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촉망받던 젊은이였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지만 비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똑똑했던 젊은이가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장례식장을 향하고 있다.
빗물 추적거리는 늦은 저녁, 스산한 바람을 타고 날리는 하얀 벚꽃 이파리들이 아스팔트에 작은 물보라 파장을 만들며 옷깃을 추스르게 한다. 푸르스름한 가로등 빛이 나무그림자들을 아스팔트에 뉘이고 어른거리게 해서 길바닥이 살아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요즈음은 그런 착각이 현실처럼 둔갑해버리는 세상이다.
컴퓨터그래픽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바로 눈앞에 보여 주는 마술을 부리곤 한다. 그래서 길이 꿈틀거리며 살아나 사람을 길 아가미로 삼켜버린다든지.
주차장은 썰렁하게 비어있다.
장례식장으로 통하는 좁은 계단의 비상용 형광등은 수명이 다 해 가는 듯 졸고 있고, 물 끼 머금은 시멘트 바닥은 축축한 밤기운을 더 차갑게 식히고 있는데, 식장 정문까지 오십여 미터를 가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조금은 이상스러웠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날씨마저 궂으니 문상객들의 발길이 끊어질 만도 하다. 그렇더라도 꽃잎 지는 소리가 사르락 사르락 들릴 정도로 고요가 집요해서, 또각또각 대리석 현관에 공명으로 울려 퍼지는 구두 찍는 소리만이 묘한 긴장감을 부추기고 있다.
김병진. 지하 1층 2호실.
장례식장 안내판에는 그 외에도 두 사람의 빈소가 더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김병진은 삼십을 갓 넘긴 젊은 청년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상객 수가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발자국 소리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적요함이 지하 계단을 내려 짚는 발길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 빈소로 굽어 내린 계단은 폭이 삼 미터정도로 넓은데 나는 어쩌다 정 중앙으로 계단을 밟아 내려가고 있었다. 내 발뒤꿈치를 놓치지 않고 따라 내리던 그림자는 내가 계단 아래로 내려갈 수록 길어지다가 이윽고 약해지고 있었다. 앞의 조명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문뜩 검은 상복의 치맛자락이 계단을 쓸어 올라오고 있었다.
검은 옷 때문인지 유난히 창백해 보이는 여인이 계단 중간에서 마주 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비켜 오르고 있다. 내가 이 식장 건물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 친 사람이었다. 검은색이 받쳐준 그녀의 얼굴은 백옥처럼 희고 고운데 둥근 이마에는 정수리에서 갈래진 머리가 비수처럼 눈썹 위를 가르고 있다.
그녀가 가로막았던 시야를 터 주자 조명이 환한 빈소가 정면으로 드러나는데 사람은 없고, 제단에 중년으로 보이는 여인의 영정만이 썰렁하게 놓여있다. 꽃 장식 속에 세워져 있는 여인의 강렬한 영정 사진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고운 얼굴, 텅 빈 빈소, 나와 영정 속의 여인만이 시선으로 교감하는 짧은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전율이 내 시선을 타고 전해졌던 것이다.
그것은 무서움이었다. 그리고 착각일까? 영정의 얼굴은 조금 전 스쳐지나간 바로 그녀의 얼굴과 같아 보였다.
시선을 돌려 옆 빈소로 향하는 동안에도 영정속 눈동자의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십 여 명이 지키고 있는 김병진의 빈소로 바삐 들어선 다음에야 묘한 감정의 일부라도 덜어 낼 수 있었으니, 짧은 거리를 무척 힘겹게 지나와서인지 정수리로부터 땀방울이 타 내리고 있었다.
