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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8 - 금반지
S#1 술집 (밤)
은영과 경수가 소주를 마시고 있다.
경 수 (열 받아) 안 되겠네? 그 꼴통? 내가 만나서 손 좀 봐줄
까?
은 영 고마워.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 (소주잔 내밀면)
경 수 (건배하고는) 아니야, 진짜 말만해! 내가 근처도 못 오
게 아주 작살을 내놀 테니까.
은 영 됐어. 괜히 일만 커질라.
이때 갑자기 들이닥치는 상두.
상 두 (경수의 멱살을 잡더니) 넌 뭐야? 뭔데, 은영씨 함부
로 만나?
경 수 (겁먹어) 예? 누구세요?
은 영 어머, 왜 이래요? 장상두씨, 그거 못 놔요?
경 수 (확 쫄며) 이 친구가 그 꼴통이냐...?
이때 날아드는 상두의 주먹. 픽 쓰러지는 경수. 계속 구타하는 상
두
은 영 (비명 지르며) 어머, 경수야...!
상 두 (은영을 끌고 나가며) 이리 와! 앞으로 퇴근하면 집에
곱게곱게 들어 가.
은 영 이거 놔요. 이거 못 놔? (끌려나가며) 당신이 뭔데 이
래?
주변의 놀란 사람들, 그제야 하나둘 경수에게로 모여든다.
S#2 은영 자취집 현관 (밤)
은영이니? 하면서 인경이 문을 열면, 은영을 끌고 들어오는 상두.
인 경 (놀라) 어머나, 깜짝이야...
상두, 들어서자마자 은영의 손목을 거칠게 놓으면,
은영, 얼른 신발 벗고 안으로 올라서서, 잡혔던 팔목 아파서 주무
르는데,
상 두 내 똑똑히 말하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나 이외에 남
자도 만나선 안돼. 알았어?! 내가 허락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은 영 그게 누군데요?
상 두 아버지하고 남동생. (은영의 손을 덥석 잡더니, 반지상
자 주는) 자, 그리고 이거 지금 이 순간부터 끼고 다녀.
은 영 이게 뭔데요...?
상 두 (대답없이 인경에게 공손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인
사하고 나간다.)
인 경 (얼이나가) 뭐니? 저 인간...?
은 영 (울 듯이) 몰라... 난 어떡하면 좋니...?
인 경 (반지상자 집어들고 열어보는) 어디 봐, 이건 뭐야...?
상자 열면 다이아 정도 박힌 예쁜 반지가 보인다.
S#3 소제목
그 반지 밑에 떠오르는 소제목.
8. 금반지.
S#4 응급실 (밤)
부시시 눈을 뜨는 경수.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닝겔주사 맞고
있다.
희정이 보인다.
희 정 경수씨, 경수씨 괜찮아?
경 수 응... 괜찮아. (둘러보며) 여기 어디야?
희 정 응급실.
경 수 니가.. 어떻게 알고 왔어?
희 정 술집에서 연락이 와서... 경수씨 핸드폰보고 전화했나
봐.
경 수 그래...
희 정 (경수 핸드폰을 주며) 참, 은영씨라는 사람한테 전화
왔었어. 미안하다고, 지금 이리로 온대.
경 수 (놀라며) 뭐? 안돼! 오지말라 그래! 그놈 주먹 참 쎄
대...!
이때 은영, 두리번거리다 발견하고 온다.
은 영 경수야, 괜찮니? (옆의 희정 보고) 안녕하세요...?
희 정 (역시 인사) 아, 은영씨세요...
경 수 (겁먹고, 은영 뒤를 살펴보며) 야, 너 혼자 왔지...?
S#5 응급실 앞 (밤)
은영과 희정, 경수가 나란히 응급실에서 나온다. 희정은 경수의 팔
짱을 끼고...
은 영 미안해서 어떡하죠? 괜히 저 때문에...
희 정 아니에요. 괜찮아요.
경 수 (은영에게) 그나저나 니가 큰일이다.
은 영 아무래두 회사를 관둬야 할까봐...
경 수 니가 회살 왜 관둬? 그 꼴통이 관둬야지!
희 정 맞아요.
은 영 (한숨 쉬는데)
희 정 그럴 땐 아버지나 오빠가 옆에 있으면 좋은데... 다 춘
천에 있다 그랬죠?
경 수 안되겠다. 너 누가 지켜줄 사람이 있어야지. (갑자기
좋은 생각난 듯) 아, 그래...! 은영아, 나한테 맡겨. 내가 책임지고
그 자식 해결해 줄게.
은 영 (반신반의) 니가..? 넌 문제만 더 복잡하게 만들잖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희 정 (갑자기 생각 난) 아니야, 경수씨. 은영씨가 임자가 없
어서 그래!
은 영 네?
희 정 은영씨 같이 괜찮은 여자가 임자가 없으니까, 그 놈이
얕보고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 어때? 성민씨!
순간 경수는 은영을 보고, 은영은 희정을 보는데,
희 정 은영씨,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요. 경수씨 친구 중
에 성민씨라고 있는데...
경 수 (팔꿈치로 건드리며) 저기, 희정아...
은 영 성민씨요...? (갑자기 멍해지는 표정.)
S#6 은영 자취집 (아침)
인경이 식탁을 차리고 있고, 은영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턱 고이
고 멍하니 있다.
인 경 밥 안 먹어?
은 영 밥...?
인 경 빨리 와. 출근해야지.
은 영 성민씨가 혼자래...
인 경 그래, 그 얘기 벌써 세 번이나 했어.
은 영 수빈씨랑 헤어졌나봐...
인 경 그래, 그 얘기도 세 번 했어.
은 영 지금 ***에 있다는데...
인 경 (와서는 끌고 가며) 그래. ***에 있대. 그래서 어쩌라
구.
은 영 (식탁에 앉으며)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는 거 같애.
인 경 그럼 한번 찾아가 보든가.
은 영 (잠시 생각. 고개 저으며) 안돼. 이제 와서 뭘 어쩌자
구...?
인 경 그냥 밥이나 먹어.
은 영 그래. (하면서도 멍한 표정만...)
S#7 박두팔 사무실 (낮)
경수와 박두팔이 마주앉아있다.
경 수 (반말도 존대도 아닌) 그래서, 박서방이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박두팔 (진지하게) 형님께서 결혼하실 분입니까?
경 수 아니, 그건 아니구 그냥 친구.
박두팔 남녀사이에 친구가 어딨습니까?
경 수 있을 수도 있지.
박두팔 예... 잘 알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경 수 그럼 잘 좀 부탁하네. (일어난다.)
박두팔 (일어나 인사) 살펴 가십시오.
경수 나가려는데,
박두팔 바쁘게 앉아 헤드폰 끼고, 워크맨 누르고는 중국어를 따라
한다.
경 수 (의아해서 돌아보고) 박서방 지금 뭐하나?
박두팔 (경수보고는 얼른 헤드폰 한쪽만 빼며) 아 예, 중국어
좀 배워볼라 그러는데 잘 안되네요?
경 수 자네가 중국어는 뭐 하게?
박두팔 중국시장으로 진출할라구요.
경 수 (손 씻고 좋은 일을 하려나? 기대하며) 중국시장?
박두팔 예, 요즘 중국에서 떼인 돈 받아달라고 주문이 많이 들
어와서요.
경 수 (실망해서) 아...
박두팔, 다시 중국어를 열심히 반복하며 지껄인다. (***자문 필요)
경 수 그게 무슨 뜻인가?
박두팔 아, 이거요? '죽고 싶냐? 죽고싶지 않으면 돈 내놔.' 이
런 뜻입니다.
