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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오늘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날입니다. “송(送)”이 보낸다는 뜻이고 “구(舊)”가 “예 구(舊)”로 “옛날”, “영(迎)”이 환영하고 맞이한다는 뜻이고 “신(新)”은 “새 신(新)”으로 “새롭다”라는 뜻입니다.
“송구영신”,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새롭다”가 한자로는 “신(新)”입니다. “신(新)”이 “새롭다”라는 뜻입니다. 마트에 새로 나온 “새로운 상품”을 가리켜 “신상품(新商品)”이라 합니다.
“새로운 언약(言約)”을 가리켜서 “신약(新約)”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언약(言約), 신약(新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잖습니까? 오래된 언약이 구약이고, 새로운 언약이 신약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언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약, 신약은 어떻게 다른가? 오늘은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신약”에 대한,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이 기록되었습니다. “신탁(神託)”이라는 한자어는 “신(神)의 부탁(付託)”을 뜻하는 말입니다.
1. 예루살렘에 관한 구원의 신탁입니다(렘 31:23~26).
예레미야 31장 23절에 “이 말을 유다의 땅과 그 성읍들에 말할 것이니 그들의 포로로 잡힌 자를 나의 되돌리는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무슨 말이냐? “예루살렘”은 “유다” 나라의 서울이었는데 한국 서울은 서울이잖습니까? 유다 왕국 서울이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 나라의 으뜸인 도시인 수도(首都)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나오고 있는 “여호와”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즉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예레미야 예언자가 앞으로 유다 나라 사람들이 바벨론이라는 제국, 오늘날 미국과 같은 큰 나라와의 전쟁에서 져서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바벨론 땅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포로(捕虜)”라는 말은 “사로잡는다”, “산 채로 붙잡는다”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붙잡혀 바벨론에 끌려갈 것을 그는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만 예언하지 않았고, 70년 후에 그들이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오게 될 것도 예언한 것입니다.
“성읍”은 “도시”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가 이러한 모양이지만 옛날에는 도시 바깥에 빙 둘러서 돌로 벽을 높게 쌓았습니다.
남한산성 안에 동네가 있는데 동네 바깥으로 벽을 놓게 쌓아놨습니다. 이렇게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성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복을 주시노라, 올바름의 거처 성별의 산이여.”라고 그들이 말할 것입니다(렘 31:23).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산”은 한자로 “성별된 산”이며, 줄일 때 “성산”이 되는 것입니다. 도시가 있는 산을 가리켜서 “성산”, “신성한 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유다와 모든 그의 성읍들이 농부들과 함께 거주하게 되겠고, 여행하는(who travel) 자들이 그 떼 안에 있습니다(렘 31:24).
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서 바벨론에 끌려가고 난 후에, 그 땅이 텅텅 비고 야생동물이 살았는데, 그 땅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 그 땅에 다시 사람들이 살고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목축하는 사람들은 양들과 소들을 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유다의 회복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돌아오고 회복될 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하여 회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을 하는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알다”라는 단어는 지식으로만 안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아는 것이 되는 것이 됩니다.
“알다”라는 단어는 행동이 따르며, 행동하여야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생각해 본다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나서 행동은 변화되지 아니하고 옛날하고 지금 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면 그 삶이 변화되겠습니까? 생각만 하는데 어떻게 삶이 바뀝니까?
지금껏 술 먹고 살았으면 술을 끊고 행동이 변화되어야 삶이 변화되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옛날과 똑같이 행동하면 삶이 회복되겠습니까?
가수 김종국이 노래를 부를 때 그 높이가 3옥타브 솔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김종국이 노래를 부르면 어떻습니까? 목소리가 가늘어집니다. 그래서 여자 목소리처럼도 들리고 들을 때에 감미롭습니다. 달콤합니다. 그런데 유재석이 자주 김종국을 모기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고 놀립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그렇게 높은음을 부를 때 목소리가 가늘어지게 됩니다.
