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광화문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반두비>를 보았습니다.
솔직한 얘기로 이 영화의 관람등급이 논란이 되었던 터라
영화를 보는 내내 뭐가 청소년에게 보여줘선 안되는 내용일까를 생각하며 보게 되더군요.
이른바 탈학교를 선언하는 17세의 여고생 민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담임 선생님도 자퇴를 막을 수 없는 사정은 충분하더군요.
(스토리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이렇게 밖에는...)
이 아이가 원어민영어학원을 다니기 위하여 각종 알바를 하게 되는데
결국 대학생이라 속이고 속칭 대딸방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게 됩니다.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얘기라 저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았습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부분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분들은 요즘 TV드라마를 보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집에까지 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무능력한 엄마의 애인.
그 나이의 어느 여고생이 민서처럼 반응하는 게 이상할 수 있을까요.
대뜸 나타나 대낮에 침대에서 엄마와 뒹굴고 있는 남자를 보고
엄마와 결혼할 거니까 아빠라고 부르라고요?
세상에, 이 상황에서 고분고분 아빠라고 부르는 사춘기 소녀를
기성세대들은 기대하고 계시는군요!
이 아이가 내뱉는 말을 '언어폭력'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진짜 폭력이 어떤 건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앞서 조이뉴스의 칼럼이 올라와 있어 그 얘길 다시 꺼내면,
이주노동자 카림의 1년치 임금을 주지 않고 있는 사장의 집을 찾아가 기물을 파손하는 게 나오는데
영화를 본 어느 누가 그 장면의 민서를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할까요?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그럴 수 있다고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민서의 행동에 인과관계는 없을까요?
카림은 여권만료가 다 되어 내일 모레 방글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림은 이런 사정을 얘기하면 사장이 돈을 줄 거라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진 순진한 친구죠)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여러분이 (이런 악덕) 사장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고국의 아내에게조차 이혼당하고 타국땅에서 임금도 못 받고 있는 카림을 위로하기 위해
엄마의 자동차키를 훔쳐 차를 몰아 바다로 가는데,
이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불법운전이 문제야' 하며 혀를 차고 있다면...
이건 거의 중증입니다.
카림이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모처럼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표정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면...백프롭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폭력과 욕설로 맞선다고 걱정하시는 분들!
제발 영화 보실 때, 딴 생각하지 마시고 집중 좀 하십시오.
아무리 집중해도 감정이입도 안 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요?
이런 경우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감독이 영화를 잘 못 만들었거나...
아님 감정동화가 안 되는 사이코패스이거나...
'내가 저 경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반추시켜
간접경험을 통해 자신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 하고 음악을 들으라 하고
좋은 연극, 영화들 많이 보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주유소에서 일하는 민서가 망나니같은 사장 아들차에 기름을 넣는데
이 못된 녀석이 어린 소녀에게 돈을 미끼로 원조교제 하자고 꼬드깁니다.
자, 이 상황에서 '그래요, 가요' 그 녀석하고 노는 건 괜찮고
기름을 그 녀석을 향해 쏘는 건 거칠고 난폭한 행위입니까?
아하, 그냥 울면서 달아나는 소녀상을 떠올리셨군요!
죄송합니다. 당신의 빈약한 상상력에 응대해 주지 못해서...
영화는 이런저런 형편으로 반항할 수 밖에 없는 여고생이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를 만나 편견을 깨나가며
인간을 인간으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미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바로 나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피부색이 똑같이 다르지만, 어메리카에서 온 사람과 방글라에서 온 사람은
과연 같은 사람일까요...?
"때는 무슨 색깔이야?"하고 묻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랑 다른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아님 하등 다를 게 없는데, 다르다고 지레 못 박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외국인 노동자를 만만하게 부려 먹을 수 있는 호구로 바라보는 회사직원의 얼굴은
과연 나의 얼굴이 아닐까요?
마치 대단한 문제아인 것처럼 보이는 나이 어린 민서가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어른보다도 성숙하고 된 사람이 아닐까요?
<반두비>는 이미 기성세대가 되었고 민서 같은 딸내미를 키우는 40대 중반을 넘긴
나 같은 어른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경제적으로 살 만하다고 하는 한국사회가
정말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사회인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민서가 추방된 카림을 그리워하며
방글라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앉아 그들처럼 식사를 하며 눈물짓는 엔딩씬에서
울컥 하는 뭔가가 있더랬습니다.