경 수 (뜨악해서) 열심히 하게. (나간다.)
박두팔 외국어는 무조건 반복이 최고드라구요. (이내 중국어
지껄인다.)
S#8 은영 회사 빌딩 앞 (밤)
퇴근을 해서 나오는 은영.
기다리고 있다가 은영 뒤로 슥 따라붙는 깍두기 체형의 사내1, 2.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 인상 험악한 박두팔의 부하들이다.
은영,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귀염성 있게 살풋 고개 인사하는
사내들.
사내들의 정체를 모르는 은영, 더 놀라 걸음 빨리 하면, 사내들도
바짝 따라온다.
이때 주차장 쪽에서 갑자기 나타나 은영을 가로막으며 서는 상두
의 검은 차.
은영 도망가려는데, 상두 나와서 은영을 잡으려 하고,
사내들 얼른 상두를 가로막고 나선다.
은영, 영문을 몰라 얼른 빠져나와 도망하면,
사내들 완력으로 상두를 차안에 집어넣고는, 얼른 은영을 쫓아온
다.
뒤를 돌아보는 은영, 으아아악! 더 놀라 마구 달려간다.
그 위로 들려오는 전화 통화소리.
경 수 (E) 은영아, 이제 괜찮지?
은 영 (E) 괜찮다니? 이상한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나를 따
라다녀.
경 수 (E) 그 사람들, 내가 우리 매제한테 부탁해서 특별히
배치한 사람들이야. 이제 마음 푹 놔!
은 영 (E) 뭐? 당장 철수시켜. 저 사람들 땜에 더 노이로제
걸리겠다!
S#9 경수집 안방 (밤)
경 수 (핸드폰 통화) 저기, 내가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다
시 전화할게.
경수 얼른 전화 끊고 배시시 웃으면, 옆엔 희정이 서있고,
옷을 차려입은 경수모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있다.
경 수 (희정에게) 인사 드려.
희 정 처음 뵙겠습니다. (큰절을 한다.)
경수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미소 짓는다.
경 수 (N) 아버지, 희정이예요. 괜찮죠?
사진 속에서 미소를 짓고있는 아버지.
절을 마치고 일어서는 희정. (마치 아버지가 보는 시선처럼)
경수모 앉아요.
경 수 (방석 밀어주며) 앉아.
나란히 앉는 경수와 희정.
조 부 아이구, 아주 참하고 이쁘구나...
경수모 가족은 어머니하고 둘이라구?
희 정 네.
경수모 아버님은 그럼 언제 돌아가셨나?
희 정 저, 돌아가신 건 아니구요... 지금 미국에 살고 계신대
요.
경수모 그럼 부모님이...?
희 정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헤어지셨대요...
경수모 그, 그래...? (복잡해지는 표정)
경 수 저, 엄마. 그건 이 친구 잘못이 아니잖아. 나두 아버지
가 안 계신데, 뭘...
조 부 (희정이 맘에 쏙 든다.) 그래... 그거야 그렇지...
경수모 (조부에게) 아니, 그래두 이건 다르죠, 아버님?
조 부 경수만 좋으면 됐지 뭘 그러냐? (경수에게) 안 그러
냐?
경 수 그럼요. 역시, 우리 할아버지셔!
희정 불편하고, 경수모는 찜찜한 듯 희정을 보며 애써 웃는다.
S#10 홍보실 (낮)
상두, 서류를 들고와 자리에 앉으려다 보면, 책상 위에 반지상자
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반지상자를 열어보면, 반지가 들어있고...
화가 나는 듯 손아귀 안에서 반지상자를 닫는 상두. 부르르 떨리
는 굳은 표정.
S#11 빌딩 복도 (낮)
은영 서류를 들고 걸어가는데, 복도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나타나는 상두. (기다리고 있었던 것.)
상두, 은영의 입을 막아, 비상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S#12 비상계단 (낮)
은영의 입을 막은 상태로 끌고 들어오는 상두.
은영 벗어나려 낑낑대는데,
상 두 내 신조가 뭔 줄 알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
다! 그게 내 신조야. 니가 이상한 놈들을 동원한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알아? 넌 내 여자야. 왜 반지 안껴, 어!
이때 상두의 손바닥을 물어뜯는 은영.
상두 손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고, 그 틈에 도망을 하는 은영.
S#13 홍보실 (낮)
허겁지겁 들어와 자리에 앉는 은영. 놀란 가슴 진정이 안 되는데,
곧이어 손을 움켜쥐고 들어온 상두. 자기자리로 가서 아무 일도 없
다는 듯 앉는다.
은영, 겁을 먹은 듯 상두를 쳐다보면, 상두의 모습 뒤로 부장까지
보인다.
은영, 갑자기 허둥지둥 핸드백 챙겨들고 나간다.
여직원2 언니? 어디가요?
그대로 대답 없이 나가버리는 은영.
S#14 인경 의상실 앞 (낮)
스포츠카를 몰고 나타나는 은호.
밖에서 유리창을 닦던 인경이 누군가 싶어 돌아본다.
은 호 (차 밖으로 나오며) 누나!
인 경 어? 은호야! 언제 왔어?
은 호 며칠 됐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잘 있었어?
인 경 은영인 너 왔단 얘기 안 하던데...?
은 호 (의상실 안 기웃거리며) 지금 바뻐?
인 경 (차를 보며) 니 차니?
은 호 죽이지? 엄마가 한 대 뽑아줬어. 우리누나한텐 비밀이
다.
인 경 (차 구경하며) 너 잠깐 나온 거 아니야? 다시 안 들어
갈라구?
은 호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데리고 가며) 가자.
인 경 (버티며) 어딜 가? 가게 비워놓고?
S#15 달리는 스포츠카 안 (낮)
은 호 (운전하며) 누나 나 안보고 싶었어?
인 경 (자꾸 뒤돌아보며) 야, 어디까지 가는 거야? 빨리 차
돌려. 나 쫓겨난단 말이야!
은 호 괜찮아. (어깨 안으며) 내가 그런 가게 근사하게 하나
차려줄게.
인 경 (팔꿈치로 치며) 니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런 걸 차려
주냐?
은 호 (팔 내리며) 이번에 엄마가 내 앞으로 빌딩 하나 사놓
은 거 있거든. 그거 팔아서 차려줄게.
인 경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니? 더 이상하게 변해서 온 거
같다?
은 호 내가 뭘...?
인 경 설마 거기서 마약 같은 거 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
은 호 아이 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때 인경의 핸드폰이 울린다.
인 경 여보세요? (찔끔 놀래며) 어, 은영이니?
은 호 (그 소리에 인경을 보고)
은 영 (E) 나 여행 좀 갔다올게. 오늘 못 들어 갈 거야.
인 경 갑자기 무슨 여행? 어디 가는데?
S#16 고속버스 안 (낮)
은 영 몰라. 그냥 무작정 가고 있어.
인 경 (E) 뭐? 너 혼자서?
은 영 응.
인 경 (E. 걱정돼서) 은영아... 너 왜 그래...? 혹시 성민씨 만
나러 가니?
은 영 그건 아닌데... (그러다가 문득) 성민씨...?
인 경 (E) 지금 어딘데 그래?
은 영 모르겠어. 그냥 아무 고속버스나 탔어. 걱정하지마. 끊
는다.
전화 끊고는, 이내 핸드폰 전원까지 꺼버리는 은영.
문득 생각 복잡해지며 창 밖을 향한다.
S#17 달리는 스포츠 카 안 (낮)
인 경 (핸드폰 집어넣으며) 얘가 왜 이러지...?