김종국이 군대 가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고 4급을 받아 안 갔습니다. 엑스레이를 보면 허리가 휜 까닭에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김종국은 휘어진 허리뼈의 극복을 위해 근육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종국이 운동하여서 팔 두께가 보통 사람의 허벅지 두께만큼 굵습니다. 허리 근육이 생기니까 허리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약점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그 약점을 고쳐야지!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왜 허리가 아프고 내 몸은 왜 이렇게 약해!’라면서 맨날 자기 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살면 될 것입니까?
토인비는 그의 책에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산물”이라고 했는데, 시련이 있었기에 성취도 있었다는 뜻입니다.1)
삶에 시련이 도전하면 그 도전에 응전하고 이겨내야 성취가 있습니다. 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그것과 싸워서 이겨내야지 성취가 있는 것이지 허리가 아프다며 맨날 술 마시고 자면 어떻게 그 허리가 나을 것입니까?
‘내가 불행한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였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왜 부모님 탓을 합니까? 부모님 이혼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데요! 부모님이 이혼했어도 열심히 자기 인생을 개척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복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고 유턴하여야만 합니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 “내가 기운이 없는 영혼을 잔뜩 마시게 하겠고 모든 쇠약해지는(languish) 영혼을 채우겠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한다는 번역은 잔뜩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치고 기운이 없을 때 맛있는 음료를 마시면 기운이 회복되듯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친 영혼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심령, 쇠약해진 영혼을 채워주시겠다고, 에너지가 다 닳아서 텅 빈 상태를 다시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 그가 깨었고 보고 그의 잠이 그에 달았습니다(렘 31:26).
달콤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그 왕국이 평화롭다는 증거입니다.2)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을 씨를 뿌리십니다.
예레미야 31장 27~28절에 “보라 날들이 오고 있노라 야훼의 말이고,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인류의 씨와 짐승의 씨로 씨를 뿌릴 때고. 뿌리째 뽑고 헐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나쁘게 하려고 지켜본 것처럼, 그들 위에 짓기와 심으려고 지켜볼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1장 27~30절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에 관한 내용입니다.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인류와 짐승의 씨로 씨 뿌리실 것인데, 구원의 날들이 오고 있습니다(렘 31:27).
뿌리째 뽑고 헐고 파괴하고 멸망시키고 나쁘게 하려고 지켜본 것처럼, 짓고 심으려고 그들의 위에 지켜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31:28).
1:10에 쓰인 동사들의 반복은 멸망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확인시키며, 짓고 심을 것이라는 회복의 예언도 그대로 실현될 것을 확언합니다.4)
오래전에 기록된 신명기에 언약을 파기할 때 생길 일이 기록되었는데, 곧 하나님께서 노염과 큰 분노 안에 뿌리째 뽑으실 것입니다(신 29: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셨고 그들을 뿌리째 뽑으셨고 흩뿌리시니 그들이 아세라 목상으로 하나님을 성나게 했기 때문입니다(왕상 14:15).
하나님께서 뿌리째 뽑으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방문시키셨고(렘 1:10), 이제는 그가 그들을 심으시고 뿌리째 뽑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렘 24:6).
“뿌리째 뽑는다”(나타쉬)와 “헐다”(나타츠)라는 말은 앞의 발음이 같고 그가 민족과 왕국에 대해 뿌리째 뽑고 허신다고 말씀하십니다(렘 18:7).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의 이미지와 집의 이미지로 쓰였는데 뿌리째 뽑는 식물의 이미지와 허는 건물의 이미지가 비유로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허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방문하게 임명하셨는데(렘 1:10), 농원이 황야이고 성읍들이 그의 노염의 격분 앞에서 헐립니다(렘 4:26).
하나님께서 그의(against) 일어서는 자들을 무너뜨리십니다(출 15:7).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신(神)들을 무너뜨려야 하였습니다(출 23:24).
그가 무너뜨리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방문하게 임명하셨는데(렘 1:10), 이제 그는 다시 세우실 것이고 무너뜨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렘 24:6).
하나님께서 그들을 뿌리째 뽑으시고 무너뜨리시기 위해 감시하셨듯이 이제 지으시고 심으시기 위해 감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렘 31:28).
하나님께서 뿌리째 뽑고 멸망시키고 나쁘게 하려고 지켜보신 것 같이, 그와 같이 짓고 심으려고 지켜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31:28).
