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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 6 또 임신하여 - 딸
(7) 딸
히브리어에서 장소 및 나라의 이름은 여성이다.
어떤 성읍이나 나라를 인격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딸'과 지명을 한 데 붙여 표현한다.
'딸 애굽’
* 렘 46: 11 - 처녀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 네가 치료를 많이 받아도 효력이 없어 낫지 못하리라.
* 렘 46: 24 -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딸 시온'
* 왕하 19: 21 -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 사 1: 8 -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 미 4: 8-13 –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
'시온의 딸’
* 습 3: 14 -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슥 9: 9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 마 21: 5 –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 요 12: 15 -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이는 보통 해당되는 나라나 성읍의 주민 전체를 가리킨다.
이리하여 '딸 시온'(또는 '시온의 딸'.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하다)은 '예루살렘 성읍'이나 '예루살렘 주민'이나 '시온 산 위의 성전에 모여 있는 회중'을 뜻할 수 있다.
'딸'이 복수로 나올 때는, 그것이 부녀자들을 말하는지(이를테면 창 36: 2의 '가나안 여인'은 본디 '가나안의 딸들'이란 뜻이다) 아니면 성읍들 및 마을들을 말하는지(이를테면 시 48: 11의 '유다의 딸들')를 문맥을 보고 알아내야 한다.
* 창 36: 2 -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 시 48: 11 -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2]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1) 용서하지(사하지)
'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 -직역하면 '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 -의 난해함 때문에 본 구절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① '반드시 그들의 대적이 될 것이다'(LXX).
이는 '나사'를 '사네'(*), 곧 '미움받는 자'로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② 그것들을 완전히 제거할 것이다'(KJV, Pusey, Henderson).
③ '그들을 버릴 것이다'(Meier, Hengstenberg).
④ '그들을 잊을 것이다'(Vulgate).
⑤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SV, NEB, JB).
그러나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이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배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을 폐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앞으로 닥쳐올 북왕국의 멸망과 재난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3] 루하마의 사랑
암미라는 이름과 루하마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여기에 꼭 한 번 나온다.
성경에 여러 번 나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만 나오니까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암미라는 사람과 루하마라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로맨틱한 사랑, 에로스의 사랑, 이런 것을 떠올리는데 그래서 낭만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륜이 됩니다.
암미와 루하마는 남매로 루하마가 누나이고 암미는 남자 동생입니다.
‘암미와 루하마의 사랑‘의 정확한 뜻은 ‘암미라는 이름과 루하마라는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암미라는 이름과 루하마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성경 본문 밑에 작은 글씨로 그 이름의 뜻이 나와 있습니다.
암미는 “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루하마는 무엇입니까?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성서」는 루하마를 “귀염둥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하마의 원래 이름은 로루하마(Lo-ruhamah)입니다.
본절을 보면 선지자 호세아의 부인이 딸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고 하셨다.
히브리어에서 앞에 “로”가 붙으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와 비슷합니다. 영어도 앞에 ‘노’가 붙으면 ‘아니다’이지요.
히브리어 ‘로’는 뜻이 더 강합니다. ‘절대로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입니다.
앞에서 루하마의 뜻이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면 앞에 ‘로’가 붙었으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공동번역성서」는 “로루하마”를 “천더기”라고 번역했습니다.
암미의 원래 이름은 로암미(Lo-ammi)입니다.
8절을 보면. 호세아의 부인이 이번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고 하셨다.
앞에서 암미의 뜻은 “내 백성이라”입니다.
그러면 앞에 “로”가 붙었으니 “내 백성이 아니라”가 됩니다.
「공동번역성서」는 로암미를 “버린 자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귀한 딸과 아들에게 왜 이렇게 좋지 않은 뜻을 가진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꾸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2절 끝을 보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6장 7절에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라고 하셨고,
레위기 26장 12절에서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하셨으며,
신명기 26장 18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꾸 배반하니까 진노하셔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야!’ 하셨다.
그리고서 2장 1절에서는 다시 암미라고 해라, 루하마라고 해라, 너희는 내 백성이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고 하셨다.
취소한 것을 다시 취소한 것입니다.
환원하면 원상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대단히 불경스러운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호세아서의 하나님은 ‘변덕이 심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잘 뒤집으시는 것일까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번복하시는 것입니까?
초지일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사랑이다.
호세아의 별명은 ‘사랑의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의 이 암미와 루하마의 사랑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암미와 루하마의 사랑, 암미라는 이름, 루하마라는 이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그러나’의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은 본 절에서 ‘네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해라, 나는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7절에서 바로 이것을 뒤집습니다.
이 뒤집는 말이 “그러나”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권적인 사랑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암미와 루하마의 사랑은 성경의 대단히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로마서 9장에서 인용하고 있다.
* 롬 9: 25-26 –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맥락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토기장이 이야기가 나온다.
토기장이는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 나는 그릇’
이것은 이사야서 29장 15절과 16절에도 나오고 예레미야 18장에도 나온다.
호세아도 8장에서 그릇 이야기를 하였다(8: 8).
‘하나님은 토기장이,’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이다.’ 이런 뜻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변덕이 심한 분’이라고 한 것도 품위 문제 때문에 말을 풀어 바꿨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뜻이니 양해하세요.
‘하나님은 토기장이, 나는 그릇’ 이것을 우리가 알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엿장수, 나는 그 손에 들려 있는 엿 한 가락’ 이렇게 됩니다.
그 엿을 어떻게 자르냐 하는 것은 엿장수 마음입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돈이 없는데 엿장수가 엿을 잘라 주었습니다.
예전에 마을에 엿장수가 큼직한 가위를 쩔걱쩔걱하면서 들어오면 어린애들이 모여듭니다.
엿은 먹고 싶은데 돈은 없고, 엿목판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면 마음씨 좋은 엿장수가 엿을 잘라주는 수가 있었습니다.
고맙지요. 그것도 조그맣게 자른 것이 아니라 큼직하게 잘라주면 더 고맙지요.
그럴 때 어린이들에게 그 엿장수는 한없이 고맙고 위대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창조적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능동적인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의외(意外)의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창조적 사랑, 일반적 사랑, 능동적 사랑이나 의외의 사랑은 설교자가 만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학적인 말이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주권적인 사랑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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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잠 28:28).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할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나의 작은 미소 때문에 내가 해준 말 한마디 때문에 그리고 내가 베푼 작은 친절과 포근한 사랑 때문에,,,,,,,
오늘은 나로 인해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게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웃음꽃이 활짝 피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이 가득한 희망찬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