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산행 - 발바닥병이 낫기를 기다려 이제나 저제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는 기다릴 수도 없어 산행을 결행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옷을 두툼하게 입고 우유를 뜨겁게 끓여 마시고 6시 아파트를 나선다. 웬 여자가 차에서 내려 부시시한 얼굴로 아파트로 들어선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깜깜한 하늘에는 별들도 듬성듬성 보인다.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차를 몰고 중산간도로를 달린다. 뒤에 오던 차가 순식간에 앞으로 사라진다. 새벽부터 도망간 마누라를 쫓아가는 모양이다. 양마단지 공용주차장 에 도착해서 제일 좋은 자리에 주차를 한다. 잠시 후 도착한 28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판악에서 내렸다.매점에서 물 한병을 사서 배낭에 넣고 등산로 입구로 가본다. 등산객 숫자를 세는 기계를 새로 설치해 놓았다. 경노인지를 확인하는 주차장 관리인 은 보이지 않는다 먼통이 터오르기 시작한다. 까마귀 들이 여기저기서 음침한 소리로 인사를 한다. 발바닥 병이 도지지 않도록 양말을 껴 신었다. 발바닥병은 2년전 쯤에 생겼다. 한라산에 올라갔다 가 내려오는데 왼쪽 발바닥 앞쪽이 따끔거린다. 모래가 들어간 것 같아 등산화를 벗어 탁탁 털고 내려 온다. 얼마 쯤 지나면 또 다시 따끔거린다. 이번에는 나무가지들이 들어 간 것 같았다. 또 다시 등산화를 벗어 탁탁 아주 깨끗하게 털었다. 또 다시 따끔거려 종이를 넣어 쿠션을 만들어 신었다. 올레길을 걸을 때도 5시간쯤 지나면 따끔거렸다. 등산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등산화를 바꿨다. 그래도 따끔거렸다. 어느 날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무좀 때문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다음날 서귀포 약방에 가서 증세를 이야기하고 가장 비싼 무좀약 두통을 샀다. 잠 잘때 듬뿍 바르고 잠 깨서 듬뿍 발랐다. 약효가 오래 지속되라고 발가락 양말을 사서 신었다. 발가락 양말은 생김새가 혐오스러워 신어본 적이 없다. 발바닥 통증은 어느 정도 줄어 든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줄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무좀병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이 후로는 한라산에 올라가지 않고 올레길만 걸었다. 한라산에 올라가면 걸어서 내려와야 되기 때문이다. 부천집에 왔을 때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젊은 의사인데 먼저도 몇번 본적이 있다. 발바닥을 만져보고 사진을 찍는다. 처방은 산에 올라가지 말라 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도 아프지 않게 해주는 것이 의사라고 하였더니 신경질을 낸다. 간신히 설득시켜 주사를 맞고 3일치 약봉다리를 들고 병원을 나왔다. 약은 대충대충 먹었다. 조금은 낫는 것 같았다. 그 후로 한번 더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오늘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속밭 대피소는 폐쇠되고 무슨 공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도 는 공사천국이다. 도로도 공사하고 다리도 공사하고 건물도 공사한다. 속밭대피소에서 쉬지 않고 계속해 서 올라간다. 나무 잎파리들은 하나도 나무에 붙어있지 않았다. 가파른 돌길이 꽤나 미끄럽다. 진달래밭 대피소다. 대피소 너머로 파란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떤 부부에게 부탁해 증명사진을 찍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본다. 오늘도 매점은 닫혀 있다. 매점을 열지 않는 이유는 알지 못한다. 진다래밭 대피소에서 먹는 컵라면은 찐짜 맛이 좋았다. 맛이 좋은 이유는 알지 못한다. 라면을 먹으러 일부러 올라온 아줌마를 만난 적도 있다. 대피소 밖 벤치에 않아 휴식을 하는데 웬 여자가 통진중학교를 물어본다. 소리만 들어도 반가워 통진 중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하였다. 여자는 내가 동문회장을 할 때 나루산악회에서 나를 봤다고 한다. 살던 동네는 담터고 서암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 와서 한라산에 올라가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고향이야기를 하는데 나보다 11년 후배다. 나루산악회에 다니던 추자나 애영이도 잘 안다. 이야기를 대충 끝내고 헤어져 한라산 꼭대기로 향하였다. 날씨는 춥지도 않고 바람도 안불고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청명하였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이다. 파란 가을 하늘을 보기 위해 힘들여 올라온다. 정상표지목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백록담을 들여다본 다. 노인 젖가슴처럼 거무튀튀하게 말라 있다. 백록담 표지목에서 표지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왜 표지목에서 사진을 찍으려는지는 알 수 없다. 실물보다 사진이 더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간단하게 준비한 점심을 데크에 앉아 먹는다. 까마귀들이 이리 저리 몰려 다니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까마귀들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고 관리인이 방송을 한다. 오늘은 맥주를 가져 오지 않았다. 산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음주와 흡연을 하지 말라고 관리인이 몇번이고 방송을 한다. 그렇지만 성판악 매점에서는 등산용 술을 팔고 있다. 담배를 팔고 댬배를 피지 말라 하고 술을 팔고 술을 마시지 말라 한다. 세금은 잔뜩 걷어간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만났던 후배를 찾아 본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추자에게 후배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고 연락해 보라고 한다. 추자가 연락해보겠다고 하였다. 서두러 산을 내려온다. 돌계단을 내려오다가 늦게 올라오는 후배를 만났다. 산에 오르는 것이 꽤나 힘든 것 같다. 남편은 앞서서 올라갔다고 한다. 멸론에서 노래를 틀고 내려온다. 고사목은 모습이 그대로다.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고 한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잠깐 휴식 하고 곧바로 성판악으로 내려온다. 발바닥 통증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오른쪽 무릅부근이 욱신거렸다. 아침 6시50분 산에 올라 오후 3시에 내려왔다. 성판악 매점에서 늘 하던대로 뜨거운 유자차를 마신다. 휘휘 저어서 컵에 담아주는 것이 4,000원이다. 몸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신다. 구름이 들고 비가 올 것처럼 흐려진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막걸리를 마시며 떠들석하다. 서을친구에게 등산을 무사히 마쳤다고 카톡을 보낸다. 사진도 보내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죽어버린다. 밧데리가 소진된 것이다. 조용히 매점을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와서 281번을 기다린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좁은 길에는 양옆으로 등산객들의 차들이 길게 주차되어 있다. 잠시 후 제주시에서 넘어 온 버스는 손님들을 태우고 복잡거리는 성판악을 빠져나와 서귀포로 내려간다. 양마단지에서 내려 차를 몰고 아파트로 간다. 날씨는 맑아졌다. 2019/11/23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