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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은빛여우(진정일125기/기자단)
불기 2563년 7월 16일 화요일,
정법도량이며 기도성취 및 천도대도량인 우리절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에서는 백중 천도재(2재)를 맞아
대웅전 3층과 4층 큰법당과, 5층 적멸보궁,
그리고 옥불보전 대법당까지 가득 들어찬
신도님들과 스님들이 한마음이 되어
지극정성 마음을 담아 선망부모와
유주무주고혼 일체 인연영가의 왕생극락을
간절히 발원하였다.
또한 매 재마다 천도재와 관련된
경전의 대의를 살펴주시는 특별법문으로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2재에는 월요반 수업과 더불어
팔공산도량 주지소임을 맡고 계시는
대공스님께서 인과경(因果經)을 통해
인연 과보에 대해 설하시며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라.]
항상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면서
늘 자신의 마음을 맑히고
선업을 행하고자 노력하라 당부하셨다.
♣ 백중 경전 산림법회 및 천도재 2재,
[인과경] 특별법문 법사이신 팔공산 주지 대공스님 ♣
이른 아침부터 법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은
시방삼세에 두루하시는 불보살님과 진리의 법과
그 법에 따라 수행하시는 성현대중님들께 지심으로
귀의하며 정성껏 예를 올리고 또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참회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행하는 참된
불자가 되기를 서원하는 기도의 열기로
법당이 후끈하다. 일심정성 간절한 기도만이
법당에 가득하다.
사시예불에 이어 정성껏 준비한 공양물과 감로수를 올리고
천도법식에 따라 정성껏 재를 지내며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신도님들의 모습에 간절함이 묻어있다.
모쪼록 이 간절함이 아미타부처님과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
전해져 영가들이 더이상 고통바다에서 헤매지 않고
부처님 나라에 들기를 바란다.
천도재에 이어 청법가로 법사스님을 법상에 모시고
[인과경]특별 법문을 기쁜 마음으로 청하여 들었다.
불기 2563년 백중 2재 인과경 법문
- 팔공산 주지 대공스님 -
관세음보살 ()()()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중 두 번째 재일을 맞이하여
인연 있는 일체 영가님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대구 큰절을 비롯한
경산, 칠곡, 구미, 포항, 서울, 팔공산, 영천 도량의
법당을 불자님들께서 가득 메워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 백중 천도재에 동참하시어
쌓은 이 공덕은 반드시 여러분들과 인연 있는
일체 영가님들께 전해질 것입니다.
비록 영가님들이 지금은 다른 몸을 받아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분들이
과거 생에 지었던 업장들이 이 천도재로 소멸하여
앞으로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과 영가님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오늘 2재만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3재, 4재, 5재, 6재,
그리고 백중 당일의 막재 날까지 열심히 동참하셔야 합니다.
지난번 백중 입재 날에 큰스님께서는 백중 천도재를
지내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법문해 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백중 천도재는 우리들이 영가님들께
입은 은혜를 갚는 보은 불사이며, 영가님들이
생전에 지은 업장을 녹여드리고 더 나은 몸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구제 불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백중 천도재는 비단 영가님들에게만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도재를 지내는 우리들에게도
큰 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큰스님께서는 작복불사, 정업불사라 하셨는데,
작복불사란 말 그대로 복을 짓는 일이며,
정업불사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을 녹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백중 천도재를 지내면 4가지의 공덕을
이루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도재를
지내는 공덕은 영가님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재를 지내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공덕을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장경에서는 영가를 위해 지내는 천도재라 하더라도
그 공덕의 무려 7분의 6, 80퍼센트 이상을
재를 지내는 사람이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백중 기간 동안, 입재를 포함한 8번의
천도재에는 반드시 동참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보통 천도재라 하면, 재라고 하니까 집에서 지내는
기일제의 제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있어요.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한글로 쓸 때 어이죠.
한자로는 祭라고 씁니다. 이 제사는 글자 그대로
상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혼백을 달래는 의식입니다.
반면에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의 재는 한글로 쓸 때는 아이입니다.
한자로는 齋라고 쓰는데, 이 재자는 가지런히 할 재 자로서,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행동을 뜻하는데,
이는 곧 수행을 말합니다.
