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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당신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씨가 좀처럼 발아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브람은 조급해합니다. 약속하신 나라가 임하는 사건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인내도 점차 바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이래저래 어려운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특별히 믿음은 죽을 때까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관계를 끝까지 유지 시킬 수 없습니다.
God promised Abram your country. But when the promised seed shows little sign of germination, Abram becomes impatient. Our patience may gradually run out as the events of the promised country take place longer. What attitude should we show at that time? Faith is one of the difficult things. You can never maintain a relationship to the end unless you love it, especially because faith must be maintained until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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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 가졌던 열정과 사랑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연애를 해보면 남의 떡이 커보여서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 할 때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귀농한지 10년 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씨에 대한 약속을 재 확증 하신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브람부부는 여전히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85세, 사래는 75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17:1,17). 아브람은 사래의 제안대로 여종을 취해서 아이를 낳는 그 시대의 문화를 생각 없이, 어쩌면 의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This is why many people often lose their first passion and love. When you have a relationship, you sometimes look sideways at another woman because someone's rice cake looks big. It's been 10 years since they returned to farming in Canaan. Years after God reaffirmed their promise to the Lord, the Abrams still did not have children. At this time, Abrams was 85 years old, and Sarae was about 75 (17:1,17). Abrams accepted the culture of that time thoughtlessly, perhaps even deliberately, and had children, as Sarae sugge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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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담으로 선택받은 아브람이 첫 아담처럼 아내의 말을 듣고(3:17)씨받이를 한 것입니다. 10년의 기다림은 너무 길었고, 86세의 나이는 너무 많았을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때로 수단과 방법을 구분해야 하고, 때로는 까다로운 기준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성도도 그렇다는 논리는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습니다. 샛길로 빠진 결과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세상과 타협해서 변질 될 때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Abram, who was chosen as the new Adam, listened to his wife like his first Adam (3:17) and took care of him. The 10 year wait may have been too long, and 86 years old may have been too old. Living by faith means sometimes you have to distinguish between the means, and sometimes you have to have strict standards. The logic that the saints do it because the world does it is not right before God. They were not happy as a result of falling into the side streets. You can never be happy when the saints compromise with the world and become corrup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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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럴 듯한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갈은 여종입니다.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사람들이 하갈의 인생을 가지고 함부로 한 것입니다. 새 생명을 잉태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어 쫓음으로서 신앙인격의 바닥을 훤히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은 기다림의 시간들에 있어서 실패 했습니다.
We must know that faith is much harder to maintain. It means that it is hard to remain firm and unshakable. It is not easy not to be swayed by the plausible world. Hagar is a maidservant. He is a vulnerable person. But the masters did it carelessly with Hagar's life. Despite the conception of a new life, the chase revealed the bottom of his religious character. At least Abraham failed in the waiting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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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신앙인들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하갈! 당시에 아이를 가진 여성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임신한 배를 안고 도망쳐야 했던 하갈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습니다. 주인이 시켜서 아브람과 동침했고 잉태까지 하여서 의기 양양했는데 졸지에 의지할 곳조차도 없는 안타까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갈은 광야로 내 쫓겼습니다. 사실은 내 쫓긴 것이 아니라 하갈이 도망쳤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Hagal fell into the abyss of life because of the wrong believers! At that time, it was too difficult for a woman with a child to live in. Hagal's heart must have been so sad that he had to run away with a pregnant stomach. He slept with Abram because his owner ordered him to do so, and he was proud because he was conceived, but he suddenly became a miserable life with nowhere to rely. Hagal has now been driven to the wilderness. The Bible says that in fact, Hagal ran away, not aft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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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하갈은 아무래도 잘 참는 면에 있어서 연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엄마가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왔으니 얼마나 무모한 행동입니까? 결국 하갈은 광야에서 추위와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습니다. 누구와 상의를 하고 싶어도 상의할 사람도 없습니다. 바로 이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을 찾아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광야 그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Hagal's new wife is apparently vulnerable in terms of being patient. How reckless is it that a mother with a child in her stomach ran out of the house without any countermeasures because the situation became difficult? Hagal is shivering in the cold and fear in the wilderness. There is no one to discuss with whom I want to consult. This is when the Lord's Lion comes to Hagal. "Where are you coming from?" "Return to your hostess and obey your servant." At that difficult moment of desperation, I met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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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브람의 가정에 이스마엘의 출생은 편법이 가져온 아픔이고 하갈은 애급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갈에게 아들이 들 나귀처럼 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갈은 고통가운데서만나주신 하나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결국 광야 길에서 하갈과 태중 아이를 살린 것은 ‘샘물’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보시고, 안전과 자손의 번창까지 약속하신 하나님입니다.