검은 리본 밑으로 보이는 고인의 얼굴은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하다. 영정은 언제나 살아있었음을 증명해 보이듯 표정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도 고인의 표정에서는 엷은 미소가 흐르고 있다.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측은해 하는 속내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죽어서 평안을 얻는다면 살아서 힘든 시간을 채워야 하는 우리가 더 가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테이블에 메모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연희와 함께 갈 곳이 정해졌다. 그 곳은 현실의 날개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심연이다. 우린 그 심연으로의 여행에 초대된 것이다.>
고인의 주변에 연희라는 여자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간다는 심연은 어떤 곳인지, 수사관들은 그가 어떤 허상을 쫓다가 음독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죽음은 상실을 의미했다. 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상실감으로 허탈감에 빠져있었고, 그렇게 죽어버린 것, 그것으로 그는 유난히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정 앞에는 향이 피어오르고, 옆으로 국화송이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무덤덤하게 국화 한 송이를 뽑아 영정 밑에 놓고 뒤로 세 발짝 물러선 다음, 절을 할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고개만 숙여 눈을 감았다. 빈소에 와서 국화를 놓아본 것도 처음이고, 묵념만 한 것도 처음이었다. 고인이 나이는 서른을 넘겼다지만 아직 어려서 절을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주들과 절하는 것도 잊고 그냥 엉거주춤 인사말만 건네고 말았다. 그들은 자식을 잃었다는 것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이면서도 망연자실한 표정들이었다.
“심려 많으시지요? 정말 안됐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발인은 모레 합니까?”
“부검 실에서 검시가 늦어지고 있답니다. 검시가 끝나야 발인을 할 수 있을 텐데......”
“여러 가지로 힘드시겠습니다.”
“궂은 날씨에 이렇게 찾아 주셔서......”
“그럼 확실한 사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글쎄요……. 너무 믿어지지 않는 말들이라! 철부지도 아니고, 분별력이 그렇게 없는 아이도 아녔는데......”
상주들의 표정에 핏기가 사라지고 없다.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공부 써먹지도 못하고, 장가도 못 보내고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니 부모 마음인들 어떠하겠는가.
고인의 부모들과 잠깐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나는 옆 빈소에 누가 들락거리는지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으나 그 쪽에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없다. 그 쪽도 아마 갑자기 일을 당했지 싶었다. 그래서 아직 연고자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든지. 맞아! 그런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완전히 털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쪽에 대한 관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2.
십 여분 머무른 다음 상주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옆에 있는 그 빈소를 뒤로한 채 계단을 올랐다. 다시 뒷머리를 잡아 내리는 듯한 섬뜩함을 느끼면서 계단을 벗어나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가 가까워질 수록 리듬이 빠른 비트가 차츰 커져온다. 주차장 입구에 주차관리소가 있고, 그 옆에 승용차를 세운 뒤 음악을 틀어 주며 집사람을 대기시켰었다. 그녀는 무섭다며 한사코 장례식장에 함께 들리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볼륨을 높였을 것이다. 나이 오십에 겁이 많아서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그녀는 겁 많다는 표시로 큰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눈이 나를 끌었었다.
“웬 볼륨을 이리 높였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면서 라디오 볼륨으로 손이 먼저 갔다. 그러나 집사람의 손이 빠르다. 검은 옷소매 밖으로 내민 하얀 손이 볼륨을 되돌리고 있고 드럼에 뒤섞였던 타악기 소리는 급격하게 자지러든다.
“......?”
집사람은 말없이 볼륨 스위치를 놓더니 이번에는 내 어깨에 내려 앉아있는 벚꽃 잎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집어 내리고 있다. 그녀는 회색 언더셔스를 입고, 위에는 갈색 정장을 했었다. 그새 속옷을 갈아입었을 리가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얼굴을 확인하던 나는 등줄기가 오싹해 옴을 느끼며 몸을 뒤로 바짝 물렸다.
“다, 당신... 누구요?”
말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기나 한 것인지, 하지만 말을 뱉고 나니 조금 기가 살아났다.
“손님들은 많아요? 생각보다 일찍 나왔네요.”
“우... 우리 집 사람은? 당신이 어떻게......?”
눈에 익는다 싶었는데 바로 그 여자다. 계단에서 마주쳤던! 아니면 그 영정 속의 여인인 것 같기도 했다. 이 여자가 왜 내차에 있나? 더구나 이 여자는 태연하다. 나 더러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니?
“당신, 왜 이러세요? 나예요, 여보.”
그러나 목소리부터가 다르다. 전혀 다른 얼굴인데 집사람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골이 쭈뼛해지면서 차에서 짐짝 내리듯 떨어져 나와 주차관리실 쪽으로 무턱대고 뛰었다.
“아니, 저이가! 여보, 왜 그래요?”
여인은 따라 내리며 나를 쫓아오고 있다.