따라서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동참한다는 것은
음식을 차려놓고 영단에 모신 위패에 절 몇 번 하고
끝내는 기제사와는 전혀 다른 의식입니다.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서 위패에 절하는 일은
형식적인 것이고, 정말로 중요한 일은 부처님의 말씀,
즉 경전을 독송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경전에 관한 법문을 듣는 것도 포함이라!
그래서 백중 기간 동안 매번 재를 지낼 때 마다
스님들께서 법문을 하시는 겁니다.
즉 천도재가 수행인 이상, 진정한 수행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독송하고 그 법문을
듣는 데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지금 제가 법문을 듣지 않고 먼저 간 분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 말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로 바쁜 일 때문에
법문을 듣지 못하고 먼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바빠서 법문을 듣지 못한 분들은
다음 법문부터는 꼭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천도재는 영가님들 보다 재를 지내는 우리들이
더 큰 공덕을 받게 된다는 점과 단순한 제사가 아닌
수행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수행의 핵심은 경전의 독송과
경전의 법문에 있다는 점도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경전에 대한 말씀을 드릴 텐데,
모두 주보를 통해서 아시겠지만,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경전은 인과경이라는 제목의 경전입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인과경에 대한 법문을 들으신
분들은 그 내용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인과경이라는 경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경전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인과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경전 제목에 인과라는 말이
들어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인과경의 경전 내용보다
제목에 들어가 있는 인과라는 말을 중심으로
여러분들께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여러 가지 유인물을 받으셨을 텐데,
그 가운데 백중 2재 인과경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받으셨을 겁니다. 1면을 보세요.
1면의 1번을 보시겠습니다.
두 종류의 인과경이라 적혀있지요?
이는 인과경이라는 이름의 경전이 두 가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백중 2재 때
인과경 법문이 있다고 하니 미리 한번 읽어 보고자
한글 대장경을 찾아보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글 대장경을 보면 인과경이라는
제목의 경전은 없고, 과거현재인과경이라는 제목의
경전만 있을 뿐입니다.
이 과거현재인과경은 어떤 경전인가 하니
유인물 1번의 동그라미 2번에 제가 적어 놓았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과거현재인과경
부처님께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부처님의 법을 만나
정법 수행을 닦게 되었는지 그 인연을 말씀하신 경전.’
그렇습니다. 과거현재인과경은
부처님과 제자들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어떠한 인연으로 부처님이 되셨고,
제자들이 어떻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의 경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알아볼 인과경은 이 과거현재인과경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알아볼 경전은
동그라미 1번의 인과경입니다.
그 부분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삼세인과경 - 부처님께서 이생의 과보의 원인인
전생의 업행에 대해서 말씀하신 경전.’
즉 ‘금생에 좋은 과보를 받는 사람은
전생에 좋은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경전이라 그 말입니다.
두 경전 모두 인과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인과경이라는 제목만 말하면 동그라미 2번의
과거현재인과경인지 동그라미 1번의 삼세인과경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들이 백중 기간에 공부하는 경전은 뭐다?
동그라미 1번의 삼세인과경입니다.
그런데 두 경전은 제목도 약간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그래도 인과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니 눈치가 없는 분들이라도
‘두 경전 모두 인과를 중요시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는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때요?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불자님들은 삼세인과경과
과거현재인과경이 인과를 중요시 하는 경전이라는
사실을 벌써 다 눈치채셨죠? 눈치 못 챘습니까?
눈치 못 채신 분은 큰일입니다. 진짜 큰일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노? 인과의 중요성은 여러분들이
자주 들어보셨을 텐데, 인과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말이
유인물 2번에 나와 있습니다.
유인물 2번의 동그라미 1번을 읽어 보겠습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 한 번쯤 다 들어보셨지요?
못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이제는 우리 서로 솔직해져도 안 되겠습니까?
저는 사실 매일매일 놀라고 살아요. 오늘도 놀랐어요.
선인선과 악인악과 우리말로 하면
‘좋은 원인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원인에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뜻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좋은 일 하면 복 받고, 나쁜 일 하면 벌 받는다.’는 뜻입니다.
동그라미 2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인과응보라!