What we need to know is that in Abram's family, Ishmael's birth is a pain caused by expediency and Hagal is a child. There is nothing wrong with Hagal that his son becomes like a wild donkey. Hagal called God "Bella Harroy" for meeting him in pain. In the end, it was not "Spring Water" that saved Hagal and the baby in the wilderness, but God who listened to and saw their pain and promised safety and prosperity of his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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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의 수하에서 하갈의 미래도 아브람이나 아들 이스마엘이 아니라, 친히 나타나신 ‘엘 로이‘의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내 광야 인생은 자업자득이 아닌가? 약속하신 나라를 기업으로 얻으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The future of Hagar under Sarae is not up to Abram or his son Ishmael, but to the God of El Roy, who has appeared in person. The God who inspects. Is my life in the wilderness not self sufficient? What attitude is necessary to obtain the country you promised as a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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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출생(1-16)
a.사래의 대안:1-3
b,사래와 하갈의 갈등:4-6
c.이스마엘에 대한 약속;7-14
d.이스마엘의 출생: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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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아내 사래는(1a)
생산치 못하였고(1b)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1c)
애급 사람이요(1d)
이름은 하갈이라(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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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가(2a)
아브람에게 이르되(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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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2c)
나의 생산을(2d)
허락지 아니하셨으니(2e)
원컨대 나의 여종과(2f)
동침하라(2g)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2h)
자녀를 얻을까(2i)
하노라 하매(2j)
아브람이(2k)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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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아내(3a)
사래가(3b)
그 여종 애급 사람(3c)
하갈을 가져(3d)
그 남편 아브람에게(3e)
첩으로 준 때는(3f)
아브람이(3g)
가나안 땅에 거한지(3h)
10년 후이었더라(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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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하갈과 (4a)
동침하였더니(4b)
하갈이 잉태하매(4c)
그가(4d)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4e)
그 여주인을(4f)
멸시한지라(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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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가(5a)
아브람에게 이르되(5b)
나의 받는 욕은(5c)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5d)
내가 나의 여종을(5e)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5f)
그가 자기의(5g)
잉태함을 깨닫고(5h)
나를 멸시하니(5i)
당신과 나 사이에(5j)
여호와께서(5k)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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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6a)
사래에게 이르되(6b)
그대의 여종은(6c)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6d)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6e)
그에게 행하라 하매(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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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가 하갈을(6g)
학대하였더니(6h)
하갈이(6i)
사래의 앞에서(6j)
도망하였더라(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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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7a)
광야의 샘 곁(7b)
곧 술 길 샘물 곁에서(7c)
그를 만나(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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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8a)
네가 어디서 왔으며(8b)
어디로 가느냐?(8c)
그가 가로되(8d)
나는 나의 여주인(8e)
사래를 피하여(8f)
도망하나이다(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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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9a)
그에게 이르되(9b)
네 여주인에게로(9c)
돌아가서(9d)
그 수하에 복종하라(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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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0a)
또 그에게 이르되(10b)
내가 네 자손으로(10c)
크게 번성하여(10d)
그 수가 많아(10e)
셀 수 없게 하리라(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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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1a)
또 그에게 이르되(11b)
네가 잉태하였은즉(11c)
아들을 낳으리니(11d)
그 이름을(11e)
이스마엘이라 하라(11f)
이는 여호와께서(11g)
네 고통을(11h)
들으셨음이니라(1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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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람 중에(12a)
들 나귀 같이 되리니(12b)
그 손이(12c)
모든 사람을 치겠고(1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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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손이(12e)
그를 칠 찌며(12f)
그가(12g)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12h)
살리라 하니라(1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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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13a)
여호와의 이름을(13b)
감찰하시는(13c)
하나님이라 하였으니(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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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13e)
내가 어떻게 여기서(13f)
나를 감찰하시는(13g)
하나님을(13h)
뵈었는고 함이라(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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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그 샘을(14a)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14b)
그것이(14c)
가데스와(14d)
베렛 사이에 있더라(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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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이(15a)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1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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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15c)
하갈의 낳은(15d)
그 아들을 이름하여(15e)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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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이 아브람에게(16a)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16b)
아브람이 86세이었더라(16c)
아브람이 스스로 만든 대책(하갈)_ Abram's self-imposed measures (Hagal)
하갈의 저주와 추방_ The Curse and Exile of Hagar
샘물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발견_ Find God More Important Than Spring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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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하시는 하나님 ‘브엘라해로이’를 찬양합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내 가족만, 내 배만 채웠음을 용서하옵소서. 저의 잘못을 감찰 하시고 고쳐 주셔서 양보의 미덕을 기르게 하시고 이후로는 주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게 하소서.