주차관리실은 비어있다. 진정해 보려고 가슴을 쓸어안으면서 뒤를 확인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은 순식간에 접근해오고 있다. 여자는 숨이 찼는지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다. 어둑한 속에서도 그녀는 예뻤고, 그만큼 무섭다.
“남의 차 키는 가지고 어딜 가는 거예요?”
“......?”
그 사이에 목소리 톤이 달라져 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을 흘긴다. 나는 온 몸에 기를 모으고,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쥔 다음 애써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당신 누구요? 그 차에 있던 우리 집사람은 어디 있어요?”
“무슨 소리예요? 차 키나 이리 주세요.”
“차 키를? 이건 내 차 킨데......”
언제 키를 빼 가지고 나왔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 키가 아니다. 순간 나는 손에 감전이 된 느낌을 받으며 키를 떨어뜨렸다. 여인은 허리를 구부려 키를 줍더니 나를 흘깃 처다 본 후 돌아서서 횅하니 차로 향하고 있다. 서너 걸음 뒤에서 여인을 쫓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빈소에서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지금 무엇에 홀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여인은 내 차 앞에서 주춤하더니 다시 힐끔 나를 돌아 본 후 차에 오르고 있다. 순간 반대편 주차 선에 주차해있던 차 문이 열리면서 집사람이 머리를 추스르며 내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게 묻는다.
“아니, 당신 아는 여자예요?”
“이거야 도대체?”
내 차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며 확인했다. 내 차가 틀림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거기 있었던 거야? 차를 누가 그곳으로 옮겼지?”
“여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아니, 저 여자하고는 무슨 얘길 했어요?”
“......?”
그 때 그 여자의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서 빛이 이 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차는 시동이 걸리면서 우리 앞을 휘돌아 주차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누구예요 그 여자? 상복을 입은 것 같던데.”
“아니, 내 차가 왜 여기 있냐고, 당신, 나 모르게 운전 배웠어?”
내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져있다. 스스로 말하고 있음을 확인하려는 듯.
“이 이가, 무슨 소리예요? 잠꼬대 그만 하고 얼른 집에 가요. 너무 늦었어요.”
“내가 이상하단 말이지?”
“정신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어서 운전이나 해요.”
아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있다.
빗줄기가 잦아지고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정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돌려 아내의 옆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벗어나 꽃잎 져 비바람에 날리는 윤중로를 치달렸다.
그 여자는 너무 예쁘고, 약해 보여서 뭇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충분히 자극할 만 했다. 내가 그 여자의 차를 착각했었나보다. 착각이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집사람과 같은 말까지 하다니, 아니면 내가 잘 못 들었다는 말인데…….
옆자리의 아내는 말이 없다. 그 여자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그렇게 속 좁은 여자도 아닌데. 아무튼 그 여자와 같이 했던 짧은 시간이 생생하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벗어나 윤중로를 곧장 달리고 있는데 어째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똑 같은 가로수가 수 없이 옆으로 스치고, 같은 모양의 도로 주변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차를 세워놓고 상황을 살펴볼까 하던 참에 옆자리의 아내가 입을 연다.
“손님들은 많아요? 생각보다 일찍 나왔네요.”
“으-응?”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이 말은 분명히 두 번째 듣는 말이다. 지금 아내가 한 말은 그 검은 상복의 여인이 물었던 말과 똑같은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에 홀렸나 싶고, 그 말투까지 같다는 생각이 들자 진저리가 처지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내의 옆얼굴을 살폈다. 아니! 아니다. 아내가 아니다!
“왜요?”
여인의 말에는 묘한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내 잔등은 스멀거려 내리는 땀에 절여지고 있었다. 악셀레이터를 밟은 발에서 힘이 빠지고, 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급격히 속도를 줄인다. 차바퀴가 아스팔트를 핥으며 회전운동을 멈춤과 동시에 운전석 쪽으로 기우뚱 하더니 반대편으로 다시 재껴지면서 운전석은 나를 밖으로 내 뱉었고, 내 몸은 차체에서 튕겨져 나왔다. 다행히 전방에서 질주해 들어오는 차가 없어서 몸을 굴려 일어나 무턱대고 뛰었다.