우리 말로 하면 원인에 따르는 결과는
반드시 받는다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결과를 반드시 행한 사람이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결과로서의 복과 벌은
다른 누가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행한 사람이
받게 된다는 뜻이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절에 오시기 전
집에서 아침밥을 드셨다면 누가 배가 부르겠습니까?
당연히 아침밥을 드신 여러분들이지요.
여러분들이 밥을 드셨는데 팔공산에 사는 제가
배부를 일이 뭐가 있겠냐 그 말입니다.
이 인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유
인물 3번을 보시면 인과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다음 줄을 보시면 인과는 원인 더하기 결과라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정도는 여러분들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인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시는지
시험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 밑에 줄을 보시면 문제 1번이 있지요?
한번 풀어 보시겠습니다.
콩 심은 데 (뭐) 나고, (뭐) 심은 데 팥 난다. 답은 뭐지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렇죠.
콩을 심었는데 보리가 났다던가? 옥수수를 심었는데
팥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런 경우는 없지요.
있다고 한다면 잘 못 심었을 겁니다.
쑥맥이란 말이 있는데 원래는 숙맥입니다.
사실 숙맥도 숙맥불변을 줄인 말인데 숙은 콩 菽자이고
맥은 보리 麥자입니다.
불변은 아니 불 자에 판단할 변자를 써요.
그래서 숙맥불변이란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소위 어~름한 사람을 말해요.
옛날 농사짓던 시절에 콩 하고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죠. 어쨌든 숙맥이 아닌 이상에야
콩과 보리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콩을 심은 데는 콩이 나고,
보리를 심은 데는 보리가 날 거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문제 1번은 다들 잘 풀었으니
이제 문제 2번을 풀어 보겠습니다.
문제 2번 삶은 콩 심은데 ( ). 삶은 팥 심은데 ( )인데
여기에 들어갈 적당한 말은 뭐겠습니까?
당연히 삶은 콩을 심으면 삶은 콩이 나고
삶은 팥을 심으면 삶은 팥이 나겠지요?
아닙니까? 아니예요? 왜 아닙니까?
삶은 콩은 싹을 틔울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아무리 많은 삶은 콩이나 삶은 팥을
심는다고 해도 삶은 콩이나 삶은 팥에서는
싹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낸 것은 삶은 콩이나, 삶은 팥은
싹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에 심어도 콩이나 팥이
자라지 않는다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 오늘 저녁 콩을 반찬으로
드시려면 콩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삶든지 볶든지 해야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콩을 삶고 볶는 일 사실 귀찮지요.
그래서 아예 조리된 콩을 사서 드시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편이 편하잖아요.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삶은 콩이 열리면 얼마나 편할까?’
즉 편안함을 얻고자
‘생콩이 아닌 삶은 콩을 심으면 삶은 콩이 자라지 않을까?’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이런 황당한 문제를 낸 것입니다.
‘스님! 세상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삶은 콩을 심고 콩이 나기를 바라겠습니까?’ 하시겠지만,
가령 공부 안 하고 고득점이나 합격을 바라는 사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돈 많이 벌기를 바라는 사람,
남을 괴롭히면서 본인은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과연 삶은 콩을 심고 삶은 콩이 나기를
바라는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일까요?
똑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은 콩 얻으려고 삶은 콩 심는 사람은 그래도
삶은 콩이나마 심기라도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은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점입니다.
어떤 과보를 받기 위해서는 그 과보를 받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서
과보만 바란다면 이런 경우를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간단하죠. 도둑놈 심보라!
그렇다면 인과를 아는 우리 불자님들은 어떨까요?
과연 여러분들은 내가 행한 만큼의 과보를
바라고 계시는지, 아니면 내가 행한 만큼 보다
더 많은 과보를 바라고 계시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행한 것보다 더 많은 과보를 바라는 것은,
아예 행하지도 않고서 과보를 바라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겠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인과의 법칙은
빗나가는 법 없이 정확하기 때문에 더하거나
덜 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보란 것은 단순히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는 인과를 지극히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일 뿐. 우리들이 사는 이 현실 세계에서
이같이 단순한 인과는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유인물 3번 문제 2번 다음 줄을 보시겠습니다.
‘어떠한 원인과 그에 따르는 결과를 인과라 한다.
그러나 불교적인 인과는 이와 같은 단순한
원인과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이 있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뜻입니다. 유인물 4번을 보시겠습니다.
