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검색해보니
미국 캘리포니아 세쿼이어국립공원에 있는 "제너럴 셔먼"라고 불리우는
나무가 2,700살쯤 되었고
역시나 캘리포니아 인요국립공원에 있는 "메두 셀라"라는 이름의 나무는
4,800살 되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질 때 이미 백살이라니......헛웃음이 나옵니다.
아시아에서는 이란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4,500년 살았는데
영국의 스톤헨지하고 거의 동갑이랍니다.
영국에 있는 주목나무도 4천살이나 되었다고 하고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종"이 뭔가? 를 찾아 봤었어야
이야기의 첫머리에 둘 "은행나무"라는 답을 얻었을 겁니다.
비록 번지수가 틀려 서론이 길어졌지만 덕분에 공부 좀 하고 갑니다.
무성한 잎으로 한여름의 뜨거운 직사광선을 막아 주다가
지구가 태양에게서 멀어져가는 가을로 접어 들며 나무는 잎을 떨구어
인간에게 볕을 더 많이 보내 줍니다.
그렇게 수백만년을 인류와 교감하며 서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인간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은행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수히 떨어진 은행잎을 무심코 보고 있노라면 문득 황금열쇠가 떠오릅니다.
제 몸의 노란 잎을 활짝 펼치면 그 모양이 열쇠의 손잡이 같기도 하지요.
거창하기도 하고 진부하기도 한,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말 보다는
조금 현실적으로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가 더 필요한 요즘입니다.
그 은행잎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더는 볼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시골집에는 동생들이 부모님 모시고 묘사(시제)지내러 간 지라
저는 이 번 주말은 서울에 남겠다고 말씀드리고 늦은 가을속으로 걸어 갑니다.
서울로7017(옛 서울역 고가)을 빼먹었네요.
서대문역에서 출발하여 독립문~딜쿠샤 권율장군집터의 은행나무~정동길~서소문~남대문~
남산 북측순환로~장충단공원~동대문까지의 여정입니다.
원래 독립문이 있던 자리는 차도의 중간쯤에 있다고 합니다.
고가도로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네요.
문앞의 돌기둥 두 개는 영은문의 주춧돌인데 중국사신을 영접하는 문의 기둥이었군요.
홍살문을 세웠다가 헌 후에 격이 높은 영은문을 다시 지었답니다.
무악재에 고가다리가 보입니다.
아직 공사중인 것 같은데 나중에 완공이 되면 가봐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설렘을 저축합니다.
영천시장 맞은편에 전통의 도가니탕집인 대성집(대성옥)이 있었는데
재건축때문에 독립문 사거리 대신고등학교 옆 미니텔 자리로 옮겨 왔습니다.
예전보다 손님이 없는 것 같던에 오늘은 정기휴일이라 문이 닫겼네요.
손님이 많으면 문을 닫지 않았겠죠?
행촌동의 지명이 유래한 나무입니다.
권율장군집터에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여기는 아직 은행잎이 아스팔트를 덮고 있네요. 말라서 바스라지기는 해도 말이죠.
바로 앞에는 딜쿠샤가 있습니다.
인도말로 "이상향"을 뜻하는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밑의 안내문에 자세한 내용이 있네요.
한국자산관리공사외에도 다른 쪽 벽면에는 기획재정부에서도 붕괴위험 경고와 빠른 이주를
안내하는 주의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딜쿠샤에 사는 사람들이 장독대를 갖다 놓아 보이지 않던 딜쿠샤 건축년도가 확연히 보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에 일조를 한 분이 살던 곳입니다.
작년에 와 봤을 때와 달리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좀 간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빨리 딜쿠샤가 복원이 되어
알버트 테일러씨의 부인이, 서대문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남편을 바라다 보았다는
2층 창가에도 서보고 싶습니다.
홍난파 가옥도 여전합니다.
월암근린공원에서 서울교육청으로 나오는 길은 1년새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단풍나무 아래 이정표가 옛길의 흔적을 알려 줍니다.
강북삼성병원도 증축공사를 하고......
주택이 헐리고 키큰 아파트가 어느쌔 저렇게나 많이 들어서다니......
강북삼성병원앞에 음식점들이 없어지고 FOODSHED(식량단지)의 전통한옥이 늠름하게 보입니다.
공사 가림막이 사라지고 나니 공금했던 모습이 드러 났네요.
기존의 주택들을 조금씩 개조해서 서울건축디자인센터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정동길(덕수궁돌담길로 이어지는 길) 캐나다대사관앞에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어디로 갔네요.
담장도 없어지고 전시관으로 멋지게 단장이 되었네요.
참 세월 빠르네요.
창덕여중 교정의 은행잎도 아직은 탐스러이 남아 있습니다.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대문 지붕의 은행잎도 여전합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것도 번거롭고
가을속에 낭만이파리로서의 역할도 끝났겠지요?
조금은 섭섭하나 모양구기기전에 은퇴를 택한 걸 겁니다.
여관인 줄 알았더니 병원이었네요. 이화여고 담장아래.
정동제일교회는 공사중.
예원학교가 예배장소로 되어 있네요.
재단이 같나?
이화여고가 예원학교하고 서울예고에 연관이 있던데
덕수궁돌담길로 가지 않고 러시아대사관앞으로 해서
배재공원을 지나 서소문으로 나섰습니다.
서소문의 은행잎도 아직은 쓸려가지 않았습니다.
남산길에 단풍색이 옅어졌지만 아직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볕을 통과시켜 준 나뭇잎들덕에 마음도 더 환해집니다.
