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야.”
시각예술 작가는 현시대의 철학자라는 말과 함께 이 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물론 나도 이 말에 매우 동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문득, 최근 들어 내 머릿속이 꽤 시끄럽다고 느낀다.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이었을까.
▲ 작품 아이디어 구상 과정
작가노트를 작성하려 주말에 찾은 카페에서 무심코 ‘사고’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사고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고민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정의였다.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히 마주한 한자 풀이에서 ‘사고(私考)’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사사로울 사’. ‘사(私)’는 일본어로 ‘나’를 뜻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나의 사사로운 생각, 이 뜻풀이가 나에게 의외의 안도감을 주었다.
작업이란 언제부턴가 무게감 있는 의미와 빈틈없는 구조를 요구하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경험이 쌓일수록 내 작업은 점점 더 ‘정답’ 같은 형태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 속에 놓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유연하고 위트 있는 시선은 점점 희미해졌다. 때로는 농담처럼 툭 던진 말 한마디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는데, 나는 그 ‘가벼움’마저도 경계하며 신중이라는 이름의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다시 건져 올린 것이 바로 ‘사사로운 생각’이었다.
이 칼럼 ‘사고다락’은 그런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작품을 위한 정제된 생각이 아니라, 작업과 약간의 거리를 둔 일상의 시선에서 미술을 바라보려 한다. 자주 열지 않는 다락방처럼, 그동안 마음속에 차곡차곡 넣어두기만 했던 단어들과 조용히 마주 앉아보려 한다.
이곳은 논문도, 작가노트도 아닌 공유 일기장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예술이 반드시 정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은 답변을 유예하고, 감정을 떠올리게 하며,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감각들을 엿보게 한다고 믿는다. 예술이 사유의 결과라기보다, 사유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면 그 출발은 ‘사사로운 생각’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사고다락’은 나의 작업이 생성되기 전, 혹은 생성된 이후 남겨진 여백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 자투리들이 쌓여 또 하나의 완성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이 칼럼들로 시작된 소재들로 개인전을 꾸밀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나의 생각이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 존중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은 그 시작을 조용히 열어보려 한다. 내 다락방의 문을 열며.
김아야 예술가 / 문화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