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주 연중 제24주일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아
(마르 8.27-35)
나는 내 세례명이 싫었다.
이재근 신부. 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내 세례명 `레오`의 축일은 내 생일과 같은 11월10일이다.
사람들은 생일과 축일이 같은 건 하느님께 특별히 선택된 것과 같다며 나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생일과 축일이 달라 각각 축하받는 사람들이 부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생일 다음날은 11월11일 빼빼로 데이라
축일과 생일 선물로 빼빼로를 가장 많이 받는다.
이 불행을 다른 사람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예비신자 교리반 수업 때 항상 축일과 생일은 무조건 멀리 떨어뜨려 놓으십시오..한다.
어렸을 적에는 같은 세례명이 흔하지 않아서
지금은 사자 이름부터 가수나 운동선수. 심지어 과자 이름에 이르기까지
너무 흔해져서 세례명을 싫어했다.
그러나 세례명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세례명을 정하는 순간 그 성인은 나의 수호자가 되고
나는 성인의 삶을 묵상하고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도 갖게 된다.
이것이 세례명의 핵심이다.
하지만 난 단순히 인간적인 욕심으로 세례명을 생각했다.
축일과 생일이 좀 떨어져 있었더라면. 좀 더 매력적인 이름이었더라면...
난 마치 세례명이 나를 돋보이게 해 줄 액세서리인 양 여겼던 것이다.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 신앙고백도 하고 인간적인 욕심도 말했다.
그리고 인간적 욕심으로 했던 말에 대해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며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솔직히 내가 베드로라면 엄청 억울할 것 같다.
예수님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렇게 꾸지람을 들을 말인가.
하지만 예수님께서 혼을 내신 이유는 베드로가 인간적인 욕심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으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하지만 때때로 그 신앙고백과 반대되는 것을 바라기도 한다.
세속적인 이유로 세례명을 싫어했던 나처럼 말이다.
교황이었던 레오 성인은 당시 동로마를 속국으로 만드고
서로 마 침략을 준비하던 훈족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더는 백성을 위해
홀로 훈족 왕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권위 있는 말로 훈족 왕을 설득해 싸움 없이 전쟁을 막았고
그 후 `대교황` 칭호를 받았다.
이런 멋진 분이 내 수호성인임에도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제댜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인간적 욕심에 따라 행동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가끔일 수 있도록
욕심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잊지 않아야 겠다.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