하나님의 백성은 나쁘게(악하게) 하기에 지혜로운 자들이고(렘 4:22),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나쁘게(evil) 한 자들이었습니다(렘 7:26).
표범이 그것의 반점(spot)들을 바꿀(change) 수 있다면 나쁘게 하기에 익숙한 그들 또한 선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렘 13:23).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도 많이 나쁘게(악하게) 하는 자들이었는데 각 사람이 그 자신의 악한 마음의 완고 뒤에 걷고 있었습니다(렘 16:12).
그들이 그들의 손의 제작품으로 하나님을 성나게 하지 아니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쁘게 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렘 25:6).
그런데 그들은 그의 말씀에 듣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손의 제작품으로 그를 성나게 하여 악을 가져왔습니다(렘 25:7).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이 불리는 성읍 안에 나쁘게 하게 시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그 땅의 모든 거주하는 자 위에 칼을 부르십니다(렘 25:29).
하나님께서 나쁘게 하시기 위해 죄인들 위에 지켜보셨는데(렘 31:28), 하나님께서 짓고 심는 것처럼 좋게 하시기 위해서도 지켜보실 것입니다. “짓는다”라는 용어는 “헐다”, “멸망시키다”의 반의어로 사용된 말입니다.
“심는다”라는 말은 포도원을 심는 것에 쓰였고(신 6:11, 16:21, 20:6),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나무처럼 포도원처럼 심으셨습니다(삼하 7: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골라 뽑은 포도나무로 심으셨으며 포도를 만들기에 기대하셨는데 그들이 들 포도를 만들었습니다(사 5: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뿌리째 뽑으시려고 그들을 감시하셨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심으시려고 감시하실 것입니다(렘 31:28).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뽑고, 헐고, 무너뜨리는 메시지로 보내셨는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그런 메시지를 전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보내시면서 이런 나쁜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십니까? 왜 성읍이 무너지고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십니까? 저, 좋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항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다른 예언자들이 왕에게 가서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왕이시여 이 성읍이 어떠한 곳입니까? 하나님의 집이 있지 아니합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을 멸망하게 놔두실 것입니까? 평화가 있습니다.’라고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서 전한 것입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라고 왕이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부자 되고 병 낫는다는 말을 듣고 싶죠! 사람들이 듣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며 들어야만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메시지는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들은 듣고 회개하는 메시지를 전하여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예레미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메신저가 이런 헐고 무너뜨리는 메시지를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이 고통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아멘 받아들이고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회복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인데, 전에 뽑으셨으나 이제 심으시고 전에 허무셨으나 이제 지으실 것입니다. ‘무너뜨리고 멸망시키는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야’라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가는 자는 회복과 천국 복락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버지들이 신 포도를 먹었고 아들들의 이가 시리게 되지 아니합니다. 신 포도를 먹은 인류의 이가 시리듯 사람이 그 죄악 안에 죽을 것입니다.
이전 세대의 결과를 다음 세대가 경험하게 된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은 속담을 통하여 표현되었습니다(렘 31:29).5)
‘왜 조상들이 죄를 범했는데 우리가 포로로 끌려갑니까?’라는 말이며, ‘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내 이가 시린 것입니까?’라는 말인데, 내 불행의 원인은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자기 죗값을 받습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정의로 그 백성을 징벌하시는 분이십니다(렘 30:11).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의 계획들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렘 30:24).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 이가 시리지 않고 내가 먹어 시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사람들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더라면,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이유는 자신들의 죄로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내 이가 시리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0절에 “사람은 그 죄악(罪惡) 안에 죽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 24장 16절에 “아버지들은 아들들에 대하여 죽지 아니하겠으며 아들들은 아버지들에 대하여(for) 죽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은 그의 범죄 때문에(for) 죽게 만들어질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미래가 그 조상들의 죄악으로 인한 결과 때문에 어둡지 않으며 사람이 그 조상들의 죄악 때문에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잘라내십니다(렘 31:31~34).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 “보라 날이 오고 있노라 야훼의 선언이고,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로운 언약을 잘라내는 때라. 이집트의 땅으로부터 나오게 만들기에 그 손에 나의 강하게 하기의 날에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잘라낸 그 언약과 같지 아니하니, 그들이 나의 언약을 깨뜨렸고(break) 내가 그들 안에 남편이던 것이라. 그러나 이것이 그날들의 뒤에 이스라엘의 집과 함께 잘라내는 언약이라, 내가 나의 율법을 그들의 내부에 주었으며 그들의 마음 위에 기록하겠고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에게 백성(百姓)이 되겠고. 그들이 동료를, 형제를 ‘야훼를 알라’고 말하게 가르치지 아니할 것이니, 그들의 모두가 그 작은 자로부터 그 큰 자까지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니, 내가 그들의 죄악에 용서하겠고 그들의 죄에 기억할 것이 아님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은 “보라 날들이 오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날들”은 여기에서는 구원의 날들을 언급합니다(렘 23:5, 30:3, 31:27). 보라(Behold), 구원의 날들이 오고(are coming) 있습니다(렘 31: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로운 언약을 자르실 때며, 이 새로운(new) 언약의 대상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전 27절에 이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6) “새로운 언약(言約)”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바꾼다면 “신약(新約)”입니다.
