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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암동 백석동천(백사실계곡) 여름 나들이 '
여름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을 보이던 8월의 첫 무렵,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에 숨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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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실계곡(백석동천)의 속살로 들어서다 |
서슬이 시퍼런 칼을 쥐어든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진 현통사(玄通寺) 대문(일주문) 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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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하나 없이 맑은 백사실계곡 냇물은 넓은 세상을 꿈꾸며 폭포를 타고 내려와 폭포
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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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백사실계곡을 본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 잡으며 백사폭포를 지나면 청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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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계곡 안내도와 자연보호 안내문이 있는 별서터 직전 갈림길에서 정겹게 펼쳐진 계곡 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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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동천 별서터를 코 앞에 두고 별서터 맞은 편인 서쪽 산자락의 윗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
♠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에 숨겨진 아름다운 별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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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漢陽都城) 사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을
벗어나면
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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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에서 바라본 연못 |
▲ 백석동천 바위글씨 |
백석동천과 관련된 첫 기록은 18세기 인물인 월암 이광여(1720~1783)의 이참봉집(李參奉集)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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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속의 숨겨진 보석이자 별천지 같은
이곳은 꽃과 잎이 돋아나는 봄도
아름답거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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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계곡 안내도가 있는 별서터 입구에서 계곡을 건너면 검은 피부의 백석동천 안내문이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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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랑채터 (늦가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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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이 잘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ㄱ' 구조의 5량집 사랑채가 있었다. 허나 아쉽게도 생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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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터와 안채 동쪽 산자락에는 석축과 담장의 흔적이 있다. 석축은 별서 주변을 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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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로 오르는 헝클어진 서쪽 돌계단 |
▲ 흔적만 남은 사랑채 뒷쪽 담장터 |
♠ 백석동천 별서터의 중심,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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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터에서 바라보이는 연못은 물고기가 수영하고 연꽃이 살며시 떠있는 그런 흔한 연못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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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발을 담궜던 정자는 윗도리와 중심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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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바라본 정자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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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 주인은 돌계단에 신발을 벗어놓고 정자에서 혼자 혹은 벗들과 시를 읊거나 세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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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터 일대에서 수습된
크고 견고한 돌덩어리들을 이곳에 모아두었다. 이들은 아마도 사랑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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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터 옆에 있던
배수구를 통해 옆에 흐르는 백사실계곡 물을 가져와 연못을 채우고 채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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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제국이 내린 물폭탄을 배터지게 섭취하면서
연못의 절반 정도가 물에 찼다. 즉 왕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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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우측에는 키가 약 20m에 이르는 장대한 물푸레나무가 연못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 |
♠ 백석동천 마무리 |
백사실계곡은 별서터 옆에서 백사실약수터 입구까지의 황금 구간을 도룡뇽과 맹꽁이 등의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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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숲에서 오른쪽(남쪽) 길로 가면 서쪽을 향해 95~100도 정도 약간 고개를 숙인 큰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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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동천 바위글씨에서 능금마을로 이어지는 숲길을 조금 가면 별서터에서 잠시 떨어졌던 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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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계곡 상류의 너른 반석을 지나면 2012년에 지어진 외나무다리가 깊은 산골의 고적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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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매우 좁아지고 계곡도 1~2m 정도로 폭이 줄어든다. 계곡 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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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4년 8월 1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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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한번 가봐야겠어요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에 한번 갔다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