은 호 잘됐다. 그럼 우리도 오늘 어디 여행이나 갈까?
인 경 얘가! 넌 니네 누나 걱정도 안되니? 빨리 차나 돌려!
은 호 알았어...
S#18 고속도로 휴게소
S#19 **항 선착장, 매표구 앞 (낮)
주머니에 손을 꽂고 망설이고 있는 은영.
남 자 *** 행 10분 남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뱁니다!
은영 소리나는 쪽을 문득 보면,
승선을 알리는 남자와 선착장으로 가는 남루한 승객들이 보인다.
얼른 매표구로 향하는 은영.
은 영 (매표구에) ***행 하나요...
S#20 바다, 배 안 (석양)
갑판 위의 은영. 바닷바람을 맞으며 붉게 물든 서쪽하늘을 바라본
다.
S#21 호텔식당 룸 (밤)
한쪽엔 박두팔과 경선까지 경수네 가족들이 앉아있고,
맞은 편엔 희정과 희정모가 있다. 찻잔들 놓여있고, 양가 상견례
자리다.
희정모 서두는 감이 없진 않습니다만, 저렇게 둘이 좋아서 하
겠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경수모 (탐탁치는 않으나) 그러게요... 요즘 누가 부모 말 듣나
요? 자기들끼리 좋으면 그만이죠.
조 부 (신바람 나서, 희정모에게) 이제 새사람 맞을려면 도배
도 새로 하고 준비가 바빠질 거 같습니다.
희정모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구요, 저희 쪽에서 아파트를 하
나 해보내겠습니다.
경수모 (당황해서) 네?
경수를 비롯 경선, 두팔도 놀라서 서로를 보고,
조 부 (히죽 좋아서) 아니, 뭘... 그런 것까지...
희정모 넓은 평수는 청소하기만 벅찰 테고, 한 30평정도 되는
걸로 알아볼려고 하는데, 사부인께선 어떠신지요...?
경수모 (얼떨떨한) 글쎄요...?
조 부 (경수모에게) 그럼 우리 집을 내놓고 그 아파트로 다
들어가서 살면 편하겠구나.
희정모 아니, 그 아파트로 다 들어오시다니요...? 그건 신혼집
으로 둘이서 살라구 주는 건데요...?
경수모 네? 저... 우리경수는 외아들이고, 결혼해도 같이 살 요
량으로 키운 자식인데요...?
희정모 네...? 그래두 요즘 세상에 어떻게... 시할아버님까지
계시는데 같이...
경수모 저흰 딴 살림은 못 내줍니다. 처가에서 해주는 아파트
도 받을 수 없구요.
조 부 (섭섭한 듯 경수모를 보고)
희정모 그래두 어떻게... 아시다시피, 저두 자식이라곤 (희정
지칭) 얘 하나구, 내심 속으로는 데릴사위를 볼까하는 생각도 있었
답니다. 하지만 (경수 지칭) 서서방이 외아들이구, 어디 그런가
요? 섭섭하지만 다 맞춰서 살아야죠. 사부인께서두....
경수모 (펄쩍 뛰며) 데릴사위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한) 안되
겠구나. 아니, 어떻게 지극정성으로 키워 논 남의 아들을... 저흰
이 결혼 그렇게는 못합니다. (일어나며) 아버님. 그만 가시지요.
(허둥지둥 나가고)
조부와 두팔, 경선도 엉거주춤 얼른 따라 나간다.
희정, 난감해서 쳐다보고,
경 수 (엉거주춤 일어나) 아니, 엄마! 할아버지! 저기...
희정모 (경수에게) 아니, 자네 왜 말이 틀리나?
경 수 예?
S#22 ***, 보건지소 진료실 안 (밤)
은영이 성민의 진료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책상 위 작은 액자 속엔 의사가운을 입은 동료 수련의들과 함께 찍
은 사진.
메모판에는 오려붙여놓은 신문기사, 정기 검진, 예방접종, 독거노
인 왕진, 직무교육 등의 메모지들이 성민의 생활을 알 수 있다.
이때 바삐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돌아보는 은영. 긴장되는 표
정.
간호사 (들어서며) 아직도 안 오셨어요?
은 영 (약간 실망하며) 네...
간호사 어떡하죠? 퇴근해야 되는데...
은 영 네... (미안한 듯 가방을 집어든다.)
S#23 경수집 안방 (밤)
경선, 두팔, 조부 경수 쳐다보고
경 수 엄마. 결혼하면 나랑 같이 살라 그랬어? 전엔 그런 말
안 했잖아!
경수모 그런 걸 꼭 말로 해야되니? 말 안해도 외아들이 당연
히 모시는 거지. 아무튼 그 여편네 하는 소리 좀 봐라. 우릴 아주
없다고 깔보고 그러는 거야. 아파트? 좋아하네. 데릴사위? 어림도
없는 소릴 하고 있어.
경 수 아니, 엄마. 장모님이 데릴사위를 보시겠다는 것도 아
니잖아.
경수모 장모는 무슨 장모?
너 앞으로 희정이 만나지 말구 회사 끝나면 곧장 집으
로 들어와.
경 수 엄마...
경수모. 별 대단치도 않은 콩가루 집안에서 무슨 데릴사위야? 여자
가 그렇게 없다던? 다시는 만날 생각도 하지마라.
경 수 엄마, 정말 왜 이래? 내가 무슨 일등 신랑감인 줄 알
아? 장남은 결혼기피 대상 1호야. 게다가 난 (할아버지 눈치보고)
할아버지까지 계시지, 그 집에서 하는 말도 일리가 있잖아.
경수모 뭐? 이런 못난 놈. (경수 등짝을 친다.)
괴로운 표정의 경수.
S#24 보건지소 진료실 안 (밤)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성민.
불이 꺼지고 문이 잠긴 진료소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돌아서려
다 보면,
가로등 아래 쪼그리고 앉아있던 은영이 일어선다.
성 민 (자세히 보며) 누구세요? (은영이 임을 알고) 아니...?
은 영 오랜만이야.
성 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은 영 (어색한 미소) 그냥... 경수한테 들었어. 잘 지냈어?
성 민 응... 서울에 있다는 얘긴 나도 들었어. (의아한 기분)
은 영 (막상 어색해서 고개 숙이는데)
성 민 (그제야 반가운) 가만 있어봐. 언제 왔어? 저녁은 먹었
니?
은 영 아니...
S#25 민가, 성민의 하숙집 마당 (밤)
성민의 오토바이가 세워져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밥상을 가져오는 농촌 아낙.
성민과 은영이 평상 위에 어색하게 앉아있다.
아 낙 선생님 애인이신가 봐유?
성 민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은영, 그런 성민을 서운한 기분으로 보는데,
아 낙 찬은 읎지만 많이 들어유.
은 영 예...
아낙은 가고, 성민과 은영 수저를 든다. 어색하게 밥을 먹는 두 사
람.
은 영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어?
성 민 (은영 앞으로 반찬 가까이 옮겨주며) 한달 좀 넘었어.
와서 인수인계 받고, 주민들한테 인사 다니고, 이제 좀 정신이 드
네...
은 영 음...
성 민 넌 어때?
은 영 나...? (머뭇거리자)
성 민 (문득 심각하게 보며) 시집가니?
은 영 응? 아니... (갑작스러워서 웃고는) 왜 그런 생각을 했
어?
성 민 그냥...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은 영 갑자기 와서 놀랬지?
성 민 아니야. 잘 왔어.
말없이 밥을 먹는 두 사람. 잠시 정적만이 감돈다.