이집트의 땅으로부터 나오게 하기에 그 손에 나의 강하게 하기의 날에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잘라낸 그 언약과 같지 아니하니, 그들이 그의 언약을 깨뜨렸고 그가 그들에게 남편이셨습니다(렘 31:32).
“아버지들”이 “조상”(father)이나 “선조”(forefather)로 번역되었는데, 영어에서도 “father”나 “father”의 복수형이 “선조”를 뜻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다(be a husband)”라는 단어(바알)는 “결혼하다”(marry)를 뜻하며, “통치하다”(rule over)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약이 구약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그들은 그들에 남편이신 야훼 하나님의 언약인 구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구약을 깨뜨렸기에, 구약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신약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깨뜨린 구약과 같지 아니한 다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약은 새로운 언약입니다.
신약은 각기 다른 포로 지역이라는 지리적 차이가 제거된 것을 경험할 후세대와 맺어질 것입니다(렘 31:15~22). 이전의 언약은 예레미야까지의 모든 세대에 의해 깨어진 것입니다.7)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남편이셨는데 그가 그들과 결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잘라낸 결혼 서약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알”을 섬겼습니다.8)
그들은 “바알”을 예배함으로써 그들의 “남편”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결혼 언약을 깨뜨리듯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것이며, 그들이 예전의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예전의 언약은 끝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날들 뒤에 이스라엘의 집과 함께 잘라내는 언약인데, 그가 그의 율법을 그들의 내부에 주시고 그들의 마음 위에 기록하시겠고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그들은 그에게 백성에 될 것입니다(렘 31:33).
출애굽기 6장 7절에 “내가 너희를 나에게 백성에 취할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이 언약 공식 문구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연결됩니다.9)
레위기 26장 12절에 “내가 너희의 하나님에 될 것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에 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라는 말씀이 이렇게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약의 내용에 있어 오래된 언약[舊約]과 새로운 언약[新約]이 같으나 율법을 주심에 있어서 예전의 언약은 율법을 돌 위에 기록하였던 반면에 새로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을 사람의 마음 위에 기록하십니다.
신명기 31장은 예레미야 본문 31:31~34의 본질적인 배경입니다.10)
신명기 31장 6절에 “이 율법의 책을 그 언약의 궤의 곁으로부터 두고, 그것이 증거에 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장 16절에 “너희가 그 땅에 열매를 맺게 된 때에 되었으며,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언약궤를 말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율법은 언약의 궤의 곁에 보관하여 두지 아니할 것이고 신자들의 내부에 주어지고 신자들의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1)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0805
2) Gerald L. Keown, Pamela J. Scalise, Thomas G. Smothers,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7, 정일오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238.
3) 조휘, 『예레미야와 함께』 (서울: 도서출판 그리심, 2019), 617.
4)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39.
5)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0.
6)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0.
7)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2.
8)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3.
9)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4.
10) Scalise, 『예레미야 26-52』, WBC 성경주석, 245.
첫댓글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