불교적 인과라 되어 있지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인과란 원래 인연과보의 줄인 말이다.
인은 원인 더하기 연은 조건 더하기
과는 결과 더하기 보는 받음’ 이렇게 원인, 조건,
결과, 받음을 모두 합해서 인연과보라 부르는데
길어서 인과라 줄여 부르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이치는 인연과보라는
말을 알아야 알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이 인연과보에 대해서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오늘 법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이 인연과보입니다. 유인물의 그 다음줄을
계속해서 읽어 보시겠습니다.
‘즉 어떤 일은 그 일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과
보조적인 조건이 시기상응하여 발생하며,
그 결과는 반드시 지은 자가 받게 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일어나지만, 그 원인에는
결과를 일으키도록 돕는 조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행위를 한 사람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유인물 다음 줄을 보세요.
우선 콩이 나는 원인은 콩입니다. 하지만
콩이 싹을 틔어 콩이 열리게 된다지만
창고 속 자루에 있는 콩이 스스로 싹을 틔워
콩이 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죠.
콩이 싹을 틔어 콩을 열리게 하려면 콩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콩을 심는 행동입니다.
콩을 밭에다 심어야 콩이 열릴 것 아닙니까?
그러면 콩은 싹을 틔어서 시간이 지나면
콩이 열리게 되겠죠. 그런 연후에
콩을 심은 사람이 열린 콩을 수확해서
그 양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콩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콩을 심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콩이 열리기 위해서는 심는 행위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 많은 조건들을 만족해야 콩은 비로소
열리게 되고 심은 사람 손에 들어오는 겁니다.
유인물 5번을 보시겠습니다. 원인과 조건이라는
제목인데 그 아랫 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을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조건도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인하여
그 결과와 받음도 여러 가지가 된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일 같아도 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요.
우선 콩이 열리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팥도 아니고 보리도 아닌 바로 콩을 심는 일입니다.
그런데 심는 콩이 병든 콩이면 어떨까요? 콩
이 열리기는 하겠지만 많이 열리지 않겠지요.
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삶은 콩을 심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예 콩이 나지 않겠지요.
콩이 열리는 원인인 콩을 심는 일도 이렇게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인이 달라지면 조건은 같더라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가령 건강한 콩을 심으면 수확이 많겠고,
병든 콩을 심으면 수확이 적겠지요.
그리고 삶은 콩을 심으면 아예 수확이 없을 것입니다.
원인도 이처럼 다양하지만 조건 만큼은 아닙니다.
유인물 5번의 동그라미 2번을 보세요.
다양한 조건이라 되어 있는데, 만약
콩을 심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콩이 날까요?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지만 사실 콩을 심기만 한다고
콩이 나지는 않습니다. 콩이 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하지 않으면
콩이 날 수 없습니다. 콩이 날 수 있도록
돕는 조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가 동그라미 2번에 여러 가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일단 콩이 나려면 심어야죠.
심는 일은 콩이 나는데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다음은 물주기죠! 또 거름도 줘야 하고,
병충해도 막아야 합니다.
제가 머무는 팔공산 도량 같은 곳은
대낮에도 고라니가 태연하게 길가에 나와서
작물이나 꽃을 뜯어 먹어요.
이런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도 퇴치해야 합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제가 유인물에 적지 않았어도
콩이 나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
래도 각각 어느 정도는 만족해야 콩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날씨도 좋아야 하는데 날씨는 사람의 손을
떠난 일이라 어찌할 수 없어요.
아무튼 이렇게 콩이 나기 위한 조건들을
다 갖추면 과연 그 결과가 좋을까?
콩을 심어서 물도 잘 주고, 비료도 때맞춰 주고,
해충이나 유해조수를 잘 처리했다면
당연히 많을 콩을 수확할 수 있겠죠.
그러면 콩 팔아서 부자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생각대로 안 돼요.
유인물 6번을 보시겠습니다.
‘원인과 조건이 완벽하면 과보도 좋을까? 그
밑의 밑에 줄을 보시겠습니다.
좋은 콩을 심어서 잘 재배하였으며, 천
재지변도 없어서 많은 콩을 수확하였다.
