 津寬寺 弘濟樓
앞에는 [津寬寺] 편액을 걸었으며, 계단을 올라서면 本堂지역이다.
(83) 津寬寺 弘濟樓 안쪽, [弘濟樓] 扁額을 걸었다.
(84) 津寬寺 本堂지역; 大雄殿-冥府殿-羅漢殿-寂默堂
(85) 津寬寺 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86) 大雄殿 佛壇
釋迦牟尼 佛像, 夾侍菩薩로 左·右에 彌勒菩薩像과 提華竭羅菩薩像을 奉安하고,
毘盧遮那後佛幀畵와 釋迦牟尼後佛幀畵, 盧舍那佛後佛幀畵 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87) 冥府殿
저승세계인 幽冥界를 상징하는 堂宇로 閻羅大王 등 10왕을 모신 殿閣이며 主尊은
地藏菩薩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 冥府世界의 왕인 閻羅大王을
모신 곳이라고 ‘冥府殿‘이라고 하며, 地藏菩薩을 主佛로 모신 곳이므로 ‘地藏殿’이라고도
하며, 地獄의 審判官인 十王을 모신 곳이므로 ‘十王殿’이라고도 한다.
冥府殿의 扁額과 柱聯은 韓國 近代佛敎의 大講伯 呑虛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88) 冥府殿 내부
主尊인 地藏菩薩의 左右挾侍는 스님모습의 道明尊者와 상자를 든 無毒鬼王이다.
(89) 羅漢殿
부처님의 弟子인 羅漢을 모신 法堂으로 ‘羅漢’은 ‘阿羅漢’의 略稱으로 ‘聖者’라는 뜻이다.
阿羅漢은 供養을 받을 자격[應供]을 갖추고 眞理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應眞을
갖춘 사람들이므로, 羅漢殿을 應眞殿이라고도 한다.
(90) 津寬寺 羅漢殿 佛壇
=津寬寺 塑三尊佛像(釋迦佛·彌勒菩薩·提和竭羅菩薩 -서울시유형문화재 143호
塑造의 釋迦三尊佛像은 羅漢殿의 本尊像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두 菩薩像이 侍立하고 있다.
정확한 製作年代는 알 수 없으나 耳目口鼻가 단정하게 표현된 얼굴, 활모양의 눈썹과 이와
연결된 우뚝한 콧등 등에서 16세기 말~17세기초반 佛像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三尊佛像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서울 인근 지역에 있는 조선후기 佛像 중에서
비교적 年代도 빠르고 三尊像이 모두 다 갖추어져 있으며, 保存狀態가 양호하다.
=津寬寺 靈山會上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45호
이 삼존불상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서울 隣近에 있는 조선후기 佛像 중에서 비교적
年代도 빠르고 三尊像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원래의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고, 菩薩像의
寶冠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畵面 右側下段의 畵記에 이 佛畵는 19세기 후반 王室의 尙宮이 發願하여 조성되었는데,
靈山殿의 後佛上壇幀으로서 16羅漢禎 4폭, 釋帝桓因使者幀 2폭, 觀音幀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원래는 羅漢殿이 아니라 靈山殿에
봉안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橫軸의 畵面과 단아한 형태, 밝은 主調色 등 19세기말 佛畵의 特徵을 보여주고 있는
靈山會上圖로서 當代 佛畵 중 대표작에 속한다.
(91) 獨聖閣
南印度의 天台山에서 홀로 수행한 聖者 那畔尊者를 모신 사찰의 殿閣으로,
獨聖 那畔尊者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衆生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92) 獨聖閣 내부
=津寬寺 塑 獨聖像 -서울시문화재자료 제11호
조선시대 塑造 那畔尊者像(獨聖像)으로 身體에 비하여 얼굴이 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댄
모습 등 七星閣의 石佛坐像과 닮았다. 대부분의 獨聖은 佛畵에서는 나이든 羅漢으로
표현되는 것이 원칙이나 젊은 나한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이 塑造獨聖像은
서울·경기 일원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독성조각으로 意義가 있으며, 당시 獨聖像의
특징과 彫刻樣式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津寬寺 獨聖圖 -서울시문화재자료 제12호
撑畵 獨聖圖 民畵風의 산수를 배경으로 獨聖과 侍者, 童子 등을 그렸으며, 가로 2m가 넘는
大作으로 洪淳謨와 尙宮 李氏의 施主로 19세기말∼20세기초 京畿道 일원에서 활약하던
畵僧 慶船堂 應釋이 1907년에 제작하였다. 그림의 背景은 那畔尊者가 거주하던 南印度
天台山으로 보이는데 특히 화면 오른쪽에 그린 靑綠色의 소나무와 山岳 등은 民畵에서 자주
묘사되던 모티프이다. 전체적으로 筆線이 流麗하며 작품성이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93) 津寬寺 七星閣 -서울시문화재자료 제33호
七星閣은 佛敎에 흡수된 민간신앙인 七星神을 모시고 있는데, 北斗七星은 財物과 才能을
주고, 壽命을 관장하며, 비를 내려 豊年 들게 하는 神으로 民間에서 널리 信仰하던 民間信仰
要素를 흡수하여 佛敎化 통불교적인 韓國佛敎의 特性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隆熙 1년(1907)에 건립되었으며 6.25전쟁 때도 羅漢殿, 獨聖閣과 燒失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은 건물이다.
