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 - 소녀들의 어머니
성모님의 달인 오월에, 성모님께 자신을 감사의 기념비로 봉헌한 한 사람의 수도자, 가난한 소녀들의 어머니가 되셨던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이하 성녀 마자렐로)를 기억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또 다른 마리아를 만나는 일이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특히 어머니들에게, 성인 (聖人)이 된다는 것은 설거지와 바느질, 매일의 평범한 일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허영심이 강한 어린시절
성녀 마자렐로는 아주 현실적인 평범한 여인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지녔고, 보통의 아가씨들처럼 자신을 드러내고자 애썼으며 허영심이 강했다. 별명이 멋쟁이였던 만큼 날씬한 자신의 몸매에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를 줄도 알았고 소위 아이표핑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버지가 장에 갈 땐 즐겨 따라나섰다. 그러나 마자렐로는 자신의 결점을 알았고, 그리스도에 비춰 자신을 대조하며 꾸준히 고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자렐로는 1837년 5월 9일, 이탈리아 모르네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느 농가에서나 그렇듯이 그녀의 집에도 일이 많았다. 맏딸이었던 그녀는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도 돌보아야 했고 아버지를 도와 밭일도 해야 했다. 성격이 불같았던 그녀는 특히 포도밭일을 좋아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남자처럼 일했던지 남자 일꾼들까지도 함께 일하기를 어려워 했다.
본당 사제인 페스타리노 신부(후에 살레시오 수도원 회원이 됨)는, 마을 주민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는데, 특히 순결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고, 이를 증거와 기도, 말씀의 사도직에 꼭 필요한 조건으로 보았다. 이러한 말씀들은 마자렐로가 봉헌된 삶에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자렐로는 미사와 영성체를 소중히 여겼고, 발포나스카로 이사해 사는 동안 성당이 보이는 창가에서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경배드리곤 했다.
소녀들의 선을 위하여 하느님께
1860년 전쟁 이후 모르네세에는 전염병과 장티푸스가 몰려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페스타리노 신부는 마자렐로의 친척집 식구가 모두 전염되어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자렐로에게 간호를 부탁했다. 22세의 마자렐로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페스타리노 신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마자렐로의 정성어린 간호에 친척들은 나날이 회복되어 갔으나 마자렐로는 악성 장티푸스로 쓰러졌다. 마자렐로의 병세는 장례식 준비까지 생각할 만큼 대단했다.
이 병으로 마자렐로는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마자렐로는 힘을 쓰지 않으면서도 소녀들을 위해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바느질을 배우자고 그의 단짝 친구인 페트로닐라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그들은 발렌티노 캄피 씨에게 가서 재봉을 배운 후, 모르네세에 재봉소를 차리고 열심히 일했다. 모르네세 곳곳에서 이 성실한 재봉사들에게 일감을 주었고 마자렐로는 유 행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검소한 옷을 소녀들에게 만들어 주었으며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여러 가지 유혹에서 지켜 주기 위해 놀이와 축제를 준비하여 이끌어갔다.
또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소녀들을 받아들여 함께 지내게 되면서 부터, 재봉소는 소녀들을 위한 작은 기숙사가 되었다. 마자렐로와 페트로닐라는 이들에게 교리도 가르치며 하느님 안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녀들에게도 소년들에게와 같이 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던 돈보스꼬는,1864년 10월 7일 모르네세 방문 이후, 이를 실현할 사람들을 그들 가운데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돈보스꼬는 그가 꿈꾸던 소녀들을 위한 선, 그의 일생을 이끌어 주었던 도움이신 마리아께 드릴 가장 큰 선물 을 준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움이신 마리아께 드리는 살아 있는 기념비' 즉 '살레시오 수녀회'의 창설이다.
집안의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
1872년 8월 5일, 소녀들을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자 준비된 이들이, 돈보스꼬 앞에서 서원을 발했다. 11명의 서원자들이 3년 간의 유기서원을 발하므로써 살레시오 수녀회가 창 서리된 것이다.
자신은 무식해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마자렐로 수녀는 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그 후에 자신만 빼고 모든 수녀들의 찬성을 얻어 돈보스꼬에게서 정식으로 마드레(어머니, 수도회의 총장)라고 불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만큼 마자렐로는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 절제와 겸손의 정신을 갖고 있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그녀를 일컬어 '성령 안에 산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자렐로는 말했다.
"옷 입는 데 허영심을 두는 한, 참된 신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는 감탄을 하고 눈물을 뿌리면서도, 밖에 나와서는 작은 희생을 피하려하고 천한 일에 달려 들기를 싫어하는 이들을 부러워 하지 마세요. 진정 누구를 부러워 해야 하는 지 압니까? 참다운 겸손으로 모든 것을 다루고 집안의 빗자루와 같은 존재로서 만족해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끝없는 인내와 무한한 부드러움을 당부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되풀이 하거니와 언제나 즐겁게 지내십시오. 절대로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미지근한 생활의 어머니입니다."
마자렐로는 늘 바른 판단과 의지로 수도회를 이끌었다. 그의 생존시에 이미 아메리카로 수녀들을 파견할 만큼 수도회가 클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만을 선택하려는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소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알의 밀알이었다.
1881년 5월 14일 닛자에서 선종한 마자렐로는, 1938년 11월 20일에 시복되었고, 1951년 6월 24일에 시성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4월 13일,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전에 모인 수녀들에게 말씀하셨다.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는 거의 쓸 줄도 몰랐고 읽기도 서툴렀습니다. 그렇지만 덕에 관한 이야기는 성령에 힘입어 말한다고 보일 만큼 분명하고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성녀는 하느님께 대한 헌신을 겸손과 극기, 기쁨으로 살아 그녀의 '사랑의 모성'을 많은 소녀들을 위해 실현했습니다."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
탄생 : 1837. 5. 9.
선종 : 1881. 5. 14.
시성 : 1951. 6. 24.
축일 : 5월 13일
관련도서 : 어린이용 - 성녀 마자렐로(만화, 성바오로출판사), 성녀 마자렐로(성인전, 성황석두루가서원); 성인용 - 어제와 오늘의 여성(성바오로출판사), 젊은이와 더불어, 발포나스카의 창, 모르네세의 언덕, 성령에 산 영혼, 서간집 등 많은 책이 있다.
[출처 : 살레시오회 홈페이지, 노공순 수녀(살레시오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