은 영 (속마음. N) 만나면 할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은영의 그런 생각이 끝나자마자,
성 민 (멋쩍은 듯 웃으며) 이상하다. 너 만나면 정말 할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밥을 먹는다.
S#26 은영 자취집 거실 (밤)
TV 앞에 다리 꼬고 누워 야한 영화라도 감상중인 은호.
수화기 들고 있다가 내려놓는 인경.
인 경 (걱정) 어떻게 된 거지? 핸드폰도 꺼버리고 어딜 간 거
야?
이때 은호가 양말까지 벗자,
인 경 (달려들어) 야, 너 빨리 춘천 안가? 얼른 가.
은 호 아이, 싫어. 나 오늘 출국한 줄 안단 말이야. 여기서 자
구 갈 거야.
인 경 (때리고 잡아끌며) 은영이도 없는데, 어디서 자? 그럼
친구네라도 가든가.
은 호 뭐 어때? 누난 누나 볼일 봐. 난 내 볼일 볼 테니까...
인 경 (눈 흘기면)
은 호 (반쯤 일어나 인경 어깨 안으며) 같이 비디오나 보자.
모처럼 우리 둘이 있으라고 시간이 난 거 아니야?
이때 초인종이 울리면,
인 경 야, 은영인가부다. 너 빨리 일어나. 양말 신어! (현관으
로 나가며) 그러면 그렇지, 지가 무슨 혼자 여행이야.
은 호 아이, 참... (리모콘으로 비디오 끄고, 일어나 양말 신
는)
인 경 (현관문 열며) 은영이니?
이때 문 열리면 들이닥치는 상두.
상 두 은영씨 어딨어요?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가 방과 화장
실 뒤지며) 은영씨! 은영씨!
인 경 아니, 왜 이래요? 은영이 없어요!
상 두 어디다 숨겼어요? 전화도 안 받고 어디 있냔 말이에
요!
은 호 아니,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그래요?
상 두 (TV 앞에 딱 책상다리하고 앉으며) 은영씨 데려올 때
까지 못 갑니다. 빨리 은영씨 데려와요!
어리둥절, 난감해서 보는 인경과 은호.
S#27 민가, 성민의 방 (밤)
막 들어선 은영이 방을 둘러보며 서있다.
성민, 아침에 몸만 빠져나간 이부자리를 돌돌 말아 밀어놓으며,
성 민 남자 방이 다 그렇지 뭐. 앉아.
은영은 앉고,
성민은 방 한쪽 구석에 있던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를 탄
다.
성 민 아직 없는 게 많아. 한번씩 나갈 때마다 하나씩 사오는
데, 생각보다 자주 못나가.
은 영 (다가가 앉으며, 커피 타겠다는) 줘. 내가 할게.
성 민 아니야. 넌 손님이잖아.
은 영 (어색하게 물러나고) 좋아? 지금 이 생활?
성 민 (끄덕끄덕) 뭐... 아직까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네.
은 영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성 민 여긴 하려고 들면 일이 꽤 많아. 오늘도 일찍 올 수도
있었는데, 송아지 낳는 거 도와주느라고... 난 수의사가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자꾸 붙잡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소가 재산이
니까...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
두 사람 미소 짓고는 잠시 말이 끊긴다.
성민은 말없이 커피를 타고,
은영은 앉은 채로 괜히 방을 한번 더 둘러보더니,
은 영 (성민을 보고) 그 동안 왜 한번도 연락 안 했어?
성 민 (문득 커피를 젓던 스푼 멈추더니 이내 다시 천천히 저
을 뿐) ....
은 영 난 한번쯤... 연락할 줄 알았는데...
성민 커피잔을 건네줄 뿐 말이 없다.
커피를 마시는 은영.
성 민 가끔 춘천 근처를 지날 때마다 네 생각 나더라. 나도
한번쯤 보고싶다는 생각은 했었어. 어떻게 살까? 어떻게 변했을
까... 궁금했어.
은 영 보고 실망했어?
성 민 아니. (웃고는, 분위기 바꾸려고) 사실 나 니 졸업식에
도 갔었는데...
은 영 그랬어? 나두 성민씨 졸업식에 갔었는데...
눈 동그래지는 두 사람. 잠시보다 웃고는 시선 피한다.
성 민 결혼은 안해?
은 영 해야지. 성민씬?
성 민 글쎄... 이런 데 와서 같이 살 여자가 있을까...? (농담
처럼) 니가 와라.
은 영 내가?
이내 시선 돌리며 각자 멋쩍게 웃는 두 사람.
은 영 그럼 여기서 살려구?
성 민 막상 와보니까 나한테는 딱 맞는 거 같애. 옛날에 의료
봉사 다니던 생각도 나고...
은 영 그래...
성 민 꼭 큰 병원에서 첨단의술을 연구하는 것만이 훌륭한
의사는 아닌 것 같거든. 의료시설이 부족한 곳도 많고. 언젠가 때
가 되면 동티모르에 가있는 선배하고 합류하고 싶은 생각도 있
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은영 끄덕이면서도, 처음 듣는 얘기에 성민이 좀 낯설게 느껴진
다.
두 사람 모두 시선 돌리고 차를 마시는데,
은 영 (고개 숙인 채, 중얼중얼) 우린... 시간이 너무 많이 지
났나봐. 오지 말 걸 그랬나...?
성민 문득 은영을 보고는, 자기 커피잔 놓고, 은영 손의 커피잔도
집어 놓더니,
성 민 (그리움 묻어나게) 아니야, 잘 왔어. 정말 보고 싶었
어.
순간 은영, 성민을 쳐다보고, 두 사람 안더니 키스한다. 오랫동안.
그리고는 키스가 끝나자 막상 어색한데,
이때 방안의 전화벨이 울린다.
은 영 (어색해서) 전화 받어...
성 민 어... (전화 받는) 여보세요? (놀라며) 네? 언제부터 그
랬어요?... 네... 네,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 끊으며 은영을 쳐다
본다.) 어떡하지? 응급환자야. (이내 진료가방 챙기며) 가봐야겠
다.
은 영 (미소로 중얼거리며) 실은 내가 응급환잔데...
성 민 (문득 가방 챙기다가) 무슨 일 있니?
은 영 아니, 농담이야. 얼른 가봐.
성 민 (서둘러 나가며) 늦을지도 몰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 수빈이 얘기 대화
S#28 동 민가 앞 (밤)
성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고, 은영이 바라본다.
S#29 성민의 방 (밤. 몽타주)
깨끗이 씻은 커피잔이 쟁반 위에 엎어져있고,
혼자 있는 은영. 김광석CD 중에 하나를 골라 오디오에 넣는다.
음악 시작되고, 은영은 책꽂이 사이에 남자화장품도 만져보고,
책도 꺼내보는데, 무언가 책갈피에서 떨어진다.
주워서 보면, 절에서 경수와 셋이 찍은 사진이다. 들여다보며 웃
는 은영.
사진이 보이도록 책꽂이에 세워두고는, 책상으로 간다.
책상 위엔 노트북이 놓여있다. 노트북도 한번 열어보고,
책상 서랍을 열어본다. 서랍 안 이것저것 구경하며 혼자 웃기도 한
다.
S#30 어느 농가 안방 (밤. 몽타주)
할머니가 배를 잡고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급성 장염 정도.)
성민이 주사를 놓는다.
뒤에서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는 50대 부부가 보인다. (할머니의 아
들 며느리)
S#31 성민의 방 (밤. 몽타주)
성민의 노트북에 편지를 남기고 있는 은영. 설레는 기분.