낮에 못다 뿌린 빗줄기가 성글게 아스팔트를 내리찍고 있었다. 우선 이 상황을 벗어나야할 것 같았다. 백 여 미터를 뛰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뜀을 멈추고 뒤를 확인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휑하니 뚫려있고 내 차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3.
스산한 바람이 목 섶을 스쳐 목을 움츠리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다. 십 여 미터 쯤 갔을까? 갑자기 뒤쪽에서 쏘는 헤드라이트 때문에 내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늘어졌다. 빠른 속도로 옆까지 다가선 차 운전석에는 운전도 못하는 집사람이 인형처럼 앉아있다. 나는 스스로 헛것을 보고 있다고 다짐하면서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보!’
입 안에서 맴돌 뿐, 밖으로 소리가 터져나가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으면서 잠깐 멈칫하더니 휑하니 내 앞을 스쳐 지나친다. 그 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여자의 음성이 귀 언저리를 싸돌고 있다,
“급브레이크를 잡고 그렇게 뛰어내리면 나는 어쩌란 말이에요?”
“......?”
강하지 않은 음성인데 그 윽박지름은 무척 강하다.
“그냥 걸으세요.”
‘...... 누구?’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아세요? 이 도로는 죽은 영혼들의 무덤이라는 걸.”
“......?”
“선생님도 운전을 하시니 잘 알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남기고 싶은 말들도 못 한 체......”
“......!”
바로 뒤에서, 마치 내 어께를 짚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객사라고 해서 집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영영 도로귀신이 되고 말아요. 지금 선생님 눈에는 이 도로를 떠도는 불쌍한 영혼들이 보이지 않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으나 비수처럼 섬뜩섬뜩한 구석이 있다. 말대답을 하든지 말대꾸가 아니라도 무슨 말을 해야 될 것 같은데 목구멍 위까지 차올라 올 뿐 소리가 터져 나오질 않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가위눌림 같았다.
“쇠붙이와 쇠붙이가 무섭게 부딪치는 사이에 연약한 살덩이로 피를 흘리며 끼여 있었어요. 그 아픔 어떻겠어요?”
“......”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아픔에 대한 대가만 가지고 흥정하고 있어요.”
“......!”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를 끝까지 괴롭히면서 돈을 뜯어내는 것은 죽은 자를 더욱 욕되게 하는 것이고......”
“......”
“보상이라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죽은 자들의 몸값일 뿐이지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
어디선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고 있다. 한 발 한 발 아스팔트를 뒤로 밀며 나아가지만 웬일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벚꽃 잎이 이따금씩 떨어지는 것 외에는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웅성거림은 어디서 흘러드는 것일까? 이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 죽은 여자의 혼백이라면 왜 하필 날 붙잡고 이러는 것일까?
“세상에는 죽은 자들이 산자들 보다 훨씬 많아요. 그런대도 산자들은 죽은 자들을 무시하고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무덤덤하게, 낮고, 굵은 목소리로 묻고 있다.
“......?”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보이는 것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겠어요?”
맞는 말이다. 굳이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도 지도자의 신념이나, 종교적인 것, 이념적인 것 등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정신세계가 현실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보이는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믿으러 들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산 자들보다 더 많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을까?
“세상은 죽은 자들의 무덤위에 세워졌어요.”
답변을 하는 것 같다.
“죽은 자들이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품은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그 음성은 곧바로 답변을 시작한다.
“나는 선생이 죽인 많은 영혼들 중의 하나예요. 선생은 많은 영혼들을 죽였어요.”
‘......예?’
“걱정 마세요, 살인은 아니니까. 그러나 많은 영혼들이 당신으로부터 죽임을 당했어요. 지금은 내 말을 알 수 없겠으나 선생이 생을 달리할 때, 그땐 알게 될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내가 그렇게 큰 죄인입니까? 혹시 내 전생을 말하는 것입니까?’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착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파리 하나라도 죽이지 못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 나였다. 혹시 내 전생이 유태인들을 죽인 독일의 어떤 박해자였다는 말인가?
“내가 말한다면, 내가 선생의 일을 말한다면, 선생은 스스로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선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지도......”
‘이-에?’
“그래요! 자살…….”
‘자살을?’
“그러니 그냥 살아가십시오. 이 세계는 더 이상 이성으로 찾아들 수 없는 곳이랍니다.”
