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티어(Tear)다.”
"제발, 제발… 조금만 더 머물러 주십시오."
"싫어."
"티어시여, 부족한것이 무엇이길래 떠나려 하십니까…"
"재미없어졌어. 지루해. 여기엔 더이상 내 흥미를 끄는것이 없어."
"워, 원하는것은 모두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추한 모습으로 바닥에 비굴하게 엎드려 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애원하고 있는 대상은 비상하는 드래곤(Dragon. 龍)이 새겨져 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한 아이.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색을 가진 아이는 한없이 지루한 표정으로 자신의 발앞에 엎드린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무릎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옷자락을 두손으로 애원하듯 움켜잡았다. 아이는 그런 그의 모습에도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이쯤되면 한번쯤은 표정이 흔들릴 법도 한데 아이는 마치 감정이 없는 듯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음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아 아이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안타깝다는듯한, 애처로움을 드러내는 그런 표정이었다. 아이의 옷자락을 잡고있는 사내는 여전히 고개를 바닥에 닿을정도로 숙인채여서, 그런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사내에겐 억겁의 시간이 흐른듯한 느낌이 들때쯤, 아이의 입이 열리고 감정없는, 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내에게 말했다.
"넌, 나한테 여러가지 재미를 줬으니까, 죽이진 않겠어. 이 손. 놔."
분명,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왠지 죽인다는 그 말 자체는 아이와 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아이의 주위로 공기가 낮게 깔리자 사내는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의 옷자락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아이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고 느낀 순간 사내 역시 뭔가 이질감을 살짝 느꼈지만, 이내 아무것도 아니려니 하고서 두 손을 더욱 움켜잡았다.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길래, 내가 놓으랬잖아. 왜 내 마음을 시험하는거냐, 너는."
그 말이 신호였을까. 멀쩡하게만 보이던 사내의 몸이 순간 두쪽으로 갈라졌다. 죽어버린 사내의 얼굴은 '도데체 언제'라고 말하는듯 했다. 사내에게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샘솟아 허공에 흩뿌려지는 모습은 슬픈듯 서있는 아이와 너무 잘 어울려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도데체 사람을 얼마나 죽여야 저런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아이. 아이가 몸을 돌렸다. 아이가 몸을 돌린 방향에는 어느새 공간을 일렁이게 하며 나타난 문이 있었다. 아이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고,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들어간 문은 금세 닫혀, 애초에 문따위는,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따위는 없었다는 듯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차디찬 바닥엔 한 사내의 반으로 깔끔하게 갈라진 시신만이 쓸쓸하게 놓여있을 뿐이었다.
'아아, 지루해. 세상이란게 너무 재미없어.'
한 아이가 등에는 여행가방으로 보이는것을 짊어지고, 손에는 지팡이로 보이는 막대기를, 허리춤에는 호신용인지 검을 찬 채로 작은 산길을 걷고있다. 그 아이의 표정은 아이치고는 너무나도 무표정해서, 어떻게 보면 무섭게도 보일 법 했지만 아이의 미색이 워낙 뛰어나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아름다워 아이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티어(Tear). 눈물이라는 뜻의 이 단어 그대로 아이는 '눈물'이었다. 정확히는 신의 눈물(Tear of god)이라 불리는 아이는 성별이 없었지만, 자신은 항상 '소년'이라 생각하고 있는 아이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때, 인간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여 흘린 눈물이 그대로 신과 닮은 아이가 되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인 이 소년은 세상에서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해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죽하면 인간을 지키고자 신이 만들었다는 아이가 인간을 죽이는것에 재미를 붙였을까.
소년은 인간을 죽일때 뿜어져 나오는 피가 좋았다. 허공에 아름답게 흩뿌려지는 피는 인간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는 소년이기에 그는 한동안은 인간 사냥꾼이라고까지 불리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건 몇천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한 제국에서 세계정복을 꿈꾸길래 가서 조금 돕다가, 지루해져서 황제를 죽이고 또다시 재미를 찾아 여행을 나선 참이다.
소년이 문득 길을 걷던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길이 두갈래로 나눠져 있었고, 표지판에 각각 길의 행선지가 적혀 있었다.
'왼쪽은 대도시 트릭. 오른쪽은 작은 마을 손레… 대도시는 시끄러워.'
소년은 금세 갈곳을 정하고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아 저쪽에서 마을이 어렴풋이 보였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보지 못할 거리이지만, 소년은 그게 가능했다.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모든면에서 뛰어나게 창조된 '신의 눈물'이었으니까.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아이가 소년에게 다가온다. 소년은 겨우 12세 정도의 모습이었는데, 저쪽에서 뛰어오는 아이는 이제 겨우 8살이나 됬을법한 작은 아이였다. 아이는 금세 소년에게 다가와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형은 여행자에요? 여행을 떠나는길이에요, 돌아가는 길이에요? 형은 기사에요, 마법사에요?"
두서없이 쏟아진 아이의 질문에 소년이 무료한 표정을 지우고서 부드러운 봄바람같이 싱긋 웃어보이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여행자야. 다른말로는 방랑자. 여행은… 한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곳으로 가는 길이야. 방랑자는 방랑을 멈추지 않으니까. 그리고 난… 음. 이것저것 다 할줄 알지만, 마법사라고 보면 되. 이 검은 그냥 호신용이고."
"우와, 형 마법사여서 머리 좋구나! 내 질문을 다 기억하고! 마을 어른들은 내가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저으면서 가버리거든. 형, 형! 마법, 보여주면 안되?"
"흐음… 뭘 보여줄까?"
"소환! 소환같은거 보여줄수 있어?"
"물론이지. {차원 너머의 존재여, 내가 신께 받은 내 의지로 너를 부르니 너는 내 부름에 답하여 지금 내 앞에 나타나라. 서먼(summon)}"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소환을 하면 소환 시전자의 앞에 마법진이 생기며 바로 소환 대상이 나타나는것이 보통인데, 어떤 이유에선지 소환 대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법진 역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소년이 인상을 구기며 다시 소환을 하려는데 갑작스레 소년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덤으로 인간의 비명소리 역시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꺄악-!"
"흐어어억-! 사…사람살려!"
"……. 죽는건가."
"{떠올라라, 안티 그래비티(antigravity)} 너흰 뭐냐?!"
신의 눈물, 티어와 일행은 그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