Praise Beelaharoy, the God of inspection. Forgive me for filling my stomach with only my family, even though I have told everyone to do good to them as soon as possible. You have examined and corrected my mistakes, and you have fostered the virtue of concessions. Let us not be ahead of the Lord after this.
2026.1.22.thu.Clay
신학 비평//
1. 약속의 지연은 믿음을 시험하지 않고 드러낸다
창세기 16장은 약속이 철회된 장이 아니라 약속이 지연된 장이다. 문제는 약속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기다림의 길이다. 사래의 말은 불신앙의 폭언이 아니라, 지친 신앙의 논리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16:2) 이 말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채, 다른 방법을 제안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장의 비극은 ‘무신론’이 아니라 편법적 신앙에서 시작된다.
2.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 창세기 3장의 메아리
본문은 의도적으로 창세기 3장을 소환한다. “아담이 그 아내의 말을 들으니라”(창 3:17)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창 16:2) 여기서 문제는 ‘아내의 말’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대안이다. 아브람은 불신앙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격함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3. 문화는 설명이 되지만, 정당화는 되지 않는다
하갈을 취하는 행위는 당시 문화 속에서는 합법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문화를 이유로 이 선택을 미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은 늘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가능한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가?” 믿음이란 방법을 묻기 전에 방향을 묻는 태도다. 아브람의 실패는 현실적 판단이 아니라, 신앙적 분별의 실패다.
4. 가장 큰 피해자는 늘 약자다
이 본문에서 가장 신앙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놀랍게도 아브람도, 사래도 아니다. 하갈이다. 하갈은 선택권이 없었고, 명령에 순종했고, 임신했으며, 학대받았고 쫓겨났다. 여기서 신학적 질문이 생긴다. 왜 하나님의 약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사람의 삶을 가장 함부로 다루는가? 창세기 16장은 경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숨기지 않는다.
5. “도망하였더라” — 죄인가, 생존인가
성경은 하갈이 “도망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이 도망은 반역이 아니라 생존의 몸부림이다. 아이를 가진 여인이 광야로 향하는 선택은 무모하지만, 그 무모함은 죄보다 절망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절망을 책망으로 만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6. 광야에서 먼저 말을 거신 하나님
창세기 16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침묵하신다. 대신 하갈에게 말을 거신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은 심문이 아니다. 정체성과 방향을 되묻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갈에게 약속하신다. 생존-안전-자손의 번성 이는 분명히 말해준다. 하나님의 관심은 약속의 혈통 이전에
약속에서 밀려난 생명을 향해 있다.
7. “브엘라해로이” — 실패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
하갈은 하나님을 이렇게 부른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엘 로이)” 놀라운 반전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람의 장막이 아니라, 광야의 샘가에서 주어진다. 샘물이 하갈을 살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보셨다’는 하나님의 인식이 하갈을 살렸다.
8. 결론: 약속의 나라는 편법으로 오지 않는다
창세기 16장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믿음은 시작보다 유지가 어렵다. 약속은 빠르게 오지 않는다. 편법은 언제나 약자를 희생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희생자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갈의 미래는 사래도, 아브람도, 이스마엘도 아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 16장은 실패한 신앙인의 이야기이자, 실패 속에서도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약속의 나라를 얻는 길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패했을 때조차, 하나님은 광야에서 먼저 말을 거신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