(94) 七星閣 내부
*津寬寺 七星圖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47호 -七星閣 後佛幀 -1910년 작
熾星光如來를 중심으로 七星과 星君 등을 묘사하였다. 중앙에 結跏趺坐한 熾星光如來는
붉은 法衣를 걸치고 오른손은 가슴 부위에,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앉아 있는데 뾰족한
肉髻 위에는 圓形의 頂上髻珠가 표현되었다. 熾星光如來의 좌우에는 7구의 七星如來가
熾星光如來를 향하여 合掌하고 서 있는데 모두 붉은 法衣를 입고 있으며 熾星光如來와 같이
뾰족한 肉髻가 돋보인다.
이 佛畵는 20세기 초반의 佛畵樣式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정확한 조성연대와 畵僧 등이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 서울 인근지역에는 드문 七星圖로 주목된다.
(95) 七星閣에서 발견된 白初月 스님의 獨立運動史料
*白初月(1878~1944) -慶南 晋州 -본명 道洙 -號 初月 -法名 東照
僧侶로 明進學校 교장, 3·1運動後 韓國民團部 部長, 抗日新聞 [革新公報] 社長, 寺刹을 통해
軍資金을 모금하고 愛國靑年들을 뽑아 吉林의 獨立軍 및 上海臨時政府에 파견하였다.
日警에 체포되어 麻浦·大田 형무소를 거쳐 淸州刑務所에서 獄死하였다. 1986년 建國褒章,
1990년 愛國章이 追敍되었다.
(96) 七星閣 後園
알 수 없는 원형구조물 뒤에 소형 磨崖佛과 그 옆에 石造 佛錢函이 있다.
(97) 寂默堂
(98) 動靜閣
사모지붕의 목조건물로, 1975년에 진관스님이 신축했으며, 扁額은 呑虛스님 글씨이다.
(99) 津寬寺 梵鐘
1974년에 조성된 높이 160㎝, 구경 91㎝, 무게 300관의 大形梵鐘이다.
(100) 那迦院. 津寬寺 寮舍채
1972년에 津寬스님이 신축한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 내부의
정면 3칸은 대중방으로, 좌우 2칸은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石造觀音菩薩坐像과
阿彌陀後佛紅幀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101) [那迦院] 편액
(102) 마음의 庭園 ‘菩提樹’ -陸英修 女士 記念植樹(1970년)
(103) 那迦院 뒤 장독대
(104) 香積堂, 山寺飮食體驗館
(105) 僊遊院(선유원) (*僊:
신선 선 =仙)
(106) 蓮池院, 차와 氷水 등을 파는 茶苑이다.
(107) 蓮池院 출입구
(108) 蓮池院 입구 편액 [松風煮茗] (*煮: 삶을 자 *茗: 차 싹 명)
(109) 山寺飮食硏究所, 뒤에 香積堂이 보인다.
(110) 북한산 누리길
(111) 津寬寺溪谷
(112) 느티나무 -보호수 서12-11호 -壽齡 170년 –樹高 12m -胸高둘레 4.2m
(113) 진관사계곡길, 뒤돌아본 모습
*踏査를 끝내고 午餐場까지는 더 가야 하는데 다리에 문제가 생겨 포기하고 歸家하였다.
- 끝 -
첫댓글 늘 가본사람보다안가보고 앉아서 고산의 글을 읽는게 더많이 알게됩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