그렇다면 콩 심은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콩 농사가 잘 되었다고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 그다음 줄을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콩을 적게 심었거나
콩 농사가 잘 안되었을 경우 = 콩 가격 상승’
나는 콩을 심고 콩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을 잘 충족했어요.
그래서 많은 콩을 수확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콩 농사 짓는 사람들은
콩을 적게 심었거나, 또는 그 사람들의 콩 농사가
잘 안되었다면 당연히 콩 가격이 높아져서
나는 돈을 많이 벌겠지요.
그런데 반대로 콩 농사는 기가 막히게 잘 되었는데, 다
른 사람들도 콩을 많이 심고 또 수확도 많이 했다면
콩 가격은 떨어지고 그러면 나는 돈을 크게
벌지 못할 겁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무슨 경제 수업시간도 아니고 이런 말씀을 왜 드리는가?
이는 우리들이 바라는 과보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해도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유인물 다음 줄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원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인하여
결과와 받음(과보)에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헤아림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옛말에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인간은 복잡한 인연과보를 완벽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우를 많이 겪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될 거라고 생각한 일이
생각지도 못한 마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인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유인물 7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
따라서 일을 이루고자 할 때는 그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려야 한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의 처음부터 중간, 끝까지
마음이 변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령 쉬운 예로 운전을 들 수 있습니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 목적지부터 확실하게
알고 나서 운전을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시동을 끌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운전 도중 잠깐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하면
자칫 대형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제가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비단 세상일 가운데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일이
운전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이 살면서 하는 일 전부가
마음을 놓아서는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마음부터 잘 살피고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인연과보로 말씀드리자면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일의 원인과 결과를 일으키는 조건들을
항상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리는 일이
모든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근본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이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이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리기만 하면
백중 천도재만이 아니라 모든 기도와 수행,
봉사, 공부, 심지어 세상일도 전부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일이
불교의 근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을 세우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아무나 못할 일인가 보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무나 못할 어려운 일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왜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가?
그것은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일이
단지 마음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인물 다음 줄을 읽어 보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여 그 마음을
맑히는 일이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즉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도 드물지만,
행하는 사람은 더욱더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도모해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답답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일을 다른 사람한테 묻는다고
그 사람이 알겠습니까? 물론 현명한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디서 잘못된 것 같다고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일은 자신의 마음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리는 일이 우선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지
못하니까 남이 뭐라고 하면 홀라당 넘어가서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누가 ‘뭐를 하면 돈 많이 벌고 잘살게 된다고 하더라.’ 하면
앞뒤 생각 안 하고 덜렁 해버려요.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돈 많이 벌고 잘 살고 싶은 자기 우리의 이 마음이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내는
기상천외한 일 들을 하도록 만들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 마음이 이렇게 대단한데,
이 대단한 마음을 스스로 살피고 다스릴 수 있으면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이 되는 길도 여기에 있는데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일이 문제겠습니까?
그런데도 대부분은 이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쉽게 일을 이루려 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인연과보에 대해서 쭉 말씀드렸듯이
일이란 내 생각처럼만 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일의 원인과 일이 될 조건을 잘 충족해야
이루어지는 겁니다. 콩을 심고 팥이 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콩을 심기만 하고 물도 안 주고
관리도 안 하면서 많이 수확하기를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인연과보의 이치를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과보를 바라기 때문에
일이 잘 안되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사람은
인연과보의 요행을 바라지 않아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야
비로소 좋은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살피고 다스릴 것인가?
사실 불교경전,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에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을 지금 공개합니다.
유인물을 계속해서 읽어 보겠습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이라!
이 8글자가 바로 불교의 핵심입니다.
과거 세상의 부처님 7분께서 불교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7분 부처님 모두
이 8글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말 중요한 글자입니다.
제악막작이란 나쁜 일은 전부 하지 말아라.
이런 뜻입니다. 중선봉행이란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은
받들어 행해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나쁜일은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해라!’
이런 뜻이 됩니다.
어때요? 불교의 핵심인데 대단함이 느껴집니까?
중국 당나라의 정치가이자 대문장가로 유명한
백낙천이라는 사람이 조과선사를 찾아뵙고
불법의 대의를 물었습니다.
그때 조과선사가 백낙천에게 말해준
불법의 대의가 바로 이 제악막작 중선봉행입니다.