망설이며 한 자 한 자 치다가, 주르륵 치고, 또 망설이고... 그런 기
분으로.
은 영 (N) 성민씨에게. 지금 나는 성민씨 향기가 가득한 방
에 혼자 있어. 여기 오면서 참 많이 망설였는데, 역시 오길 잘한
것 같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보고싶다는 건, 정말 사랑했다는 증
거라는데... 내가 사랑한 사람은 성민씨였던 것 같아.
S#32 민가, 성민 하숙집 마당 (새벽. 몽타주)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진료가방을 들고, 불이 꺼진 방으로 들어가
는 성민.
S#33 성민의 방 (새벽. 몽타주)
들어오는 성민. 가방을 내려놓고 피곤한 듯 벽에 기대어 앉는다.
돌돌 말라진 이부자리에 기대어 잠든 은영을 바라보는 성민.
은영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성민.
S#34 민가 앞 (아침. 몽타주)
은영이 아낙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오면,
오토바이를 끌고 따라나오는 성민.
성민의 오토바이에 타고 떠나는 은영.
S#35 섬. 들판 길 (아침. 몽타주)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
성민의 등에 얼굴을 파묻는 은영. 잔잔하게 사랑을 다시 찾은 행복
감을 느끼는 기분.
S#36 *** **항 선착장 & 배 위 (아침. 몽타주)
은영에게 배표를 내미는 성민.
성 민 (아쉬운) 하루만 더 있다 가지... 여기 해수욕장 모래
도 참 곱고, 바다낚시도 하면 좋은데...
은 영 (역시 아쉬운) 가야돼. 출근해야지...
성 민 또 올 거지?
은 영 (끄덕이며 미소) 응.
은영, 돌아서고 배에 오른다.
바라보는 성민.
배가 출발하고, 서로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두 사람.
은영을 태운 배가 멀어진다.
멀어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던 성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한동안 은영이 탄 배와 나란히 달리는 성민의 오토바이.
간혹 웃으며 손을 흔드는 두 사람.
성민의 모습이 길을 따라 점점 멀어진다.
한참을 달리던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멀어져 가는 배를 돌아보는
성민. 미소 띤 표정.
은영도 멈춰 선 성민을 보고 있다.
이내 다시 출발하는 오토바이. 점점 멀어지고 사라지며 모습을 감
춘다.
아스라이 성민의 모습이 사라지자, 빙긋이 미소 짓으며 돌아서는
은영.
(두 사람 모두 또 만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37 **항 선착장 (낮)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배에서 내려 걸어가는 은영.
이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수 빈 (E) 아저씨, 원산도 가는 배 맞아요?
아저씨 예~, 맞아요.
그 목소리에 무심코 돌아보게 되는 은영. 수빈을 보게 된다.
수빈은 은영을 보지 못한 채 원산도행 배를 타려고 티켓을 내고 배
로 향한다.
갑자기 당혹감이 드는 은영. 멍하니 바라본다.
줄을 서서 배에 오르는 수빈.
보다가 표정 굳어지며 돌아서는 은영.
S#38 경수집 마당 (낮)
경수모가 바가지로 물을 뿌려가며 마당청소를 하고 있고,
할아버지는 마루 끝에서 재활용 신문을 묶고 있다.
조 부 (조심스레) 에미야, 그냥 둘이서 살게 하자꾸나. 그 집
에서 아파트까지 해보낸다는데...
경수모 안돼요, 아버님. 그깟 아파트가 뭐라구, 아들을 뺏겨
요?
조 부 (한숨)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짐이 되는 거 같다. 손자
한테까지...
경수모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나밖에 없는 손주가 할아
버지를 안 모시면 누가 모셔요? 처가가 잘살면 그쪽으로 홀딱 빠진
다더니... (대문 근처 청소한다.)
S#39 경수집 앞 골목 (낮)
희정이 희정모를 데리고 온다.
희 정 나 아파트 안해줘두 되구, 그냥 그 집에 들어가서 살
래. 그러니까 경수씨 어머님한테 잘 좀 빌어. 알았지?
희정모 (한숨) 아이구, 알았다. 그런데 동네가 왜 이러니?
희 정 이 집이야.
희정모 (보는 순간 기겁하며) 아니, 이게 니가 와서 살집이라
구? 아이구, 안된다. 가자!
희 정 (붙잡으며) 엄마! 난 괜찮단 말이야.
희정모 (가려고만 들며) 니가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저
런 조막만한 집에 시할아버지까지 있다는데?!
이때 뭔가 싶어, 대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는 경수모.
그런 줄도 모르고 실강이 하는 희정과 희정모.
희 정 엄마, 내가 괜찮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 할아버지
없는 집이 어딨어?
희정모 아이구,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가진 것도 없는 집에
서 그 노인네 병이라도 나봐라. 니가 병수발 다 해야 돼, 이것아!
경수모 (혼잣말) 아니, 저 여편네가? (바가지와 빗자루 든 채
밖으로 튀어나오며) 뭐가 어쩌고 어째요?
깜짝 놀라며 돌아보는 희정과 희정모.
희 정 (난처한 미소) 어머, 어머니...! (고개 인사하는데)
희정모 가자! 더 볼 것도 없다.
희 정 (붙잡고, 발 동동) 엄마! 여기까지 와서 왜 이래...?
희정모 (답답하다는 듯, 희정에게) 글쎄, 개천에서 난 용은 쳐
다보는 게 아니야! 용만 보구 결혼했다가 평생을 개천에 빠져서 허
우적거릴래?
그 사이에 어리둥절 밖으로 나오는 할아버지도 보이고,
경수모 뭐요? 개천? 이 여편네가? (하면서 희정모에게 들고있
던 물바가지 씌운다.)
희정모 (화들짝 놀라며) 에그머니나... 아니, 저런 무식한...?
가자!
희정도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울쌍이 되어 희정모를 쫓아간다.
경수모 (빗자루 휘두르며) 그래, 나 무식한 개천이다. 다신 개
천 앞에 얼씬댓단 봐라.
S#40 경수 회사 앞 (낮)
경수 허둥지둥 나오면, 울쌍이 된 희정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
다.
경 수 아니, 무슨 일인데 그래?
희 정 어떡하지, 경수씨? 일만 더 커진 거 같애...
경 수 왜? 두 분이서 화해 잘 안됐어?
희 정 우리 결혼 못하면 어떡하지...?
경 수 (괴로운 표정, 어깨 다독거리며) 괜찮아. 나만 믿어. 내
가 잘 설득해 볼게.
S#41 은영 자취집 앞 (밤)
쓸쓸하게 걸어오는 은영.
이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
인 경 (다급하게) 은영아! 은영아!
은 호 누나!
은영 어딘가 싶어 둘러보다 올려다보면,
아파트 윗층 계단 창문에서 소리지르는 인경과 은호.
인 경 은영아! 안돼! 오지마!
은 호 빨리 도망 쳐! (안되겠는지 뛰어내려가느라 창문에서
사라지고)
은영 어리둥절 보면,
시동 걸며 라이트를 켜는 상두의 검은 차.
은영 급히 도망하는데,
이내 검은 차가 와서 멎고, 상두 밖으로 나와 은영을 잡아챈다.
상 두 어디 갔다왔어?
은 영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싫다는데 왜 이래요?
상두, 은영을 억지로 차 뒷자석에 태우고, 무선키로 문 잠그고 운
전석으로 간다.
차안에 내동댕이쳐진 은영, 순간, 자신의 사진들로 채워진 차안의
소품들 보며 놀라고, 허둥대며 얼른 문 열고 도망치려는데,
운전석으로 들어온 상두, 잽싸게 은영을 잡아들이고, 출발한다.
