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다보니 절터다
신상숙
아직도 못다 한 미련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바보라서 내려놓지 못하는 일거리가 수두룩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애써 빚어놓은 김치만두가 툭 터지는 게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심술보 그대로다. 예전처럼 별의별 음식 장만 하느라 명절마다 등골 빠지는 고생살이 이제 그만 접어야겠다. 나이 든 손으로 그 짓거리 하려니 슬그머니 부아가 난다. 하여, 먹을거리 가지 수를 대충 줄이는 게 상책이다. 주책도 그런 주책이 따로 없을 게다. 음식 맛 좋다는 너스레에 깜빡 속아서 골병드는 줄 모르고 제 몸뚱이 간수를 못했으니, 나이를 먹어도 헛먹은 것이다.
명절마다 어른 모시는 집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지방 높이가 낮아진다. 또 음식 장만도 장난이 아니어서 무척 힘들었다. 지금은 마당 넓은 집에서 밭농사 논농사까지 손수 짓고 있느니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월급쟁이 시절 작은 빌라에서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려니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찾아오는 손님도 차츰 줄어들고, 음식 가짓수도 줄여서 부르튼 손이 정말 편하다. 인제, 신체 나이가 괘나 들었으니, 일거리가 무서울 만도 하다. 한데, 두부콩 불려놓고 한 술 더해서 도토리 녹말가루에 물까지 부어 놓았다. 매사가 이러하니 명절증후군이 2주전부터 불거진다. 지난해 남들이 다 망친 콩 농사가 우리는 풍년이다. 마당 한편에서 두부도 만들고, 녹말가루를 넉넉하게 선물한 이웃사촌 덕분에 묵도 쑤어야 한다. 양은솥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는 일, 안방에 세든 남자가 거들기로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따끈따끈한 음식이 완성 될 때마다 아껴 두는 짓도 그만할 것이다. 무조건 남편과 둘이 얼른 입으로 가져 갈 것이다. 아침상에 숟가락 숫자가 열대여섯 벌 정도이니, 명절 음식 아끼고 아끼다가 곰팡이 슬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며느리가 셋이다. 그러나 ‘*건너다보니 절터라’는 옛말이 지금 나에게 딱 들어맞는 단어다. 시어머니의 일손 덜어 줄 며느리가 아무도 없다는 거다. 누구는 아이가 어려서, 또 아이가 둘이라서, 직장 문제로 구구절절 사연도 가지가지다. 요즘, 버스 타고 시댁에 오는 며느리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 게 정답이다. 진즉에 마음을 비워놓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엄마처럼 문창호지에 침 바르는 짓거리도 하지 않고, 전화기에 눈길도 가지 않을 것이다. 자식새끼 포기하지 않으면 눈가에 다래끼가 솟아서 생으로 고생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데 풀지 못하는 숙제가 존재한다. 우리가 미성숙해서일까? 손자들에게 다소 냉소적이다. 거실 소파에 놓여있어야 할 방석이 공중으로 날아다녀도 애들 어미 아비가 손 놓고 있다. 딸 아들 며느리가 별반 다를 게 없다. 동물 농장도 아니고. 손자들이 오자마자 집안이 온통 쑥대밭으로 변할 때는 참을성에 한계를 느낀다. 또, 가족 공동체의 신뢰와 사랑이 무너지는 세상이 슬프다. 요즘, ‘아이들 다 그렇다.’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지, 이러다간 온 지구가 근본을 상실한 인간들로 북적거릴 것 같아서다. 다음 명절부터자식들에게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제집으로 돌아가라 할 것이다. 어차피 뒷정리는 나 혼자 손으로 해야 할 일이니, 굳이 며느리들에게 부담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우리 콩으로 두부 만드는 날, 남편에게 친구들 모셔 오라고 했다. 두부로 명절 턱 낼 거라고, 퍼주기 좋아하는 버릇이 도져서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마당가에서 왁자지껄 막걸릿잔 오갈 땐 마음이 아니 풍성하겠는가. 지나는 길손의 마음마저 훈훈할 것이다. 시골구석에 모처럼 명절다운 날이 오는가 보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막내 부부가 긴 연휴 덕분에 엄마 일 도와주러 오신다나, 어쩐다나, 서쪽에서 해가 뜰 일이다. 두부 만들고 만두 빚을 때, 막내며느리가 거들어서 한결 수월하다. 짧은 햇살이 도란도란 모여드는 걸 보니, 절터는 아닌가 보다. 겨울 햇살도 사람의 정이 그리운 모양이다.
첫댓글 모두 다 소용 없는 일거리 600년을 유교 집 안으로 대를 이은 종손이외다
모친이 일찍 가셔서 아내가 종부 노릇을 했다
부모 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들이 600, 500, 400, 222, 년 된 시제에는 차려 놓은 음식 쳐먹ㅈ기나 하지 고추가루, 소금, 간장, 주시오 여기요 참기름 달라 ...
나이도 별로 안 먹은 것들이 묘지기 하인에게 하듯 말투로 반말이나 하고...
부친 생전엔 효도 때문에 했지만
부친 선종하시고 뒤집었소 십년이 된 지금 시제도 지내지 않는다
그냥 국군묘지에서 처럼 전체 차럿 묵념 하고 뷔베 주문 한다.
할머니가 어머니 고생시킨거 다 알고 커서 돌아 가시던날 눈물 한방울 없더이다
상숙 쌤 잘하셨습니다
박수~~~
그리고 응원합니다
뼈ㆍ이팅!~^^
우리 시엄씨도 대단하셨소이다.
고로, 우울증 20여년 알았습니다..
나중에는 동 싸는 시엄씨 엉덩 짝 때렸습니다.
남편 형제들 지 어머니 때렸다는 애기 듣고도 웃기만 합니다.
그나마 글쓰기로 마음을 다스립니다.
@햇살타고, 마리아 그럼요 그렇게라도 스트레스 풀으셔야지요 속병듭니다 아마 저도 세례받지 읺았다면 중독자로 철장 안에 있을지도 그림에 미치지 않았으면요
ㅎㅎ
건강한 주일되세요 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