백낙천은 조과선사의 말씀을 듣고 아주 실망했습니다.
뭔가 심오한 가르침을 알려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였으니까 대문장가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백낙천에게는 그럴 만도 하겠지요.
아무튼 백낙천은 조과선사의 그 말에 실망해서
‘스님 그건 동네 3살짜리 꼬맹이도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하고 대꾸했습니다. 그
러자 이어진 조과선사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물론 3살배기도 아는 이야기지만
80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지.’
백낙천은 조과선사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불법의 핵심은 실천에 있음을 깨닫고
지식만 자랑하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이후로는 훌륭한 불자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방법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나쁜 일하지 않고
착한 일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는지 어떤지는
과문한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 7분의 부처님께서 이구동성으로
불교의 핵심을 제악막작 중선봉행이라 말씀하셨는데,
이 7분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방법보다
더 뛰어난 방법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무튼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들이 살면서 나쁜 일 하지 않고
살기란 어렵습니다. ‘나는 나쁜 일 안합니다.’라고
말씀할 수 있겠지만 보통 나쁜 일을 스스로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나쁜 일을 할 때는 나쁜 일인 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래서 유인물 다음 줄을 보시겠습니다.
‘큰 돌은 어디서 들고 왔는지 기억하기 쉬우나,
작은 돌은 어디서 들고 왔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산에 가서 큰 돌을 주워오면
그 돌을 어디서 주웠는지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작은 돌을 주워오면
그 돌을 어디서 주웠는지 기억하기 어려워요.
나쁜 일도 이와 같아서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쁜 일은 기억하기 쉽지만,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쁜 일은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크게 나쁜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사소한 나쁜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것이죠.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소한 나쁜 일들이
누적되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유인물 다음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큰 돌이나 작은 돌이나 물에 뜰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므로 작은 악업도
큰 악업과 같이 여기고 늘 선업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일이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일의 근본이 된다.’ 아시겠지요?
돌이 크든 작든 물에는 뜰 수 없듯이
아무리 작은 악업이라 해도 결국 죄업이라!
작은 악업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큰 죄업의
과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악업이 쌓여있는데
우리는 당장 어떻게 이 죄업의 과보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죄업의 과보를 극복하는 길은
선업의 공덕을 쌓아서 죄업을 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선업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선업을 말씀하신
부처님의 경전을 배워야 합니다.
즉 평소에 불교대학에서 경전 공부하고
오늘 같은 날 천도재 법문을 듣는 것은 모두
선업을 쌓아서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한 배움인 것입니다.
이제 인과경의 마무리입니다.
유인물 8번을 보시겠습니다.
欲知前生事 現在受者是
욕지전생사 현재수자시라!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받는 과보가 그것이니라.
欲知來生事 現在作者是
욕지내생사 현재작자시라!
다음 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지금 짓는 일이 그것이니라.
여러분들이 오늘 우리절 법당에서
백중 천도재를 지내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까닭은
과거에 여러분들이 지은 공덕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천도재를 지내고 법문을 들은 공덕은
계속해서 여러분들의 다음 생의 좋은 과보로
이어질 것입니다. 최소한 다음 생도 사람으로
법당에서 누군가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안심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공덕을 쌓는다면
더 나은 과보를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일, 착한 일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이상으로 백중 2재 인과경 법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
♣ 수많은 신도님들이 오고 가는 대웅전과 옥불보전 계단을
먼지 하나 없이 쓸고 닦고 하시는 청정회 회원님들♣
♣ 우리절 천도재 막재마다 음성공양 올려주시는 가릉빈가 회원님들 ♣
♣ 백중 2재에 동참하신 신도님들께 떡과 사탕 등을 나눠주고 계시는 동문회 국장님들 ♣
♣ 백중 2재에 올린 공양물을 내리고 뒷정리 하시는 도법회 회원님들 ♣
대공스님의 [인과경] 법문을 끝으로 백중 2재를 여법하게 회향하였다.
우리절 대중스님들과 동참하신 신도님들, 그리고 뜻깊은
법문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참된 불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감로 법문을 내려주신 대공스님께 감사드린다.
불교의 가르침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중선봉행(衆善奉行)을 일컫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백중 2재를 맞아 처처에서 수고해주신 우리절
봉사단체 회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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