구비구비 순환로에서 남산꼭대기 첨탑도 보고
북한산 보현봉과 백운대도 보입니다.
남산길엔 뛰는 이 걷는 이 무리지어 가는 이 다양한 걸음이 여전히 활기찹니다.
"겨울이라니 무슨 소리 아직은 가을이야!"
이사 온 수표교가 보이는 장충단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얼음이 있네요. 등에는 땀이 차는데
어느 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동대입구역에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전에 직장에 계셨던 분의 집이 근처라서
문자를 보내 놓고 혹시라도 연락이 닿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였습니다.
먹자골목을 거의 빠져나온 거리에 앰배서더호텔과 관묘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이 보였습니다.
구경삼아 들어가보니 몇군데 식당이 있었는데 탕집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탕을 한 그릇 시키고 막걸리를 주문하니
안주인께서 막걸리는 없다고 사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달라고 했더니 음료냉장고 문을 열고선
주방에 계신 바깥주인한테 하소연성 대화를 하더군요.
"저어기 그 집에 가서 사와야지 뭐. 거긴 일요일에 문 안 열어요"
소주를 시키려다가 버팁니다. 독주보다는 막걸리가 나을 것 같았습니다.
"한 통만 사오면 되나요?" 저보고 확인을 하십니다.
"네"
주방에서 아저씨가 계산대로 나왔습니다.
'돈관리를 아저씨가 하시나 보다'
아주머니가 두 번 걸음을 하시가 어려우니 두 통을 살 돈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반찬이 나오는데 부추김치가 제법 맛있게 삭아 있었습니다.
물김치도 특이했고.
맛이 좋다고 했더니 주인아저씨가, 처음 왔냐고 물어보고선
먹자골목쪽에서 30년 가까이 하다가 3년전에 부인이 아파서 그만뒀다가
작년 4월에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하면서
타계하신 종교계의 어르신도 생전에 종종 드셨는데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는 밥을 못 드셔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가져다 드셨다고
나름대로는 보람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정계나 재계, 관계의 높은 사람들이 단골로 왔었고
제주도에서 예약하고선 비행기타고 바로 올라 왔고
전골은 지금도 안하지만 그 때는 탕도 하루에 딱 열다섯 그릇만 할 정도로
수육을 전문으로 하면서 손님이 많아서 바쁘기도 했던 옛영화를 추억하셨습니다.
아주머니가 막걸리를 사왔습니다.
장충마트까지 갔다 왔다고 하는데 아마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가 봅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주머니는 뇌수술을 받았고 의사도 후유증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수십년을 함께 했던 이웃가게의 사람들을
못 알아 본다고 했습니다.
발음은 병력을 모를 정도로 또렷하여 다행인 것 같았습니다.
수술비에 돈이 많이 들었겠다고 물어보니 보험을 들어 놓아서 수월했다고 그러더군요.
겨울이면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으니 혹시라도 다음에 들르게 되면
참고를 하라고, 주인아저씨가 제게 알려 주시는데
안주인이 바로 자릅니다.
"예약 들어오면 일요일도 해야지" ㅎ
고향에 다니기전에는 매주 성곽길도 걷고 해서 자주 올 기회가 있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에 고향얘기가 오고갔고
아주머니의 고향이 춘양인 걸 알았습니다.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살짝 비치긴 했었는데......
아주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으나
아버지띠라 고향에 갔을 때의 일이 어렴풋하게 떠 오르는 장면은 있다고 하더군요.
반가운 대화를 이어가다가 막걸리 한 통이 비었습니다.
두 통을 사온 줄 알았는데 한 통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하나만 사왔다고 그러시네요. ㅠ
재료가 모두 국산이라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동대문의 은행은 잎 대신에 간판으로 ㅎㅎ
동대문 난전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구석구석을 누비며 따뜻한 이불이 유혹하고 저렴한 신발이 눈을 훔쳤으나
꾹 참고 3천원짜리 골덴바지 하나를 샀습니다.
동네에 와서 수선을 맡기니 수선료도 3천원.ㅎ
바짓단을 줄이려고 집에 와서 표시한 후에 수선집에 가보니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은 잠겨 있어서
저녁먹고 다시 가 봤는데 계속해서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불은 잊어 버리고 끄지 않고 퇴근하신 건가?
월요일에 일찍 퇴근해서 다시 오려면 번거로운데......
도리가 없다하고 돌아서려다 문을 두드려 보니 안에 주인이 있었네요.
일하러 나온 게 아니고 잠깐 볼일때문에 있는 거라고 손사래를 치는데
수선주문만 받으시라고 하니 그 것도 안 할 태세였다가 이내 접수를 해줬습니다. ㅎ
동대문 평화상가 난전 구경을 하고 나니 시간도 꽤 되었고
옷단도 줄여야 했기에 여정을 마쳤습니다.
무악재의 고가다리를 건널,
동대입구의 탕집에 다시 한번은 가봐야 할
동대문에서 산 3천원짜리 골덴바지가 수선을 마치고 나올
날을 기다리는
오늘도 바람처럼.
첫댓글 두루두루 제법 꽉찬 일요일을 보내셨군요~
무악재를 까마케 잊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 다닐때는 영천에서 전차를 내려 무악재를 넘어 다녔는데 추우나 더우나~ㅎ
아~~옛날이여~
이제는 학교도 떠나고 ..
한번은 고가다리를 보러가야 할듯하네요
덕분에 지난 시간속으로 가봤네요^(^
서대문사거리가 영천정류장이었나 보군요.