뒤늦게 나타난 은호, 차를 잡으려고 쫓아가지만 역부족이다.
은호, 얼른 스포츠카로 달려가고,
뒤늦게 달려나온 인경도 같이 차를 타려고 하는데, 차키가 없다.
S#42 달리는 상두의 차 (밤)
액자, 컵홀더, 열쇠고리, 방석 등, 온통 은영의 사진들로 채워진 차
안.
은 영 미쳤어. 정신병자야! (문 열려고 잡아 흔들며) 차 세워
요! 당장 세워!
상 두 (은영의 머리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위험해. 가만히 있
어.
흠칫 소름끼치며 피하는 은영. 겁에 질린 모습이다.
S#43 경찰서 (밤)
은호와 인경은 다급한 상황이고, 경찰관들 무심하다.
경 찰1 차 넘버가 어떻게 돼요?
은 호 모르겠는데요? 누난 봤어?
인 경 못 봤는데?
경 찰1 아니 그럼 어떻게 찾아달라는 겁니까?
인 경 어떡하지?
경 찰2 기다려 보세요. 남녀간에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인 경 예?
S#44 산 숲 (밤)
은영을 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상두.
은 영 놔요! 어디 가는 거예요? 대체 왜 이래요? (산 아래를
향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상두, 안되겠는지 은영을 번쩍 들어 어깨에 매고 들어간다.
바둥거리면서 소리지르는 은영.
S#45 산 속 다른 곳 (밤)
숨이 찬 상두, 은영을 내려놓고는 쳐다보며 숨을 고른다.
은영, 갑자기 상두가 두렵고 무섭다.
은 영 (뒤로 물러나며) 왜 이래요?
상 두 (다가오자)
은 영 가까이 오지 말아요!
상 두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어디 갔었어?
은 영 ....
상 두 (마치 친한 듯이) 말도 없이 외박하고 그러면 내가 잠
이 오겠니?
은 영 왜 이래요?
상 두 누구 만나고 왔어?
은 영 저리 가요!
상 두 누구 만나고 왔냐고 묻잖아.
은 영 ....
상 두 어떤 놈 만나고 왔어?
은 영 ....
상 두 그 자식도 죽여버리겠어!
은 영 (두려움에 울먹이며) 당신은 미쳤어... 정상이 아니
야...
상 두 널 사랑해. 평생 변치 않고 사랑해줄게. 너도 나 사랑
하지?
은 영 (울면서 고개 젓는) ....
상 두 사랑하지?
은 영 (고개 젓는)
상 두 사랑한다고 말해.
은 영 (고개 저으며) 제발 살려주세요...
갑자기 분을 못 이긴다는 듯 나무에 자기 머리를 박는 상두.
상 두 사랑하지?!
은 영 (느닷없어 본다.)
이내 연속으로 머리를 계속 박는 상두.
놀라고 끔찍해하는 은영의 표정.
상 두 (피투성이가 된 이마 들이대며) 사랑해? 안해?
은 영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사랑해요...
상 두 (그제야 빙긋이 웃으며) 가자.
상두 은영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은영 아직 긴장 풀지 못하고 후들후들 떨며 일어난다.
S#46 은영 자취집 앞 계단 (밤)
상두와 함께 계단을 올라오는 은영. 현관문 앞에 선다.
상 두 그 봐. 날 사랑하면 다 해결되잖아.
은 영 (아직도 두려울 뿐) ....
상 두 (마치 애인처럼) 들어가 쉬어. 내일 보자.
미소 짓고는 돌아서 내려가는 상두.
상두의 모습이 사라지자, 은영 급히 초인종을 눌러대며, 인경을 부
른다.
이내 문을 여는 인경과 은호.
인 경 은영아! 어떻게 된 거야?
은 영 (와락 인경을 안으며) 인경아...
은 호 (동시에) 누나! 괜찮아?
은 영 (얘가 왜 여깄지? 하지만) 괜찮아... (안으로 들어가는
데)
은 호 그 자식 아직 안 갔지?
준비해놨는지, 야구방망이를 집어들고 튀어나가는 은호.
은 영 (놀라) 어? 은호야...! 안돼!
S#47 은영 자취집 앞 (밤)
상두 차로 향하는데,
이때 아파트 건물에서 튀어나오는 은호.
둘러보더니, 상두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상두를 향해 간다.
은 호 너 이 쉐끼. 다시 우리누나한테 얼쩡거리면 죽는다.
상두, 돌아보면,
순간 상두를 향해 날아드는 야구방망이.
S#48 백화점 (낮)
양복차림의 경수가 매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희정모 난처하게 앉아있고, 희정은 손님에게 계산을 해준다.
경 수 어머님... 제가 저희 어머니를 대신해서 이렇게 빌게
요...
희정모 이 혼산 틀린 거 같으니, 우리 딸 그만 찾아오게.
희 정 엄마...!
경 수 어머님... 저를 봐서, 그만 노여움 푸시구요...
희정모 뭐 하나? 영업에 지장있네?
경수 착잡한데,
희 정 (속상해서) 솔직히 너무하시긴 너무 하셨어. 어떻게 우
리 엄마한테 물벼락을 뿌리실 수가 있어?
경수 그 말에 섭섭한 듯 희정을 올려다본다.
S#49 경수집 마루와 부엌 (낮. 몽타주) _ SET
밥을 푸는 엄마에게 설득하는 경수.
경 수 엄마... 엄마가 가서 사과 좀 해.
경수모 내가 왜 그 여편네한테 고개를 숙이니? 우리가 개천이
면, 지들은 청정수라든? 자고로 좋은 여자가 들어와야 집안이 편안
한 법이다.
경수 돌아서면,
부엌 문 밖에서 아기를 안고 서있는 경선.
경 선 오빠, 이왕이면 엄마 맘에도 드는 여자가 좋지 않겠
어?
경선의 얼굴과 목소리 화면 가득해지면서...
S#50 인써트 (빠르게 커트 편집)
경수에게(카메라에 대고) 떠들어대는 여자들의 얼굴.
희 정 경수씨가 어떻게 좀 해봐. 남자가 뭐 그래?
희정모 없는 집에서 자존심만 쎄가지고, 그런 집이 시집살이
는 또 얼마나 매울지 알만하네!
경수모 장모자리를 보면 딸을 안다구. 그 애가 나중에 시에미
무시하고 깔아뭉갤 애다!
희 정 어떻게 좀 해보라니까? 그렇게 우유부단해서 내가 어
떻게 믿고 살아?
경 선 오빠! 오빠는 외아들이잖아
갑자기 경선의 목소리 아웃되고, 떠들어대는 얼굴만.
경수모... 경선... 희정모... 희정의 얼굴 다시 반복된다.
지친 경수의 표정.
경 수 (N) 나는 여자들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고, 결국 우리사이도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S#51 식당 (밤)
아무 말도 없이 밥을 경수.
희정, 원망하듯 물끄러미 경수를 보고 있다.
희 정 우리 도망쳐! 어디 멀리 도망가서 살자.
경 수 (문득 쳐다보고는, 지친) 어디로 도망을 가? (밥 먹는
다.)
희 정 도망가서 살다가 애 하나 낳아서 돌아오면 되잖아.
경 수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희 정 (원망하듯 보면)
경 수 직장은 어떡하고? 가서 뭐 먹고살래?
희 정 (신경질) 그럼 어떡해? 그렇게 용기가 없어?
경 수 (한숨)
희 정 나 사랑하지 않지?
경 수 뭐?
