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실인가요?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요?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합니다. 보는 것은 그만큼 신뢰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일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하기는 연극을 볼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잘 알듯이 그것은 가상의 현실입니다. 가공된 진실입니다. 진실을 반영할 수는 있어도 진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진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현실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잘 아는 유명 기업인의 말입니다. 조금 달리 표현하면 세상은 넓고 볼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볼 능력도 없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다 본들 뭘 하겠습니까? 그런데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선택합니다. 누가 선택하겠습니까? 그야 본인이 합니다. 그런데 선택하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뉴스를 보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여서 집단이 되고 그래서 그 안에서도 취사선택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는 이익을 창출해서 서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 선택에 이익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돈이 개입되면 자칫 진실 그 자체와는 거리가 생길 가능성이 크게 됩니다. 아무튼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보아야 할 것을 선택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수고해준 것을 보게 되지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그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사항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여 그 집단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사나 방송국 또는 그와 같은 종류의 미디어 관계 업종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들은 광고로 사업을 할 수 있는 비용을 얻습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시청자나 독자를 확보하는데 사활을 겁니다. 시청률이나 독자층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광고 의뢰가 들어오는 것이고 그것이 곧 매출액입니다. 그것으로 유지가 되는 것이지요. 진실 보도 뒤에 숨겨진 뼈아픈 약점입니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곧 기자들은 또 어디에 초점이 맞춰질까요? 자기가 다룬 기사나 보도가 실제로 기사화되어 나오든지 방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서도 경쟁입니다. 남보다 멋진 것, 특이한 것을 남들보다 빠르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위 ‘특종’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에 돈이 개입되기 때문에 별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특종을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언론의 본질적 사명을 일깨우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때로 돈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요?
초미의 관심과 두려움을 일이키고 있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제보를 받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조사합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증거들을 목격합니다. 그 중 살인범이 직접 자기감정을 표현한 쪽지를 떼어 옵니다. 매우 중요한 물적 증거입니다. 경찰도 찾아내지 못한 사건의 실마리가 터뜨려집니다. ‘단독보도,’ 방송국의 자존감을 표현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해냈다는 우월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 집단의 가치가 상승되고 자연스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넓어집니다. 그 보도를 일으킨 기자는 일등공신이 되어 승승장구할 기회를 얻게 되지요.
그렇게 될 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습니다. 제보자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그런데 특종은 이미 생산되었고 그 때부터 사건은 개인의 통제에서 벗어납니다. 조직 안에서 임의로 흘러갑니다.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벗어나기 힘든 상황으로 몰려갑니다. 진실은 묻히고 거짓이 커다란 풍선이 되어 제멋대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풍선을 보며 재미있다고 따라갑니다. 경찰이 거짓이라고 밝히려 하지만 역시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이 점에 있어서는 현실과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경찰이 과연 언론 앞에서 그럴까요?
또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으로 달려가는 사건을 분명 실제 범인도 볼 것이라는 점이지요.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을 이용하여 자기는 영원히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리라는 기대입니다. 완전범죄를 꿈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희생양은 바로 거짓을 특종으로 만든 기자입니다. 그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니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혹스런 입장에서 갈피를 잡기 힘듭니다. 바로 그 입장의 주연 배우의 연기가 일품이지요.
집단 속의 개인은 때로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은 개인의 뜻을 무시하고 집단의 흐름 속에 묻혀서 제멋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로 갈까? 질문해봅니다.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를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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