(그 직전 식당 주인으로 출연한 신동일 감독을 보고 막 웃었지만요...)
그래요. 한 당돌한 여고생이 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만나
사람을 이해하고 우정을 느껴가는 과정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했던 거구요.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필이 꽂혀 그물을 내던지고 따라 나섰듯이,
도시에서 멀쩡히 잘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듯이,
사람이 어떤 전이(轉移)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이 민서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할 줄 아는 존재임을 느끼게 하는 거라면
두시간 동안 극장에 앉은 그 시간은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한 시간입니까.
좋은 영화 만들어 보여주신 신동일 감독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참고로 주인공 카림의 고향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가난한 나라지만 신을 경배하고 영성이 배어있어 그럴까요.
영화를 보면서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첫댓글 불안전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이 존재하겠습니까. 그런 문제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인간다움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저마다의 느낌을 가집니다. 그 느낌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배격해야 할 창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모든 창작품에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재미 없는 것도 있고 식견이 짧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재미없다고 다른 사람도 재미 없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으며 또한 내가 받은 감동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감합니다. 내가 받은 감동이 절대 남과 같을수가 없는거죠~~~~~
창작자의 문제제기에 공감을 형성할 수도 있고, 그 문제제기에 불편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편함을 덮는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닐겁니다. 영화의 중간에 저도 불편함을 느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더욱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나는 또 다른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해 나갈겁니다. 그런 나의 행동변화를 이끄는 건 바로 영화 <반두비> 입니다. 작품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기회를 갖도록, 작품을 만들어 주신 감독님과 영화를 보러가자고 제안해주신 봄꿈님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일요일 한밤까지 봄꿈샘 영화평 기다리다 잠 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티비를 안 보는데 우리 신랑말이 케이블티비에서 반두비를 했다고 하는데 제가 뻥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게 사실일까요? ^^ 우리 신랑도 괜찮은 영화더라하던데....개봉전에 티비에 했을까요?
영화평이라기 보다는 자기 감정이 좀 드러나 보이는 듯 합니다
봄꿈님, 참말로 부지런하세요. 님의 에너지가 저한테까지 전해옵니다. 서울까지 먼 나들이하셨는데 뵙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담번엔 꼭 얼굴 도장 찍겠심다 ^^
미안한데요 저기 이카페 반두비팬 카페 인가요.. 글들보면 영화중에 거의 반두비 광고 네요.
졸업여행중에 반두비 이야기가 나왔어서 관심들이 많으시답니다.^^ (요정도로...)
그러니까 이 카페 반두비 팬카페가 맞네요
팬 여러분 아무리 자기가 좋아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한 영화만 줄기차게 광고하십니까 여긴 도대체 뭐 하는 카페입니까 자기 좋아하는 것만 여러 사람한테 광고하는 거 전 로 좋게 보이질 않습니다.
제가 카페를 잘못 알고 들어 온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히 계십시요
여기는 사는 이야기하는 방이라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어요.^^ 카페의 공식적인 내용이 아니고 회원들의 갠적인 이야기나 의견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어떤 모임이든 그 모임에 속한 회원이 만든 작품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것도 주류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에 어렵게 만든 독립영화이니 한번쯤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같은디...-,,-;;;
반두비 팬카페는 아닌데 그렇게 보여서 맘에 안드시는 분도 계시나봐요...졸업여행을 같이 가신분이라면 이해하실 듯한데....설명하기도 뭐하고...어쨌거나 식당주인으로 나오신 감독님을 봤다면 저도 웃었을 것 같네요...하하하
아웅~정말 보고싶어지네요. 신랑이 늦게 출근을 하게 된 날, 영화관에 갔는데 시간에 딱 맞춰 볼수 있는 영화가 <트랜스포머>밖에 없는거에요. <반두비>가 눈에 자꾸만 밟혔지만.. 그건 무려 2시간 뒤에 상영.. ㅜㅜ 내가 미쳤지.. 돈쳐바른 만화영화를 왜 봤을꼬.. 2시간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 결국 지원이 하원버스시간도 늦고 말았습니다. 밥도 못먹고.. 네가 미쳤지...ㅜ 근데 정말 나이들어가나봐요. 오프닝부터 시작되는 쇳소리가 너무너무 싫어서 울렁증까지 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