희 정 다 버리고서라도 날 선택해야지! 정말 실망이야...
경 수 너까지 왜 그러니...
경수, 밥 먹다 말고 식탁위로 희정의 손을 잡으려하면, 손을 치우
는 희정.
S#52 병실 (낮)
기브스를 한 다리를 매달고, 머리엔 붕대를 감은 상두.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은영.
상두, 은영을 쳐다볼 뿐 말이 없다.
은 영 (눈 마주치치 않고) 내 동생이 그랬으니까... 상해진단
서 떼서 고소하세요. 아마 엄마가 좋은 조건에 합의를 봐줄 거예
요. (잠시 후 힐끗 보고는) 몸조리 잘하고, 나오면 나한테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가려다가, 안됐는지) 입사해서... 그 동안 휴가도
한번 안 갔죠...? 나오면 친구들도 만나고, 놀러도 가고 그래요. 그
럼 가볼게요. (가려는데)
이때 상두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은 영 네?
상 두 (겨우 나오는 목소리) 고소... 안 하겠어요.
은 영 고소를 안 한다구요...?
상 두 (끄덕이며) 그래두 은영씨... 사랑해요. 그러니까 고
소... 안해요...
은영, 갑자기 현기증 느끼는지, 침대를 짚고 겨우 바로 선다.
은 영 (아직 안 끝났구나. 아득해지는 기분) 그래요. 맘대루
해요...
이내 허둥지둥 서둘러 나가는 은영.
안타깝게 바라보는 상두.
S#53 병실 밖 복도 (낮)
은영 나오면, 은호와 은영부모가 일제히 은영을 본다.
은영모 뭐라든?
은 영 (아득한 기분 가시지 않아 멍한) ....
은영부 (고소하겠다는 줄로 알고, 괜히 오바) 그래, 고소할려
면 하라그래!
은영모 (은호에게) 으이그... 출국했어야 될 애가 왜 안가고 여
기서 일은 저질러? 오늘 당장 출국해!
은 호 누나 때문에 못 갔지. 누나가 저런 놈한테 납치를 당했
는데, 어떻게 비행기를 타...?
은 영 (한숨) 고소는 안 하겠대.
은영모 (놀라움에 감격) 그래?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은 영 엄만? 고맙긴 뭐가 고마워?
은영모 생각해봐라. 널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지
경이 돼서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겠니?
은영부 그래... 그러고보니, 저 친구 괜찮은 거 같다. 은영아,
니가 사람 마음을 너무 안 받아주니까 저러는 거야. 좀 만나서 인
간적으로 대화라도 나눠봐라.
은영 괴로운 표정으로 가족들을 두고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린다.
S#54 은영 자취집, 욕실 (밤)
세수를 끝내는 은영.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려는데,
이때 밖에서 문 열리며, 인경이 호들갑스럽게 들어선다.
인 경 (은영의 핸드폰 내밀며, 속삭이는) 은영아, 전화 왔어.
성민씨래! (인경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
은 영 (잠시 생각. 힘없이) 없다 그래... (얼굴 닦는다.)
인 경 (안 들리게 핸드폰 막고) 성민씨라니까?
은 영 받기 싫어. 없다 그래.
인 경 얘는? 성민씨야, 성민씨?
은영, 핸드폰을 받아서 뚝 끊어버린다.
인 경 야, 너 왜 그래...?
말없이 얼굴을 닦는 은영. 괴로운 표정이 스친다.
★★ 대사 추가
S#55 라운지 카페 (밤)
검은 창에 두 사람의 모습이 비치고,
희정이 탁자 위로 밀어놓는 커플링 반지.
문득 반지와 희정을 쳐다보는 경수.
희 정 (눈물 글썽이며) 우리 그만 헤어져.
경 수 (굳은 표정) 그거 다시 집어넣어라.
희정 눈물을 닦고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경수 갑자기 화가 난 듯 반지를 집어들고 먼저 일어선다.
희정 바라보면,
경 수 (격앙된) 나와. 집에 바래다줄게. (먼저 나간다.)
S#56 희정집 앞 (밤)
걸어오는 두 사람. 희정은 훌쩍훌쩍 거리고, 경수는 말이 없다.
희 정 나 없어도 잘 살구... 좋은 여자 만나... 또 다른 희정이
가 나타나서 경수씰 행복하게 해줄 거야...
이윽고 대문 앞에 다다르자,
희정, 슬픈 표정으로 경수를 쳐다보는데,
경 수 (초인종 눌러주고, 진지하게) 들어가. 내일 보자.
희 정 (갑자기 뜬금 없어서) 내일 보자니? 우리 지금 헤어지
는 거야!
경 수 난 너랑 헤어지지 않아. 전화할게. (간다.)
희 정 경수씨...!
착잡하게 걸어가는 경수.
S#57 백화점 앞 (밤)
셔터를 내린 백화점.
멀리 직원용 출입구를 바라보면서 전화를 걸고있는 경수.
벌써 여러 번째 전화를 걸었는지, 거칠게 핸드폰 닫는 경수.
경 수 (N) 그러나 다음 날, 그녀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S#58 백화점 (낮)
경수 매장으로 달려 들어와 보면, 여직원2 뿐 희정이 없다.
여직원2 경수에게 고개인사 까닥 하고는 난처해서 시선을 피한다.
경 수 (여직원2에게) 어디 갔어요?
여직원2 (몸을 돌려 피하며) 전 몰라요...
경 수 (여직원2 앞으로 다가들며) 집에도 없던데, 어디 갔
어요? 빨리 말해요.
여직원2 (피하며 돌아서는) 몰라요... 요즘 출근 안 하세요...
경 수 (못 피하게 거칠게 어깨를 잡으며) 알잖아요! 지금 어
딨어요?!
여직원2 (무서워서) 어머, 왜 이러세요...?
S#59 동네수퍼 앞 (밤)
파라솔을 접은 탁자에서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경수.
이때 아이를 안고 지나가던 경선과 박두팔이 경수를 보고 멈춰 선
다.
경 선 오빠... 왜 여기서 그래? 집에 안가고...?
경 수 (쳐다보면)
두 팔 잘 안되십니까? 희정씨 일도 제가 처리할까요?
경 수 아니야, 됐네.
경 선 오빠...
경 수 (화가 난) 가라. 니들 가!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간
다.)
경 선 오빠...! 어디 가!
경선을 만류하는 두팔.
S#60 희정집 대문 앞 (밤)
불이 꺼진 집.
술에 취한 경수가 대문을 두드리며 주정을 하고있다.
경 수 희정아! 희정아!! 난 너 없인 안된다... 희정아! 문열
어! 문 열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 너랑 못 헤어져! 니가 나
아닌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게, 내가 그냥 놔둘 거 같애? 다른 남자
만나는 거, 난 절대로 못 봐! 이 반지...! 이거! 반드시 니 손가락에
다시 끼워주겠어! 반드시!
분이 안 풀리는지, 대문을 맨주먹으로 치고는,
이마를 들이받고는 그대로 꺼이꺼이 운다. 들썩거리는 경수의 어
깨.
S#61 카페 (낮)
마주앉아있는 은영과 경수.
은영 앞에는 찻잔이, 경수 앞에는 대낮인데도, 맥주병이 놓여있
다. 두 병 정도.
경수는 다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경 수 (화가 나있는 감정 상태) 그 년이 나를 안 만나줘...
은 영 (놀라서) 그 년이라니...? 너 왜 그래? 자꾸 그러면 너
도 스토커야!
경 수 (민감하게 보며) 뭐?
은 영 생각해봐. 그 사람은 끝났다는데, 너만 끝난 걸 인정하
지 않으면, 너도 스토커라구!
