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4. 21:09 (한국시간)
'長恨歌' 라는 글이 하늘에 새겨지고 ....
백거이의 상상력과 문필력이 살아있는 서사시를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장예모 감독은 1988년 '붉은 수수밭' 으로 데뷔,
우리나라에서는 평창올림픽 폐회식을 주관 하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양귀비를 부축하고....)
주인공은 황제와 중국 4 대미인 중 최고인 양귀비,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은 천재시인 백거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것 같다.
(양귀비의 치마폭을 붙잡고 매달리는 ....)
이태백이 떠나고 10 년, 두보도 떠난지 2 년 ~
백거이는 낙양의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나
29세 최연소 진사 급제, 32 살에 황제의 친시에 합격한 천재시인....
양귀비가 죽은지 50년만에
백거이에 의해 장한가는 만들어 졌다.
737년..
현종은 왕후가 죽고,
무측전의 손질녀인 애첩 무혜비(武惠妃)마저 죽어 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정사조차 돌보지 않는다.
후궁의 미녀 3천명도 마음을 끄는 여인은 없었으나,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자신의 열 여덟번째 아들 수왕 (李瑁:이모)의 비(壽王妃),
즉, 며느리가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라는 것이었다.
(현종은 조여비, 황보덕, 유재인등 사이에 여러 아들이 있었다)
수왕비(양귀비)가 화정지로 피서를 간다는 걸
환관 고력사가 현종에게 얘기했고
현종은 무혜비를 닮은 양귀비를 보자 한눈에 마음이 끌렸다.
(양귀비의 목욕하는 이미지)
양귀비는
미모 뿐만 아니라
음악·무용 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악보를 보자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서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때 양귀비 나이는 22세, 현종은 57세였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양귀비 뜻이라 빙자하여
무혜비을 위하여 도교에 귀의하도록 한 후
그녀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남궁에서 살게 하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은 수왕 이모에게 위씨의 딸을 보내 아내로 삼게 하였다.
(老牛吃嫩草 노우흘눈초 : 늙은 소가 어린 풀을 좋아한다는 중국속담)~
한나라 황제는 경국지색을 사모하셨건만,
용상에 오르신지 오래도록 찾아내지 못하셨다.
양씨 댁 아가씨 이제 다 자랐건만,
규중에 깊숙이 있으니 아는 사람 없었다.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만은
스스로도 못 버리는 법,
하루 아침 뽑혀서 천자님 곁에 모셨다.
<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
양귀비는 수왕과 혼인할 때 나이가 16살....
이후 22살에 당현종과 만나기 전
이미 자녀가 둘이나 있었다고 전한다.
당현종에게 마음을 줄 수 없었고
오랜 세월 웃지도 않았고
술과 함께 방탕한 세월을 보냈다.
구름같은 머리칼, 꽃다운 얼굴, 황금 비녀,
부용꽃 방장에서 따뜻하게 봄 밤을 지냈다.
봄 밤은 너무나 짧아, 해가 이미 높이 올랐구나.
이때부터 황제께서는 조회에 나오지 않으셨다.
<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
(현종의 길을 막고 양귀비를 처단하라고 ~)
현종은 안록산의 난으로
서쪽의 사천성으로 도주 중,
근위병들이 양귀비를 죽일 것을 청하자
양귀비는 비로소 현종에게 마음을 열며
자결을 결심한다.
上天願作比翼鳥 하늘의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의 연리지가 되자고 했다
구중궁궐에 연기의 티끌이 얼마인가
수천의 수레와 말은 서남쪽으로 갔다.
비취 깃발은 흔들흔들 가다가 서다가,
서쪽으로 도정의 문을 나서기 백 리 남짓,
육군이 꿈쩍 않으니 어찌 할 수 없구나 ~
곱다란 아미 숙이고 말 앞에서 죽었구나 !
꽃비녀 땅에 버려졌지만 집는 사람 없었다.
비취 깃털, 공작비녀, 또 옥비녀도~
황제는 얼굴 가리고 구해 주지 못하셨다.
돌아보는 얼굴에는 피눈물이 섞여서 흘렀다.
<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
2018. 6. 4 22:20 (한국시간)
당 현종이 운다
비가 쏟아진다.....
설명 전부 필요없다, 동영상을 보시라 ....ㅎㅎ
https://youtu.be/KXGbi7Ipexo
첫댓글 고맙습니다.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