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갑오년 1월 (1594년 1월)
2
1월 초1일 (경진)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양력 2월 20일]
3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하게 되니, 난리 중에서도 다행 한 일이다.
4
저녁나절에 군사훈련과 전쟁준비하는 일로 본영으로 돌아 오는데, 비가 그치지 않았다.
5
사과(司果: 五衛의 종6품 군사직 벼슬) 신(愼)씨에게 문안하였다.
6
1월 2일 (신사) 비는 그쳤으나 흐렸다. [양력 2월 21일]
7
나라제삿날(明宗 仁順王后 沈氏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8
사과 신을 청하여 같이 이야기했다.
9
첨지 배경남(裵慶男)도 왔다.
10
1월 3일 (임오) 맑다. [양력 2월 22일]
11
동헌에 나가 공물를 보았다.
12
해질 무렵에 관사로 돌아와서 조카들과 이야기했다.
13
1월 4일 (계미) 맑다. [양력 2월 23일]
14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공문을 써 보냈다.
15
저녁에 사과 신 ∙ 첨지 배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
16
남홍점(南鴻漸)이 본영에 이르렀기에 그 가족이 달아나 숨어지냈는지를 물었다.
17
1월 5일 (갑신) 비가 내렸다. [양력 2월 24일]
18
사과 신이 와서 이야기했다.
19
1월 6일 (을유) 비왔다. [양력 2월 25일]
20
동헌에 나가 남평(南平)의 도병방(都兵房)을 처형했다.
21
저녁 내내 공무를 보며 공문을 써서 내려 주었다.
22
1월 7일 (병술) 비왔다. [양력 2월 26일]
23
동헌에 앉아 공무를 보고, 공문을 적어 보냈다.
24
저녁에 남의길(南宜吉)이 들어와서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25
1월 8일 (정해) 맑다. [양력 2월 27일]
26
동헌 방에 앉아서 배첨지 ∙ 남의길(南宜吉)과 종일 이야기 했다.
27
저녁자절에 공무를 보았으며, 남원(南原)의 도병방(都兵房)을 처형했다.
28
1월 9일 (무자) 맑다. [양력 2월 28일]
29
아침에 남의길(南宜吉)과 이야기했다.
30
1월 10일 (기축) 맑다. [양력 3월 1일]
31
아침에 남의길(南宜吉)을 맞이하여 이야기하다가 피난하던 때의 일과 그 때 길바닥에서 고생하던 상황을 죄다 들으니, 개탄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
32
1월 11일 (경인)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3월 2일]
33
아침에 어머니를 볼려고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바로 곰내(古音川; 熊川)에 대었다. 남의길(南宜吉) ∙ 윤사행(尹士行) ∙ 조카 분(芬)이 함께 가서, 어머니 앞에 가서 뵈니 어머니는 아직 주무시며 일어 나지 않으셨다. 화가 나서 소리내는 바람에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기력은 약하고 숨이 금방 넘어갈듯 깔딱거려, 죽을 때가 가까와진 것 같아 감추는 눈물이 절로 내렸다. 말씀하시는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34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이 날 저녁에 손수약(孫守約)의 아내가 죽었다는 부음(訃音)을 들었다.
35
1월 12일 (신묘) 맑다 [양력 3월 3일]
36
아침식사를 한 뒤에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37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
38
고 두번 세번 타이르시며, 조금도 떠나는 뜻이 싫어 탄식하지 않으셨다.
39
선창(船倉)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다.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40
1월 13일 (임진)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4일]
41
몸이 너무 불편하여 자리에 누워서 땀을 내었다.
42
종 팽수(彭壽) ∙ 평세(平世) 등이 와서 봤다.
43
1월 14일 (계사) 흐리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5일]
44
아침에 조카 뇌의 편지를 보니, 아산의 산소에 설날 제사를 지낼 적에, 군호로 불러 모은 무리가 무려 이백 여 명이 산을 에워싸고 음식을 달라고 오르내렸다고 하니, 놀랍고도 놀랍다.
45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가 장계를 봉함하고, 또 승장 의능에게 천민의 신분을 면해준다는 공문을 봉하여 올렸다.
46
1월 15일 (갑오) 맑다. [양력 3월 6일]
47
이른 아침에 남의길(南宜吉)과 조카들과 함께 있다가 동헌으로 나갔다. 남의길은 영광으로 가고자 했다.
48
종 진(辰)을 찾아내는 공문을 만들었다.
49
동궁(광해군)의 명령이 있었는데,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적을 토벌하라는 것이었다.
50
1월 16일 (을미) 맑다. [양력 3월7일]
51
아침에 남의길(南宜吉)을 불러 와서 잔치를 벌려 작별했다. 나도 몹시 취했다.
52
저녁나절에 동헌에 나갔다. 황득중(黃得中)이 들어왔다. 소문에, "문학 유몽인(柳夢寅)이 암행어사로 흥양현에 들어왔다" 고 한다. 잡문서가 그의 손에 들어갔다고 했다.