영혼들의 세계인가? 지금 말하는 이성으로 찾아들 수 없는 세계란 어떤 곳인가? 그녀의 낮은 목소리는 듣는 내 마음까지 가라앉히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다시 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서다. 그러나 주변은 여전히 낯설고, 으스스하다.
“......”
‘......?’
너무 조용하다. 갑자기 말이 없다.
뒤로부터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마치 녹음테이프 전원이 끊어져 버린 것 같이.
내가 내 딛고 있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젠 두려웠다. 침묵이 등 뒤로부터 긴장을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낯선 환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었다.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자, 현실이 아니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볍고 허공을 딛는 것 같은 이유는 내가 걷지 않고 있음이리라.
이 낯설음, 이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들었던 그 목소리는 차라리 내 목소리이리라! 그것들은 모두 환청이리라!
맘을 강하게 먹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환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내 소매 깃에 무엇인가가 걸려 엎질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뒤 이어 손에 끈적한 것이 느껴졌다.
4.
전원이 나가버린 것을 안 것은 적응시가 돌아오면서 눈에 익은 주변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큼직한 모니터가 시커먼 아가미를 디밀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 앞에 엎질러진 커피를 손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입구로 걸어 나와 누전 차단장치를 풀고, 전원을 올렸다. 서재로 돌아와 컴퓨터를 키려다가 손을 거두어들였다. TV는 저절로 켜져서 왁자하니 소란한 소음을 쏟아낸다. 그 때 핸드폰이 울린다.
“저예요, 지금 내려와서 출발하시죠.”
“알았어, 내려갈게.”
집사람은 퇴근길에 집에 올라오지도 않고 나더러 내려오란다. 우린 상갓집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 빗줄기가 몇 가닥 가로등에 잡히고 있다.
윤중로를 달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이 말은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빈소에 들린 나는 상주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나누고 콜라 한 잔을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으로 출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옆 빈소에도 검은 옷 입은 몇 사람이 앉아있다. 그 빈소에 있는 여인의 영정은 예쁘고, 안면이 있어 보인다.
오르막 계단이 끝날 무렵 상복 입은 여인의 발꿈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 여자! 영정속의 여인. 나는 숨이 턱 멎음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내가 만났던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든지 아니면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였다. 나는 물을 것이었다. 내 죄가 무엇이냐고. 내가 어떻게 많은 영혼들을 죽일 수 있었겠냐고. 그리고 당신은 어떤 여자이냐고……. 그녀를 내가 본 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냥 스쳐 내려가고 있다.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고개를 돌려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유유히 영정 앞으로 가더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정속의 여인과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여인은 영정 옆에 서서 말을 건네고 있다. 정말 두 여인은 얼굴 모습이 똑 같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 것이었다.
5.
계단을 벗어나 주차장 입구에 가까워지자 요란한 비트가 건너편에서 전해온다. 아내가 차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저 모습도 낯설지가 않았다.
주차장으로 경찰차가 경광등을 반짝이며 들어오더니 우리 곁에 차를 세우고 정 사복 경찰 세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못 본체 이야기를 나누며 식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얼굴이 똑같더라니까! 난 첨에 깜짝 놀랐다고.”
“귀신인줄 알고?”
“영정사진 옆에 그 여자가 있는 것을 보면 자네도 기분이 묘해질 걸.”
“쌍둥이 인 줄 알았다니깐.”
“요즘은 엄마나 딸이나 구분 안가는 경우가 많아!”
“그 김병지 말이야. 자살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야. 나이 삼십에 컴퓨터에 빠져 자살했다니 믿겠냐고.”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겠어?”
“가상현실에서의 환상자살이라니 …….”
“혹시, 동반 자살한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두 남녀의 사인에 공통점이 많단 말이야. 사망 시간도 대충 비슷하고......, 그 왜 자살사이트라는 것 있잖아!”
“그것하고는 다르다는데. 하여간 묘한 일도 많은 세상이니까 환상이 현실 같고, 현실이 환상 같고 말이야.”
“아니, 자네도?”
나는 차에 오르다 말고 경찰들의 대화를 끝까지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모녀간이었다면 아무리 바꿔 보려 해도 내가 보았던 여인은 딸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내가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 마디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