경 수 (거칠게 담배 비벼 끄며)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기나 해?
은 영 (찔끔 당황해서 어찌해야 될지) ....
경 수 (미친 듯이) 희정인 지금도 날 사랑하구 있어! 엄마 때
문에 날 못 만나는 거야. 엄마가 나를 못 만나게 하니까... 내가 보
고 싶어도... (괴로운 표정, 말을 못 잇는다.)
은 영 (조심스레) 저기, 경수야. 내가 실연에 대해서는 선배
아니니? 당장은 괴롭구 힘들겠지만... 지금 넌 버려야 할 것들을 과
감히 버리는 게 좋아.
경 수 (괴로움 뿐, 멍한 시선 건성으로) 그게 뭔데...?
은 영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 그거 버려. 그리고 그 사람
이 다시 올 거라는 기대. 그것도 버려.
경 수 (은영을 보며) 뭐...?
은 영 (얘기하는 자신도 슬슬 괴로운 기분 섞이며) 그리고,
친구로라도 남고 싶은 욕심. 그것두 버리고, 오랫동안 날 기억해주
길 바라는 이기심... 다른 사람 만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 우연이
라도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집착... 그런 거 다 버려. (오랫동안 성
민을 못 잊었던 자신에게 비로소 한말일 수도 있다.)
말이 끝나자, 은영 그대로 멍하니 있고,
경수도 멍하니 조용하다.
S#62 거리 (낮)
'IMF 극복 금 모으기 운동본부' 라는 현수막이 보이고,
중량을 재는 저울 위에 커플링 두 개를 올려놓는 경수.
경 수 (N) 그날 나는 금 모으기 운동에 커플링을 냈다.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을 지나, 어디론가 걸어가는 경수의 쓸쓸
한 뒷모습.
경 수 (N) 반지와 함께 사랑했던 기억들도 모두 녹아 없어지
길 바랬다. 다시는 어떤 여자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S#63 홍보실 복도 (낮)
웅성웅성거리며, 명예퇴직자 명단 발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뒷
모습.
사람들 속에서 명단을 본 은영이 빠져 나온다. 남몰래 살풋 기뻐하
는 표정.
이때 명단에 끼었는지 당황하며 황급히 가버리는 여직원1.
은영 그런 여직원1을 미안한 듯 돌아본다.
S#64 홍보실 (낮)
책상의 짐들을 빼는 여직원1과 남직원1.
업무서류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서랍도 비우고, 칫솔과 치약
도 넣고,
실내화도 챙겨 넣는다.
미안한 듯 바라보고 있는 은영과 동료들. 말없고 숙연하다. 담배
를 피우기도 하고...
남직원1은 주변의 동료들과 착잡한 듯 악수를 나누고,
보고 있기 힘들어 밖으로 나가는 남직원2.
책상서랍 열쇠를 열쇠구멍에 꽂아두고는 돌아서는 여직원1.
여직원2가 여직원1을 끌어안고 운다.
이내 짐을 들고 황급히 나가는 여직원1.
여직원2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은영도 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낸다.
이때 목발 짚고 나타나는 장상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들어온다.
상 두 (의기양양한)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
네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두를 바라보는 은영. 놀라는 표정.
팀장 자리에 앉는 상두.
은 영 (N) 정리해고로 인해 만성적인 인사적체가 해소되면
서, 장상두는 초특급 승진을 하는 행운아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S#65 여자화장실 (낮)
은 영 (N) 그리고 회사에선 나에 대한 또 다른 소문들이 돌
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들어오는 여직원들.
여직원2 은영언니두 낙하산 타고 입사했다며?
여직원3 어머, 정말?
여직원2 그러니까 안 잘렸지. 춘천에 모 국회의원 청탁으로 들어
왔다더라.
이때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화장실 안에서 나오
는 은영.
은 영 (어이없어) 어머, 누가 그런 소릴 해? 나 당당하게 입
사시험 쳐서 합격해서 들어온 사람이야.
여직원2 어머, 어쩜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 모르는 척 하냐,
온 회사가 다 아는 사실을? 역시 호박씬 달라.
여직원2 은영을 비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며 문 닫는다.
기가 막힌 은영.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생각하는 표정.
S#66 은영 춘천집 안방 (밤)
막 서울에서 내려온 차림의 은영. 핸드백도 든 채로 서서,
은영모 (화장대에서 로션 바르던 중) 저기, 은영아...
은 영 사실이냐구. 나 취업시켜달라고 누구 찾아갔어?
은영부 (신문 접어두고 침대에서 내려오며) 그게 말이다, 은영
아.
은 영 아빠가 그랬어요? 엄마가 부탁했어?
은영부 뭐라 말못하고 시선만 피하고,
은영모 우린 니가 면접도 못 보고 떨어질까봐 그랬지...
은 영 아니, 내 힘으로 들어가게 놔두지, 왜 청탁을 하냔 말
이야! 챙피하게?
왈칵 눈물이 나온다.
은영모 그깟 회사 다니기 싫으면 관둬라? 다른 데 알아봐줄
게?
이내 가방을 집어들고 나가는 은영.
은영부 아휴, 이 사람이? (쫓아나가며) 은영아... 은영아...!
S#67 은영 춘천집 앞 (밤)
대문에서 뛰쳐나오는 은영. 눈물을 닦으며 바삐 걸어나온다.
집을 뒤로 남겨두고 집과 점점 멀어지는 은영.
대문에서 나와 그런 은영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은영부의 모습 보
이고...
은 영 (N) 이제껏 내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대학을 부정하게 입학했던 동생
과 난 다를 게 없었다.
S#68 홍보실 (낮. 몽타주)
점심시간인 듯 텅빈 사무실
허브화분 너머로, 옥편을 보면서 봉투에 한자로 사표(辭表)를 쓰
는 은영.
은 영 (N)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내 인생에 한번도 써보지 않
은 글자를 쓰느라, 옥편을 보며 사표를 썼다. (F.O)
S#69 도심거리 (낮. 몽타주)
푸릇푸릇 가로수 나뭇가지에 흔들리는 새 이파리들. 만개한 꽃들
로 화창한 봄날.
점심시간이라도 되는 듯,
빌딩 사이로 쏟아져 나온 샐러리맨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활보한
다.
그 사이를 느릿느릿 쓸쓸하게 걸어가는 경수.
이때 노상좌판에서 팔고있는 허브화분들을 보며 그 앞에 멈춰서
는 경수.
봄바람에 흔들리는 허브이파리들.
상 두 (E) 대신그룹 홍보실입니다.
경 수 (E) 거기 최은영씨 계십니까?
S#70 홍보실 (낮)
전화통화를 하고있는 상두.
상 두 (잠시 멈칫하는 기분) 그런 사람 없습니다.
경 수 (E) 저, 여보세요. 지난번에도 저한테 최은영씨 회사
관뒀다고 거짓말하신 분 아닙니까?
상 두 최은영씨 얼마 전에 사직서 내고 그만 두셨어요. 외국
유학 간답니다.
경 수 (E) 그래요...? (급히) 저, 그럼 혹시, 핸드폰이 안돼서
그러는데요, 춘천집 전화번호라도 알 수 없을까요?
상 두 (잠시 멈칫하는 기분) 모릅니다.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상두.
은영의 책상엔 여직원2가 앉아있고, 남아있는 허브화분이 보인다.
S#71 동 도심거리 (낮)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닫는 경수.
늘어뜨린 다른 손에는 허브화분이 들려있고,
잠시 어리둥절 서있다가 그대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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