53
저물 무렵 방답과 배 첨지가 와서 이야기했다.
54
1월 17일 (병신) 새벽에 눈이 오고 저녁나절에 비가 왔다. [양력 3월 8일]
55
이른 아침에 배에 올라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와 아들 등을 배웅 했다. 다만 조카 분(芬)과 아들 울(蔚)을 배로 데리고 떠났다.
56
오늘 장계를 띄워 보냈다.
57
오후 네 시쯤에 와두(노량 땅)에 이르니, 역풍에 물이 빠져 배를 운행할 수가 없었다. 닻을 내리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여섯 시쯤에 다시 닻을 올려 노량에 이르렀다.
58
여도만호(김인영) ∙ 순천의 이함(李 ) ∙ 우후(이몽구)도 와서 잤다.
59
1월 18일 (정유) 맑다. [양력 3월 9일]
60
새벽에 떠날 때는 역풍(샛바람)이 세게 일었다. 창신도(남해군 창선도)에 이르니, 바람이 순하게(하늬바람) 불어, 돛을 올려 사량에 이르니까, 바람이 도로 거슬러(샛바람) 세게 불었다.
61
다만, 사량만호 이여염(李汝恬)과 수사의 군관 전윤(田允)이 와서 봤다.
62
전(田允)이 말하기를 `수군을 거창으로 붙잡아 왔다고 하며, 원수(권율)가 중간에서 해치려 한다고 했다. 우습다. 옛부터 공을 시기하는 것이 이같은 것이니, 무엇을 한탄하랴!
63
그대로 잤다.
64
1월 19일 (무술)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이고 바람이 세게 불더니 해질 무렵에는 더 거세어졌다. [양력 3월 10일]
65
아침에 출항하여 당포 바깥 바다에 이르러, 바람을 따라 돛을 반 쯤만 올려도 순식간에 한산도에 도착하였다.
66
활터 정자에 올라 앉아 여러 장수와 더불어 이야기했다.
67
저녁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왔다. 소비포권관 이영남(李英男)에게서 영남의 여러 배의 사부 및 격군이 거의 다 굶어 죽겠다는 말을 들으니,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68
수사 원균 ∙ 공연수(孔連水) ∙ 이극성(李克誠)이 곁눈질해뒀던 여자를 몽땅 몰래 관계했다고 한다.
69
1월 20일 (기해)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11일]
70
추위가 살를 도려내는 듯하여 여러 배에서 옷 없는 사람들이 거북이 처럼 웅크리고 추위에 떠는 소리는 차미 듣지를 못하겠다. 군량미조차 오지를 않으니, 더욱 민망스럽다.
71
낙안군수 ∙ 우수 사우후가 와서 보다.
72
저녁나절에 소비포권관 ∙ 웅천현감 ∙ 진해현감도 왔다.
73
진해는 명령을 거부하여 머뭇거리며 오지 않았으므로 죄주려고 했다 그래서 만나지 않았다.
74
바람기가 자는 듯했으나 순천이 들어 올 것이 염려되었다.
75
병들어 죽은 자들을 거두어 장사지낼 차사원으로 녹도만호를 정하여 보냈다.
76
1월 21일 (경자) 맑다. [양력 3월12일]
77
아침에 본영의 격군 칠백마흔두 명에게 술을 먹였다.
78
광양현감(어영담)이 들어왔다.
79
저녁에 녹도만호(송여종)가 와서 보고하는데,
80
"병들어 죽은 시체가 이백열네 명을 거두어서 묻었다"
81
고 한다.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두 명이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의 진영에서 와서 여러가지 적정을 상세히 말하긴 했으나, 믿을 수가 없다.
82
1월 22일 (신축) 맑다. [양력 3월 13일]
83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84
활터 정자에 올라 앉아 진해현감으로 하여금 교서에 숙배례를 행하게 했다. 활을 종일 쏘았다.
85
녹도만호가 병들어 죽은 시체 이백열일곱 명을 거두어 묻었다고 했다.
86
1월 23일 (임인) 맑다. [양력 3월 14일]
87
낙안군수가 아뢰고 나갔다.
88
흥양의 전선 두 척이 들어왔다.
89
최천보(崔天寶) ∙ 류황(柳滉) ∙ 류충신(柳忠信) ∙ 정량(丁良) 등이 들어 왔다.
90
저녁나절에 순천부사가 들어 왔다.
91
1월 24일 (계묘) 맑고 따뜻하다. [양력 3월 15일]
92
아침에 산역(山役)하는 일로 자귀장이(耳匠) 마흔한 명을 송덕일 (宋得馹)이 거느리고 갔다.
93
영남우수사 원균(元均)이 군관을 보내 어 보고하기를,
94
"경상좌도에 있는 왜적 삼백 여 명을 목베어 죽였다"
95
고 한다. 정말 기쁜 일이다.
96
평의지(대마도주 종의지)가 지금 웅천에 있다고 하는데, 밝혀지지는 않았다.
