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예(122~185)
김청예는 김수로왕(金首露王)으로 가야(伽倻)국의 시조로 스사노오와 흡사해보인 인물이다. 그가 스사노오라고 한 이유는 이러하다. 여기서 수로왕의 옛 일본식 발음은 스사(首) 노(露) 오(王) 라고 추정되고 수로왕은 왕, 선우를 뜻하는 흉노어라고 전해진다. 일본학계가 말한 스사노오 즉, 김청예의 본명 후츠시는 사실 별명으로 그가 전쟁을 수도 없이 했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칼을 휘두르는 장수를 뜻한 옛 말이었다.
김청예는 사실 졸본부여 임금 연타발(延陀勃)의 후손으로 여기서 연타발은 황제(黃帝) 희헌원(姬軒轅 : BC 2708~2598)의 후예다. 김청예는 122년 왜 열도의 이즈모(出雲)에서 태어나 그가 21세 때인 142년, 구야 지방을 평정하고 자신의 고향 이즈모를 정령한 뒤 나라 이름을 가야(伽倻)라고 정했다. 모든 학계에서는 가야 건국연도를 42년이라 정했으나 사실은 그보다 늦은 142년으로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한 임금이 150년을 살다니, 이건 너무 왜곡된 표현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과장된 이 연도는 어디까지나 전설로 사실이라고 볼 수 없으며 진짜 탄생연도는 122년, 건국연도가 142년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그 뒤에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 허황옥(許黃玉 : 133~189)과 혼인을 맺어 아들 5명, 딸 3명믈 두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허황옥은 일본서기 상의 쿠사이나다공주와 흡사한데 여기서 쿠시이나다(奇稻田)는 기이한 벼밭을 의미하는 단어로 당시 아유타국이 쌀의 생산지라고 전해지며 그곳의 벼가 특히했다고 봐야 옳다. 그러므로 그녀가 쿠시이나다 공주라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사노오와 쿠시이나다 공주는 사실상 김청예와 허황옥이었던 것이다.
173년 이번엔 왜 열도의 큐슈(九州)를 정벌하려고 4년간 전쟁을 벌인 끝에 평정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형 김주일(金朱日)의 딸이자 야마타이국(邪麻臺國)의 여왕인 김일령(金日靈 : 154~247)과 혼인하여 딸 3명을 두었고 또다른 아들인 니니기를 두었다. 그 뒤인 182년에는 나라(奈良)에까지 진격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인 185년 63세의 일기로 사망했고 그의 무덤은 김해에 있다고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