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4-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4년 7월 첫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은, 염려와 걱정없이,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보내셨습니까?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한 주일 동안, 주님께 염려와 걱정거리들을 모두 다 맡겨버리고,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평안한 삶을 사셨습니까?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꼭 끌어안고서, 잠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셨습니까?
염려와 걱정거리들은 모두 다 주님께 맡겨버리고, 항상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은혜”라는 곡이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그렇습니다. 매일 반복되어지는 우리의 삶,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노력과 수고와 땀으로 이루어낸 일들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간 세월뿐만 아니라, 지난 6개월을 뒤돌아보면, 행복한 날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지나간 날들에 매여 있는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다가온 내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울 상암동 체육관 근처에 위치한 하늘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공원입니다. 한강과 접해 있으며, 98미터 높이에, 5만 8천평이나 되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공원입니다. 철 따라, 억새와 유채와 개나리와 해바라기를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억새 길을 걸었던 기억이 아득한데, 그래도, 눈을 감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합니다. 안 가 본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늘 공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사랑받는 공원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예전에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원래 쓰레기 매립지이었습니다. 온갖 더럽고 악취나는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곳이었습니다. 바로 난지도입니다.
난지도는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하늘 공원으로 탈바꿈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난지도가 하늘 공원으로 변했습니다. 악취나는 쓰레기 산이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멋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암 생태공원도 생활 쓰레기 매립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에 따라, 튤립 등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할 수 있는 멋진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생활 쓰레기 매립지가 꽃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예쁜 공원이 되었습니다.
냄새에는 두 가지 종류의 냄새가 있습니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라고 해야 하나요, 맡고 싶은 냄새와 맡고 싶지 않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요.
창문을 열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맡고 싶지 않는 냄새가 날 때가 있습니다. 에둘러, “자연의 냄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창문을 닫게 됩니다. 맡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 까지, 20년 정도, 그런 냄새와 가까이 지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맡고 싶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냄새를 향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늑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에서는 마음도 느슨해지고, 뭔가 기쁨이 밀려오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멋진 장소를 찾게 됩니다.
남청주 IC 근처에 위치한 상수 허브랜드를 아십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허브 농장입니다. 그곳에 가면, 허브 향기를 실컷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자주 찾았던 곳이었습니다. 청주에 오고 나서는 누군가 찾아오면, 상수 허브랜드에 데리고 가, 구경시켜 주곤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그런 멋진 곳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꽃밥도 먹고, 허브가 들어간 고추장도 사 오곤 했는데, 그런데, 지금 그 상수 허브랜드는 폐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최근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몰락한 정원, 폐가 탐방기”라는 제목으로, 사진들이 올라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허브 향기 가득한 멋진 곳이었는데, 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도 바울은 향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울에게서는 향기가 풍겼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냄새,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향기를 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 속에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가득 채워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길에서 향내가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을 발견해서 방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온 방 안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진흙 덩이에서 나는 이 놀라운 향기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진흙 덩이는 백합과 같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진흙에 불과했지만, 백합과 함께 있었으므로, 아름다운 향기를 방 안에 풍기는 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흙 속에 배어 있는 백합의 향기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을 품고, 묵상하며,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은은한 향기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난지도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하늘 공원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쓰레기를 매립하던 곳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매립하던 때에는 바람이 불면, 쓰레기 썩는 냄새가 온 서울 시내로 불어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난지도 하면,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게 됩니다. 지금은 난지도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 공원이라고 부릅니다.
오송 사택 근처에, 돼지 축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축사 운영을 하고 있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분뇨 냄새가 심하게 나서, 열어놓은 창문을 다급하게 닫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하기 전까지는 맡고 싶지 않는 냄새가 날 것입니다.
쓰레기 위에 흙을 덮고 또 덮어서, 그 더러움과 악취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쉬임없이, 그 악취를 제거하는 기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더러운 죄악과 악취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의 순결과 순수함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각처가 어디일까요? 내가 있는 곳, 내가 사는 곳, 내가 가는 곳, 내가 일하는 곳, 바로 그곳이 각처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회사도, 직장도. 학교도 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요셉은 형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애굽의 보디발 집에서 노예로 살아갔습니다. 주인인 보디발의 인정을 받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킴으로, 향기를 풍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결같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신앙의 순결을 지킬 때, 우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냄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여기에 보면,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있고,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아니라,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러움과 악취를 풍기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기를 보면,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혼잡하다”라는 말은 “타락하다. 품질을 떨어뜨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순전하다”라는 말은 “명확하고, 정확하다.”라는 뜻이요, “진짜이며, 거짓이 섞이지 않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꾸밈이 없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타락시키지 않고 순전함으로 지키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딤후 1:4-5)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꾸밈이 없는, 거짓이 없는 진짜 믿음을 보았습니다.
가짜 믿음, 꾸며진 거짓 믿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진짜 믿음, 그 어떤 것도 썩이지 않는 진실한 믿음이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까? 생화와 조화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용인에 있는 한국 기독교순교자 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예쁜 꽃병에 들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았습니다. 꽃잎 마디마디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냄새를 맡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조화였습니다. 너무나도 진짜처럼 보였기에, 그것이 조화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완벽하게 속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아니라, 거짓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는 진짜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를 속이는 믿음이 아니라, 누군가에 기쁨을 주는 참된 믿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나 불지 않을 때나, 언제나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향기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라틴어로, “코람 데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람”은 “앞에서”라는 말이고, “데오”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코람 데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고백했던 어느 시편 기자처럼, 우리는 항상 하나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도록,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보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숨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숨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온 마음, 온 정성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우리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어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만 진짜인 것이 아니라, 평생을 진짜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100:3-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라는 복음성가 가사를 다시 보면,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이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전국 어디에서든지, 오늘 맥추감사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 중에, 보리 농사를 짓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자라고 있는 “보리”를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들이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예배”로 드리는 것은 단순하게, 보리 수확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준비해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셨사오니, 이 생명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오니, 우리 또한 주님께 드림으로, 구리고, 이웃에게 나눔으로 보답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거짓이 가득한 가짜 믿음이 아닌 순수하고, 깨끗한 진짜 믿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