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얘기만 하면 화나요. 제가 월드컵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나이 때문이 아닙니까."
개띠 해인 병술년. 제철을 만난 축구 스타가 있다. 개띠 김병지(36ㆍ서울)다. 축구 선수로 황혼기다. 하지만 그는 올해 또 다시 변화의 물결을 탔다. 포항에서 서울로 둥지를 옮겼다. 계약기간은 3년. 불혹 머리까지 선수 생활을 보장받았다. 인간 승리다. 김병지는 동호회라고 할 수 있는 직장인 축구선수 출신이다. 창원 LG산전 시절 근무와 훈련을 함께 하며 꿈을 키웠다. 여건은 언제나 불리했다. 그러나 '믿을 건 실력밖에 없다'며 축구화 끈을 조여매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 FC서울의 전훈지 중국 쿤밍에서 만난 김병지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 신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월드컵 악몽과 독일월드컵
축구를 하면서 두 번의 악몽이 있었다. 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98년은 성적이 나빴다. 반면 2002년에는 4강 신화를 맛봤지만 벤치만 지켰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때는 극과 극이었다. 첫 경기 폴란드전을 앞두고 전 경기에 출전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이렇다보니 월드컵이 두고두고 한이다. 그래서 아직 2006년 독일월드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죠. 기량으로 평가받는 것 아닙니까." 월드컵 출전을 위한 그의 몸부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가족을 버렸다
김병지의 국보 1호는 축구가 아니다. 가족이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첫 번째고, 그 다음이 축구"라고 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에는 둘째 아들 출산에 맞춰 히딩크 감독에게 휴가를 신청했을 만큼 애처가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아내 김수연씨에게 '폭탄 발언'을 했다. 축구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이겠으니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김병지는 "많은 나이에 이적한 만큼 책임감을 느낀다. 이제까지 나를 위해 운동했다면, 올해는 팀을 위한 축구를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젠 박주영이다
김병지의 가장 큰 장점은 매사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K-리그 최고령이지만 그는 늘 분위기메이커다. 서울로 이적한 지 보름밖에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팀 분위기에 완전히 동화됐다. 날이 갈수록 신명이 난다. 아울러 '내편'도 바뀌었다. 김병지는 "포항 시절 이동국이었다면 이젠 박주영이다. 주영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또 서울의 영원한 라이벌 수원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단다.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올시즌 수원은 서울의 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전이 아름답다
김병지는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룬 철학자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단다. 그래서 그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목표도 뚜렷하다. 500경기 출전이다. 그의 K-리그 시계는 현재 387경기 출전을 가리키고 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 또 96년 울산에서 우승을 경험한 이후 올해로 만 10년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올해는 기필코 우승을 맛보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올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오세요. 그라운드의 재미를 다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