97
류황(柳滉)을 불러서 암행어사가 붙잡아 간 것을 물었더니, 문서가 멋대로 꾸며졌다고 하였다. 놀랍다.
98
또 격군의 일을 들으니, 고을 아전들의 간악한 짓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99
전령을 내려 모집한 의병 백마흔네 명을 붙잡아 오라고 하고, 또 현감에게 독촉하여 전령을 보내게 했다.
100
1월 25일 (갑진)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였다. [양력 3월 16일]
101
송두남(宋斗男) ∙ 이상록(李尙祿) 등이 새로 만든 배를 돌아오게 하려고 사부와 격군 백서른두 명을 거느리고 갔다.
102
아침에 우수사 우후(이정충)가 와서 여기서 같이 아침밥을 먹고서 저녁나절까지 활을 쏘았다.
103
우수사 우후가 여도만호(김인영)와 활쏘기 시합을 했는데 여도만호가 일곱 푼을 이겼다. 나는 활을 열 순을 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스무 순을 쏘았다.
104
저녁에 종 허산(許山)이 술병을 훔치다가 붙잡혔기에 곤장을 쳤다.
105
1월 26일 (을사) 맑다. [양력 3월 17일]
106
아침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서 활 열 순을 쏘았다.
107
순천부사(권준)가 기일을 어긴 죄를 논했다.
108
오후에 사로잡혔다가 도망해온 진주 여자 한 명, 고성 여자 한 명, 서울 사람 두 명을 데려 왔다. 서울 사람은 정창연(鄭昌衍)과 김명원(金命元)의 종이라고 했다.
109
또 왜놈 하나가 스스로 와서 항복하였다고 와서 보고했다.
110
1월 27일 (병오) 맑다. [양력 3월 18일]
111
새벽에 배 만들 목재를 끌어 올 일로 우후(이몽구)가 나갔다.
112
새벽에 변유헌과 이경복이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113
아침에 충청수사의 답장이 왔다.
114
어머니 편지와 아우 여필의 편지가 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 고 했다. 다행이다.
115
다만, 동문 밖 해운대(여수시 동북쪽에 있음) 옆에 횃불 든 강도가 들었고 미평(未坪)에 횃불 든 강도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놀랍고 놀랄 일이다.
116
저녁나절에 미조항첨사 ∙ 순천부사가 같이 왔다.
117
솟장과 그 밖의 공문을 써 보냈다.
118
스스로 항복해온 왜놈을 잡아 왔기에 문초했다.
119
수사 원균(元均)의 군관 양밀이 제주 판관의 편지와 마장 ∙ 해산물 ∙ 귤 ∙ 유자를 가지고 왔다. 즉시 어머니께 보냈다.
120
저녁에 녹도의 복병한 곳에 왜적 다섯 명이 마구 함부로 다니면 서 포를 쏠 적에 한 놈을 쏘아 목을 베고 나머지는 화살을 맞고는 도망을 가버렸다.
121
저물무렵에 소비포가 왔다.
122
우후의 배가 재목을 싣고 왔다.
123
1월 28일 (정미) 맑다. [양력 3월 19일]
124
아침에 우후가 와서 봤다.
125
종사관에게 낱낱이 공문을 조회하여 써서 강진 영리에게 주어 보냈다.
126
저녁나절에 원식이 서울로 올라 간다고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127
아침에 경상우후(이의득)가 보고하기를,
128
"명나라 제독 유정이 군사를 돌려 이달 25 ∙ 26 일 사이에 올라간다"
129
고 하며, 또,
130
"위무사(장병을 위로하러 파견 된 관리) 홍문교리 권협이 도내를 순시한 뒤에 수군영으로 온다"
131
고 하며, 또,
132
"화적 이산겸(李山謙) 등을 잡아다 가두고, 아산 ∙ 온양 등지에서 함부로 다니는 도적떼 아흔 여 명을 잡아서 목을 베었다"
133
고 했다. 또,
134
"익호장(김덕령) 근일 중에 들어 올 것이다"
135
고 했다. 저물무렵에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내려 쓸쓸했다. 전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136
1월 29일 (무신) 비가 종일 오고 밤새도록 왔다. [양력 3월 20]
137
새벽에 각 배들이 아무 탈 없다고 한다. 몸이 불편하여 저녁에 누워서 신음했다.
138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거세어 배를 안정하게 매어 둘 수가 없으니, 마음이 몹시도 괴롭다.
139
미조항첨사(김승룡)가 배를 꾸밀 일로 돌아갔다.
140
1월 30일 (기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21일]
141
저녁나절에는 개이고 바람도 조금 잠잠했다.
142
순천부사 및 우수사 우후 ∙ 강진현감(류해)이 왔다.
143
미조항첨사가 와서 아뢰고 돌아 갔다. 그래서 평산포의 도망군 세 명을 잡아와서 그 편에 딸려 보냈다.
144
나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땀을 흘렸다. 군관과 여러 장수들은 활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